예술계가 주목하는 NFT, 넌 누구냐

김태훈 기자
미국 크리스티 경매에서 NFT 미술품으로서는 처음으로 입찰을 시작한 디지털 아티스트 ‘비플’의 작품 ‘매일: 첫 5000일’은 6930만달러(약 785억원)에 낙찰됐다. / 크리스티 경매 제공

미국 크리스티 경매에서 NFT 미술품으로서는 처음으로 입찰을 시작한 디지털 아티스트 ‘비플’의 작품 ‘매일: 첫 5000일’은 6930만달러(약 785억원)에 낙찰됐다. / 크리스티 경매 제공

지난 3월 11일 미국 크리스티 경매에서 ‘매일: 첫 5000일(Everydays: The First 5000 Days)’이라는 작품이 6930만달러(약 785억원)에 팔렸다. 독학으로 미술을 배운 ‘비플’이라는 예명의 디지털 아티스트 마이크 윈켈만은 이 작품이 팔리며 단숨에 생존 작가 중에서는 제프 쿤스와 데이비드 호크니에 이어 3번째로 높은 경매가를 기록한 작가가 됐다. 놀라운 것은 이 작품은 액자에 담긴 작품이 아니라는 것이다. 300메가바이트(Mb)가량 용량을 가진, 1개의 컴퓨터 JPG 파일이었다.

■미술품 경매시장에서 돌풍의 핵으로

기술의 발달이 예술과 투자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새로운 시대를 열까. 비트코인으로 대표되는 가상화폐처럼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한 ‘NFT(Non Fungible Token·대체불가능토큰)’ 예술품이 가상자산의 하나로 주목받고 있다. 277년 역사의 소더비 경매 역시 NFT 미술시장에 진출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아직까지 이름도 뜻도 낯선 NFT가 대체 무엇이길래 화제가 되고 있을까. NFT는 블록체인 기술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가상자산이라는 점에서는 비트코인과 비슷하다. 다른 점은 비트코인이 현실의 화폐처럼 누구나 통용할 수 있게 만들어진 것과 달리 NFT는 각각의 디지털 자산이 고유한 인식값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NFT는 하나하나의 가치가 모두 다를 수밖에 없어 화폐처럼 누구에게나 같은 가격으로 거래되지 않는다. 쉽게 표현하면 비트코인이 평범한 동전이라고 할 때, NFT는 각기 고유한 디자인의 그림과 일련번호를 새긴 기념주화라고 할 수 있다.

NFT를 작품에 적용하면 작품의 소유권과 거래이력이 명시되기 때문에 나만의 디지털 작품을 갖게 된다. NFT가 일종의 인증서가 되는 셈이다. 원천적으로 복제를 불가능하게 하는 블록체인 기술을 썼으므로 가품이나 모조품도 나오기 어렵고 소장자만의 배타적인 독점권이 확실히 보장된다.

현존 작가인 데이비드 호크니가 그동안 캔버스에 그림을 그렸듯 컴퓨터를 이용해 디지털화된 신작을 그린 뒤 거기에 고유한 NFT 데이터를 덧붙였다면 새로운 NFT 예술품이 만들어진 셈이다.

NFT는 예술작품과 결합해 판매와 유통이 쉬워진 특성 덕에 이미 미술품 경매시장에서 돌풍의 핵으로 성장하고 있다.

비플은 작품 제목처럼 2007년부터 5000일 동안 매일 디지털 아트 작품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이번에 팔린 작품은 그동안 제작한 작품 중 5000개를 조합한 뒤 블록체인 암호화를 거친 NFT에 해당한다. 이미 일론 머스크의 아내이자 가수인 그라임스가 자신의 NFT 디지털 그림을 경매에서 580만달러에 팔아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이번에는 미술계에서 권위를 가진 미술품 경매 무대에 처음 오른 NFT 작품이 유명 화가인 살바도르 달리나 폴 고갱의 작품보다 높은 가격에 낙찰되면서 더욱 화제가 됐다. 소더비 경매 역시 오는 4월 디지털 아티스트 ‘Pak’과 협업해 NFT와 결합한 디지털 작품을 경매에 올릴 것이라고 밝혔다.

테슬라 CEO인 일론 머스크는 지난 3월 15일 가상화폐를 상징하는 장식이 새겨진 황금빛 트로피가 돌아가는 모습에다 댄스음악 리듬으로 ‘너의 허영심을 위한 NFT(NFT for your vanity)’라는 가사를 반복하는 2분 20초짜리 영상을 자신의 트위터에 올렸다. 그러면서 “NFT에 관한 노래를 NFT 형태로 판매한다”고 썼다. 그러나 그는 다음날 자신의 NFT 영상 판매 의사를 번복했다. 실제 거래가 이뤄지진 않았지만, 트윗 거래 플랫폼 ‘밸류어블스’에서 한 이용자가 입찰가 99만9000달러(약 11억원)를 제시하기도 했다. 이와는 별개로 트위터의 창업자인 잭 도시도 자신의 첫 트윗을 NFT로 만들어 경매에 부친 상태인데 최고 응찰가는 250만달러에 달했다.

■문화·예술·게임·스포츠 분야로 확산

국내에서도 NFT 예술품은 경매를 거쳐 고가에 거래되고 있다. 미술 투자 기업 피카프로젝트는 지난 3월 17일 NFT 플랫폼을 통해 진행한 경매에서 디지털 아티스트 마리킴의 작품 ‘미싱 앤드 파운드’가 288이더리움(약 6억원)에 낙찰됐다고 밝혔다. 시작가 5000만원으로 출발한 작품은 가상화폐인 이더리움으로 입찰한 한국의 한 컬렉터에게 돌아갔다. 지난해 가나아트에서 진행한 마리킴 개인전에서 같은 작가의 전작이 1억5000만원에 판매된 것과 비교하면 4배가량 높은 금액으로 팔린 셈이다. 송자호 피카프로젝트 대표는 “지난해 10월부터 블록체인 기술을 미술 분야와 연계시킨 콘텐츠를 준비해왔다”며 “국내 첫 NFT 미술작품이 국제적으로도 많은 관심을 받으며 높은 가격에 낙찰된 것”이라고 말했다.

고유한 예술적 가치를 지닌 작품을 쉽게 거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무엇보다 막 떠오르는 시장에서 가상화폐처럼 높은 수익을 거둘 수 있다는 기대심리까지 작용하고 있어 NFT 시장은 빠르게 커지고 있다. NFT 분석 사이트인 넌펀저블닷컴에 따르면 지난해 한 해 동안 NFT 시장의 거래량은 2억5000만달러(약 2812억원)에 달했다. 최초의 NFT라고 불리는 가상 고양이 수집·거래 게임 ‘크립토키티’는 2017년 첫선을 보인 이래 4000만달러(450억원) 이상의 매출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미 프로농구 NBA 경기에서 나오는 선수들의 명장면 영상을 NFT로 만들어 거래하는 플랫폼인 ‘NBA 톱샷’이나 스타트업 라바랩스의 온라인 아바타 거래 서비스 ‘크립토펑크’ 등도 NFT 시장에 빠르게 뛰어들어 높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NFT 거래 서비스를 출시 준비 중인 국내 업체 디비전 네트워크의 엄정현 대표는 “NFT는 이미 해외에서 예술과 부동산 등 실물로 측정하기 어려운 자산들을 토큰화하는 용도로 각광받고 있다”고 말했다.

미술계에서는 NFT가 그동안 예술작품이 각기 고유한 매력을 가졌음에도 쉽게 알려지거나 유통되기 어려웠던 문제를 해결하고, 기술과 결합해 보다 확실하게 가치를 보증할 수 있는 장점이 확실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러나 자칫하면 거품 낀 가격으로 시장을 왜곡하고 검은 돈을 세탁하는 데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우려 역시 적지 않다. 한 미술평론가는 “사실 국내 미술계에선 이번 크리스티 경매 소식 때문에 NFT에 대해 알게 된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라며 “평론가는 물론 예술가와 화랑·갤러리, 큐레이터 등 업계 관계자 대부분이 NFT를 확실히 모르는 상황이라 일각에서 고가에 거래된 사례만 가지고 불확실한 미래를 점치긴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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