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여성추상은 불가능한 명제인가···이 질문에 응답하는 세 명의 작가

김홍희

‘환상의 복식조’ 양주혜 vs 홍승혜 vs 박미나

양주혜, ‘무제’(2019, 퀼트 위 아크릴릭, 179x240㎝)

양주혜, ‘무제’(2019, 퀼트 위 아크릴릭, 179x240㎝)

색점과 바코드의 변주 양주혜
“나는 그림을 쓰고 있다”
점·선·면의 반복적 증식으로
손노동의 흔적을 예술로 승화

1 추상미술에서의 여성적 영역

환상의 복식조 7라운드는 양주혜(1955), 홍승혜(1959), 박미나(1973)를 초대했다. 양주혜는 색점과 바코드, 홍승혜는 컴퓨터 픽셀 이미지, 박미나는 딩벳 폰트로 각기 고유한 추상적 작품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추상미술은 20세기 부계적 모더니즘과 형식주의의 총아로서 남성양식으로 주류화됐던 반면, 형식보다 주제, 체계보다 서사를 중시하는 형상적 여성미술을 타자화하는 미학적 준거가 되었다.

초창기 페미니즘 미술운동은 추상 대 형상이라는 이분법적 논리 속에서 여성미술을 폄훼하는 모더니즘에 대한 반격으로 시작되었다. “페미니즘 미술운동의 가장 위대한 공헌은 그것이 모더니즘에 대해 아무것도 공헌한 바가 없다”는 루시 리퍼드의 단언이 모더니즘과 페미니즘의 양식적, 젠더적 대립을 요약한다. 그렇다면 추상미술은 과연 남성의 전유물인가? 추상미술에서의 여성적 영역을 논할 수는 없을까? 여성추상, 페미니즘추상은 불가능한 명제인가? 이번 호 연재는 위 3인 작가의 작품세계를 통해 이러한 질문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보려 한다.

2 양주혜의 색점 추상

양주혜, ‘空·0·不’(2000, 러버타일 위에 야광도장, 9.8x10.5m)

양주혜, ‘空·0·不’(2000, 러버타일 위에 야광도장, 9.8x10.5m)

양주혜는 색점을 조형 단위로 회화뿐 아니라 조각, 설치, 공공미술 등 다장르를 섭렵하는 자기확장적 작가이다. 점, 선, 면의 반복적, 증식적 변주로 구현되는 만큼 그의 작품세계는 복합적 차원의 양면성으로 이루어진다. 양면가치, 또는 경계의 미학은 이미 현대미술의 클리셰가 되어 있지만, 유일성, 순수성을 강조하는 부계적 모더니즘을 초극하는 여성추상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점에서 여전히 유효한 개념이라 볼 수 있다.

양주혜 추상화의 양면성은 우선 그리기와 쓰기 사이의 미학적 긴장감에서 비롯된다. “나는 그림을 그려본 적이 없다. 그림을 쓰고 있다”는 자신의 말처럼, 그에게 화면은 글자로 채워질 원고지, 일기장과 다르지 않다. 작가는 몸과 마음으로부터 우러난 무의식적 언어, 심신의 추상언어인 색점으로 ‘여성적 글쓰기’를 수행한다. “그림을 쓰는” 양주혜 추상화는 고쳐 쓰는 양피지같이 쓰고 지우고 다시 쓰는 행위의 반복으로 특성화된다. 이때 개입하는 시간이 화면을 관통하며 시간의 지층을 형성한다. 원근법으로 공간적 깊이를 재현하는 대신, 중복적 덧쓰기로 시간의 깊이를 공간화하며 시간과 공간의 양면성을 유희하는 것이다.

자신이 세운 일정한 규칙과 체계에 의해 시간을 세어가며 구획된 격자 속에 한 점 한 점 낙점하는 양주혜의 색점화는 격자로 분절된 색점들이 들숨 날숨과 같은 음악적 리듬감을 고취할 때 시·청각이라는 또 다른 차원의 양면성을 확보한다. 실로 격자를 채우고 비우는 그의 색점 패턴은 우리 고유의 악보인 원고지 모양의 정간보를 많이 닮아 있다. 색점의 음악적 유추는 실제로 사운드와 음악소리를 사용하는 공감각적 대형 설치작업들에서 현실화된다. 화엄사상을 기하학적으로 도형화한 법계도를 3차원적 미로로 전환, 확대해 관객이 통로를 따라 순회하면서 윤회의 의미를 깨닫게 한 ‘空·0·不(공·영·불)’(2000)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2004년부터 색띠와 숫자로 구성되는 바코드를 조형적 모티프로 등장시키고 있다. 음악적 암호와 같은 비의적이고 자기 참조적인 색점이 바코드로 독해되기 위한 바람이었을까? 양주혜는 바코드를 레디메이드로 차용하는 팝아티스트 감성으로 뒤샹에서 비롯된 탈모더니즘적 미술사 계보에 자신을 위치시킨다. 이후 작가는 페인팅, 공공조형물은 물론, 순수예술의 대중화를 실천하는 생활용품 제작에 색점과 바코드를 병행 사용하며 작업의 스펙트럼을 전방위적으로 확장시킨다.

커튼, 방석, 침대보를 색점과 바코드로 장식하며 생활예술을 실천해온 작가는 이제 퀼트, 누비와 같은 천 소재를 캔버스로 활용하는 새로운 착상의 색점 페인팅을 선보인다. 증조할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조각보 이불, 할머니가 사용하던 아기 포대기, 생전의 어머니가 쓰던 침대보같이 사적 기억과 체취가 배어 있는 유품들로 가계도의 ‘허스토리’를 피력하듯, 그는 한 올 한 올 바늘땀에 한 점 한 점 색점을 써내려갔다. 이렇듯 그는 수공예적 작업 방식으로 추상미술의 역사에 개입한다. 초기부터 그는 한지를 바르고 또 바르고, 칠하고 덧칠하고, 잘라내고 오려 붙이는 반복적 공정으로 그리기를 시작했다. 꼬질꼬질 손때를 묻혀가며 한 땀 한 땀 수놓는 그의 색점 페인팅이야말로 고급예술로 양식화된 남성추상과 달리 추상적 발상의 원천이나 손노동의 흔적을 감추지 않는 진솔한 여성적 추상의 본보기라 할 수 있다.

3 홍승혜의 픽셀 추상

홍승혜, ‘집짓기’(1999, 디지털 드로잉, 가변크기)

홍승혜, ‘집짓기’(1999, 디지털 드로잉, 가변크기)

픽셀에 생명력을 부여 홍승혜
공예적·노동집약적 패턴화 작업
남성중심적 추상양식서 소외된
여성 테크놀로지 아트로서 의미

홍승혜는 1997년 ‘유기적 기하학’이라는 컴퓨터 작업을 발표하면서 화단에 전격 데뷔했다. 픽셀을 기본 단위로 하는 자신의 컴퓨터 이미지가 기본적으로는 순수 기하형태이지만 포토샵으로 축소, 확대, 증식, 변화시키는 과정에서 유기체적 생명력을 갖게 된다는 의미에서 명명된, 지당하면서도 발견적인 이 명제는 자기 작품세계의 일대 변곡점을 알리는 일종의 예술적 선언이자 이후 홍승혜의 전 작업을 추동시키는 창작의 엔진이었다.

마우스 손동작으로 변화의 범위와 수위가 결정되는 픽셀화는 프로그램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만 변주가 가능하다. 그런 만큼 픽셀의 추상태는 내재적 운동과 유기적 변화를 수용하면서도 직선적 선묘나 기하학적 격자의 기본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피할 수 없는 격자형의 운명을 극복하려는 듯, 그는 실험 가능한 모든 변주 기술을 동원해 다채롭고 변화무쌍한 픽셀화를 조형한다. 또한 격자의 직선성과 추상성을 현대건축물, 실내가구의 선묘 디자인에 귀속시키며 공식적 기하학에 사적 에피소드, 일상적 내러티브의 차원을 부여한다. 픽셀을 3차원으로 확장, 변형시킨 실내디자인과 조각적 가구 작업에서 작가의 취향, 여성적 경험의 ‘파편’들이 감지되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1997~2000년 사이 연거푸 3차례 개최된 ‘유기적 기하학’전에서 작가는 잉크젯 프린트 드로잉과 알루미늄판 오브제 등, 다양한 양태의 픽셀화로 유기적 기하학의 실체를 보여주었다. 2004년 ‘복선을 넘어서’전에서는 복수 경계를 중첩하고, 여러 장르를 횡단하는 갖가지 실험들을 시도했다. 푸른색 정사각형 벽화에서 ㄱ자로 잘려 나간 모퉁이가 ㄱ자 모양의 빨간 테이블로 환생하여 서로 마주하고 있는 출품작 ‘보족적 인스톨레이션’은 조각과 가구, 예술과 생활의 경계를 허문 홍승혜식 유기적 기하학의 변종적 사례이며, ‘레디메이드 조각’은 벽면, 기둥과 같이 레디메이드로 존재하는 건축물의 일부를 페인트로 칠해서 얻어낸 유기적 기하학의 조각적 버전이다. 2009년 ‘음악의 헌정’과 2014년 ‘회상’전에서는 음악과 미술, 시간예술과 공간예술의 접합을 가시화한 드로잉, 벽화, 입체 및 영상물을 통해 조형적, 개념적으로 진화하는 유기적 기하학의 융·복합적 경지를 보여주었다.

홍승혜, ‘광장사각’(2012, 마루에 스티커, 609x600㎝)/사진 남기용

홍승혜, ‘광장사각’(2012, 마루에 스티커, 609x600㎝)/사진 남기용

2008년 ‘온 & 오프’전, 2012년 ‘광장사각’전에서 작가는 전시공간 자체를 시상식장이나 광장과 같은 공공장소로 치환하면서 유기적 기하학을 환경적으로, 사회적으로 확장했다. 이제 홍승혜는 일상, 삶의 서사를 포용하는 개방성으로 기하학 원리 바깥에 또 하나의 기하학, 여성 기하추상을 존립시킨 것이다.

유기적 기하학은 픽셀의 조형적 유희로 불변의 기하학적 추상체계를 교란시킨다는 암시적 가설로 위반적이고 비순응적인 여성추상으로서의 잠재력을 시사한다. 여성추상의 맥락에서 픽셀에 의한 패턴화 작업이 상대적 로테크인 포토샵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로테크는 인간적 척도에 맞는 윤리적이고 지속 가능한 적정기술로 다수 대중에 열려 있으며, 공예적이고 노동집약적이라는 측면에서 여성기술로서의 친화력을 갖는다. 특히 남성중심적으로 전개 발전되어온 테크놀로지의 역사에서 여성이 망각, 소외되는 비가시성 때문에 기술의 재편이 요구되고 있는 현시점에서 손노동과 체험미학에 의존하는 홍승혜의 픽셀화는 젠더특정적이고 대안적인 여성 테크놀로지 아트의 참신한 시도로 의미를 갖는다.

4 박미나의 딩벳 추상

박미나, ‘0985555460’(2010, 캔버스에 아크릴릭, 158x158㎝)

박미나, ‘0985555460’(2010, 캔버스에 아크릴릭, 158x158㎝)

딩벳 폰트로 구축한 세계 박미나
색칠공부 교본 위에 덧입힌
문자, 숫자, 도상, 색상은
추상미학을 인간적으로 조형

박미나는 색상, 숫자, 문자, 철자, 부호, 기호 등을 기본 도형으로 새로운 추상세계를 열고 있다. 2006~2007년 그는 30대 초반의 청년 작가답게 이모지와 이모티콘의 선행 폰트인 딩벳을 사용하여 그림문자, 표의문자, 표음문자를 종횡하는 작가 고유의 조형언어를 창안했다. 딩벳과 같은 신종 정보를 수집, 편집, 중첩, 교차시키며 추상언어를 발굴하는 그의 태도가 말하듯이, 그는 유통되는 문화정보와 과학상식으로부터 영감을 받고 창작의 방법론을 발상한다.

그의 예술적 DNA에 깃든 정보수집 능력, 조사연구와 체계화 본능, 방법론적 원칙주의는 이미 1990년대 중반 미국 유학 시절에 제작한 ‘색상풍경’ 연작에서 명시되었다. 색상풍경은 자연이나 도시에서 포착되는 시각적 인상을 형상 아닌 색상으로 재현하는 만큼, 순도 높은 추상성을 지니게 된다. 일례로 ‘가을하늘’(1995)은 작가가 화방에서 구할 수 있는 모든 하늘색 물감을 구입해 한 달간 특정 시간, 특정 장소의 하늘을 바라보며 ‘하늘색’을 그린 그림이다. 지금 여기의 하늘색에 가장 가까운 튜브물감을 골라 종이 위에 짜놓고 즉석의 붓질로 하늘을 재현한 것인데 가을하늘의 물리적 지표처럼 남은 종이 위의 흔적을 참고로 차후 후기제작될 하늘색 색상도표 페인팅을 제작한다.

박미나, ‘오렌지 페인팅’(2002, 캔버스에 아크릴릭, 220x210㎝)

박미나, ‘오렌지 페인팅’(2002, 캔버스에 아크릴릭, 220x210㎝)

2000년 귀국한 작가는 실내를 색상풍경으로 재현하기 시작했다. 이 계열의 첫 작품 ‘오렌지페인팅’(2002~2003)은 구매 가능한 모든 오렌지색 제품을 수집해 섞지 않은 생물감을 한 줄 한 줄 화면에 칠하며 수평 띠를 그려나간 단색의 추상화이다. 같지만 똑같지 않은 오렌지색으로 단계적 차이를 시각화한 색상의 스펙트럼이 정통 모노크롬 추상과 다른 색조의 울림을 발산하지만, 그것은 작가의 창작 의지보다는 안료의 유통 방식의 여건에 따라 결정된 수집 활동의 결과일 뿐이었다.

박미나의 색상 실험은 딩벳 연작으로 미학적 지평을 넓혀가며 작가를 추상화의 새 얼굴로 떠오르게 했다. 딩벳 회화를 화단에 처음 소개한 ‘홈 스윗 홈’ 전시(2007)에서 작가는 딩벳이라는 시각적 정보를 회화적으로 변용하며 딩벳이 함의하는 언어적, 사회적 의미를 희화화하였다. 이는 딩벳의 작의(作意)적 오용으로 표기되는 “개지랄, 개자식”과 같은 욕설을 유쾌발랄한 개개 작품의 제목으로 사용하는 반어법에서 적시되었다. ‘BCGKMRY’ 전시(2010)에서 작가는 정사각형의 캔버스에 딩벳 이미지를 수작업으로 확대 전사하고 딩벳 3원색인 RGB(적·녹·청)와 인쇄 4원색인 CMYK(청·적·황·먹) 계열의 색상으로 채색한 대형 그림문자도를 발표했다. 그야말로 레디메이드 이미지와 레디메이드 색상이 교집합된 메타언어적 레디메이드 작품이다.

딩벳 연작의 비추상적 추상성은 1998년부터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색칠공부 드로잉의 조형적 특성이기도 하다. 어린이 색칠공부 교본 위에 그림을 그리고 색칠하고 때로는 딩벳 이미지를 삽입해 원본을 변형시키는 색칠공부 드로잉을 통해 그는 문자, 숫자, 도상, 색상이 지니는 문화사회적 의미를 진단하는 동시에 도상 시스템과 정보 생태계 회로를 재구축하는 이미지 제작자 역할을 자신에게 위임한다. 작가는 유희하는 창조적 인간 호모루덴스가 되어 디지털 문화의 단절과 소외, 기표와 기의의 불일치를 블랙유머로 풍자하며 엄격한 추상미학을 인간적으로 완화시키고 그만의 조형감각으로 부계적으로 구축된 추상미술의 역사에 간여한다.

5 여성추상 미술의 지형도

남성양식으로 영역화된 추상미술을 놓고 여성추상, 페미니즘을 논하는 것은 무리한 시도일 수 있다. 그러나 추상에 대한 부계적 담론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기보다는 모더니즘이 소외시킨 타자성에 주목하며 추상미술을 재정의하는 것은 젠더 정치학의 관점에서 가치 있는 일이라 여겨진다. 제작자의 성보다는 작품 자체에 팽배한 젠더적 가치, 작가들 간의 차이에 주목함으로써 남성 추상언어와 다른 다양한 지점을 발견하고 여성적 영역의 지형도를 그릴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서다.

여성적 특성은 생래적 본질이 아니다. 부계사회가 여성적이라고 규정한, 여성적인 것으로 보편화, 차별화한 인위적 개념들이다. 단호하고 합리적이고 남성추상에 비해 여성추상은 직관적, 감성적이며 그렇기 때문에 불완전하고 불충분해 보인다는 결핍의 증상들은 그렇게 주변화된 것이지 그 자체가 주변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추상·형상의 이분법과 마찬가지로, 이성·감성, 직선·곡선, 기하학·유기체, 딱딱함·부드러움, 단순성·복합성의 대립은 비대칭적 남·여 위계를 쓸모없이 반복할 뿐이다. 양주혜, 홍승혜, 박미나는 각기 색점, 픽셀, 딩벳을 미학화하는 그들만의 추상충동으로 여성추상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다. 이들의 추상화는 성별에 따른 양식적 대립을 양면가치로 공존시키며 중심 아닌 주변에서, 남성성으로 오염되지 않은 새로운 영토에서 대안적 여성미학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김홍희

[김홍희의 페미니즘 미술 읽기](8)여성추상은 불가능한 명제인가···이 질문에 응답하는 세 명의 작가

김홍희는 미술사학자이자 평론가·큐레이터다. 서울시립미술관과 경기도미술관, 대안공간 쌈지스페이스 관장 등을 거쳐 현재 백남준문화재단 이사장이다. 카셀도큐멘타14 감독선정위원·광주비엔날레 총감독·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커미셔너 등을 지냈다. 다수의 페미니즘 미술전과 백남준·미디어아트 전시를 기획했다. 저서로 <여성과 미술> <굿모닝 미스터 백> <큐레이터는 작가를 먹고산다> 등이 있다. 김세중상(저작출판), 석주미술상(평론), 월간미술대상(큐레이터)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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