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과도 같은 꽃밭 만들기…조성희 개인전 ‘상상의 영역’

김종목 기자

조성희의 한지 콜라주 작업은 노동 집약적이다. 작품 가까이 다가가면 수행에 가까운 노동과 한지 콜라주 회화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작품 하나 하나에 수천, 수만 개의 한지 꽃들이 붙었다. 조성희는 한지를 원형으로 오려 꽃잎을, 한지 조각을 말아 꽃대를 만든다. 캔버스에 여러 높이로 꽃대를 고정한 뒤 꽃잎을 붙인다. 작업이 끝난 게 아니다. 테레핀으로 희석한 유화 물감으로 수천, 수만개의 꽃 조각에 색을 입힌다. 꽃들이 들어찬 캔버스는 꽃밭과도 같다. 캔버스에서 약간 떨어져서 보면, 이 꽃밭은 단색 추상 또는 다색 추상화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조성희, 밝은 정원, 캔버스에 한지 콜라주, 유채,130.3x193.9cm. 학고재 제공

조성희, 밝은 정원, 캔버스에 한지 콜라주, 유채,130.3x193.9cm. 학고재 제공

조성희는 개인전 ‘상상의 영역’(학고재, 31일까지)에 한지 콜라주 회화 18점과 설치 작품 1점을 내놓았다. 이 작품들엔 조성희 개인의 서사가 들어 있다. 학고재는 “노동 집약적인 작업 과정을 통해 유년 시절을 추억한다. 어린 아이의 순수함으로 돌아가기 위한 일종의 수행이자, 그동안 잃어버렸던 낙원으로 회귀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말한다. “유난히 꽃을 좋아한 아버지가 가꾸던 아름다운 정원과 창호지를 바른 격자창과 완자창으로 둘러싸인 한옥에서의 기억”,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하던 종이 놀이와 일곱 남매가 아버지의 정원에서 뛰어놀던 기억, 밤 하늘 별을 보며 행복한 이야기를 나누던 추억”이 작업 토대라고 한다.

조성희, 아름다운 정원, 2021, 패널에 한지와 폴리에스터 콜라주, 유채, 45.7x36.7cm 학고재 제공

조성희, 아름다운 정원, 2021, 패널에 한지와 폴리에스터 콜라주, 유채, 45.7x36.7cm 학고재 제공

어린 시절 어머니는 조성희가 직접 방의 벽을 꾸미도록 해줬다. 조성희는 색칠한 종이 조각을 벽에 붙여 놀곤 했다. 콜라주 기법이나 색상 선택의 감각을 놀이로 체득한 것이다.

조성희는 1972년 첫 개인전을 연 뒤 40년 간 서양화에 매진했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활동했다. 2010년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를 계기로 유년의 기억으로 한지 콜라주 작업을 시작했다. 조성희와 미국 미술 평론가 앤서니 하덴-게스트의 대담을 보면, 텅 빈 캔버스를 보다 작업실에 놓인 한지 조각을 주워 점으로 사용해볼까 하는 생각으로 캔버스에 붙였다. 그게 콜라주의 시작이었다. 이번 전시는 그 10년의 한지 콜라주 연마의 결과물을 볼 수 있는 자리다.

조성희 개인전 ‘상상의 영역’ 전시장 전경. 학고재 제공

조성희 개인전 ‘상상의 영역’ 전시장 전경. 학고재 제공

올해 초 제작한 설치 작품인 ‘상상의 영역’도 유년의 이야기가 실렸다. 여러 겹으로 쌓인 나무 구조물은 ‘공(工)’자 형태인데, 위에서 보면 ‘십(十)’자의 형태이다. 나무 조각들은 밤 하늘 별이자, 동화를 담은 집들이다. 조성희는 어린 시절 밤하늘 별을 보며 상상한 동화적 이야기를 나무 구조물로 재현한 것이다. 이 작품에도 한지 콜라주 작업이 들어 있다.

조성희 설치 작품‘상상의 영역’. 학고재 제공

조성희 설치 작품‘상상의 영역’. 학고재 제공

조성희 설치 작품 ‘상상의 영역’엔 한지 콜라주 작업도 들어갔다. 꽃대를 만들어 고정한 뒤 미리 오린 꽃잎을 붙여 채색하기를 반복하는, 수행에 가까운 노동을 들여다 볼 수 있다.  김종목 기자

조성희 설치 작품 ‘상상의 영역’엔 한지 콜라주 작업도 들어갔다. 꽃대를 만들어 고정한 뒤 미리 오린 꽃잎을 붙여 채색하기를 반복하는, 수행에 가까운 노동을 들여다 볼 수 있다. 김종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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