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주의에 날린 가운뎃손가락···아이웨이웨이 ‘인간미래’ 전

김종목 기자

아이웨이웨이(艾未未)가 가장 중시하는 건 표현의 자유다. 그 자유를 맹렬히 좇고 지키려다 중국의 반체제 인사가 됐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주경기장 ‘냐오차오(鳥巢)’ 설계에 컨설턴트로 참여하고도 중국 정부에 포섭되지 않았다. 같은 해 쓰촨 대지진 당시 당국의 대처를 블로그로 비판했다. “내 블로그는 내 생각의 연장선이다. 내가 전적으로 반인도주의적이라 믿는 이데올로기를 옹호하는 정권하에 살고 있다 해서 내 생각까지 기형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는가”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는 “내 삶을 존중해야 하고, 표현의 자유는 내 삶의 일부다. 결코 나 자신을 침묵시킬 수 없다”고도 했다. 2010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류샤오보 석방을 요구하다 2개월간 가택연금을 당했다. 아이웨이웨이는 2011년 탈세 혐의로 갑자기 연행돼 구금됐다.

아이웨이웨이 ‘원근법 연구 1995~2011’(2014) 연작. 김종목 기자

아이웨이웨이 ‘원근법 연구 1995~2011’(2014) 연작. 김종목 기자

중국 정부의 억압에 도전과 도발, 저항으로 맞섰다. 이 반골 기질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원근법 연구 1995~2011’(2014) 연작이다. 백악관 같은 국가 권력기관, 루브르박물관 같은 미술 권력을 지닌 기관 등지에서 건축물을 소실점에 두고 자신의 중지를 펴보이는 일련의 퍼포먼스를 하고 사진을 촬영했다. 기존 질서, 위계, 권력, 주류 이데올로기에 저항하는 의미를 담았다. 그 시작은 1989년 6·4항쟁이 벌어진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1995년 몰래 촬영한 가운뎃손가락 사진이다.

아이웨이웨이, ‘원근법 연구’ 연작 중 베이징 톈안먼,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아이웨이웨이, ‘원근법 연구’ 연작 중 베이징 톈안먼,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지난 11일 개막한 ‘아이웨이웨이: 인간미래’전에 나온 ‘원근법 연구’ 연작 중에 톈안먼 광장 사진도 들어갔다. 홍콩 시각예술 전문 미술관 M+가 이 사진 전시를 포기하고, 홈페이지에서도 사진을 삭제했다. 자신의 작품이 촬영 26년 만에 다시 탄압받은 이 사건을 두고 아이웨이웨이는 “한 개인의 작은 행동이 국가 문제가 돼 권위주의의 근간을 실제로 흔들 수 있다”고 했다.

인권과 표현의 자유 문제를 두고 그가 천착한 주제는 난민이다. 그는 주로 난민이 쓰던 물건을 오브제로 만들어 잊히고 사라지는 난민 문제를 강렬하게 환기한다. 이 레디메이드로 세상의 부조리와 모순을 끌어낸다. 2016년 작 ‘빨래방’은 행거 12개, 옷걸이에 걸린 옷 579벌, 신발 32켤레로 만들었다. 미니마우스를 새긴 분홍빛 아이 장화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레디메이드 물건 하나에 난민의 서사가 들어가면서, 피란길의 여정에서 고통받는 아이들이 떠오르게 된다. 난민 집단의 트라우마에 관해 생각하게 된다. 이 기억과 재현의 방식은 수천 벌의 옷들로 유대인의 죽음과 산 자들의 상실감과 애도 같은 복합적 정서를 일으킨, 크리스티앙 볼탕스키의 ‘저장소: 카나다’와도 비슷하다.

난민과 인권 문제를 다룬 아이웨이웨이의 대표작 ‘빨래방’(2016)(가운데) 왼쪽 벽면 작품이 ‘난민 구조선 시워치 3의 2019년 6월 항해 경로’, 오른쪽 청화백자 작품이 ‘난민 모티프의 도자기 기둥’이다.  김종목 기자

난민과 인권 문제를 다룬 아이웨이웨이의 대표작 ‘빨래방’(2016)(가운데) 왼쪽 벽면 작품이 ‘난민 구조선 시워치 3의 2019년 6월 항해 경로’, 오른쪽 청화백자 작품이 ‘난민 모티프의 도자기 기둥’이다. 김종목 기자

레디메이드 오브제 중 압권은 ‘구명조끼 뱀’이다. 유럽으로 들어가려는 난민들의 주요 경유지인 레스보스섬에서 난민들이 벗고 간 구명조끼 140개를 연결해 만들었다. 아이웨이웨이는 쓰촨 대지진 때 바닥에 흩어진 아이들의 가방을 연결하여 길고 커다란 뱀 ‘천장의 뱀’(2008)을 만들기도 했다. 아이웨이웨이는 쓰촨 대지진 때 드러난 부실공사의 대명사가 된 ‘두부 건축물’을 블로그에 고발했다. 여러 자원봉사자와 사망 학생들의 명단을 전수 조사하기도 했다. 그는 아이들의 죽음과 희생을 특히 안타까워했다. 한국 전시작은 아니지만, ‘일직선으로 곧은’(2008~2012)은 무너진 건물의 철근 200t으로 4년 동안 만든 작품이다. 가지런히 펼친 철근 더미 위로 지진 사망 어린이의 이름, 성별을 적었다.

아이웨이웨이의 ‘난민 모티프의 도자기 기둥’. 난민들의 피란길을 묘사했다. 김종목 기자

아이웨이웨이의 ‘난민 모티프의 도자기 기둥’. 난민들의 피란길을 묘사했다. 김종목 기자

그는 여러 매체와 방식으로 소수자의 고통을 재현한다. 3.1m 높이의 ‘난민 모티프의 도자기 기둥’은 언뜻 보고 지나치기 쉽다. 용이나 산수를 새겨 구운 중국 전통의 청화백자로 보인다. 가까이 가면, 난민들 모습이 새겨져 있다.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아이 손을 잡은 어머니, 폐허 위 죽은 누군가를 가슴에 품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 구명조끼를 입고 조각배에 몸을 실은 채 높은 파도에 떠밀리는 난민들이 코발트 안료로 그려졌다. 청화백자 작품들은 중국 전통의 권위에 대한 도전과 전복으로도 읽을 수 있다. 아이웨이웨이는 여기 난민 이야기를 새기며 도자기라는 매체의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낸다.

왼쪽부터 ‘검은 샹들리에’, ‘색깔 입힌 화병’, ‘한나라 도자기 깨뜨리기’ 퍼포먼스 사진. 김종목 기자

왼쪽부터 ‘검은 샹들리에’, ‘색깔 입힌 화병’, ‘한나라 도자기 깨뜨리기’ 퍼포먼스 사진. 김종목 기자

도자기라는 매체는 ‘색을 입힌 화병들’(2015)에서 변용된다. 신석기 시대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토기를 공업용 페인트에 담갔다 빼냈다. 유물 가치 훼손을 어떻게 봐야 하나. “20세기 이후 도시 개발과 현대 도시 건축을 위해 역사적 건물을 허물고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는 관행”에 대한 환기로 미술관은 해석한다.

이번 전시엔 ‘로힝야족’(미얀마에 거주하는 무국적의 인도-아리아인)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상 ‘로힝야’(2021), 멕시코 부패경찰과 갱단에 희생된 아이들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살아 있는 자’(2020)도 상영한다.

난민들 구명조끼로 만든 ‘구명조끼 뱀’. 김종목 기자

난민들 구명조끼로 만든 ‘구명조끼 뱀’. 김종목 기자

미술관을 나간 뒤 그냥 귀가해선 안 된다. 미술관 마당엔 원래 그 자리 심긴 것 같은 고목이 한 그루 서 있다. 2015년 작 ‘나무’다. 중국 남부 산악지대에서 수집한 은행나무, 녹나무, 삼나무 등 죽은 나뭇가지와 뿌리, 그루터기 등을 조합해 제작한 설치미술이다. “무자비한 도시화로 다양성을 잃어버린 현대 도시의 인공적 풍경을 은유”한 작품이다.

중국 남부 고목으로 만든 ‘나무’. 김종목 기자

중국 남부 고목으로 만든 ‘나무’. 김종목 기자

아이웨이웨이의 반골 기질은 내력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의 아버지는 좌파 시인 아이칭(艾靑)이다. 장제스(蔣介石)와 선을 긋고, 권력에 대한 부정과 증오의 뜻을 표하려 본래 성인 장(蔣) 대신 이(乂·벨 예)와 발음·형상이 비슷한 아이(艾·쑥 애)로 바꾸었다고 한다. 전시는 내년 4월17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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