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10년, 박수근의 붓과 한영수의 카메라는 같은 곳을 보았다읽음

박주연 기자
한영수, 서울 금호동 1956-1963 / 한영수문화재단 제공

한영수, 서울 금호동 1956-1963 / 한영수문화재단 제공

1945년 일본의 항복과 함께 찾아온 광복의 기쁨도 잠시, 정치적 혼란과 분단에 이어 발발한 한국전쟁은 참혹한 고통을 우리 민족에게 안겨줬다. 폐허가 된 서울은 광복 후 165만명으로 급증한 서울의 인구를 감당하느라 판자촌이 여기저기 생겼다. 도심도 예외가 아니었다. 2층, 3층으로 구성된 판잣집들이 청계천 2가와 3가의 천변부지에 즐비했다. 남대문시장과 동대문시장에는 현금이나 필요한 물품을 교환하려는 사람들이 난장을 펼쳤다. 음습한 전쟁의 폐허 위에서도 사람들은 일상을 영위했다. 희로애락이 있었다.

박수근, 길가에서(아기 업은 소녀) 1954, 캔버스에 유채, 107.5×53㎝, 개인소장

박수근, 길가에서(아기 업은 소녀) 1954, 캔버스에 유채, 107.5×53㎝, 개인소장

■이들의 작품은 닮았다

서울 덕수궁미술관에서 <박수근: 봄을 기다리는 나목> 전시회(2021.11.11~ 2022.3.1)가 성황리에 열리고 있다. 주중 800~1000명, 주말 1400~1800명이 관람해 1월 13일 현재까지 약 6만명이 다녀갔다.

전시회는 박수근(1914~1965)이 19세에 그린 수채화부터 51세로 타계하기 직전에 제작한 유화까지 그의 전 생애의 작품 163점과 자료를 소개하고 있다. 역대 최다 작품이 나온 것도 놀랍지만, 박수근이 화폭에 붓으로 담아낸 전쟁 직후 서울의 모습을 라이카 카메라로 촬영한 한영수(1933~1999) 작품들이 컬래버를 이루고 있는 점도 눈길을 끈다. 이번 전시회를 기획한 김예진 학예사는 “기획 단계부터 사진을 컬래버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한영수의 작품들이 박수근의 작품들과 공통점이 많음을 알게 돼 전시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김 학예사가 꼽는 공통점은 한국전쟁을 계기로 월남했다는 것, 전쟁 직후 서울의 평범한 서민들을 작품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 그리고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몹시 따뜻하다는 것 등이다. 이 같은 시선은 전쟁 직후 서울의 풍경을 비참하고 남루하며 거칠게 표현한 당시 대다수 리얼리즘 사진작가들과 크게 차별화되는 점이다.

박수근, 판잣집 1960년대 후반, 종이에 유채, 20.4×26.6㎝, 성신여자대학교박물관

박수근, 판잣집 1960년대 후반, 종이에 유채, 20.4×26.6㎝, 성신여자대학교박물관

■서울의 일상을 그린 박수근

박수근은 한국전쟁 때 남한으로 내려왔다. 1952년부터 1954년까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지금의 신세계백화점 자리에 있던 미8군 PX에서 초상화가로 일했다. 용산 미군부대에서 전시를 열고 그림을 팔았다. 열심히 저축해 1953년 창신동에 가족의 둥지가 될 집 한채를 마련할 수 있었다. 창신동은 동대문시장과 가까워 피란민을 포함한 서민들이 많이 모여 살았다. 1953년은 박수근이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서 특선을 차지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해이기도 하다. 미술대학을 나오지 않았고 당시 유행하는 그림을 그리지도 않았지만 진솔한 소재를 개성 있는 화법으로 구현해 인정을 받았다.

이후 10년간 박수근은 재건되지 못한 서울의 판잣집, 짐을 달구지에 실어나르거나 장사하는 사람들, 골목길에서 노는 아이들, 아기 업은 소녀, 머리에 광주리를 이고 행상을 하거나 노점에서 장사하는 여인들, 개천에서 빨래하는 여인들을 주로 그렸다. 창신동에서의 10년은 박수근의 전성기였다.

박수근, 세 여인 1960년대 전반, 나무판에 유채, 21×46.4㎝,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박수근, 세 여인 1960년대 전반, 나무판에 유채, 21×46.4㎝,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박수근과 한영수는 살아생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하지만 박수근이 살았던 창신동과 일했던 명동(미군 PX), 그리고 작품을 팔았던 을지로1가 반도호텔을 오가며 그가 보았던 풍경들은 한영수의 사진에 고스란히 등장한다.

한영수는 개성 만석꾼의 장손으로 태어났다. 학교 미술 선생님이 집으로 직접 찾아와 전문적인 회화 수업을 권유할 정도로 그림, 특히 드로잉에 재능이 있었다. 집안에서 허락하지 않았다. 가업을 물려받은 그는 취미로 사진을 시작했다. 한국전쟁 때 서울로 피란을 내려온 후 학도병으로 참전했다가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중앙대 사진학과를 졸업하고 헝가리에서 디자인을 공부한 후 20여년째 아버지의 사진 작품을 관리 중인 한선정 한영수문화재단 대표(52)는 “아버지는 새로운 기계 만지는 것을 좋아한 얼리어답터였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전쟁 후 서울을 사진으로 기록해둬야겠다고 마음먹은 아버지는 라이카 카메라를 사서 독학을 하며 사진에 심취했다”고 말했다. 1978년 ‘디자인’지에 실린 한영수 인터뷰에는 좀더 자세한 설명이 나온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1955년 군에서 제대할 무렵 카메라를 하나 마련했습니다. (중략) 특히 ‘아루스’ 같은 잡지에서 연재된 필름의 현상 및 인화 방법과 사진을 찍는 데 필요한 장비의 소개는 큰 도움이 됐습니다. (중략) 전쟁 후 나의 관심은 어떤 사람을 그의 주어진 환경에서 포착해보는 것이었습니다. (중략) 남루한 옷차림의 어린 소녀가 아름다울 수 없지요. 그러나 앵글의 각도에 따라 그 소녀가 품고 있는 아름다움이 남루함 속에서 풍겨나온다면 그것은 성공한 사진입니다.”

한영수, 서울 1956-1963 / 한영수문화재단 제공

한영수, 서울 1956-1963 / 한영수문화재단 제공

■힘겨움 속 희망 찍던 한영수

1956년부터 1963년까지 한영수는 본격적으로 카메라를 들고 거리에 나섰다. 사람들이 모여들고 각종 일상용품을 거래하던 시장을 비롯해 을지로, 명동과 충무로, 퇴계로, 남대문, 종로, 서울역, 한강의 광나루, 뚝섬, 한강 인도교 주변, 마포, 세검정, 청계천 등 서울의 여러곳에서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1958년부터 한국 최초의 리얼리즘 사진연구 단체 ‘신선회’에서 활동했다.

최종현 통의도시연구소장은 2017년 열린 <한영수 기증유물특별전> 전시도록 논고에 “그가 작업한 사진에는 도시를 보는 독특한 시각이 드러나 있다”며 이렇게 설명했다. “장소가 배경으로 처리되면서 사람과 장소의 관계가 유연하고도 긴밀하게 연관돼 있다. (중략) 주제가 무엇이든, 장소가 어느 곳이든, 항상 사람이 중심에 있다. (중략) 사진 속에 나타난 인물은 거의 예외 없이 의지가 있어 보이며 어떤 희망이나 미래에 대한 전망을 담지하고 있는 표정을 보여준다. 낙담하지 않는 긍정을 지닌 표정, 노여움이나 서글픔보다는 건강하고 변함없는 생의 의지를 드러내는 표정이 있다.”

한영수, 서울 명동 중앙극장 1957

한영수, 서울 명동 중앙극장 1957

한영수를 제외한 동시대 리얼리즘 사진가들은 고통스러운 시절을 고통스럽게 표현했다. 당시 사진 사조가 그랬다. 김예진 학예사는 “반면 한영수의 사진은 전쟁 후 헐벗고 못먹던 힘겨운 환경 속에서도 사람들이 계속 힘차게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표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영수는 1960년대 중반, 백화점 카탈로그를 찍은 것을 시작으로 광고·패션 1세대 사진가로 큰 성공을 거둔다. 삼성전자, 쥬단학화장품 등 1990년대 중반까지 그의 손을 거친 광고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제약회사 종근당의 상징인 커다란 ‘구릿빛 종’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사진도 한영수의 작품이다. 당시 광고시장을 한영수와 김한용(1924~2016)이 양분해 싹쓸이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한선정 대표는 “정부와 결탁한 재벌 위주의 대기업이 급성장하고 백화점들이 생기면서 홍보의 필요성이 제기됐고 그 결과 광고시장이 크게 열렸다”며 “아버지는 1966년에 건물 전체가 유리로 된 스튜디오를 열고 본격적으로 광고사진에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당시 우리 가족이 살던 동숭동 집은 100평 규모의 통창으로 된 빨간 벽돌 3층집이었는데 이곳에도 모델들이 드나들며 패션 화보 촬영을 했다”고 회상했다.

한영수, 서울 근교 1956-1963 / 한영수문화재단 제공

한영수, 서울 근교 1956-1963 / 한영수문화재단 제공

■하늘에 내걸린 한영수의 사진

1987년에는 한국전쟁 이후 서울과 역사적 발자취를 담은 사진을 모은 사진집 <삶>을 출간했다. 작고 후에는 딸 한선정씨가 한영수문화재단을 설립, 필름을 관리하고 있다. 2014년 프랑스 아를 포토 페스티벌에 참가한 것을 비롯해 뉴욕·LA 등지에서 활발하게 개인전을 열었다. 한선정 대표는 “해외 전시회 때마다 교포들로부터 고맙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교포들은 전후 한국에서 보낸 어린시절을 슬프고 힘들었던 시기로만 기억하고 있는데, 한영수의 사진을 보는 순간 그 시절 자신에게도 즐거웠던 일, 웃었던 추억이 있었음을 떠올리게 됐다는 설명이다.

현재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서울스카이에서도 한영수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시간, 하늘에 그리다> 전시회(2월 6일까지)로, 한영수가 촬영한 1950년대 서울 풍경을 지하 2층 전시장과 118층 세계 최고층에 펼쳐놓았다. 백미는 118층이다. 유리바닥 전망대(스카이덱) 벽면 하나가 거대한 흑백사진 한장으로 덮여 있다. 한영수가 1958년 한강변에서 물놀이하는 사람들을 담은 작품 ‘서울 뚝섬’이다. 주요 출판물로는 <Seoul, Modern Times>(2014), <한영수: 꿈결 같은 시절>(2015), <시간 속의 강>(2017),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2020)가 있다. 한선정 대표는 “올가을 서울에서 개인전을 예정하고 있고, 9월부터 내년 2월까지 미국 LA카운티뮤지엄(LACMA)에서 열리는 <사이의 공간: 한국근대미술>에도 아버지의 작품 6점이 전시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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