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기념관 ‘목소리’ 전시에 나온 현대미술 작품들

김종목 기자

“폴리싱 기술자의 두 손과 상체는 마치 감성과 힘, 움직임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조화를 이루도록 구성한 발레의 섬세한 안무와 같습니다.”

오민수는 아름다운청년 전태일기념관의 이소선 여사(1929~2011) 10주기 특별기획전 ‘목소리’에 출품한 ‘철과 피’ 작가 노트에서 스위스 시계 제조사 롤렉스 홈페이지에 나온 이 구절을 인용한다. 오민수는 “광택(폴리싱)의 완성도는 광택을 만든 노동자가 희생한 시간의 값과 일치한다”고 썼다. 이어 “광택은 신기루이다. (…) 이 신기루를 위하여, 이 최종적인 자본의 꼭대기를 빛나게 하기 위하여, 모든 노동자의 시간은 무참히 갈려 나가는 것”이라고 했다.

이런 문제의식을 작품에 녹였다. ‘철과 피 1’을 이루는 쇠사슬과 베어링이 매끄럽게 다듬어진 채 어두운 전시 공간에서 번쩍인다. 원판 중심에 축을 둔 바늘이 시계 방향으로 돌아가며 다시 원판 표면을 갈아내며 광택을 만들어낸다. “연일 계속되는 노동 앞에서 노동자들은 매일 물성에 의한 죽음을 각오하게 된다”는 작가의 말과 연결된다. 철 구조물 앞에선 ‘끼임’ ‘깔림’ ‘빠짐’ ‘눌림’ ‘잘림’ 같은 산재 사망의 원인이 되는 명사형의 단어가 떠오른다. 오민수는 “추락 사고, 용해 사고, 끼임 사고 등을 통해 철은 쉽게 인간의 피를 앗아간다”고 했다. ‘철과 피’는 1·2·3으로 구분된다.

오민수, ‘철과 피’, 철·모터·베어링·스피커·수조·물·모터 펌프, 13채널 키네틱 사운드 10분 12초, 2021. 김종목 기자

오민수, ‘철과 피’, 철·모터·베어링·스피커·수조·물·모터 펌프, 13채널 키네틱 사운드 10분 12초, 2021. 김종목 기자

‘철과 피 2’는 수조와 모터 펌프로 구성된다. 수조에 소금을 담았다. 수조에 담긴 물은 노동자의 땀을 상징하는 듯하다. 공장 등 노동 현장에서 흔히 생겨나는 기계 소음이 ‘철과 피 3’을 이룬다. 매시 정각 10분 동안 모터가 돌아간다. 쇠가 갈리며 발생하는 마찰음이 전시장 공간을 떠돈다. 산재로 죽어가는 노동자의 비명같이 들리기도 한다.

‘목소리’ 전의 또 다른 작품은 신민의 ‘우리들’이다. 작가노트를 보면, ‘우리들’은 “1960~1970년대 여공, 시다에서 현재 서비스 노동자들을 아우르는 여성 노동자 군상”이다. 신민은 전태일기념관과 인터뷰하며 “노동 현장에서 일하는 다양한 사람들, 상인들, 을지로를 지나는 사람들을 떠올렸다”고 했다. 한자 뜻을 고려해 여성 노동자들에게 은중(恩重), 세미(世美), 소진(笑瑨), 영림(映林), 예슬(叡瑟), 민진(旻璡), 소선(少仙)이란 이름을 붙였다. ‘소선’은 노동 인권 운동가 이소선이다.

신민, ‘우리들’, 프렌치 프라이 포대(포장종이)·스티로폼·연필·풀, 270x179x182㎝, 2021. 김종목 기자

신민, ‘우리들’, 프렌치 프라이 포대(포장종이)·스티로폼·연필·풀, 270x179x182㎝, 2021. 김종목 기자

신민은 ‘전태일’ 하면 생각나는 형상과 이미지를 벗어나려고 했다고 한다. 그는 “진짜 일을 하다가 잠깐 창밖을 물끄러미 보는 듯하게 만들려고 했다. 일상적인 장면을 밝게 표현하려고 했다”고 말한다. “창고 구석 비품 상자에 올라 작은 창문으로 보이는 석양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만들었다. 프렌치 프라이 포대(포장종이)와 스티로폼을 활용했다.

신민은 ‘세계 최대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에서 일하는 노동자이기도 하다. 그는 “노동자가 죽거나 다치지 않으면서 노조를 결성하여 활동하는 사회, 노조를 악마화하지 않는 사회로 나아가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도 했다.

작가노트와 인터뷰는 전태일기념관이 최근 출간한 도록 <목소리>에 나온다. ‘목소리’ 전은 이소선 여사 10주기(2021년 9월3일)에 맞춰 지난해 8월31일 개막했다. 영상, 유품, 문서, 사진 등 90여 점을 전시한다. 전태일의 어머니로, 유족으로, 노동 인권 운동가로 살아온 이소선을 담았다. 전시는 5월29일까지.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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