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 사진가는 커다란 바가지를 끌며 파래와 미역, 물김을 따는 한 할머니와 마주쳤다. 어디서 본 듯한 기시감. 굽은 허리로 물김을 바가지에 담는 할머니가 사진가의 눈에는 마치 거룩한 기도를 드리는 모습처럼 보였는데,“이거이 포래여, 아주 맛있어. 근디 이 할매를 찍어가서 뭣한다요?”바가지에 담기는 해산물이 늘어날수록 할머니의 발걸음이 느려졌다. 사진가는 할머니의 무거운 바가지를 들었다. 할머니는 화들짝 놀라며 손에 흙 묻는다고 사진가를 말렸다. 전남 신안군 임자면 진리마을에 사는 1936년생 쥐띠 이판덕 할머니다. 9남매를 키워낸 삶의 무게 때문이었을까? 해산물 바가지가 가벼워져도 할머니의 허리는 펴지지 않았다. 할머니는 사진가에게 우리 집에 가서 커피라도 한잔하고 가란다.“으응, 흑산도 사람들 야그로 책을 만든다고. 긍게 여그서 사진기를 매고 다니고 있그만.”사진가의 이름은 노순택이다. ‘분단의 향기(2005)’, ‘얄읏한 공(2006)’,...
1시간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