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1988년 여름, 386세대의 마르크스에 대한 집단체험이란 무엇이었는가

서영찬 기자

◆ 기억의 몽타주
류동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11쪽 | 1만3000원

독특한 구성을 지닌 책이다. 책은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전반부는 1988년 여름에 대한 소설 형식의 체험담이고 후반부는 이 소설에 대한 분석이다. 저자가 직접 소설을 분석했다는 점에서 이채롭다. 이런 형식을 통해 저자가 말하려고 한 것은 무엇일까.

[책과 삶]1988년 여름, 386세대의 마르크스에 대한 집단체험이란 무엇이었는가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1989년이 되어서야 금서목록에서 해방됐다. <자본론>은 시중 서점에 떳떳하게 진열되기 전까지 대학생들이 간첩 접선하듯 몰래 복사해 돌려보는 책이었다. 서울대 경제학과 대학원생이었던 저자는 1988년 여름 선배의 권유를 받고 <자본론> 번역 작업에 참여한다. 그는 다른 대학 학생 몇몇과 충정로 허름한 ‘작업실’에서 <자본론>의 일본어판과 독일판을 펼쳐놓고 고난도 단어, 문장들과 씨름한다. 엄밀한 의미의 마르크스주의자라기보다 ‘내 마음의 마르크스주의자’라고 자가 진단한 저자가 그려내는 작업실 풍경은 밝거나 활기로운 차원과는 거리가 멀다. 당시 사회적 분위기와 운동권 학생들의 내면도 그러했던 듯하다.

이제 소설에 대한 저자의 분석을 들여다보자. 저자는 이를 기억에 대한 정신분석이라 부른다. 기억은 편집과 왜곡을 거치면서 ‘말하고 싶은 것’은 확실하게 만들고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은 잊도록 만드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러면서 소설 속 어느 부분이 허구이며 왜 그렇게 썼는지를 통해 말하고 싶은 것과 숨기고 싶은 것을 들춰낸다.

저자는 1988년을 한국 사회에 짧았던 마르크스 르네상스로 기억한다. 그가 관여한 <자본론>이 이론과실천 출판사에서 간행됐다. 금기가 욕망을 낳듯 <자본론>에 대한 금기가 없어지자 욕망도 사라졌다. 어느 순간부터 마르크스주의의 본래 의미(기의)는 사라졌고 드러난 현상(기표)만 유령처럼 떠돌았다.

저자는 작업실 경험 탓인지 마르크스 원전 해석으로 논문 주제를 바꿔 학위를 땄고, 시간이 흘러 ‘한국에서 얼마 남지 않은 마르크스 경제학을 가르치는 정규 교수’가 됐다. 국립 서울대에서 마땅히 마르크스를 가르쳐야 한다고 부르짖던 선배는 ‘식민지 근대화론’의 전도사가 됐고, 함께 마르크스를 키워드로 공부했던 동문들은 펀드매니저로, 재벌계 경제연구소 애널리스트로, MBA로 흩어졌다. 충정로 작업실 멤버 중 여당 국회의원이 된 경우도 있다고 한다.

책은 1988년 유난히 무더웠던 여름, “386세대의 마르크스에 대한 집단체험이란 무엇이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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