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 유일하게 세 번 읽은 소설읽음

이어령 | 전 문화부 장관

▲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 도스토예프스키

도스토예프스키의 장편소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은 내가 세 번 읽은 유일한 소설이다. 중학생 때 형들이 읽다 만 일본어판으로 처음 읽었다. 난봉꾼 아버지 표도르 카라마조프를 살해한 범인이 누구일지 생각하면서 한 편의 추리소설을 읽듯 읽었다. 대학 시절에는 영문판으로 한 번 더 읽었다. 이 소설의 주된 테마가 부친 살해와 형제 간 갈등이다. 그 무렵 한국전쟁의 참상을 목격했던 나는 타자와의 싸움보다 피를 나눈 가족·형제 간의 싸움이 더 무서울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었는데, 그런 감정이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다시 읽게 만든 힘이었다.

[이어령의 내 인생의 책](3)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 유일하게 세 번 읽은 소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 등장하는 세 아들, 드미트리, 이반, 알료샤는 각각 제정에서 근대 러시아로 이행하는 과도기 러시아의 세 측면을 반영하는 인물들이다. 20대의 내가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던 인물은 개혁적이고 지적인 이반이었다. 현실의 부조리함에 대한 그의 비판정신이 내게 어떤 해답을 주는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세 번째로 읽은 것은 지난해였다. 내가 기독교에 귀화한 이후의 독서였기 때문에 수도원에서 신앙의 길을 걷는 알료샤를 중심에 놓고 읽었다. 세 번째 독서에서 내가 깨달은 것은 지성과 영성은 대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성은 의문에서 나오고 영성은 감동에서 나온다. 지성적 회의에서 생겨나는 고통을 해결하려는 마음이 영성을 찾게 만든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은 위대한 도그마가 아니라 작은 소망과 희망이 인간을 구원한다고 말하는 작품이다. 이반에 심취한 무신론자였던 내가 알료샤를 이해하게 된 과정이 나만의 정신적 궤적은 아닐 것이다. 절망에서 벗어나 한발 더 나아갈 수 있는 언어를 찾는 이들에게 이 소설은 보편적인 울림을 갖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은 죽지 않는 고전이다.


경향티비 배너
Today`s HOT
젖소 복장으로 시위하는 동물보호단체 회원 독일 고속도로에서 전복된 버스 아르헨티나 성모 기리는 종교 행렬 크로아티아에 전시된 초대형 부활절 달걀
훈련 지시하는 황선홍 임시 감독 불덩이 터지는 가자지구 라파
라마단 성월에 죽 나눠주는 봉사자들 코코넛 따는 원숭이 노동 착취 반대 시위
선박 충돌로 무너진 미국 볼티모어 다리 이스라엘 인질 석방 촉구하는 사람들 이강인·손흥민 합작골로 태국 3-0 완승 모스크바 테러 희생자 애도하는 시민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