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옛글을 통해 일그러진 한국을 본다

서영찬 기자

이 외로운 사람들아 강명관 지음 |천년의상상 | 328쪽 | 1만8000원

과거를 거울로 삼아 오늘을 철저히 따져보고 궁리하기. 조선시대 문헌을 공부하는 지은이가 밝힌 이 책의 의미다. 60개의 짧은 글들은 하나하나가 표창이다. 60개의 표창이 겨눈 곳은 일그러진 한국 사회다. 잡문이라지만 날이 섰다.

21세기 한국은 조선시대보다 나아졌나. 불평등, 학벌주의, 생명경시, 부정부패, 공동체적 삶의 와해. 지은이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경국대전주해>에 분추경리(奔趨競利)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뭔가 이익을 노리고 분주히 쏘다니는 꼴을 뜻한다. 조선 법전은 분추경리를 금하고 이를 규정해두었다. 그 내용인즉, 이조·병조·사헌부·사간원 소속으로 인사권을 쥔 고위직의 자택에 동성 8촌, 결혼한 집안 사람, 이웃 사람 등이 아니면 출입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를 어길 경우 ‘곤장 100대 후 귀양’에 처했다. 초기 조선이 매관매직에 얼마나 엄혹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책과 삶]옛글을 통해 일그러진 한국을 본다

지은이는 과연 오늘날 한국은 어떤지 묻는다. 그러면서 분추경리 없는 정부를 보고 싶다고 덧붙인다.

송시열은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윤휴를 사문난적으로 몰았다. 사문난적 꼬리표가 한번 붙으면 그 일족은 그야말로 재기불능이다. 그래서 사문난적은 꽤 쓸모있는 정적 제거 수단이었다. 지은이는 한국 정치판에서 벌어지는 종북몰이 현상을 보며 사문난적을 떠올린다.

<청구야담> 속 아이 갖지 않은 노비 이야기는 요즘 세태를 쏙 빼닮았다. 결혼 첫날밤 여자 노비가 10년 동안 잠자리를 따로 하자고 말한다. 이유인즉, 두 사람이 먹고살기도 힘드니 열심히 일해 가산을 모은 후 자녀를 갖자는 것이다. 남편은 이 제안에 수긍한다. 두 노비는 뼈빠지게 일하고, 10년 후 명실상부한 첫날밤을 맞는다. 하지만 이후 아이는 생기지 않는다. 아이를 갖기에 너무 늙고, 몸이 쇠해졌기 때문이다. 이 우화는 한국 젊은이들이 경제적인 이유로 출산을 미루는 현실과 겹친다.

지은이는 홍대용·정약용·정조 이 세 인물과 얽힌 일화를 자주 인용한다. 이들이 21세기 한국 정치에 던지는 화두가 만만찮기 때문이다.

이처럼 과거는 현재의 반면교사이기도 하지만 제거되지 못한 화근이기도 하다. 조선 후기 권문세족의 횡포가 그런 경우인데, ‘땅콩 회항’ 같은 재벌 ‘갑질’과 같은 연장선에 있다는 설명이다. 그리고 문헌 밖 이야기, 즉 술자리 같은 지은이의 일상사에 얽힌 글들도 소소하지만 예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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