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굴욕 3종 세트’는 자연분만 필수 코스가 아니더라읽음

한윤정 선임기자

출산, 그 놀라운 역사

티나 캐시디 지음·최세문 외 옮김 | 후마니타스 | 512쪽 | 2만원

‘보스턴글로브’ 기자로 20여년간 일한 언론인인 저자는 2004년 첫아이를 낳으면서 특별한 경험을 했다. 처음에는 자신의 의도대로 분만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여의사를 지정한 그는 펑퍼짐한 분만가운 대신 어깨끈이 달린 검정색 나이트가운을 입었고, 경막외마취제는 맞지 않으려 했다. 회음절개, 산모용 침대, 겸자 사용도 거부했다. 그러나 10시간의 진통과 4시간의 분만 시도 이후 태아가 산도에 끼여 위험한 상태가 되자 모든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통증이 너무 심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사이 의료진은 ‘경찰 특공대처럼 빠른 속도로’ 응급 제왕절개 수술을 했고, 다음날 아침까지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할 만큼 몸은 만신창이가 됐다. 그 후 절개 부위가 세균에 감염되고 유선염이 찾아오는 고통까지 겪었다.

[책과 삶]‘굴욕 3종 세트’는 자연분만 필수 코스가 아니더라

출산은 자연스러운 과정인데 왜 이렇게까지 힘들어야 하는가. 다른 시대, 다른 장소의 여성들은 어떻게 출산했을까. 이런 의문을 가진 저자는 갖가지 역사기록을 뒤져 ‘출산의 세계사’를 쓰면서 출산의 형태가 우리의 상상보다 훨씬 다양했으며, 각 시대와 장소의 반영이었다는 점을 깨달았다.

인간은 출산할 때 도움이 필요한 유일한 포유동물이기는 하지만, 출산이 의료화된 1960~1970년대 산과 병원의 모습은 너무 살풍경하다. 산모들의 팔과 다리를 묶고 어깨와 가슴을 고정했으며 회음부를 면도하고 관장했다. 무릎을 세우고 다리를 벌린 자세로 8시간씩 묶여 있는 경우도 있었다. 산파나 조산사 대신 남성 의사들이 출산에 참여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이다. 당시 새로운 고객을 찾아헤매던 이들은 산모에게 통증 완화와 안전한 분만을 약속하면서 ‘무지하고 더러운’ 조산사들을 몰아냈다. 그러나 초기 의사들은 산욕열 환자들을 내진한 뒤 제대로 손을 씻지 않고 다른 산모를 내진해 병을 옮긴 주범이기도 했다.

산통은 출산의 핵심이다. 저자는 산고를 줄이기 위한 분만법, 마취제 사용, 제왕절개의 역사를 살펴본다. 하느님이 이브에게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라고 말했기 때문에 서구 여성들에게 산고를 더는 방법을 찾는 것은 금기였다. 이 장애물이 완화된 것은 1853년 4월 빅토리아 여왕이 레오폴드 왕자를 출산하면서 클로로포름을 흡입하면서부터다. 1920년 시카고의 유명 산과의 조셉 드리는 예방적 겸자술을 개발했다. 회음절개로 산도 입구를 넓히고 겸자를 삽입해 태아를 끌어당기는 방식이다. 이것은 호평을 받으며 수십년 동안 광범위하게 사용됐으나 많은 산모와 태아들이 겸자에 찔려 때로는 치명적인 외상과 통증으로 고생했다. 카이사르의 출산에서 비롯된 제왕절개는 산모의 생명을 구하는 최후의 수단으로부터 우아하고 완벽한 출산, 의사들의 의료과실 회피 용도로 점점 확대돼 왔다.

이 같은 출산의 역사를 안다고 해서 스스로의 출산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다양한 선택지가 있더라도 제한된 보험급여 범위, 문화적인 규범, 출산의 위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현재 전 세계의 서구화된 산모들은 척추에 마취제를 맞고 필요하면 즉각 수술실로 달려갈 수 있는 병원 분만을 선택한다. 그럼에도 더 이상적인 출산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산모 자신이 현재 어떤 처치를 받는지 의식할 수 있다.

책을 번역한 최세문, 정윤선, 주지수, 최영은, 가문희씨는 2002년 서울대 보건대학원 입학동기이자 모두 출산을 경험한 여성들이다. 역자 소개에 자신의 출산 경험을 소개한 이들은 이제 외국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굴욕삼종세트(회음절개·제모·관장)’만이라도 한국의 분만실에서 사라지기를 바랐다. 하기는 우리 산과 상식은 제왕절개와 자연출산 사이에 산과마취제와 유도분만제, 회음절개, 흡입분만 등 의료적 개입을 하는 질식분만이란 카테고리가 있는지조차 제대로 모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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