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진의 샌프란시스코 책갈피

학자금 대출·비정규직·출산…밀레니얼들의 ‘지친 삶’, 개인의 노력에 맡길 순 없다

정은진 샌프란시스코대 부교수

팬데믹과 번아웃

[정은진의 샌프란시스코 책갈피]학자금 대출·비정규직·출산…밀레니얼들의 ‘지친 삶’, 개인의 노력에 맡길 순 없다

앤 헬렌 페터슨
<탈진: 어떻게 밀레니얼들은 번아웃 세대가 되었나>

2020년을 돌아보면서 떠오르는 첫 번째 단어는 ‘번아웃’이다. 실리콘밸리의 많은 주민들은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하기 전 이미 지쳐있었다. 출근길에 차량공유 서비스를 이용했는데, 같은 차를 탄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다들 1주일에 60시간 이상 일한다고 했다. 내 전 직장 동료는 인터뷰에서 나에게 “주말엔 주로 뭘 해요?”라고 물어봤을 때 내가 빨래와 청소, 1주일치 요리를 한다고 해서 마음에 들었다고 대답했다. 주중에는 그런 걸 할 시간이 없을 정도로 일한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고.

[정은진의 샌프란시스코 책갈피]학자금 대출·비정규직·출산…밀레니얼들의 ‘지친 삶’, 개인의 노력에 맡길 순 없다

지난 주말부터 실리콘밸리 대부분 지역은 다시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인구 200만명 미만인 샌타클래라 카운티는 12월9일 하루 신규 확진자가 1700명이었다. 비교적 근무 형태가 자유로운 테크 업계 종사자들은 대부분 만 9개월째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업무시간과 비업무시간의 경계 없이 아침에 눈뜨면 침대에서 휴대폰으로 업무용 e메일과 메시지를 확인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밤에 ‘새로고침’하고 잠드는 생활을 몇 달째 하고 있다. 돌봐야 할 가족이 있는 경우에는 피로가 더욱 쌓여있다. 학교가 해주었던 일도, 도우미가 해주었던 일도, 돌봄교실이 해주었던 일도 모두 부모의 역할이 되었다. 실리콘밸리의 높은 생활비 때문에 부모들은 일을 그만두지 못하고, 이미 지쳐있었던 사람들은 번아웃 증상들을 경험하고 있다.

앤 헬렌 피터슨의 책 <탈진: 어떻게 밀레니얼들은 번아웃 세대가 되었나>는 팬데믹이 시작되기 전 이미 밀레니얼 세대는 번아웃을 경험하고 있었다고 지적하고, 그 이유를 그들의 성장과정과 지금의 경제상황에서 찾는다. 부모들의 기대 속에서 바쁜 성장 과정을 보냈고, 프로젝트 관리하듯 삶의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위해 해야 할 일들을 목록으로 만들어 하나하나 지우는 것에 익숙하다. 이렇게 준비해온 세대가 어른이 되었을 때 현실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이제 부모 세대가 했던 것처럼 열심히 일하면 집을 사고, 아이들을 키우고, 은퇴 자금도 모을 수 있었던 직장은 많지 않고, 그 직장을 얻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지만 외려 학자금 대출만 남아있다. 한국에서 삼포세대, 오포세대라는 말을 쓰는 것처럼 미국에서도 많은 밀레니얼들이 비정규직으로 일하면서 학자금 대출을 갚느라 집을 살 엄두를 내지 못하고,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를 낳아 키울 생각을 하지 못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도 직장과 가정 생활을 양립하느라 지쳐있다. 부족한 자신을 탓하며 열심히 일할수록 문제가 해결되기보다는 번아웃에 가까워졌다.

한 세대 전체가 경험하는 번아웃은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미국의 출생률이 32년 만에 최저치이다. 일본의 출생률은 1899년 출생률을 기록하기 시작한 이래로 최저치이다. 한국의 출생률은 일본보다도 낮다. 지쳐있는 사람에게 “아이는 낳으면 어떻게든 큰다”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윗세대의 “힘내라” “노력하면 된다”는 공허한 구호일 뿐이다. 저자는 한 세대 전체의 번아웃은 개인이 명상이나 상담으로 해결할 수 없고, 사회 전체가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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