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책

‘여행을 떠날 수 있을까’ 멈춰선 걱정쟁이 소녀 앞에…환상적 세상 향해 시동 거는 버스

손버들 기자
[그림 책]‘여행을 떠날 수 있을까’ 멈춰선 걱정쟁이 소녀 앞에…환상적 세상 향해 시동 거는 버스

밤버스
배유정 글·그림
길벗어린이 | 40쪽 | 2만1000원

혼자서도 괜찮을까? 짐이 너무 많은 걸까? 잘못된 길로 들어서면 어떡하지? 길을 잃어버리면? 뭘 먹지? 어디서 머물러야 할까? 새로운 친구를 사귈 수 있을까? 아무도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면?….

이 질문들이 가리키는 단어는 무엇일까. 바로 여행이다. 이 책 <밤버스>는 여행을 하면서 밀려드는 걱정과 불안의 감정을 환상적인 그림 속에 녹였다. 2018년 <나무, 춤춘다>로 아동 도서 분야 최고 권위의 ‘볼로냐 라가치상 대상’을 수상한 배유정 작가의 신작이다.

여기 한 소녀가 있다. 검은색 실크해트를 쓰고, 머플러를 두껍게 두르고, 붉은 롱 코트를 입은 긴 머리의 소녀가 커다란 여행용 가방을 끌고 버스 정거장을 걷고 있다. 무지개가 그려진 빨간 버스가 정거장으로 들어선다. 길을 떠나기 위해 단단히 준비했는데, 저 버스를 타야 되는데, 소녀는 망설인다. ‘여행을 떠날 수 있을까?’

[그림 책]‘여행을 떠날 수 있을까’ 멈춰선 걱정쟁이 소녀 앞에…환상적 세상 향해 시동 거는 버스

소녀는 용기를 내어 버스에 오른다. 버스는 달린다. 높고 거친 산맥, 일렁이는 강, 일그러진 나무, 커다란 눈의 부엉이와 둥글고 노란 달, 장미와 도로 표지판과 아이스크림과 자전거와 신호등과 회전목마를 지난다. 다양한 표정의 사람들도 만난다. 어느 보랏빛 밤에는 알록달록한 불꽃이 하늘 가득 피어난다. 두려워서 망설였지만 ‘여행을 떠나는’ 용기를 내었을 때, 세상은 총천연색 심상으로 다가온다.

한 발짝도 나아가고 싶지 않을 때는? 다시 떠나기 힘들 정도로 이 여행이 싫어지면 어떡하지? 그런데 나는 왜 혼잣말을 하고 있는 걸까…. 여행의 연속성과 의미를 고민하는 장면에서는 버스를 탔던 소녀가 보이지 않는다. 소녀는 버스를 놓쳤다고 고백한다. 다음 행선지로 떠나지 못하고 멈춰 선 듯하다. 마음은 다시 술렁인다. ‘여행을 떠날 수 있을까?’

익숙한 곳을 벗어나 낯선 곳으로 떠나는 여행은 우리를 두근거리게 하지만 ‘미지의 세계’는 두려움이다. 온갖 자잘한 걱정거리들이 여행 내내 함께한다. 그러한 걱정 또한 여행의 일부다. 처음 가는 길이기에 서툴고 고되다. 지쳐서 잠시 멈추게 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여행도, 우리 삶도 이렇게 가다 멈추기를 반복한다.

가로 26㎝, 세로 33㎝ 크기의 책은 ‘걱정쟁이’ 소녀의 독백과 그에 대비되는 낯선 장소들을 몽환적인 이미지로 채웠다. 기묘하게 아름답다. 작가는 여러 가지 색의 종이를 한 장 한 장 오려 붙이는 콜라주 기법으로 표현했다. 페이지 한 장, 한 장이 팝아트 작품이다. 굳었던 상상력이 자극 된다.

‘여행을 떠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감염병에 두 발이 묶인 지금, 더 아리게 다가온다. 물리적 여행은 당분간 어려우니, 이 그림책 속 환상의 세계로 떠나보는 건 어떨까. 부릉. 시동을 건 ‘밤버스’가 당신의 탑승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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