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신은 폭력을 가르친 적이 없다

문학수 선임기자
[책과 삶]신은 폭력을 가르친 적이 없다

신의 전쟁
카렌 암스트롱 지음·정영목 옮김
교양인 | 746쪽 | 3만4000원

종교는 본질적으로 폭력적인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분열과 불화, 전쟁 등은 종교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상황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종교 그 자체에 폭력성이 내재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하나의 신’을 숭배하는 믿음이 강할수록 관용의 여지는 더욱 줄어든다. 대화와 타협이 아예 불가능해진다. 이 지점은 역사적으로도 증명된다. 십자군, 종교재판, 16~17세기의 종교전쟁 등이 그렇다. 오늘날 신의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각종 테러들, 끝이 보이지 않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 등도 ‘종교’와 ‘폭력’의 상관성을 가늠하게 만든다. <신, 만들어진 위험>의 저자인 신다윈주의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80)는 그 점을 아예 확신한다. 그는 “종교적 믿음은 광기를 일으킨다”라든가, “종교는 역사상 모든 주요한 전쟁의 원인”이라고 말했다. “종교가 없다면 세상은 평화로워질 수 있다”고도 했다.

그러나 이 책은 다른 견해를 내놓는다. 저자는 도킨스가 제기했던 주장, “종교는 역사상 모든 주요한 전쟁의 원인”이라는 언술은 “참으로 이상한 말”이라고 반박하면서,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종교 때문에 벌어지지 않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덧붙인다. 전쟁사 연구자들의 성과에 근거해 “(전쟁의 원인은) 빈약한 자원을 둘러싼 경쟁”이라고 강조하면서,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현대의 폭력적인 죄를 ‘종교의 등’에 실어 정치적 광야로 내몬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이 상황을 고대 이스라엘에서 치러진 ‘희생양 제의’에 비유한다. 염소 두 마리가 성전으로 끌려왔다. 한 마리는 제물로 바쳐졌으며, 다른 한 마리는 “공동체의 모든 악행을 짊어진 채” 도시 밖으로 내몰렸다. 모세는 그 속죄양을 일컬어 “(우리의) 모든 죄를 지고 황무지로 나간다”라고 표현했다. 영국의 저명한 종교학자인 이 책의 저자 카렌 암스트롱(77)은 오늘날의 종교를 ‘광야로 내몰린 염소’의 처지에 비유한다.

고대 이스라엘인들은 공동체의 악행을 짊어진 염소를 황야로 내모는 의식을 치렀다.

고대 이스라엘인들은 공동체의 악행을 짊어진 염소를 황야로 내모는 의식을 치렀다.

종교가 전쟁과 엮이게 된 것은
근대민족국가와의 결합 이후
다신에 기대어 폭력을 독점한
국가에 문제가 있는 것이지
종교에 죄를 물을 것은 아니다

저자에 따르면 원래 종교는 폭력적이지 않았다. 이 지점을 증명하기 위해 책의 1·2부에서 고대의 중동, 중국, 인도 등지를 오가면서 종교의 기원을 더듬는다. 저자는 서양에서 종교(religion)로 번역되는 다른 언어의 표현들은 “거의 언제나 이보다 더 크고 막연하며 포괄적인 어떤 것”을 가리킨다고 말한다. 아랍어의 딘(din)은 “삶의 방식 전체를 의미”한다. 산스크리트어의 다르마(dharma)는 “총체적 개념으로서의 법, 정의, 도덕, 사회생활을 포괄”한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어와 라틴어에는 영어의 ‘종교’에 대응하는 단어가 아예 없으며, 개인적이고 체계적인 활동으로서의 ‘종교’라는 관념은 고대 그리스, 일본,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이란, 중국, 인도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심지어 “히브리 성경에도 종교라는 추상적 개념은 없다”고 말한다.

기독교와 중세에 대한 서술에서도 저자의 근본적 탐구는 이어진다. 종교의 어원으로 여겨지는 라틴어 ‘렐리기오’(religio)의 유래는 “모호”하다. 그것은 “의무와 금기를 암시하는 부정확한 말”이었다. 그러다가 초기 기독교에서 “신과 우주 전체를 숭배하는 태도”라는 새로운 의미를 얻었으며, 중세 유럽에서는 “수도원 생활”을 ‘렐리기오’라고 일컬었다. 책에 따르면 이 단어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종교’라는 개념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근대에 이르러서였다. 다시 말해 종교라는 관념은 “근대 초기의 산물”이다. 저자는 “이 개념에 맞아떨어지는 유일한 신앙 전통은 기독교”라고 설명한다.

세계의 주요 종교가 피로 물든 땅, 즉 폭력이 만연한 곳에서 탄생한 데에는 까닭이 있다. 저자는 그것을 “문명의 조건이자 부산물인 폭력을 어떻게 제어할 것인가”에 대한 실존적 고민으로 설명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는) 국가와 손을 맞잡으면서 폭력을 뒷받침하는 도구로 전락”한다. 이 지점을 톺아보는 책의 3부는 에스파냐에서 시작한다. 1492년 1월2일, “가톨릭 군주인 아라곤의 페르난도와 카스티야의 이사벨은 이슬람 왕국 그라나다에서 거둔 승리를 축하”했으며 “군중은 깊은 감회에 젖어 기독교 깃발이 나부끼는 것을 지켜봤다”. 저자는 이 지점을 ‘종교와 전쟁’이라는 맥락에서 매우 중요한 장면으로 취급한다. 기독교 국가 에스파냐는 이슬람 세계와의 전쟁에서 최전선에 자리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페르난도가 기독교가 땅끝까지 퍼지는 ‘성령의 시대’를 실현할 것으로 기대”했다. 결국 종교가 폭력, 전쟁과 엮이게 된 것은 근대민족국가와 결합하면서였다는 의미이다. 폭력의 합법적 독점체인 근대국가에 문제가 있지 종교에 그 죄를 물을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는 빈라덴과 조지 부시를 거론하면서 “(두 사람 모두) 세계가 한쪽은 선, 다른 쪽은 악으로 선명하게 나뉘어 있다고 바라본다”고 지적한다. “부시의 이원론적 세계관은 21세기 미국 신보수주의자들의 사고를 반영한다”면서 “(이슬람을 빙자한) 테러리스트들은 쿠란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다”고 동시에 비판한다. 저자는 서론에서 강조했듯이, 말미에서도 “종교가 폭력적이라는 말은 결단코 사실이 아니다”라고 힘주어 말한다. 그러면서 지금 우리는 “종교가 가장 훌륭했을 때 수백년 동안 해온 일을 다시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것은 바로 “세계 공동체에 대한 감각을 구축”하고, “모두에 대한 존중과 평정을 회복하는 것”이다. 특히 마지막 문장이 인상적이다. 저자는 공동체의 죄를 대속하는 ‘희생양 제의’는 “오늘날 우리에게 결코 해법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주석이 130여쪽에 달하는 압도적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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