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소설 <슈뢰딩거의 아이들> 쓴 최의택 “SF 통해 장애 다시 보게 돼…내겐 해방의 장르”읽음

선명수 기자
SF장편소설 <슈뢰딩거의 아이들>로 제1회 문윤성 SF 문학상을 수상한 최의택 작가. 아작 출판사 제공

SF장편소설 <슈뢰딩거의 아이들>로 제1회 문윤성 SF 문학상을 수상한 최의택 작가. 아작 출판사 제공

2050년대의 대한민국, 아이들은 학교 대신 ‘학당’에 간다. 학당은 세계 최초의 완전몰입형 가상현실 중고등학교다. 특수 고글을 착용해 실제 학교와 똑같은 모습의 가상현실 학교에 접속하고, 학생들은 직접 학교에 갈 필요 없이 자신의 ‘아바타’를 통해 등교한다. 세간의 관심이 쏠린 두번째 입학식날, 학당에서 ‘유령’이 목격된다.

“그 애들은 확률적으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건 더더욱 아니야. 우리가 보지 않고 있을 뿐이지.” 최의택(30)의 SF소설 <슈뢰딩거의 아이들>은 소설 속 이 말처럼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선천성 근위축증으로 초등학교 때부터 휠체어에서 세상을 바라봤던 작가는 어느날 거리에 장애인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보이지 않는 이들이 “세상에 대고 외치는 이야기”(작가의 말)를 소설로 옮겼다.

입학식날 밝혀진 유령의 정체는 학당에 다니지 않는 아이 ‘하랑’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학당은 하랑처럼 장애를 가진 학생들을 위한 특수학급을 신설해 이들의 입학을 허가하지만, 입학 후에도 무슨 이유에선지 이 아이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최의택 작가는 서면 인터뷰에서 “가상현실 속에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존재들’에 대해 써야겠다는 생각을 먼저하고 이 작품을 구상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우연한 계기로 그 존재들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깨닫게 됐습니다. 당시 저는 다른 장편소설을 퇴고 중이었습니다. 역시나 장애를 중요한 소재로 하는 이야기인데요, 자꾸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애를 너무 소재화, 대상화, 타자화 하는 건 아닐까. 그래서 관련 내용이 담긴 기사를 찾아보며 고민하는데, 한국의 거리에서 장애인을 볼 수 없는 이유를 다룬 기사들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슈뢰딩거의 아이들’을요.”

[인터뷰] 소설 <슈뢰딩거의 아이들> 쓴 최의택 “SF 통해 장애 다시 보게 돼…내겐 해방의 장르”

소설의 제목은 물리학자 에어빈 슈뢰딩거가 양자역학의 불확정성을 증명하기 위해 고안한 사고 실험인 ‘슈뢰딩거의 고양이’에서 따왔다. 소설은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가상현실이라는 미시 세계에서 확률적으로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아이들, 이들과 ‘별개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이 접속하는 과정을 그린다.

소설 속 2050년대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차이는 줄어갔는데, 그래서 차별하기는 더 쉬워”진 세계다. 인간을 신체적 손상과 불편으로부터 해방시킬 것이라고 여겨지는 미래 기술이 어떻게 약자와 소수자를 배제하는지 소설은 집요하게 파고든다. 최 작가는 “특이점주의라 불리는 급진적인 낙관까지는 아니어도 기술에 대해 꽤나 많은 기대를 가지고 있는 편”이라며 “하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라 좌절 또한 적잖이 느껴왔다”고 했다.

최 작가는 건강 문제로 고등학교를 그만둔 뒤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고등학교 자퇴 후 할 일이 필요했습니다. 언제까지고 컴퓨터 게임이나 하면서 살 수는 없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집에서 컴퓨터를 통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았고, 그중 하나가 글쓰기였습니다. 아는 것이라곤 워드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방법 뿐이었지만,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무식하고 무모하리 만큼 써댔습니다.”

그렇게 글쓰기를 이어간 결과 최 작가는 이 작품으로 제1회 문윤성 SF 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이 상은 한국 최초의 장편 SF소설인 <완전사회>(1967)을 쓴 문윤성 작가(1916~2000)의 문학정신을 기리고자 제정됐다.

습작 초기에는 장애에 대해 쓰는 것을 일부러 피했다는 최 작가는 “SF를 통해 ‘장애’라는 개념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고 했다. “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 뭐든 써야 했고,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과정에서 이상하게도 어렸을 때부터 무서워했던 작품을 흉내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뒤늦게 그것들을 아울러 부르는 이름이 SF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유독 SF에서는 장애나 소외의 문제를 많이 접할 수 있었고, SF를 통해 페미니즘과 포스트·트랜스 휴머니즘, 사이보그에 대해 알아가면서 최종적으로는 생각하게 됐어요. ‘이게 바로 미래의 장르, 해방의 장르, 그리고 나의 장르구나.’”

SF장편소설 <슈뢰딩거의 아이들>로 제1회 문윤성 SF 문학상을 수상한 최의택 작가. 아작 출판사 제공

SF장편소설 <슈뢰딩거의 아이들>로 제1회 문윤성 SF 문학상을 수상한 최의택 작가. 아작 출판사 제공

아직 수상이 “얼떨떨하다”는 그는 “글을 쓸 수 있는 한 재밌게 쓰고 싶다”고 말했다. ‘어떤 작가가 되고 싶으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그렇게 재밌게 쓰다 보면 누군가는 재밌게 봐주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재밌는 글을 쓰는 작가가 될 테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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