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뇌에서 만들어지는 것일까? ‘뇌 과학의 모든 역사’

이혜인 기자

뇌 과학의 모든 역사

매튜 코브 지음·이한나 옮김 | 심심 | 620쪽 | 3만3000원

뇌를 바라보는 인류의 관점은 시대에 따라 변화했다. 17세기 데카르트는 ‘동물혼’이 뇌와 근육을 오가며 신체를 움직이게 한다고 생각했다. 18세기에는 연구자들이 전기의 힘에 주목하면서, 시신을 전기에 흘려보내 움직임을 관찰했다. 21세기에는 뇌 활동을 밝히는데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 기술을 사용한다. 뇌에 이식된 전극을 통해 로봇팔을 움직이는 것도 가능해졌다(왼쪽부터 시계방향). 심심 출판사 제공

뇌를 바라보는 인류의 관점은 시대에 따라 변화했다. 17세기 데카르트는 ‘동물혼’이 뇌와 근육을 오가며 신체를 움직이게 한다고 생각했다. 18세기에는 연구자들이 전기의 힘에 주목하면서, 시신을 전기에 흘려보내 움직임을 관찰했다. 21세기에는 뇌 활동을 밝히는데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 기술을 사용한다. 뇌에 이식된 전극을 통해 로봇팔을 움직이는 것도 가능해졌다(왼쪽부터 시계방향). 심심 출판사 제공

외부 자극을 인지하고, 사고하는 데 관련이 있는 장기는 뇌일까, 심장일까. 이런 질문을 하는 것 자체가 우습다고 생각될 정도로 현대의 사람들은 ‘뇌’가 사고의 중심에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류 역사 대부분의 시간 동안 인간은 뇌가 아닌 심장을 생각과 감정의 근원이라 여겼다.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동물 부분론>에서 “뇌는 오감 중 어느 것에도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 감각의 소재이자 원천은 심장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쾌락과 고통을 포함한 모든 감각은 명백히 심장에서 비롯된다”고 적었다. 10세기에 활동했던 마주시 알리 이븐 알 압바스라는 의사는 ‘동물혼(animal spirits)이라는 것이 심장에서 여러 개 생성돼 혈액을 타고 뇌로 이동한다고 주장했다. 수세기 동안 거듭된 과학자들의 연구로 인해 지금 우리는 이 모든 것이 주장과 상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뇌는 몸무게 중 1.4~1.6㎏ 정도를 차지하는 작은 회백질 덩어리다. 인류는 수세기 동안 이 작은 기관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해왔다. <뇌 과학의 모든 역사>는 당대의 내로라하는 철학자와 과학자 등 뛰어난 천재들이 뇌가 생각을 만들어내는 기관이라는 사실을 규명하고, 뇌의 기능을 증명하기 위해 수백년간 기울인 노력과 발견들이 담긴 책이다. 영국 맨체스터대 생명과학부 교수이자 동물학자인 매튜 코브가 썼다. ‘과거’ ‘현재’ ‘미래’의 세 시기로 나눠서 17세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뇌를 보는 관점과 뇌에 관한 연구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보여준다. 뇌가 영혼과 마음의 기원이 될 수 있는지를 놓고 벌인 철학자·과학자들의 논쟁, 뇌와 관련된 흥미롭고도 기괴한 실험들을 소개하면서 뇌 지식 변천사를 전한다.

뇌가 행동과 사고의 기본이 되는 기관이라는 증거가 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낸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동물 부분론>으로부터 400여년이 지난 서기 129년쯤이다. 로마의 작가이자 사상가인 갈레노스는 검투사들의 상처를 치료하면서 인체에 관해 많은 지식을 쌓았다. 그는 돼지의 심장과 뇌를 통제하면서 돼지가 울음소리를 내는지 알아보는 잔인한 해부학 실험을 관객 앞에서 시연함으로써, 뇌가 동물의 의식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했다.

17세기 들어 유럽의 사상가들은 뇌가 사고의 중심에 있다는 생각에 점차 확신을 가지기 시작했다. 뇌의 중요성을 강조한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하나는 1620~1630년대에 뇌를 직접 해부했던 프랑스의 사상가 르네 데카르트다. 데카르트는 동물의 몸이 마치 기계처럼 작동하고 여기에 뇌가 핵심 역할을 수행한다고 여겨 ‘동물기계’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그는 송과선이라는 뇌 구조물이 ‘동물혼’을 생성한다고 설명했다. 당시에 왕족들이 정원에서 사용하던 수압식 자동 기계장치 ‘오토마타’처럼, 동물혼이 근육과 뇌 사이를 타고 움직이면서 동작이 이뤄진다고 주장했다.

뇌에 대한 지식이 쌓이면서 17~18세기 철학자들 사이에서는 뇌와 마음의 연결성에 관한 ‘유물론적’ 논쟁이 일었다. 뇌가 사고와 마음의 중심이 되는 기관이라면, 뇌라는 물질로부터 마음이 비롯된다는 결론이 도출될 수도 있다. 토머스 홉스는 “영혼이 ‘무형의 물질’이라던 데카르트의 모순된 관념을 일축하고, 그 대신 사고력을 갖춘 것이라면 응당 물질로 존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네덜란드의 철학자 바뤼흐 스피노자는 “마음과 몸은 하나요, 같은 것”이라고 확신했다. 철학계에서는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 같은 많은 거물이 마음에 대한 유물론적 설명에 반대했다. 저자는 “사유하는 물질이라는 관점이 시사하는 점 중에서 특히 수많은 사상가를 괴롭힌 것은 인간이 기계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었다”면서 “인간이 내리는 선택이 영혼이 아닌 기저의 물질적인 과정에서 비롯됐다면 도덕성이 붕괴될 것이라며 논쟁이 이어졌다”고 한다.

마음은 뇌에서 만들어지는 것일까? ‘뇌 과학의 모든 역사’

18~19세기에는 과학의 발전과 함께 뇌 지식도 빠르게 축적된다. 18세기에는 전기가 발견된다. 이전에 ‘동물혼’이 인간 움직임의 원리라는 주장들은 사라지고, 뇌가 기능하는 데 있어서 전기가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개념이 보편화된다. 19세기에는 모든 유기체가 세포로 구성돼 있다는 세포 이론이 수립되면서, 뇌도 신경세포의 일부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신경해부학자 카할과 폰 쾰리커는 신경세포들은 서로 분리된 개별적인 독립체라고 주장하며 ‘뉴런’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이 업적으로 1906년 노벨상을 수상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뇌 과학 발전사 사이마다 엽기적이거나 비윤리적인 실험이 들어 있다. 18세기 유럽에서 뇌와 전기의 연결고리가 대중에게 각인된 계기 중 하나는 지오바니 알다니의 엽기적인 전기자극 실험이다. 그는 유럽 도시를 돌면서 배터리를 사용해 동물과 인간의 몸에 전기를 흘려 움직이게 만드는 모습을 관객 앞에서 시연했다. 1903년 1월 그는 런던에서 막 교수형을 당한 시신의 머리에 전극을 부착해 한쪽 눈을 뜨게 하고, 얼굴이 일그러지는 모습을 시연하기도 했다.

뇌에서 장기기억을 처리하는 장소인 해마의 발견에는 뇌 과학 역사상 가장 유명한 환자인 헨리 몰레이슨의 비극이 있다. 1935년 아홉 살이던 헨리는 자전거에 치인 뒤 뇌전증 발작에 시달린다. 미국의 외과의사였던 윌리엄 스코빌은 정신외과술의 열렬한 신봉자로, 1950년대 초까지 무려 300여명의 중증 조현병 환자들에게 뇌엽절리술을 시행했다. 스코빌은 헨리에게도 뇌전증을 치료하겠다며 양 측두엽을 절제했다. 그날 이후 헨리는 2008년 사망하는 날까지 고작 한 시간 전에 일어난 일도 기억하지 못하며 영원히 현재만을 살았다.

20세기 들어 뇌 연구 양상은 달라진다. 19세기까지 뇌라는 기관의 개념을 형성했다면, 20세기에는 새로운 학문으로 연구가 뻗어나갔다. 저자는 “이제 전 세계를 통틀어 뇌 연구자의 수가 수만명에 달한다”며 인지신경과학, 신경생물학, 이론신경과학, 계산신경과학, 임상신경과학 등 “혼란스러울 정도로 다양해진 세부 분과 내에서 부지런히 연구하고 있다”고 말한다. 뇌와 컴퓨터 과학, 뇌의 화학작용, 뇌 영상 기법 등의 분야에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특히 뇌-컴퓨터 인터페이스를 활용한 뇌 과학 연구 성과는 눈부시다. 2012년 미국의 존 도너휴 연구팀은 운동피질에 이식된 전극을 활용해 뇌졸중을 앓았던 사지마비 환자가 생각만으로 로봇 팔을 움직일 수 있도록 했다. 뇌졸중 후유증으로 팔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었던 58세 여성 캐시 허친슨은 컴퓨터 인터페이스를 이용해 로봇 팔을 움직였다. 병을 잡아 천천히 입으로 가져가고, 빨대를 통해 커피를 마시고 다시 병을 탁자 위로 가져다 놓는 동작을 14년 만에 남의 도움 없이 혼자서 수행했다. 뇌에서 흘러나온 신호를 근육의 전기자극으로 변환해 로봇 팔을 움직인 것이었다. 뇌 화학 지식은 정신질환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을 바꿔놓았다. 뇌가 도파민이나 세로토닌 같은 신경전달물질과 신경호르몬으로 인해 사고 변화를 겪는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우울증과 같은 정신건강 문제를 이해하고 치료하기 위한 접근방식도 달라졌다.

뇌에 관한 인류의 긴 여정을 읽고 나면, 뇌에 대해 많은 것을 밝혔지만 아직 밝혀내야 할 것들이 많이 남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저자는 뇌 과학이 17세기부터 계속 발전했지만, 최근 50년 동안 어떠한 개념적 혁신도 없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역설적인 것은 지금껏 그토록 어마어마한 발전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21세기에 뇌를 연구하면서 닥쳐올 도전을 마주하는 데 필요한 이론적 도구를 우리가 제대로 갖추고 있는지도 분명하지 않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17세기 사상가들의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주제인 ‘마음의 본질이 뇌와 얼마나 관련이 있는가’라는 논제는 아직도 규명되지 않았다. 저자는 신경심리학자 도널드 헵의 “우리가 어떤 문제를 푸는 데 실패했다고 해서 그 문제 자체가 해결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라는 말을 전하며, 뇌에 대한 탐험을 계속 이어나가자고 말한다. “구성하는 세포의 수가 수백억개이고 마음이라는 신비로운 감각을 만들어내는 믿을 수 없는 기이한 능력을 갖춘 인간의 뇌를 제대로 이해하는 일은 도저히 실현 불가능한 꿈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과학은 이러한 목표를 이룰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며 결국은 이루어내고야 말 것이다.”


Today`s HOT
아르메니아 대학살 109주년 중국 선저우 18호 우주비행사 가자지구 억류 인질 석방하라 지진에 기울어진 대만 호텔
사해 근처 사막에 있는 탄도미사일 잔해 개전 200일, 침묵시위
지구의 날 맞아 쓰레기 줍는 봉사자들 경찰과 충돌하는 볼리비아 교사 시위대
한국에 1-0으로 패한 일본 폭우 내린 중국 광둥성 교내에 시위 텐트 친 컬럼비아대학 학생들 황폐해진 칸 유니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