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훨씬 이전에도 이미, 우리는 외로웠다… ‘고립의 시대’

이혜인 기자

고립의 시대

노리나 허츠 지음·홍정인 옮김|웅진지식하우스|492쪽|2만2000원

책 <고립의 시대> 저자는 우리가 일터, 정치, 사회적 관계에서 느끼는 고립감이 점점 커지면서 ‘외로움 위기’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말한다. 외로움 위기는 개인의 노력만으로 극복할 수 없고, 사회구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책 <고립의 시대> 저자는 우리가 일터, 정치, 사회적 관계에서 느끼는 고립감이 점점 커지면서 ‘외로움 위기’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말한다. 외로움 위기는 개인의 노력만으로 극복할 수 없고, 사회구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전 세계 정부들이 나서서 사회적 단절의 메시지를 강력하게, 지속적으로 뿌려댄 것은 유례없는 일이었다. 거리 두기를 강조한 메시지들은 방역 차원에서는 필요했으나, 관계의 친밀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인간 본성을 거스르는 것이었다. “지금 멀어져야 나중에 가까워져요.” “지금 1m를 지키지 않으면 1m 아래 묻히게 됩니다.” “거리를 두면 배려의 마음은 더 두터워집니다.” 약 2년간 단절의 메시지가 사회 전체적으로 퍼진 결과 정말로 사람들 사이의 거리는 멀어졌다. 지난 17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1 사회조사’ 결과를 보면, 가족을 제외한 모든 사회적 관계에서 코로나19 이후 “관계가 멀어졌다”고 답한 사람이 우세했다. 이웃(38.9%), 친·인척(36.7%), 친구(35.5%) 등과의 관계가 멀어졌다는 응답이 전체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했다.

“하지만 ‘외로운 세기’는 2020년 1분기에 갑자기 시작되지 않았다. 코로나19가 닥칠 즈음 우리 대다수는 이미 상당히 오래전부터 외롭고 고립되고 원자화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고립의 시대> 저자이자 유니버시티칼리지 런던 세계번영연구소의 명예교수인 경제학자 노리나 허츠의 말이다. 그는 “코로나19 이전에도 우리가 이미 ‘사회적 불황’ 상태였다”고 말한다. 21세기는 “단지 소외된 기분에 그치지 않고 개인과 사회를 뿌리부터 뒤흔들고 있는 외로움 위기”를 겪고 있다. 그가 말하는 외로움이나 고립감은 그저 쓸쓸한 기분을 의미하는 내면적 상태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개인적, 사회적, 경제적, 그리고 정치적인 상태를 포함하는 실존적 상태다. “우리가 정치인과 정치로부터 단절되어 있다는 느낌, 우리의 일과 일터에서 소외되어 있다는 느낌, 사회의 소득에서 배제되어 있다는 느낌, 스스로가 힘이 없고 무시당하는 존재라는 느낌까지 아우른다.” <고립의 시대>는 외로움의 사회적 비용에 대한 방대한 연구 사례와 다년간의 탐사 취재를 통해 우리가 일하고 투표하고 소통하는 방식을 무너뜨리는 ‘고립 사회’의 근원을 파헤치는 책이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도시는 사람들을 부유하게 만들고 고립시킨다. 2012년 런던 캠던버러에 등장한 ‘캠던 벤치’는 노숙인이 눕지 못하도록 일부러 홈을 파거나 기울이고 등받이를 없앤 의자다. 거리에는 이 같은 ‘적대적 디자인’ 혹은 ‘적대적 건축물’이 널려있다. 도시에서 거리에 이유 없이 머무르는 것은 방황 혹은 부적절한 노숙행위가 되고, 사람들을 주시하는 것은 훔쳐보기가 된다. 저자는 사회이론가와 기호론자의 연구결과를 빌려 “도시에서는 타인의 물리적 또는 정서적 공간에 이유 없이 침범하는 것을 무례하게 여기는 사회규범이 발달했다”고 말한다. 도시의 속도는 더 이상 타인과 교류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반사회적이다. 도시인은 언제나 빨리 움직였지만, ‘외로운 세기’에는 점점 더 빨리 움직인다. 전 세계 32개 도시에서 1990년대 초반과 2007년의 걷는 속도를 비교한 연구에서 중국 광저우는 삶의 속도가 20% 이상, 싱가포르는 30% 빨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저자는 도시인들이 외로움을 증폭시키는 고립의 습성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고 말한다. 한국에서 시작된 ‘먹방’의 폭발적 증가세와 세계적 인기가 하나의 예다. 저자가 만난 한 여성은 식탁에 앉아서 유튜브를 보면서 밥을 먹으려다가, 친한 친구의 전화로 인해 통화를 하면서 밥을 먹어야 했던 경험을 “정말 짜증났다”고 회상한다. 저자는 먹방이나 영상을 보면서 혼자 먹는 것은 ‘사회성 경험의 시뮬레이션’이지 실제 관계가 아님에도, 이처럼 상업화되고 상품화된 관계에 사람들이 익숙해져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정치는 오랫동안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갈등을 다루는 장이었다. 하지만 외로움의 시대에 사람들은 정치로부터도 소외돼 있다고 느낀다. 저자가 만난 독일 청년 빌헬름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 중 어느 누구를 위한 자리도 없었다. 내 세대는 그저 피하고 싶은 끔찍한 고통을 감내하며 열심히 일했다. … 실업자로 지낸 지 5년째 되자 몸도 영혼도 부서졌다. 독일은 나를 원하지 않았다. 그리고 여기서 아무도 나를 원하지 않는다면 세상 그 어디에도 나를 원하는 곳은 없을 터였다.” 외로운 사람들은 ‘우리’를 강조하고, 보수적인 공동체 회복을 말하는 극우 포퓰리스트 정치 세력에 모인다. 저자는 트럼프가 연설 때 주로 1인칭 복수를 사용했고, 그와 지지층 대다수는 공통점이 없음에도 ‘우리가(we)’ ‘우리를(us)’을 외치며 결속감을 다졌다고 말한다. 하지만 극우 포퓰리스트들은 인종·종교·민족적으로 타자에 대한 선을 긋고 노골적인 배제를 하며, 타자를 더 적으로 느끼게 만든다.

코로나 훨씬 이전에도 이미, 우리는 외로웠다… ‘고립의 시대’

책은 휴대전화와 소셜미디어의 사용이 “21세기 외로움 위기의 독특한 본질에 매우 중대한 역할”을 한다고 짚는다. 기술발전으로 인한 인간소외 현상은 시대마다 있었지만, 휴대전화와 소셜미디어는 ‘항시적 연결’이라는 차별점을 가진다. 책에 따르면 사람들은 휴대전화를 하루에 221번 확인하고, 매일 3시간15분씩 이용한다.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가상의 세계에 항상 연결돼있기 때문에, 실제 세계에서 서로를 소외시킨다. 미국 워싱턴의 한 카페에서 커플 단위로 담소를 나누는 100쌍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스마트폰을 탁자에 올려두거나 한 손에 들고 있기만 해도 서로 간에 덜 가깝고 덜 공감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저자는 페이스북, 스냅챗, 인스타그램 등 SNS 사용량을 플랫폼당 하루 10분으로 제한하자 연구 참여자들의 외로움이 유의미하게 감소했다는 연구 결과를 소개하며 “페이스북 삭제는 심리치료를 받는 것과 최고 40%까지 동일한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항시적 연결’ 기술은 일터에서는 ‘감시 자본주의’를 구현한다. 저자는 자신의 신분을 속이고, ‘감성 AI’라는 기술을 통해 채용 전 평가를 받아본다. 기업이 대규모 채용 절차를 시작하기 전에 채용 대상자가 괜찮은 사람인지 폭넓게 거르는 데 AI 기술이 활용되고 있다. 스크린에 점선으로 그려진 실루엣에 상반신을 고정하고 마치 연기를 펼치듯 면접을 보면서 그는 “마치 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 것 같은 기분”과 “무력하고 취약한 투명인간이 된 기분”을 느낀다. 취업 면접은 AI가 관장하고, 직원의 일거수일투족과 내쉬는 숨의 길이까지 기계가 기록하며, 서로를 별점으로 평가하고 감시하는 기그 이코노미(비정규 프리랜서 근로 형태가 확산되는 경제 현상)에서 사람들은 일한다. 100년 전 카를 마르크스가 말한 생산물로부터의 소외, 노동과정으로부터의 소외, 동료 인간으로부터의 소외는 기술적 진보에 의해 가속화된다.

책에서는 외로움이 ‘산업’이 되어버린 장면들을 소개한다. 저자는 시간당 40달러를 내고 친구를 빌리는 ‘렌트어프렌드’ 서비스를 이용해본다. 친구 역할로 나온 여성은 “서른에서 마흔 살 정도의 외로운 전문직 종사자. 장시간 업무 때문에 친구를 많이 사귈 시간이 없는 사람들”이 이 서비스의 주고객층이라고 말한다. 저자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만난 칼은 포옹해주는 직업인 ‘커들러’를 수시로 만난다. 그저 포옹 하나만을 위해 한 달에 2000달러를 쓰고, 그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집을 팔고 차에서 잔다. 돌봄과 사교에 대한 욕구를 로봇이 해결해주는 ‘소셜 로봇’ ‘섹스 로봇’ 산업은 한창 성장 중이다. 저자는 이 같은 외로움 산업으로 인해 외로움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뿐더러 민주주의의 위기까지 초래될 수 있다고 말한다. 로봇은 인간관계에서 요구되는 추가적인 노력을 요구하지 않고, 공동체의 성장에 필요한 협동과 타협과 호혜의 근육을 키워주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는 “어느 한 주체의 힘만으로 해결되기에는 외로움 위기가 너무도 복잡하고 다면적이다”라고 말한다. 보수주의자들은 외로움 위기의 원인이 전통적 가치와 가족의 붕괴라고 말하고, 좌파들은 정부 주도의 복지 서비스가 너무 적어서라고 말하지만 양쪽 다 답이 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외로움을 발생시키는 구조적 원인은 국가의 행동뿐만 아니라 개인과 기업의 행동 둘 다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아울러 21세기 기술의 발전 양상에도 뿌리를 두고 있다”면서 “외로움 위기를 극복하려면 체계적인 경제·정치·사회적 변화를 일으키는 동시에 우리 개인의 책임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로봇세 도입, SNS 유해 행위 방지 법안 등 기술과 관련된 제도 정비가 고립 문제를 해결할 제도적 안전망으로 제시된다. 정부의 예산 목표를 단순히 일자리를 늘리는 데만 두지 말고, 시민들의 전반적인 웰빙에 초점을 맞춰서 인종·젠더와 관련된 구조적 불평등을 다루는 데 둬야 한다고 말한다. 개인의 역할도 있다. “우리가 소비자에서 시민으로, 받는 사람에서 주는 사람으로, 무심한 관찰자에서 적극적인 참여자로 배역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외로운 세기의 해독제는 궁극적으로 우리가 서로를 위해 (옆에) 있어주는 것일 수밖에 없다. 상대가 누구라도 상관없이 말이다. 흩어져가는 세계에서 우리가 하나가 되고자 한다면 이것은 최소한의 요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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