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우리 시대의 사랑은 안녕한가

박상진 부산외대 이탈리아어과 교수

지옥의 죄인에게조차 연민을 가질 때

인간의 사랑은 신에 가까워진다

가브리엘 로세티의 ‘단테의 사랑’(1860). 영국의 라파엘전파 화가이자 시인이었던 로세티는 단테의 <새로운 삶>을 영어로 번역하고 단테의 사랑에 관련된 여러 그림을 남겼다. 이 그림에서 단테는 천사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와 베아트리체를 연결하고 있다.

가브리엘 로세티의 ‘단테의 사랑’(1860). 영국의 라파엘전파 화가이자 시인이었던 로세티는 단테의 <새로운 삶>을 영어로 번역하고 단테의 사랑에 관련된 여러 그림을 남겼다. 이 그림에서 단테는 천사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와 베아트리체를 연결하고 있다.

“그런데 말해 주오. ‘사랑의 지성을 지닌 여인들’로
시작하면서, 새로운 시구를 끌어낸
그 사람을 내가 여기서 보고 있는지를.”

내가 그에게, “나는 사랑이 숨을
불어넣을 때, 받아서, 안에서 불러 주는
그대로, 드러내며 가는 하나라오.”
([연옥] 24곡 49~54행)

■사랑으로 시를 쓰다

연옥에서 마주친 시인 보나준타는 단테에게 “사랑의 지성을 지닌 여인”으로 시작하는 새로운 시를 지은 사람인지 묻는다. 단테가 청년 시절에 쓴 <새로운 삶>을 가리키는 말이다. 단테는 사랑이 불어넣는 숨이 생명의 근원이고, 그 숨을 내쉴 때 목소리가 되는데 그 목소리를 그대로 받아 적으면 시가 된다고 대답한다. 단테의 시 쓰는 법을 간결하게 요약한 문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단테를 중심으로 새로운 문학운동을 주도한 시인들은 사랑이 숨을 불어넣어 시를 쓰게 하는 존재가 여자라고 생각했다.

사랑의 궁극을 구원으로 설정한 문학청년 단테에게 사랑을 불어넣은 여자는 베아트리체였다. 베아트리체를 향한 그의 사랑은 <새로운 삶>에 집약되었다. 1290년 연모하던 그녀가 세상을 떠나자 깊은 좌절과 상심에 빠진 단테는 기억을 되살려 <새로운 삶>이라는 책을 쓴다. 죽은 베아트리체를 위한 애도의 글이다. 하느님 곁에 올라가 있는 베아트리체를 만나기 위해 내세의 순례자가 되리라는 희망으로 끝을 맺는다.

나의 영혼은 영원 세세의 축복이신 그분의 얼굴을 응시하고 선, 저 축복받은 베아트리체의 영광을 보러 떠날 수 있기를 바라노라.
(<새로운 삶> 42.3)

이 마지막 문장은 <신곡> 집필과 베아트리체 부활을 예고한다. 단테는 <신곡>에서 베아트리체와 재회하여 사랑을 완성하는 자신의 모습을 담아낸다. <신곡>에는 단테가 그 길고 굴곡진 길을 가는 동안 배운 사랑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다.

■사랑의 스펙트럼

단테의 <새로운 삶> 표지. 단테는 연인 베아트리체가 세상을 떠난 뒤 그녀를 기억하며 시와 산문으로 이루어진 <새로운 삶>을 쓴다. 이 책은 단테 내면의 가장 은밀한 표현을 담고 있다.

단테의 <새로운 삶> 표지. 단테는 연인 베아트리체가 세상을 떠난 뒤 그녀를 기억하며 시와 산문으로 이루어진 <새로운 삶>을 쓴다. 이 책은 단테 내면의 가장 은밀한 표현을 담고 있다.

1290년대 전반에 <새로운 삶>을 쓰던 청년 단테는 인생 중반 어두운 숲에서 길을 잃기까지 10여년 동안 현실 정치인으로 활동하고, 이어 망명객으로 세상을 떠돌며 <신곡>을 쓰는 작가로 거듭난다. 죽기 직전까지 <신곡>을 쓰면서 단테는 사랑을 성숙시켜 나간다. <새로운 삶>을 쓰던 단테는 베아트리체를 향한 지고지순한 사랑밖에 몰랐지만, <신곡>에서는 무지개처럼 다채로운 사랑을 펼쳐낸다. 단테가 내세를 순례하며 목격한 사랑의 스펙트럼은 정신적인 숭고한 사랑부터 육욕을 못 이긴 사랑까지, 탐욕을 초래하는 과도한 사랑부터 태만을 조장하는 게으른 사랑까지, 드높은 천국부터 깊숙한 지옥까지 넓게 펼쳐져 있다.

“아들아, 창조주도 피조물도,
네가 알 듯, 자연적이거나 영혼의 것이든,
사랑과 함께하지 않았던 적은 없었다.

자연적인 사랑은 언제나 그릇됨이 없지만
다른 사랑은 목적이 나쁘거나
힘이 넘치거나 모자라서 그르칠 수 있다.”
([연옥] 17곡 91~96행)

단테 문학인생의 멘토였던 베르길리우스가 던지는 말에서 우리는 신의 사랑(“자연적인 사랑”)과 인간의 사랑(“다른 사랑”)을 구별할 수 있다. 세상에 신의 사랑만 있다면 죄는 없을 테지만, 인간은 신의 사랑은 물론 인간의 사랑도 지닌 존재다. 단테를 이끈 것은 신의 사랑이지만, 거기에 부응하는 것은 인간의 사랑이다. 인간의 삶은 마치 과녁을 향해 날아가는 화살과 같아서 아무리 지성의 시위로 당기고 궁극의 목표가 과녁으로 서 있다 해도, 과녁으로 날아가는 화살은 요동치지 않을 수 없다. 요동치는 정도와 범위가 방향과 거리를 결정하고, 그에 따라 화살은 과녁에 꽂히기도 하고, 벗어나기도 하며, 과녁에 이르지 못하기도 한다. 그 요동치는 것이 바로 사랑이다. 사랑은 요동치며 인간의 삶을 채운다.

귀스타브 도레의 ‘파올로와 프란체스카’(1860). 프란체스카의 기구한 사랑 이야기를 듣고 난 단테는 너무나 슬퍼 정신을 잃고 지옥의 차디찬 바닥에 쓰러진다. 하지만 이로써 지옥을 따스하게 했다.

귀스타브 도레의 ‘파올로와 프란체스카’(1860). 프란체스카의 기구한 사랑 이야기를 듣고 난 단테는 너무나 슬퍼 정신을 잃고 지옥의 차디찬 바닥에 쓰러진다. 하지만 이로써 지옥을 따스하게 했다.

단테가 지옥에서 만나 처음으로 대화를 나눈 망령은 사랑 때문에 죄를 지은 여자였다. 사랑이 죄가 된다니.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사실 죄가 된 사랑의 경우는 허다하다. 신의 사랑은 아무리 지나쳐도 더 큰 사랑으로 자라나는 반면, 인간의 사랑은 과도하거나 부족할 때, 또 목적이 비뚤어질 때, 죄가 된다. 사랑이 과도하면 탐욕, 탐식, 애욕의 죄를 짓게 되고, 부족하면 인색과 태만의 죄를 지으며, 사랑의 목적이 비뚤어진 경우 교만, 시기, 분노의 죄를 짓는다. 이런 수많은 죄가 <신곡>의 지옥과 연옥을 가득 채우고 있다.

사랑 때문에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인간은 지성적 판단과 조절을 필요로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신의 사랑은 인간의 사랑에 응답하지 않는다. 그런데 “사랑의 지성을 지닌 여인” 베아트리체는 단테에게 ‘사랑의 지성’뿐만 아니라 연민도 가르쳐준다. <새로운 삶>을 쓰던 단테의 사랑은 지성으로 지탱되었지만, <신곡>을 쓰면서는 연민으로 물들어간다. 그것이 단테가 성숙시켜 나간 사랑이었다.

청년 시절에 쓴 ‘새로운 삶’에서
연인 베아트리체를 애도한 단테
‘신곡’에선 사랑의 완성을 담아내

과도하거나 비뚤어진 사랑으로
지옥에서 고통받는 인간들 향해
단테는 지성을 넘어선 연민 느껴

스스로 지옥에 내려간 예수처럼
차별과 배제가 아닌 연민과 포용이
인간을 더 높은 곳으로 밀어 올려

■지성을 넘어서는 연민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피에타(연민)’(1498~1499). 죽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안고 슬퍼하는 성모 마리아의 모습은 숭고한 연민의 마음을 여실히 드러낸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피에타(연민)’(1498~1499). 죽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안고 슬퍼하는 성모 마리아의 모습은 숭고한 연민의 마음을 여실히 드러낸다.

단테가 지옥에서 처음으로 대화를 나눈 죄인은 프란체스카라는 여자였다. 그녀는 정략결혼으로 원치 않은 삶을 살다 시동생과 사랑에 빠진다. 단테는 불륜의 사랑은 지옥에 떨어져야 마땅한 죄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녀의 기구한 사랑 이야기를 들으며 연민을 품게 되고, 끝내 정신을 잃고 지옥의 차디찬 바닥에 쓰러지고 만다. 단테의 냉철한 지성도 연민을 감당하지 못한다.

단테의 연민이 차가운 지옥을 따스하게 물들인 것처럼, 베아트리체의 연민은 지옥을 천국의 기운으로 채운다. 베아트리체는 천국의 축복받은 자리에 있다가 어두운 숲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단테를 발견하고 몸소 지옥으로 내려온다. 그리고 베르길리우스를 만나 별처럼 반짝이는 눈물을 흘리며 단테를 구해 달라 호소한다. 별 하나 없는 깜깜한 지옥의 허공에 울려퍼지는 그녀의 부드럽고 잔잔한 목소리에 베르길리우스의 마음은 요동친다([지옥] 2곡 52~114행).

단테는 축복받은 자리를 뒤로하고 지옥으로 내려간 또 다른 인물로 예수 그리스도를 거명한다. 인간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 위에서 죽은 그리스도는 천국으로 오르기 전에 의로운 영혼들을 데리러 먼저 지옥으로 내려가는데, 이때 지옥 전체에 지진이 일어 지옥의 안정된 상태에 균열을 낸다. 단테는 지옥의 도처에서 당시 지진의 흔적을 발견한다.

베아트리체와 그리스도가 굳이 지옥으로 내려간 행동의 바탕에는 죄를 지은 인간에 대한 연민이 있다. 그들의 연민이 지옥의 순례자 단테의 마음에 차곡차곡 쌓인다.

■우리 시대의 사랑

프란체스카에 대한 연민에 압도되었던 단테의 지성은 이후 제자리를 찾는다. 지옥 순례를 이어가면서 그는 지옥의 죄인들을 엄중하게 비판하고 죄의 원인을 분별한다. 그러나 순례의 저변에 자리하는 연민은 결코 사라진 적이 없다. 여기서 우리는 죽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껴안고 슬퍼하는 성모 마리아의 마음이 곧 연민이었음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성모 마리아는 아들이 왜 죽어야 하는지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슬픔이 줄어들거나 사라지지는 않는다. 여기에 프란체스카를 향한 단테의 연민을 겹쳐놓는다면 불경한 짓일까. 그 숭고한 슬픔을 지옥의 죄인에게 품는 단테의 모습은 죄와 선의 경계, 지옥과 천국의 경계를 가로지른다는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육신을 걸치고 이곳까지 오느라
너무도 지친 내 영혼을
다소나마 위로해 주기 바랍니다.”

“마음속에서 나에게 속삭이는 사랑.”
그때 그가 그리도 부드럽게 시작했는데,
그 부드러움은 아직 내 안에서 울린다.
([연옥] 2곡 109~114행)

단테는 지옥의 어둠을 뚫고 연옥에 도착하자마자 옛 친구 카셀라와 우연히 재회한다. 반가운 마음에 그를 껴안으려 하지만 두 팔은 허공을 휘젓기만 한다. 육신을 유지하며 육신의 감각으로 지옥을 거치는 동안 겪었던 슬픔과 두려움을 위로하기 위해 카셀라의 영혼이 들려주는 감미로운 노래는 세속의 사랑 노래다. 잃어버린 신의 사랑을 되찾기 위한 성스러운 순례길에서 단테의 마음은 세속적 위안으로 젖어든다. 그리고 그의 마음을 적셨던 노래는 순례를 끝내고 돌아온 후에도 마음속에서 부드럽게 울린다.

순례자 단테는 늘 혼자였지만, 마음을 가라앉혀 깊이 생각하고 성찰하는 혼자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늘 동반자를 필요로 했다. 동반자는 찬 바닥에 쓰러져 지옥을 따스하게 만들게 한 지옥의 프란체스카이고, 성스러운 순례 길에서 세속적 감상으로 위로한 연옥의 카셀라이며, 지옥까지 내려와 눈물을 흘리며 연민을 가르쳐준 천국의 베아트리체였다.

단테는 그들을 통해 자기를 들여다보고 세상을 생각했다. 그들이 단테를 이끄는 길잡이들이었다.

인간의 사랑은 인간을 고귀하게도, 천박하게도 만든다. 선과 행복을 향해 나아가게도, 죄와 불행에 빠지게도 한다. 그러나 천박한 불행에 빠진 자들을 지옥으로 보내버리면 그만인가. 남은 자들의 고귀한 행복을 보호하기 위해 그들을 눈에 띄지 않게 치워버려야 하는가. 단테의 순례를 처음부터 이끈 사랑, 단테에게 숨을 불어넣어 시를 쓰게 했던 사랑은 천박한 불행에 빠진 자들을 향한 마음이었다. 차별과 배제가 아닌 연민과 포용의 마음. 바로 그 마음이 저 높은 천국에서 단테를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저 낮은 지옥에서 그를 밀어 올리는 힘이었다.

▶박상진

[박상진의 우리 시대의 단테 읽기]③우리 시대의 사랑은 안녕한가

영국 옥스퍼드대 문학박사. 이탈리아 문학 및 비교문학 전공. 미국 하버드대와 UC버클리 방문교수를 지냈고, 현재 부산외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신곡> <데카메론> 등의 역서와 <단테 ‘신곡’ 연구> <사랑의 지성: 단테의 세계, 언어, 얼굴> <단테> <단테가 읽어주는 ‘신곡’> <A Comparative Study of Korean Literature: Literary Migration>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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