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센터 상담사에게서 구로공단 여공을 보았다… ‘사람입니다, 고객님’

이혜인 기자

사람입니다, 고객님

김관욱 지음|창비|388쪽|2만원

콜센터 상담사들의 일상을 표현한 일러스트·김상민 화백

콜센터 상담사들의 일상을 표현한 일러스트·김상민 화백

코로나19 유행 초기, 콜센터에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이목이 집중됐다. ‘밀접·밀집·밀폐’ 이른바 3밀 노동현장으로 인해 유행 초기부터 콜센터에서 집단감염이 잇따라 터져나왔다. 2020년 3월 서울 구로구 코리아 빌딩의 콜센터에서는 수도권 첫 번째 집단감염이 발생했다. 직원 97명과 이들로 인한 2차 전파 등 총 158명의 감염자가 나왔고, 2차 전파로 인해 콜센터 직원의 배우자가 사망하기까지 했다. 콜센터 집단감염은 지난해 말 인천의 120미추홀콜센터 집단감염까지 2년의 유행기간 내내 끊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콜센터 노동자들을 연구해온 김관욱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교수(가정의학과 전문의)는 “그동안 묵과해오던 콜센터의 실체가 수면 위로 올라온 것으로, 상담사들의 경험이 팬데믹이라는 혼란 속에서 얼마만큼 최악의 상황에 도달할 수 있는지를 증언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언론의 관심은 상담사의 인권에 대한 인식보다는 콜센터가 코로나19 집단감염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고 꼬집는다.

2010년 전후로 콜센터의 감정노동과 관련된 언론 보도가 시작됐다. 고객들의 갑질행태는 예능 프로그램 소재로까지 등장했지만, 우리가 콜센터 노동자들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김 교수는 “그간 콜센터에 대한 논의가 악성 고객의 갑질 논란과 상담사의 감정노동에만 국한돼 있었다”고 지적하며, 콜센터 산업 자체가 가진 구조적 문제로 시야를 확장해야 한다고 본다. <사람입니다, 고객님>은 ‘무엇이 콜센터 상담사를 아프게 하는가’라는 질문에 제대로 답하기 위해 저자가 지난 10년간 현장연구와 심층 인터뷰, 이론적 연구를 한 결과를 담은 책이다.

코로나19 유행으로 비대면 상담 수요가 폭증하면서 콜센터 상담사들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상담에 투입되는 등 더 열악한 업무환경에 몰렸다. 책 ‘사람입니다, 고객님’에서는 상담사들이 재난 시 필수노동자임에도 하청 고용 구조로 인해 노동권을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사진은 지난해 서울 영등포구 질병관리본부 1339 콜센터에서 직원들이 코로나 관련 상담전화를 받는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코로나19 유행으로 비대면 상담 수요가 폭증하면서 콜센터 상담사들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상담에 투입되는 등 더 열악한 업무환경에 몰렸다. 책 ‘사람입니다, 고객님’에서는 상담사들이 재난 시 필수노동자임에도 하청 고용 구조로 인해 노동권을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사진은 지난해 서울 영등포구 질병관리본부 1339 콜센터에서 직원들이 코로나 관련 상담전화를 받는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책은 “왜 하필 콜센터를 연구하나요?”라는 사람들의 물음에 대한 저자의 설명에서 출발한다. 시작은 ‘흡연’이었다. 오랫동안 흡연과 중독에 대해 연구해온 김 교수는 보건소 등 관계기관을 통해 콜센터 여성 상담사 가운데 흡연자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여성 흡연자층이 확산하는 이유를 찾기 위해 석사 시절이던 2012년 처음 콜센터에 방문했다. 현장을 들여다보며 주제가 확장됐다. 저자는 “연구가 끝날 무렵 나는 콜센터가 낮은 임금으로 여성 상담사의 노동력을 사용하면서 이들의 건강을 조금씩 빼앗아가는 것은 물론 더 나아가 ‘이상적인 여성상’에 대한 고정관념마저 재생산하고 있다고 느끼게 되었다. (…) 한국 사회에 콜센터 산업이 등장한 이유는 무엇이고, 이것이 여성 노동자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밝히고 싶다”고 말한다. 김 교수는 2014년 가을부터 콜센터가 밀집한 구로의 서울디지털산업단지에서 연구조사에 응해줄 콜센터를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서울디지털산업단지는 1970~1980년대 각종 공장에서 수많은 젊은 여공이 육체노동을 했던 곳이며, 디지털 정보 중심의 산업단지로 바뀌면서 콜센터 여성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는 곳이다.

콜센터 여성 상담사들의 흡연율은 실제로 높았다. 한 콜센터 업체에서 파악한 여성 상담사들의 흡연율은 37%로, 비슷한 시기 일반 성인 여성 흡연율 6.2%에 비해 여섯 배 가까이 높았다. 콜센터는 상담사들 사이에서 ‘흡연 천국’이라 불렸다. 저자는 여성 상담사들에게 담배가 ‘드러그 푸드’(drug food)로 작용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드러그 푸드란 미국의 인류학자 시드니 민츠가 제시한 개념으로, 19세기 노동자들은 고통을 일시적으로 마비시키면서 노동을 계속할 수 있게 하는 담배·커피·홍차·초콜릿·설탕 등을 애용했다. 20대 후반의 6년차 상담사는 “난 담배 냄새가 너무 싫다”고 말하면서도 “감정 추스름에 (흡연이)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30대 중반의 5년차 상담사는 업무 스트레스로 담배를 피울 수밖에 없다며 “여기서 흡연이냐 아니면 ○(높은)층에서 뛰어내리느냐 두 가지밖에 길이 없는 거다”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관리자들은 휴게실을 만들거나 넉넉한 휴게시간을 보장해서 상담사들이 편히 쉴 수 있도록 하는 대신 흡연으로 빠르게 스트레스를 풀도록 장려했다. 업무 장소 가까운 곳에 테라스 흡연실을 만들고, 상담사들이 외부의 시선에 신경쓰지 않고 담배를 피울 수 있도록 키 큰 대나무들을 입구에 심어 가려주기까지 했다. 저자는 감시 시스템 때문에 상담사들의 흡연 시간이 평균 4분이 넘지 않는 점을 관찰했다. 상담사들의 담배는 과거 구로공단 여공들이 철야 작업을 이어가기 위해 먹었던 카페인 각성제 ‘타이밍’을 연상케 한다.

지난해 5월 직장갑질 119가 발표한 ‘코로나19 이후 콜센터 노동환경 심층 면접조사’ 결과에 따르면, 정부가 발표한 코로나19 방역지침은 콜센터 노동현장에서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연구진은 국내 콜센터의 열악한 노동조건이 코로나19 감염 위험을 더욱 높인다고 지적했다. 사진은 기자회견장에서 피켓을 들고 있는 활동가들. 사진·박민규 선임기자

지난해 5월 직장갑질 119가 발표한 ‘코로나19 이후 콜센터 노동환경 심층 면접조사’ 결과에 따르면, 정부가 발표한 코로나19 방역지침은 콜센터 노동현장에서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연구진은 국내 콜센터의 열악한 노동조건이 코로나19 감염 위험을 더욱 높인다고 지적했다. 사진은 기자회견장에서 피켓을 들고 있는 활동가들. 사진·박민규 선임기자

저자가 상담사들의 이야기를 통해 들여다본 콜센터는 몸에 대한 감시와 통제가 감옥처럼 일상화된 공간이다. 콜센터의 콜은 언제나 밀린다. 콜센터로 걸려오는 고객 전화는 상담사의 사정과 상관없이 자동 콜 분배기를 통해 상담사에게 분배된다. 한 콜센터에서는 하루에 총 20분의 휴게시간이 상담사에게 주어졌다. 화장실을 가려면 팀장에게 손을 들고 직접 승인을 받는 곳이 많았다. 한 콜센터에서는 200명이 넘는 상담사가 근무하는 사무실 양쪽 끝에 부채를 각각 세 개씩 걸어두고, 근무 시간 중에 부채를 들어서 허락을 받아야만 화장실에 갈 수 있었다. 미어캣처럼 모두들 고개를 쭉 빼고 부채가 걸리기만을 기다렸고, 기회가 생기면 그 즉시 달려가 부채를 잡았다. 한 상담사는 저자에게 자신이 근무하는 콜센터가 4월부터 에어컨을 가동했는데, 더워서 켠 것이 아니라 추워서 졸지 못하도록 켰다고 전했다. 그는 “이곳 콜센터는 창을 가린다. 햇빛이 없는데도 블라인드를 내린다. 왜? 콜만 열심히 하면 되지 창밖을 볼 필요 없다는 거다”라고 토로했다.

저자가 만난 상담사 대부분은 두통과 만성피로, 수면장애, 청력 손실, 손목과 허리 등 근골격계 질환으로 인한 통증을 호소했다. 상담사들은 구조적 해결을 떠올리는 대신 먹는 일로 스트레스를 풀거나 공황장애를 참아가며 일한다. 저자는 이를 감정노동이라는 명명만으로는 온전히 설명하기 어렵다며, ‘정동노동’이라는 용어를 붙인다. 상담사들이 자신의 감정을 조절해야 할 뿐만 아니라, 모욕적이고 부당한 상황 자체를 받아들이고 체념하는 ‘정동’에 길들여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비대면 환경과 질병관리청의 방역지침 안내로 인해 콜센터 상담사 수요는 폭증했다. 상담사는 경찰, 소방관처럼 재난 시 필수노동자이지만, 코로나19 유행하에서 더 열악한 노동환경에 몰렸다. 저자는 2020년 중순 식품의약품안전처 콜센터에서 일했던 상담사들이 당일 오전 10분가량 설명을 듣고 바로 상담에 투입되며 민원인에게 폭언을 듣거나 원청업체로부터 책임 전가를 받은 상황을 전한다. ‘대한콜센터’에서 근무하던 직원들은 방역을 위한 분산 근무로 인해 급히 조성된 사무실에서 일했는데, 새 사무실에 붉은진드기가 시도 때도 없이 출몰하는 바람에 진드기에 물려 피부발진에 시달렸다. 콜센터 상담사는 하청을 통한 간접고용이 일반적이다. 고질적인 원·하청 구조로 인해 상담사들이 겪는 문제는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콜센터 상담사에게서 구로공단 여공을 보았다… ‘사람입니다, 고객님’

콜센터는 한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저자는 책 후반부에서 영국, 인도, 한국의 콜센터가 겪는 문제를 들여다보고 유사점과 차이점도 분석한다. 저자는 세 나라 모두 저렴한 여성 노동력을 요구하는 점은 비슷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영국이나 인도와는 달리 한국의 상담사들에게만 나타나는 특수한 특징이 있는데, 한국의 여성 상담사들은 저임금의 낮은 지위를 유지하며 전통적 여성상을 끊임없이 재생산한다”고 짚는다. “한국의 경우 절대적으로 낮은 상담사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여성 상담사들이 스스로를 위축된 ‘을’로서 받아들이게 만들며, 반대로 소비자는 ‘갑’으로 자리매김하게 만들고 있다. 직간접적으로 권장되는 흡연과 철저히 모니터링되는 친절한 ‘여성’ 목소리는 전통적 여성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이어 “처음 현지조사를 시작할 때 디지털단지에서 만난, ‘50년 전에는 공순이 인생, 50년 후에는 비정규 인생’이라고 외치던 옛 구로공단 여공의 항변이 겹친다”고 말한다.

책은 콜센터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조직 시도와 좌절, 성공담도 전한다. 저자는 이들을 연구하며 “개개인의 힘과 노력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벽과 같은 흐름”을 느꼈다고 말한다. 그들을 감정노동자로 국한하는 대신 중요한 디지털 정보와 전자 정보를 전달하는 ‘콜키퍼’로 봐야 한다고 강조하며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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