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켄슈타인의 창조물은 왜 ‘괴물’이 됐나… 인간을 거울처럼 비추는 이야기읽음

소설가

프랑켄슈타인

메리 셸리 지음·박아람 옮김 | 휴머니스트 | 344쪽 | 1만4000원

[이종산의 장르를 읽다]프랑켄슈타인의 창조물은 왜 ‘괴물’이 됐나… 인간을 거울처럼 비추는 이야기

프랑켄슈타인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머리에 나사못이 박힌 망치를 들고 다니는 괴물? 스트라이프 티셔츠? 미치광이 과학자? 프랑켄슈타인이 괴물의 이름이 아니라 그를 만든 과학도의 이름이라는 것을 안다면, 당신은 프랑켄슈타인에 남들보다 관심이 많은 사람일 것이다.

우선은 몇 가지 오해를 정정해보려 한다. 프랑켄슈타인이 만들어낸 창조물의 머리에는 나사못이 박혀있지 않다! 그런 걸 왜 달고 다니겠는가. 아니, 애초에 그런 걸 왜 박아 놓겠는가? 로봇을 만든 것도 아닌데. 물론 망치를 들고 다니지도 않는다. ‘그’는 사람을 목 졸라 죽인다. 목을 조른 다음 세게 던지는 것이 그의 주된 살해 수법이다.

스트라이프 티셔츠는 말할 것도 없다. 그는 자신을 만든 프랑켄슈타인의 옷을 입고 탈출했다. 그 과학도의 옷에는 프랑켄슈타인의 실험일지가 들어 있었다. 나중에 글 읽는 법을 독학한 ‘그’는 이 실험일지로 인해 자신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자세히 알게 된다. 자신을 만든 창조주가 자신을 얼마나 끔찍해하는지도 필요 이상으로 분명하게 알게 되고 말이다.

프랑켄슈타인이 미친 과학자라는 것은 견해에 따라서 오해는 아닐 것 같다. 열세 살부터 연금술에 경도되었던 프랑켄슈타인은 대학에 와서 훌륭한 교수를 만나면서 현대 과학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훌륭한 과학도로 성장한다. 그러나 책에서 그는 ‘박사’로 불리지는 않는다. 그는 대학원생에 가깝다. 생명을 가진 존재, 그중에서도 인간을 닮은 존재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강렬한 믿음에 빠진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의 방에 은둔하며 실험을 거듭한 끝에 제2의 인간을 만들어낸다.

그의 실험은 반은 성공, 반은 실패였다. 그는 생명을 가진 제2의 인간을 창조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그 제2의 인간은 그가 꿈꿨던 것처럼 아름다운 외모는 아니었다. 프랑켄슈타인의 눈에 자신이 만든 실험의 결과물은 괴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때부터 그는 평생 그 괴물과 쫓고 쫓기는 사이가 되어 서로를 증오한다.

여기서 나는 그가 혼자 실험을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동료들과 팀 프로젝트를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 된다. 그랬다면 ‘첫 결과물인데 이 정도면 성공적이지!’ 하는 격려를 서로 주고받으며 조촐한 축하파티를 했을 테고, 프로젝트의 첫 결과물인 제2의 인간도 세상에 태어난 걸 축하받을 수 있었을 텐데. 동료들은 제2의 인간을 업데이트하기 위해 꾸준히 학습시켰을 것이고 그가 받아 마땅한 애정도 주었을 것이다. 그의 형제들도 생겨났을 테고 말이다. 그랬다면 책 속의 그 수많은 비극들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또 그랬다면, 작품 발표 이후 20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들의 영감을 자극하고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소설 또한 나올 수 없었겠지. 뮤지컬 업계도 소중한 자원 하나를 잃은 셈이었을 테고 말이다. 원작 소설을 읽어 보면 이 소설이 뮤지컬로 만들기 얼마나 좋은 이야기인지를 알 수 있다.

소설 <프랑켄슈타인>에서 프랑켄슈타인이 만들어낸 창조물은 한 번도 이름으로 불리지 않는다. ‘그’에겐 이름이 없다. 모두가 그를 ‘괴물’이라 부를 뿐이다. 그를 만든 프랑켄슈타인조차도 말이다. 프랑켄슈타인이 자신이 만든 그를 그토록 혐오하는 이유는 그가 ‘혐오스럽게’ 생겼기 때문이다. 그가 악행을 저지르기 전에 프랑켄슈타인은 이미 그가 혐오스럽게 생겼다는 이유로 그를 증오했다.

소설을 읽어보면 대체 누가 더 괴물이고 악당인지 모르겠다. 읽을수록 ‘괴물’이 점점 더 불쌍해지고, 과학자 프랑켄슈타인이 이기적이고 악독한 놈처럼 느껴진다. 자기가 만들어 놓고 못생겼다고 책임도 안 지고! 마주치기만 하면 욕설을 퍼붓고! 사악한 아버지의 전형 같은 모습이다. 자신을 만든 창조주이자 아버지인 프랑켄슈타인의 혐오와 경멸 속에서 ‘그’는 점점 더 괴물이 되어 간다. ‘그’는 자신을 만든 것은 당신이지 않느냐며 프랑켄슈타인에게 항변하기도 하고 애원하기도 하고 협박하기도 하지만, 프랑켄슈타인은 그에게 차갑고 무자비한 태도로 일관한다.

이야기 자체만 놓고 보자면, 무책임한 프랑켄슈타인에게 울화통이 터지지만 두 사람의 관계를 은유라고 보면 화가 가라앉으면서 이 텍스트가 무척 흥미로워진다. 이상을 꿈꾸며 아름다운 창조물을 만들고자 했지만 괴물밖에 만들지 못한 프랑켄슈타인과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세상에 나왔는데 자신을 만든 사람에게 혐오와 경멸 밖에는 받은 것이 없어 평생을 고독 속에서 몸부림치는 ‘괴물’.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은 처음에는 아름다운 영혼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세상의 혐오 속에서 결국은 괴물이 되었다. 괴물로 태어나지 않은 그를 괴물로 만든 것은 세상의 혐오였다. 어떤 대상을 혐오할 때 그 대상은 괴물이 된다. <프랑켄슈타인>이 현대에도 계속 다시 읽히는 것은 바로 이런 점 때문일 것이다. 200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인간 사회의 모습을 거울처럼 비추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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