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은 빼고, 사실만 추렸다…연구자 70명 참여한 한국사 통사 ‘시민의 한국사’

김지혜 기자
<시민의 한국사>에 실린 1987년 7월9일 이한열의 장례식 도중 서울시청 앞 노제 광경. 6·29선언 이후 사람들은 서울시청 앞 광장에 모여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된 이한열의 죽음을 추모했다. 돌베개 제공

<시민의 한국사>에 실린 1987년 7월9일 이한열의 장례식 도중 서울시청 앞 노제 광경. 6·29선언 이후 사람들은 서울시청 앞 광장에 모여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된 이한열의 죽음을 추모했다. 돌베개 제공

해석을 절제하고 객관적 사실 서술에 역점을 둔 한국사 통사가 출간됐다. 한국역사연구회가 펴낸 <시민의 한국사>(돌베개)는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우리 역사를 통사적으로 담아낸 일반 시민을 위한 개설서다.

교수와 박사급 연구자 50여명이 필자로 참여했고 교열위원 20여명이 글을 다듬었다. 기획부터 출간까지 10여년이 걸렸다.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다룬 1권 ‘전근대편’과 개항기부터 현대까지 담아낸 2권 ‘근현대편’을 합해 1100쪽에 달하는 두툼한 책이다.

“필자들에게 차라리 영혼이 없는 듯 쓰라고 했다.” 책의 편찬위원장을 맡은 하일식 연세대 사학과 교수는 24일 통화에서 웃음 띤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그만큼 서술의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이야기다.

한국역사연구회는 2013년 ‘교학사 교과서 파동’과 2015년 ‘국정교과서 파동’을 겪으며 역사 해석이 권력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해 이 책의 집필에 착수했다. 이념이나 해석을 내세우지 않고 정확한 사실 서술에 집중함으로써 정치적 파동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객관성을 담보한 역사 개설서”를 만들고자 한 것이다. 오래된 학설에서 벗어나 한국사 전체를 논리적·체계적으로 서술하고자 했다.

해석은 빼고, 사실만 추렸다…연구자 70명 참여한 한국사 통사 ‘시민의 한국사’

하 교수에 따르면 70여명에 이르는 역사 전문가가 집단적으로 역할을 분담해 정통 통사를 펴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 교수는 “시기별·주제별로 전문적으로 연구를 축적해온 필자를 엄선했고, 개인적인 학설이 아닌 학계 전체의 통설을 담아야 한다는 전제를 앞세웠다”고 말했다. 책의 필자가 소절 단위로 세분화된 것은 전문성과 객관성을 담보하고 최신의 연구 성과까지 반영하기 위해서다. 예컨대 1권 ‘제5편 조선’에서는 전기의 문화 부문과 후기의 문화 부문을 담당한 필자가 다르다.

한국역사연구회는 책 머리말에서 “어떤 시대나 사건에 대한 해석을 바로 제시하기보다는 사실 자체를 드러냄으로써 독자 스스로 해석하도록 서술하고자 했다”고 밝힌다. 하 교수는 “한국역사연구회에서도 1980년대까지는 국가가 세금을 걷는 일을 두고 ‘수탈’ ‘착취’와 같은 표현을 많이 썼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에는 ‘수취’라는 중립적인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방침으로 하고 있다”면서 “이처럼 독자에게 해석을 강요하지 않기 위해 담담한 태도를 유지하려 했다”고 말했다.

<시민의 한국사>라는 제목에서 짐작되듯, 일반 시민을 위한 쉽고 편안한 서술이 눈에 띄는 책이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중요한 개념어들에 대한 설명과 본문에서 다루지 못한 논쟁적 지점을 실은 박스가 삽입됐다. 지도와 사진 등 시각 자료도 배치했다.

선사시대부터 2022년 초 문재인 정부 시절까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정치·경제·사회·문화 분야를 충실하게 소개한 전형적인 통사서다. 그간 한국사 통사에서 소홀히 다뤄진 부여사, 고려 ‘동북 9성’ 관련한 논의까지 담겨있다는 점도 특징이다.

한국역사연구회는 “이 책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대통령 탄핵이 이뤄졌고, 국정 교과서는 곧바로 폐기됐다”면서 “책 출간의 필요성 자체를 회의적으로 생각한 적도 있으나, 학계 전문가의 지식과 안목을 결집한 개설서는 사회 상황에 영향받지 않고 여전히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시민의 한국사>에 실린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선포식 사진. 돌베개 제공

<시민의 한국사>에 실린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선포식 사진. 돌베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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