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과 싸우는 이들에게서 희망을 본다”···‘파친코’ 작가 이민진 “모든 차별에 반대”

이영경 기자
4대에 걸친 재일조선인의 삶을 담은 장편소설 <파친코>가 새로운 번역으로 재출간됐다. 이민진 작가는 경향신문과의 e메일 인터뷰에서 “일본에서 살며 고군분투했던 한국인들의 경험에 대한 역사적 진실과 명확한 감정을 전달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아름다운 새 번역을 선보일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Beowulf Sheehan

4대에 걸친 재일조선인의 삶을 담은 장편소설 <파친코>가 새로운 번역으로 재출간됐다. 이민진 작가는 경향신문과의 e메일 인터뷰에서 “일본에서 살며 고군분투했던 한국인들의 경험에 대한 역사적 진실과 명확한 감정을 전달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아름다운 새 번역을 선보일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Beowulf Sheehan

4대에 걸친 재인조선인의 삶 다룬 <파친코>
애플TV+에서 드라마로 제작해 화제
절판됐다 새로운 번역으로 독자와 다시 만나
“우리가 매력적이어서 한국인 이야기를 쓴다”
차기작 <아메리칸 학원>서 ‘한국의 교육’ 다뤄


“저는 모든 종류의 차별을 비판합니다. 아이들은 가슴속에 혐오를 품지 않고 태어나지만, 그들이 속한 문화 속에서 자라며 특정 부류의 사람들을 혐오하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저는 작가로서 혐오와 차별에 대해 연구하고 이를 극복하고 나아갈 방향을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이야기는 우리가 학습한 편견들을 다시 생각할 수 있게 가르쳐줍니다.”

작가 이민진(54)과 <파친코>는 2017년 한 번, 2022년에 또 한 번 뜨겁게 주목받았다. 30여년간의 조사와 집필을 거쳐 재일조선인의 삶에 대해 쓴 소설 <파친코>는 미국에서 2017년 출간 당시 호평을 받으며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4대에 걸친 재일조선인의 삶을 100년이란 역사적 스케일 안에 담으면서도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이들의 삶의 디테일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2022년 <파친코>는 애플TV+에 의해 드라마로 제작돼 전 세계인과 다시 만났다. 이민진에게 <파친코>는 강인한 생명력으로 지속되는 재일조선인 선자와 후손들의 삶과 같이 ‘현재진행형’이다.

드라마 제작과 함께 다시금 소설이 인기를 끌었지만, <파친코>는 지난 4월 서점에서 판매가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문학사상사와의 판권계약이 끝나면서 절판된 것이다. 3개월여 만에 인플루엔셜에서 새로운 번역으로 <파친코>를 펴냈다. <파친코>의 새로운 출간을 기념해 미국에 있는 이민진 작가와 e메일로 인터뷰를 나눴다.

애플TV+ 에서 이민진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드라마 <파친코>.

애플TV+ 에서 이민진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드라마 <파친코>.

이민진에게 ‘한국인 디아스포라’는 영원한 주제다. 한국계 미국인 1.5세로서의 정체성은 그가 재외한국인의 이야기에 천착하게 만들었다. 이민 1.5세대 이야기를 다룬 첫 소설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2008)을 시작으로 일본에서 차별과 배제에 시달리는 재일조선인의 삶까지 그는 나아갔다. 현재는 ‘디아스포라 3부작’의 완결편이 될 세 번째 소설 <아메리칸 학원(American Hagwon)>을 쓰고 있다. ‘한국의 교육’에 대한 소설이다.

“한국인 디아스포라에 대해 최소 세 권의 책을 쓰고 싶었습니다. 그 마지막이 전 세계의 한국인들에게 교육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다루는 <아메리칸 학원>입니다. 교육과 지혜에 대한 생각들을 바탕으로 작업하고 있습니다.”

이민진은 지난 5월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식에 미국 행정부 ‘축하 사절단’으로 한국을 찾기도 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지혜로운 리더십’을 강조했다고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이민진은 <아메리칸 학원> 이후에 논픽션과 또 다른 소설 한 권을 집필할 계획이다. 그는 “글을 느리게 쓰는 편이기 때문에 다섯 권의 책을 출간할 수 있게 된다면 무척 다행스러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민진은 일곱 살 때 미국으로 건너갔다. 예일대에서 역사학을 공부하던 시절 일본 선교사로부터 들은 한국계 소년에 대한 이야기가 <파친코>의 시작이 됐다. “대학 시절 따돌림을 당했던 한국계 일본인 소년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고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며 “1995년 건강상의 이유로 변호사를 그만뒀을 때 재일조선인들에 관한 소설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그 소년에게 느꼈던 감정으로 인해 <파친코>와 오랜 세월 고군분투하게 됐다”고 말했다.

재일조선인의 삶과 한국계 미국인 이민진의 삶은 다르면서도 닮았을 것이다.

“미국에서 저는 따뜻한 환대를 받았지만 차별도 받았어요. 제 경험은 재일조선인과는 다를 것입니다. 재일조선인의 독특한 역사와 사회·법·인류학에 대해 최대한 많이 배우려고 노력했습니다. 재일조선인들을 인터뷰하면서 문헌 연구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책 전체를 다시 쓰려고 했습니다.”

이민진의 소설쓰기는 ‘조사’와 같은 저널리즘적 태도로 시작한다. 그는 일본계 미국인 남편과 함께 4년간 일본에 머물며 재일조선인에 대해 연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했다. 그는 “재일조선인들만의 역사를 존중하고 싶었기 때문에 소설을 쓰려면 더 많은 숙제를 해야 했다”고 말했다.


이민진 ⓒElena Seibert

이민진 ⓒElena Seibert


억압에 저항하는 평범한 사람들에게서 희망을 발견
여전히 난민·이주노동자에 차별적 한국···
“정당함 요구하려면 스스로 공정해져야”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인종차별은 항상 존재
팬데믹 이후 심해진 인종차별 증오범죄 멈춰야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테러와 폭력이 증가했다. 이민진은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스스로를 ‘엑스트라 아시안’이라 부르며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차별과 폭력의 부당성을 주장해왔다. 지난 3월 뉴욕타임스에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언제나 두려움과 함께 살아왔다’는 제목의 칼럼을 기고하며 자신과 가족들이 겪은 인종차별에 대해 말하기도 했다. 이 칼럼에서 그는 보석상을 운영하던 가족들이 강도에 시달렸던 사건, 자신이 학창 시절에 당했던 성폭력 등을 이야기했다.

이민진은 “미국에서 아시안과 아시아계 미국인들을 향한 증오 범죄들은 항상 존재해왔다. 최근 전염병과 관련된 인종차별적 발언으로 증오 범죄는 한층 더 심해졌다”며 “아시아인과 아시아계 미국인들을 향한 인종차별을 개탄스럽게 생각하고 이를 널리 알리고자 글로 써왔다”고 말했다.

서구 세계에선 한국인이 ‘소수자’이지만, 한국의 국력과 부가 증가하면서 이제 난민과 이주민을 받는 사회가 됐다. 하지만 난민이나 이주노동자를 대하는 한국사회의 태도는 박하다. 난민에 대한 부정적 여론과 이주노동자에 대한 열악한 처우가 이를 보여준다. 이민진은 “모든 종류의 차별에 반대한다. 우리가 정당함을 요구하고자 한다면, 우리 스스로도 공정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역사는 우리를 저버렸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유명한 <파친코>의 첫 문장이다.

“첫 문장은 역사가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존중하지 않았다는 제 관점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사람들은 생존하고자 고군분투했고요. 억압·불공평·불평등에 대한 저항의 감정이죠. 저는 이렇게 ‘어마무시한’ 힘과 마주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싸움에서 희망을 발견했습니다.”

이민진은 새로운 번역으로 출간된 <파친코> 서문에서 한국인 이야기를 계속 쓰는 이유에 대해서 “우리가 매력적이기 때문에 한국인 이야기를 쓴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손쉽게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으로 다양한 한국계 이주민들을 묶는 것을 경계했다. 또 BTS, <기생충>, <오징어 게임> 등의 세계적 인기를 ‘한류’로 거칠게 묶는 것도 거부한다.

그는 “모두 음악·영화·드라마 분야의 훌륭한 사례이기 때문에 인기가 있는 것”이라며 “그들이 세계적 수준의 예술을 창조해낸 것은 그들 스스로 공로다. 탁월함을 알아주지 않는 것은 그들의 재능을 평가절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저는 민족적·국가적 정체성에 대한 각 세대의 애착을 일반화하고 싶지 않아요. 사회경제적 지위, 종교, 젠더, 성적 지향, 교육 등과 같은 개인적 요소들이 더 거대한 영향을 준다고 생각해요. 작가라서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긴밀한 관심을 갖고 관찰하고 생각해볼 만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다른 이야기들을 최대한 많이 듣고 배우며 고정관념을 피하려 노력합니다. 저는 한국인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길 바랍니다. 이는 우리의 고유하고 복잡한 특징들에 관한 진실을 이야기함으로써 가닿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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