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243억 켤레 아래 숨겨진 ‘노동착취·독성물질·성차별’···당신의 신발은 어디서 왔나

이영경 기자

풋 워크

탠시 E 호스킨스 지음·김지선 옮김|소소의책|364쪽|2만1000원

나이키 운동화로 만든 거대한 원 모양. 2019년 기준 매일 6600만 켤레의 신발이 만들어지고, 연간 243억 켤레의 신발이 생산된다.

나이키 운동화로 만든 거대한 원 모양. 2019년 기준 매일 6600만 켤레의 신발이 만들어지고, 연간 243억 켤레의 신발이 생산된다.

연간 243억 켤레 신발 생산
메이드 인···차이나·베트남·인도네시아
글로벌 패션 산업의 어두운 그늘 고발한
호스킨스의 두 번째 질문 ‘내 신발은 어디서 왔나’


신발장에 정리되지 않은 신발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다. 그중 운동화 여섯 켤레에 부착된 상표를 들여다본다. 나이키, 아디다스, 스케쳐스 등 다국적기업의 상표를 부착하고 있는 운동화들의 품질표시엔 깨알 같은 글씨로 ‘메이드 인 차이나’ ‘메이드 인 베트남’ ‘메이드 인 인도네시아’라고 쓰여 있다. 서구적 이미지의 브랜드 운동화는 실상 이미지와 전혀 상관 없는 ‘글로벌 사우스’에서 생산됐다. 운동화 고무 밑창은 접착제로 신발 갑피에 잘 부착돼 있는데, 그중 하나는 앞코의 접착제가 떨어져 밑창과 천 사이가 살짝 벌어져 있다. 이 신발은 인도네시아 어느 공장에서 접착제로 붙인 것일까, 아니면 한 빈곤한 가정에서 부모가 아이들과 함께 붙였을까. 오갈 데 없는 ‘거리의 아이들’이 접착제를 환각제 삼아 흡입하진 않았을까. 이 책을 읽게 된다면, 누구나 한 번쯤 오늘 신고 나온 신발의 라벨을 살펴보게 될 것이다.

화려해보이는 패션산업에 드리운 글로벌 자본주의의 어두운 그림자를 낱낱이 고발한 책 <런웨이 위의 자본주의>를 펴낸 탠시 E 호스킨스가 이번에는 신발산업을 집중적으로 파헤친다. 작가이자 저널리스트, 사회운동가인 저자는 지속적으로 가디언, 알자지라 등에 의류와 제화 산업에 관한 글을 기고하고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다. 저자는 신발 생산 공장을 직접 방문하고, 28개국의 다양한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자료를 조사했다. 이 책은 “내 신발은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대답한다.

2013년 방글라데시 라나플라자의 건물 붕괴로 옷을 만들던 노동자 1138명이 목숨을 잃은 사건은 전 세계에 경종을 울렸다. H&M, 자라 등으로 대표되는 패스트패션이 패션계를 주도하게 되면서 더 많은 옷이 더 싸게, 빠른 속도로 생산되고 소비됐다. 라나플라자 사건은 패스트패션의 이면에 방글라데시와 같은 ‘글로벌 사우스’에 있는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이 존재함을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더 트루 코스트> 등이 글로벌 패션산업의 폐해를 잘 보여준다.

2013년 4월 붕괴된 방글라데시 다카 인근 의류공장 라나플라자. 위키피디아

2013년 4월 붕괴된 방글라데시 다카 인근 의류공장 라나플라자. 위키피디아

‘다단계 하청’ 구조 속 수십개국의 ‘글로벌 사우스’ 노동자들
아동·여성 저임금, 위험물질 노출···‘재택노동’까지
신발접착제에 중독된 ‘거리의 아이들’
의류보다 더 위험하고 열악한 산업 구조 폭로


저자는 제화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의류산업보다 훨씬 더 열악한 위치에 있다고 지적한다. 신발은 공정상 훨씬 다단한 단계로 나뉘어 있으며 1차, 2차, 3차 하청을 넘는 공급 사슬로 인해 감시망에서 벗어난 ‘보이지 않는 노동’이 더 많다. “신발의 각 부분은 주문이 들어오는 즉시 다양한 국가에서 제조되고 그 후에 조립된다. 그 결과 신발브랜드가 의류보다 10년은 뒤처져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취약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 그중엔 제화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도 포함됐다. 생산 라인 전역에서 노동자 수만명이 일자리를 잃었고, 남은 노동자들은 비좁은 공장에서 바이러스가 퍼지면서 심각한 병에 걸렸다. 봉쇄령과 권위주의의 강화로 노동조합과 활동가들은 노동자 지원 활동을 위해 가까운 곳으로도 이동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노동법 위반은 7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얀마에선 카우보이 부츠 공장 앞에서 미지불 임금을 지급하라고 시위를 벌이던 노동자 3명이 군인의 발포로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나이키와 아디다스 등은 팬데믹 위기를 이겨내고 2020년 10월 무렵 주가가 위기 이전보다 11% 더 올랐다. 이 같은 차이는 오늘날 우리가 신고 있는 신발이 어떤 불평등 위에서 만들어지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글로벌 사우스’는 이전에 ‘제3세계’ ‘미개발국’으로 불리던 곳을 통칭한다. 저자는 인류학자 토마스 힐란드 에릭슨의 말을 빌려 “전 지구적 신자유주의 위력에 휘둘리는 국가들”로 ‘글로벌 사우스’를 명명한다. 오늘날 우리가 신는 신발의 대부분은 ‘글로벌 사우스’에서 만들어지는데, 임금과 노동비용이 싼 국가, 환경규제 기준이 낮고 건강과 안전기준을 강제할 능력이 빈약한 나라로 제화브랜드가 몰린 탓이다. 아시아는 세계 신발 생산량의 83.3%를 담당하고 있다.

신발 생산국 순위에서 최근 태국이 이탈리아를 밀어내고 10위에 오르면서 10위 안의 비아시아 국가는 단 두 곳, 브라질과 멕시코만 남았다.

나이키 에어맥스 스니커즈.

나이키 에어맥스 스니커즈.

2012년 인도네시아 제화업체 PT 파나루브 인더스트리에서 일어난 노동자들의 파업을 보자. 대부분 여성으로 이뤄진 노동자 2000명은 임금과 노동조건 향상, 노조결성권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다. 이들은 강제 잔업과 낮은 임금, 유급 생리휴가를 쓰려면 굴욕적 신체검사를 받는 등 부당한 대우를 겪었다. 사측은 노동자 1300명을 해고해버렸고, 6년 후에도 해고 노동자 327명은 퇴직금을 받지 못했다. 아디다스는 ‘유엔 기업과 인권에 관한 이행지침’과 경제협력개발기구의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을 위반한 혐의로 기소됐다. 아디다스는 노동자를 해고한 공장과는 계약을 해지했지만, PT 파나루브 인더스트리와는 계속 협력 중이다.

2017년엔 캄보디아에서 나이키, 푸마, 아식스 등에 신발과 의류를 공급하는 노동자들의 집단 실신이 발생했다. 여러 공장에서 수백명이 32도가 넘는 열기에서 주 6일, 하루 10시간을 일하다 쓰러졌다.

중국은 제화산업에서 ‘세계의 공장’이라 불릴 만하다. 2018년 기준 세계 신발 생산량의 64.7%를 담당하고 있다. 고강도 노동, 저임금, 위험한 현장, 결사의 자유가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딸 이방카 트럼프도 불똥을 맞았다. 2017년 이방카가 이용하던 간저우의 화젠 인터내셔널 슈 시티사에서 노동자가 매니저에게 하이힐로 머리를 얻어맞고 출혈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방카 트럼프의 제품들이 2010~2017년 중국 전역에 세워진 스무 곳 이상의 공장에서 제조되어왔다고 보도했고, 이방카의 패션 브랜드는 2018년 문을 닫았다.

화젠 기업은 더 저렴한 노동력을 찾아 아프리카로 나선다. 중국의 국가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일대일로’ 프로젝트로 화젠 그룹은 에티오피아에 공장을 세운다. 이곳 노동자들의 기본 임금은 한 달에 약 26달러로, 월급은 보통 50~100달러다. 화젠 공장 노동자들은 ‘100% 협동, 100% 복종, 100% 실행’이라는 표어 아래 하루 두 번 제자리 행군을 하고 중국어로 된 공장가를 불러야 한다.

신발 공장을 의류 공장보다 더 위험하게 만드는 것은 접착제와 세척용 화학물질 등의 독성물질이다. 1970년대엔 장기간 독성물질에 노출된 후유증인 ‘제화공의 다발신경증’이란 용어가 있었다. ‘제화공의 다발신경증’에 걸린 가장 유명한 인물은 나이키 공동창립자 빌 바워만으로, 비좁은 작업장에서 새로운 운동화 디자인에 몰두하다 독성물질에 중독됐다. 접착제 등에는 벤젠, 톨루엔 등 독성물질이 들어가는데, 이는 암을 유발하거나 신경계 손상을 일으킨다.

제화산업은 ‘글로벌 사우스’ 노동자들의 낮은 임금과 건강, 생명을 대가로 굴러가고 있다. 2002년 기준 나이키는 51개국에 흩어져 있는 700개 이상 공장에서 노동자 50만명을 고용해 제품을 생산했고, 총수익 95억달러 중 59%는 신발에서 나왔다. 아동노동이 폭로되면서 나이키는 ‘스웨트숍’(주로 제3세계 노동착취 공장)을 이용한 노동착취의 상징이 되고, 반세계화 운동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1996년 라이프지는 나이키 로고가 새겨진 축구공을 꿰매고 있는 아동의 사진을 보도했다. 이 사진으로 나이키의 ‘아동 착취’가 알려졌으며, 나이키는 주당 최장 노동시간을 60시간으로 제한하고, 14세 이하 아동노동을 금지했다. 라이프지 제공

1996년 라이프지는 나이키 로고가 새겨진 축구공을 꿰매고 있는 아동의 사진을 보도했다. 이 사진으로 나이키의 ‘아동 착취’가 알려졌으며, 나이키는 주당 최장 노동시간을 60시간으로 제한하고, 14세 이하 아동노동을 금지했다. 라이프지 제공

저자는 ‘글로벌 사우스’에서 신발을 만드는 대다수 노동자가 여성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국제노동기구는 6000만명이 전 세계 의류산업에 종사하며, 그중 80%가 여성이라고 추정했다. 의류·신발 산업은 저개발국 여성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했지만, 그것은 양날의 검이 되었다. 불안정한 저임금 노동이 여성에게 집중되면서 성별 임금격차도 커졌다. 파키스탄에서는 성별 임금격차가 66.5%에 달한다.

공급사슬의 맨 아래로 내려가면 ‘재택노동’이 있다. 저자는 파키스탄에서 가족과 함께 재택노동을 하는 무함마드 이크발을 화상으로 만났다. 무함마드는 파키스탄 북서브 펀자브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 파이살라바드 공장에서 일했다. 공장에서 더 높은 임금을 요구하며 공장주와 벌인 실랑이가 몸싸움으로 번졌고, 실랑이를 하다 몸싸움을 벌이게 됐다. 공장주는 그의 오른팔을 잘라버렸다. 공장주는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고, 그는 한쪽 팔을 잃은 채 더 열악한 재택노동으로 밀려났다. 그가 공장에서 신발 부품 무더기를 받아서 집으로 가면, 아내와 두 딸이 한데 모여 일을 시작한다.

재택노동은 특히 여성에게 집중된다. 국제노동기구는 남아시아 전역에 재택 기반 노동자 5000만명이 존재하고, 그중 80%를 여성으로 추정한다. 재택노동은 가정을 공장화할 뿐 아니라 위험물질에 취약하게 만든다. 무함마드는 집 안에 산업용 접착제를 대량 보관했다. 거기엔 어떠한 경고 문구도 없었다. 아이들이 접착제를 갖고 놀다 불이 붙어 큰 화재가 났고, 무함마드는 아이들을 구하다 화상을 입었다. 재택노동은 집이 곧 작업장이 되는 것이지만, 작업장에 적용되는 안전 기준은 적용되지 않는다. 집에서 일을 하다 음식을 먹는 일이 뒤섞이면서 독성물질은 호흡, 피부, 소화기관을 통해 노동자와 가족들에게 흡수된다.

접착제를 손쉽게 구할 수 있게 되면서 사회적 보호망 밖에 있는 ‘거리의 아이들’이 접착제에 중독되는 경우도 많다. 방글라데시엔 ‘댄디’라고 불리는 접착제에 중독된 아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달콤한 향이 나는 톨루엔이 들어있어 아이들이 선호하는데, 대량 흡입하면 의식을 잃거나 심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아디다스가 랩퍼 카니예 웨스트와 협업해 만든 브랜드 이지. 글로벌 브랜드는 유명 인사와 협업하거나 한정판 스니커즈를 출시해 소비를 부추긴다.

아디다스가 랩퍼 카니예 웨스트와 협업해 만든 브랜드 이지. 글로벌 브랜드는 유명 인사와 협업하거나 한정판 스니커즈를 출시해 소비를 부추긴다.

2019년 기준, 매일 신발 6600만켤레가 만들어지고 연간 총 243억켤레가 생산된다. 이를 생산하는 노동자들에겐 저임금과 착취에 가까운 대우가 보수로 제공되지만, 나이키, 아디다스 등의 다국적기업은 화려한 마케팅과 브랜딩으로 수익을 얻는다. 마이클 조던은 1992년 스폰서십 계약으로 2000만달러를 벌어들였다. 이는 나이키 에어 조던을 꿰매는 모든 동남아시아 여성 노동자들의 임금을 합친 액수보다 더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 아디다스는 래퍼 카니예 웨스트와 협업해 ‘이지’라는 브랜드를 출시했으며, 스니커즈 수집가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사람들은 명사들과의 컬래버, 한정판과 같은 마케팅에 이끌려 새로운 신발 사기를 멈추지 않는다.

책은 신발에 많이 쓰이는 가죽 산업의 현실과 유독물질에 노출된 방글라데시 무두질 공장에 관해 폭로하는가 하면, 243억 켤레의 신발이 버려진 후 어디로 가는지 그 뒤를 쫓는다.

이 책은 신발산업을 통해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가장 열악한 노동조건에 내몰린 사람들의 현실을 폭로하는 보고서인 동시에 “내 신발은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대체 왜 그렇게 많은 신발이 만들어지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까지 파고든다. 이 책을 지도 삼아 신발 한 켤레에 거쳐간 수많은 노동자들의 바늘땀과 손길, 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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