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설탕이 뇌를 자극하기까지 0.6초···단짠에 길들이는 ‘중독의 상술’

이영경 기자

음식 중독

마이클 모스 지음·연아람 옮김|민음사|392쪽|1만8000원

다양한 맛의 도넛들. 식품업계는 뇌를 자극하는 단 맛을 극대화한 식품들을 생산해 소비자들의 ‘위장 점유율’을 높인다.

다양한 맛의 도넛들. 식품업계는 뇌를 자극하는 단 맛을 극대화한 식품들을 생산해 소비자들의 ‘위장 점유율’을 높인다.

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

방송에서 한 연예인이 한 말로, 음식의 맛에 홀딱 빠진 순간에는 열량이나 체중에 대한 생각을 다 잊게 된다는 뜻으로 쓰여 화제가 됐다.

이 말은 그저 먹는 즐거움을 묘사하기 위한 수사가 아니다. 절반쯤은 ‘과학적 진실’이다. 음식, 특히 단 음식이 입에 들어오는 순간 뇌는 강한 쾌감을 느끼며 더 많은 음식을 요구한다. 설탕이 뇌를 활성화하는 속도는 마약·담배보다 빠르다. 위가 포만감을 느끼며 ‘그만 먹으라’는 신호를 보내기 시작할 땐 이미 늦었다. 음식에 대한 갈망이 시작돼 제동이 걸리기까지의 시간이 바로 뇌에게는 ‘0칼로리’의 순간이다. 물론 음식의 칼로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소비되지 못한 여분의 칼로리는 차곡차곡 체지방으로 쌓인다.

음식이 뇌에 보내는 신호에 대해 가장 통달한 곳은 아마 식품업계일 것이다. 식품업계는 설탕에 대한 지복점(bliss point·최고의 만족도를 제공하는 지점), 뇌의 추동하는 영역이 매우 자극돼 억제하는 뇌 영역이 제동을 걸 기회조차 없는 설탕 양을 정확히 찾아내 자극하는 제품을 생산한다. 설탕이 다가 아니다. 단맛을 이기는 것이 ‘단짠’이다. 기름진 맛까지 추가되면 더 강력하다. 짭짤한 프레첼 사이에 팥앙금 덩어리와 버터 조각을 넣어 만든 ‘앙버터 프레첼’을 떠올려보라. “식품 기업들은 우리를 설탕에 중독시켰다. 소금과 지방도 첨가했다. 소금·설탕·지방 섭취의 주도권을 식품 기업들에 통째로 넘겨주었고, 이로써 우리의 음식 문화는 기업들이 만든 식습관으로 변하고 말았다.” <음식 중독>의 저자 마이클 모스는 말한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저널리스트 모스는 전작 <배신의 식탁>에서 설탕·소금·지방을 이용해 이익을 늘리고 소비자들의 건강을 해치는 가공식품 업계를 고발했다. <음식 중독>은 이에서 한발 더 나아가 ‘중독’의 관점에서 가공식품 업계가 어떻게 우리의 식습관을 좌지우지하는지를 다양한 연구 결과와 소송 자료, 식품업계 실태를 통해 파헤친다.

[책과 삶]설탕이 뇌를 자극하기까지 0.6초···단짠에 길들이는 ‘중독의 상술’

맥도날드에 ‘중독’된 재즐린, 소송을 제기하다
비만으로 매년 30만건 조기사망, 아동비만 매년 300만건 증가
체중증가 곡선과 똑닮은 초가공식품 소비

책은 맥도날드를 대상으로 소송을 건 열여섯 살 재즐린의 사례로 시작한다. 재즐린은 어려서부터 맥도날드 햄버거의 맛과 사랑에 빠져버렸다. 처음엔 해피밀을 먹었지만 조금만 더 돈을 내면 햄버거 두 개를 주는 세트를 살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자이언트 사이즈를 주문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 선택이었다. 맥도날드는 먹으면 행복해지는 음식을 주었지만, 치즈버거와 감자튀김을 너무 많이 먹어서 생길지도 모르는 건강상 문제에 대해서는 경고하지 않았다. 110킬로그램이 넘는 고도비만이 된 재즐린에게 가족과 알고 지내던 변호사 새무얼 허슈가 맥도날드를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할 것을 제안했다.

미국에서 비만은 심각한 질병이다. 비만은 코로나19 증상을 악화시키며, 고도비만의 경우 사망률이 더 높다. 비만으로 매년 30만건의 조기 사망이 발생하고, 연간 3000억달러의 의료비가 발생한다. 아동 비만이 매년 300만건씩 증가하면서 아이들이 고혈압, 관절염 같은 질병을 앓았다. 미국에서 체중 증가와 가장 유사한 추이를 보여온 것은 초가공식품의 소비 증가였다.

허슈는 맥도날드가 판매한 음식이 소금, 설탕, 지방, 콜레스테롤만 높은 것이 아니라 “중독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2002년 재즐린의 소송이 시작되자 음식에 대한 갈망과 식욕, 비정상적 식습관을 초래할 수 있는 가공업계의 영향력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졌다.

맥도날드 소송이 시작되기 전, 담배 소송이 있었다. 담배 회사는 막대한 배상금을 물릴 궁지에 몰리자, 배상금 액수를 줄이기 위해 담배의 중독성을 인정했다. 2000년 필립모리스의 CEO 마이클 시만치크는 재판에서 중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중독은 어떤 사람들이 그만두기 힘들어하는 반복적 행동입니다.

공교롭게도 필립모리스는 크림치즈로 유명한 크래프트, 푸딩과 오렌지 주스로 유명한 제너럴푸드, 쿠키와 크래커 회사인 나비스코를 인수한 가공식품 업계의 거물이다. 시만치크가 정의한 ‘중독’은 그들이 생산하는 가공식품에도 적용 가능했다.

[책과 삶]설탕이 뇌를 자극하기까지 0.6초···단짠에 길들이는 ‘중독의 상술’

설탕이 뇌에 도달하는 속도 0.6초···마약, 담배보다 빠르다
소금·지방 더해 건강보다 ‘맛의 최고점’ 노리는 간편·가공식품

저자는 음식이 술, 담배, 약물보다 더 중독성이 강할 수도 있다는 것을 과학적 연구결과를 통해 검증해 나간다. 인간의 뇌엔 도파민과 같이 쾌감을 일으켜 강박적 행동을 유발하는 신경전달물질이 있다. 저자는 이 뇌를 청신호를 보내는 ‘추동하는 뇌’라고 부른다. 반면 전두엽 피질과 해마 등은 적신호를 보내는 ‘억제하는 뇌’다.

속도는 중독에서 중요하다. 설탕이 뇌를 자극하는 속도는 마약과 담배를 능가한다. 담배보다 스무 배나 빠른 속도, 0.6초가 걸린다. 포도당은 식사 시작 후 10분 이내에 혈액 도달하기 시작히는데, 코로 흡입하는 코카인과 비슷한 속도다. 고도로 정제된 식품은 혈당을 가장 빠른 속도로 올리며 뇌를 자극하며 음식을 갈망하게 한다. “뇌의 제동 기능을 망가뜨리는 강력한 요소가 가공식품의 엄청난 편의성(속도)”라고 책은 말한다.

마약을 구하기 위해선 마약상을 찾아야 하고 경찰 단속의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 케이크나 초코바를 먹기 위해선 그럴 필요가 없다. 음식에 대한 갈망을 충족시키기는 너무 쉽다. 언제 어디서나, 저렴하고 빠르게 뇌의 쾌락버튼을 누를 수 있는 것이 바로 설탕과 지방이 듬뿍 첨가된 가공식품이다.

감자칩

감자칩

‘음식중독’은 진화의 산물···인간은 달고 기름진 음식에 끌린다
다양한 맛 추구···고열량 식품을 위는 알아본다

인간이 처음부터 음식을 어디서나 손쉽게 구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인류가 직립보행을 시작하며 수렵채집 생활을 시작했을 때, 음식에 대한 갈망은 인류가 살아남아 진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인간은 고열량 음식에 끌리도록 진화했다. 환경의 변화는 인간이 다양한 음식을 먹게 만들었고, 다채로운 풍미를 즐기는 미각을 갖게 했다. 위는 별맛이 없는 감자와 같은 전분류의 음식을 섭취하기 위해서 열량이 많은 음식을 감지해 뇌에 신호를 보낼 수 있게 됐다.

책에서 인간이 풍미를 느끼는 과정을 설명하는 부분은 매우 인상적이다. 직립보행을 하게 되면서 입 뒤쪽에 코로 연결되는 새로운 공간이 생겼다. 이곳이 풍미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미뢰가 느낄 수 있는 맛은 단맛·짠맛·신맛·쓴맛, 감칠맛 다섯 가지로 단출하지만 후각 수용체는 340~380개의 기본 냄새를 포함해 수천가지의 냄새 조합을 감지한다. 인간은 입으로도 냄새를 맡는다. 비강 천장의 후각 망울이 다양한 냄새 분자를 민감하게 감지해낸다. “코 뒤에 있는 공간의 공기가 개울 속의 소용돌이처럼 원운동”을 해 “냄새 분자를 순환시켜 더 오래 살아남게 하고 우리를 음식에 더 흥분하게 한다.” 와인을 입 안에 머금고 돌리면 머릿 속에 다양한 풍미가 펼쳐지는 것은 바로 이때문이다.

열량을 감지하는 위장에 관한 이야기는 별로 달갑지 않을 것이다. 피험자들은 실제론 그냥 물과 같은 맛을 내지만 열량이 첨가된 물을 더 맛있다고 평가했다. 위가 열량을 감지하고 뇌에 ‘맛있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인간은 고열량 음식을 본능적으로 선호한다.

30일간 맥도날드 음식만을 먹는 실험을 한 다큐멘터리 <슈퍼 사이즈 미>를 만든 모건 스펄록. 그는 감정 기복이 심해지고, 성기능 장애가 발생하고 지방간이 생겼다. AP 연합뉴스

30일간 맥도날드 음식만을 먹는 실험을 한 다큐멘터리 <슈퍼 사이즈 미>를 만든 모건 스펄록. 그는 감정 기복이 심해지고, 성기능 장애가 발생하고 지방간이 생겼다. AP 연합뉴스

가공식품이 장악한 식탁···뇌가 아니라 ‘음식이 바뀌었다’
설탕·소금·지방으로 가장 ‘쾌락적 맛’을 만들어

‘음식 중독’은 400만년 동안 인류를 번성시킨 원동력이었지만 최근 40년 동안엔 인간을 위협하는 요인이 됐다. 우리가 먹는 음식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1980년대 가공식품과 간편식이 식탁을 장악하면서 우리는 무엇을 먹을지에 대한 주도권을 빼앗겼다.

음식에 끌리는 인간의 본능을 식품업계는 누구보다 잘 간파했다. 식품 기업은 과거엔 달지 않았던 음식에 60가지가 넘는 설탕을 첨가했다. 다양한 맛에 끌리는 본능을 충족시키기 위해 수십가지 맛과 향을 만들어 낸다. 여러 맛의 스낵을 한 묶음으로 판매하는 ‘버라이어티팩’은 다양성에 대한 생물학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고안됐다. 1980년 대형 마트엔 6000개의 제품이 있었지만 지금은 다섯 배가 넘는 3만3000개의 제품이 있다. 달고 짜고 기름진 맛, 조금만 모양과 맛을 달리 한 ‘다양한 제품’으로 기업들은 소비자들의 ‘위장 점유율’을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동시에 다이어트 사업 브랜드를 인수하거나 저칼로리, 다이어트 제품을 생산하며 “살찌게 하는 음식도, 날씬하게 하는 식품도 생산”하며 이중 수익을 올린다.

맥도날드를 상대로 한 재즐린 소송은 기각됐다. 증거가 충분치 않았다. 담배 소송을 반면교사 삼아 식품 업계는 미리 소송에 대비했다. (필립모리스가 가공식품도 만든다는 것을 떠올려보라) 식품업계와 요식업계는 의회를 상대로 로비를 벌였으며, 콜로라도 주의회는 ‘상식소비법’을 통과시켰다. 식품 때문에 음식에 자제력을 잃게 되었다고 주장하는 개인의 손해배상 소송을 금지하는 것으로 ‘소송의 싹’을 자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소송을 계기로 영화 제작자 모건 스펄록이 30일간 맥도날드만 먹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슈퍼사이즈 미>가 2004년 개봉돼 화제를 모았다. 더 많은 사람들이 패스트푸드 및 가공식품에 대해 경각심을 갖게 됐다. 햄버거나 감자칩이 몸에 좋지 않다는 것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추동하는 뇌의 작동을 멈추고 억제하는 뇌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 음식에 끌리는 본능을 악용하는 기업들의 전략에 일방적으로 당하는 위치에서 벗어날 수 있다. 저자는 음식과 먹는 방식에 관심을 기울이고, 식단에 대한 주도권을 가져와야 한다고 말한다. 비강 천장을 휘감고 도는 풍미의 향연을 즐길 수 있는 기회를 가공식품에만 내주는 것은 아깝다. 결과적으로 재즐린이 아주 실패한 것은 아니다.

[책과 삶]설탕이 뇌를 자극하기까지 0.6초···단짠에 길들이는 ‘중독의 상술’

Today`s HOT
러시아 미사일 공격에 연기 내뿜는 우크라 아파트 인도 44일 총선 시작 주유엔 대사와 회담하는 기시다 총리 뼈대만 남은 덴마크 옛 증권거래소
수상 생존 훈련하는 대만 공군 장병들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불법 집회
폭우로 침수된 두바이 거리 인도네시아 루앙 화산 폭발
인도 라마 나바미 축제 한화 류현진 100승 도전 전통 의상 입은 야지디 소녀들 시드니 쇼핑몰에 붙어있는 검은 리본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