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돈 되는’ 성범죄, 법률시장의 블루오션이 되다

이영경 기자

시장으로 간 성폭력

김보화 지음|휴머니스트|392쪽|2만1000원

‘성범죄 전문 변호사’를 광고하는 법무법인의 홍보 이미지. 인터넷화면 캡처.

‘성범죄 전문 변호사’를 광고하는 법무법인의 홍보 이미지. 인터넷화면 캡처.

 “365일 24시간 영장전담팀 신속대응. 판사 출신, 부장검사 출신 전문변호사, 디지털포렌식을 통한 전문적인 증거 수집 및 분석.”

 “검사, 경찰청 출신 변호사와 디지털포렌식센터장, 형사법 전문 변호사들이 최상의 법률서비스를 제공합니다.”

 “국내 최대 로펌 ○○○ 형사팀에서 함께 손발을 맞춘 ‘팀워크’.”

판검사 출신 전관 변호사, 대형 로펌 출신 변호사 등 화려한 경력과 전문성을 갖춘 변호사들을 내세운 문구를 보면 기업 고객이나 경제사범 등을 떠올리기 쉽다. 실상은 성범죄 변호를 홍보하기 위한 문구다. 이 정도 변호인단이 붙을 정도면 성범죄 사건이 ‘돈이 되는’ 시장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최근 성폭력 고소와 역고소가 증가하면서 성범죄 가해자를 위한 법률시장이 새로이 창출되고 ‘호황’을 맞았다. 로펌뿐 아니다. 감형 컨설팅 업체에선 ‘반성문 2부, 탄원서 2부, 근절서약서 1주, 심리교육수료증(3일), 상담사의견서(3일)…’으로 구성된 ‘감형 패키지’를 55만원에 판매한다. 고가의 수임료가 드는 로펌부터 상대적으로 저렴한 컨설팅 업체의 감형 패키지까지 성폭력 가해자들은 자신들의 처지와 상황에 맞는 ‘법률 상품’을 쇼핑하듯 고를 수 있다.

‘성범죄 전담그룹’을 자처하는 법무법인의 ‘성공사례’. 홈페이지 캡처

‘성범죄 전담그룹’을 자처하는 법무법인의 ‘성공사례’. 홈페이지 캡처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김보화는 2010년대 중반부터 등장한 성범죄 전담법인과 가해자 온라인 커뮤니티, 감형 컨설팅 업체 등에서 가해자를 위한 각종 감형 방법이 발명돼 법조계에서 거대한 산업을 구축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시장으로 간 성폭력>에서 실태를 낱낱이 파헤친다. 법률 시장의 개방, 변호사 증가와 같은 변화 속에서 성폭력 사건의 특성이 더해져 새로운 시장이 창출됐으며, 이를 통해 성폭력 담론이 어떻게 변화하고 가해자와 피해자의 위치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촘촘히 분석한다. 암울한 현실이지만 저자는 변화의 가능성과 희망도 본다. 피해자들은 사법체계가 강요한 자리에서 머물지 않고 성폭력을 공론화하고 다른 피해자들과 연대하면서 ‘정치적 주체’로 거듭났다. 이화여대 여성학 박사논문 <성폭력 사건 해결의 ‘법시장화’ 비판과 ‘성폭력 정치’의 재구성에 관한 연구>를 다듬고 보강해 책으로 펴냈다.

한국YWCA 회원들이 ‘미투 지지’ 손피켓을 들고 있다. 김창길 기자 사진 크게보기

한국YWCA 회원들이 ‘미투 지지’ 손피켓을 들고 있다. 김창길 기자

미투 운동으로 ‘핫한 분야’가 된 성범죄
변호사 증가로 ‘신규 시장’ 개척···공격적 영업과 마케팅
피해자 역고소 ‘패키지 수임’도

2010년대 중반부터 성폭력 고발 및 공론화가 이뤄지다 2018년 서지현 검사의 성폭력 폭로 이후 각계에서 ‘미투 운동’이 일어났다. 성폭력 피해에 대한 공적 발화의 흐름을 타고 성폭력 피해를 숨기고 지냈던 피해자들이 말하기 시작했다. ‘n번방 사건’을 통해 디지털성범죄에 대한 공론화와 수사, 처벌이 늘어났다.

성범죄 사건이 증가하면서 법률 수요가 늘어난 것은 당연한 것 아닐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그렇지 않아도 피해자에게 불리한 구조로 형성돼 있는 수사·재판 과정에서 피해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공적제도는 실효성이 부족한 가운데 가해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률시장이 비대하게 팽창하면서 성폭력은 이제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제력과 자원 싸움으로 변했다.

어떻게 성범죄는 법률시장의 ‘블루오션’이 되었을까. 2008년 미국식 로스쿨 제도가 도입돼 변호사 수가 증가하면서 변호사들 간 경쟁이 치열해졌다. 저자가 인터뷰한 변호사는 “각자도생의 시대”에 “변호사는 상인이라는 마인드가 강해졌다”고 말했다. 신규 법인들이 고객을 모집하기 위해 온라인 홍보를 적극 이용하는데, 이혼과 성범죄 영역에 특화된다는 것이다. 이혼·성범죄 사건의 경우 의뢰인들은 일면식도 없는 변호사를 찾는 경우가 많다. “아는 사람한테 가기 창피한” 것이다. 사회적 자원이 부족한 가해자들은 광고에 의존해 변호사를 찾는다. “거액의 광고로 고객을 유치하고, 그 광고비를 유지하기 위해 저임금으로 저연차 변호사들을 대량으로 고용”하면서 성범죄 전담법인이 굴러간다.

성범죄 전담법인의 공격적 마케팅과 영업 수단은 날로 확장되고 있다. 이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데, ‘성폭력 역고소’가 대표적이다. 최근 가해자들이 적극적으로 역고소를 하고 ‘공격적 양상’을 보이는 배경엔 성범죄 전담법인의 ‘기획’이 있다. 변호사들은 가해자들의 불안감을 부추겨 “역고소 패키지 수임”을 하는데, 법률지식이 부족한 가해자가 피해자를 무고로 역고소한 사실을 모르는 경우도 있었다.

감형을 위한 ‘스펙’ 쌓기···여성단체 기부금, 헌혈증, 표창

성범죄 전담법인은 ‘감형의 기술’을 가해자들에게 제시한다. 성범죄 감형 요소인 ‘진지한 반성’은 여성단체나 사회봉사단체에 대한 기부나 자원봉사활동 증빙서로 변신한다. 선고유예를 받은 성범죄 사건의 판결문에서 “한국성폭력상담소에 정기후원금을 납부한 점”이 참작되기도 한다. 성폭력상담소 자체조사 결과 가해자가 기부금을 내겠다고 한 것이 87건, 실제 납부한 것이 14건 확인됐다. 여성단체들은 후원과 기부를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일일이 확인하는 작업을 추가로 벌이게 됐다. 저자는 “여성운동단체 활동에 가해자 기부를 찾아내는 업무가 추가되면서 운동에 투여해야 할 역량이 소진되고, 여성운동단체는 가해자나 가해자 측 법인에 의해 감형의 전략 대상으로 도구화되고 있다”고 말한다.

피해자가 합의를 거부한 사건에서조차 여성단체나 사회봉사단체에 대한 기부는 ‘진지한 반성’으로 여겨져 감경 요인으로 작용한다. n번방 사건 이후 그와 관련된 기부금과 정기후원금이 늘어나기도 했다.

감형 요인 중 ‘사회적 유대관계가 분명’을 입증하기 위해 가해자들은 과거를 털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군대에서 총 잘 쏘면 받는 우수상, 자원봉사 기록, 헌혈증, 표창 등이다. “성폭력 가해자의 이전 삶의 궤적들은 재판과정에서 일종의 ‘스펙’이 되어서 감경 및 집행유예 사유로 제출”된다. 또 재판부가 이에 공감해 실제 감형으로 이어지면서 이런 기술들은 점점 확장되고 있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주차장 철문이 굳게 닫혀있다.  권도현 기자

서울 서초구 대법원 주차장 철문이 굳게 닫혀있다. 권도현 기자

가해자 온라인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성범죄 전담법인
법무법인, 심리상담센터, 진술분석센터···확대되는 ‘가해자 카르텔’

성범죄 전담법인은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온라인 카페를 직접 운영하거나 블로그나 카페에 후원금을 내는 방식으로 브로커로부터 ‘사들여’ 운영하기도 한다. 온라인 카페는 가해자들이 정보를 공유하며 성범죄 전담법인으로 가는 ‘플랫폼’ 역할을 하게 된다.

성폭력 가해자들을 대상으로 운영되는 A카페는 반성문뿐 아니라 디지털포렌식 조사에 대한 정보까지 공유한다. 수사·재판에 필요한 스킬을 판매하는 사이트로도 연결된다. A카페는 회원가입 조건이 까다롭고, 가장 높은 ‘특별 회원’이 되기 위해선 ‘카페 변호사님’을 선임하거나 유료회원이 돼야 한다. 한 변호사는 “자기들 중에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 등급을 주고 차등을 매기며 정보량도 금전에 따라 달라지는” 점이 n번방 사건 구조와 닮아있다고 지적한다.

가해자 커뮤니티를 통해 가해자들은 일말의 죄책감을 털어버리고 연대감을 강화한다. 이들이 공유하는 것은 ‘억울함의 서사’다. 한 변호사는 성범죄 전담법인이 유죄로 취업제한이 된 가해자를 ‘알바’로 고용해 자필 후기 등을 쓰게 해 홍보 수단으로 이용한다고 말한다.

가해자 지원산업은 법무법인을 넘어서 심리상담센터, 진술분석센터 등으로 확장되고 있다. 가해자의 심리상담이 감형에 유리하다는 이유로 카페를 운영하는 법인과 연계해 심리상담을 해주는 상담소가 생겨나는가 하면, 대검찰청 과학수사 방법으로 진행되는 진술분석센터는 고액의 비용을 받고 피해자들의 증언 신빙성을 ‘판단’해준다. 진술분석센터 홈페이지를 보면 무죄를 이끌어낸 사례로 성폭력 사건을 내세운다.

“법인, 법인을 조력하는 (전직) 경찰·검찰·판사들, 심리상담소, 진술분석센터와의 연계, 이들의 전략을 승인하는 법원은 전문가 네트워크를 구축해 성폭력 가해자 지원산업을 확장하고 있다.” 촘촘하고 넓게 구성된 ‘가해자 카르텔’은 성폭력 사건을 이전과는 다른 성격으로 재구성한다. 성폭력 가해자는 합리적 소비자로, 성폭력의 법적 해결 과정은 남성중심적 사회에 대한 정치적 싸움에서 자본에 따라 승패가 결정되는 문제가 돼 버렸다. “소비자로서의 가해자와 시장화된 성범죄 전담법인, 산업화되는 전문가 그룹들이 가해자 카르텔을 구성하면서 성폭력은 정치적인 것에서 경제적인 것으로 이동하고 있다.”

여성단체연합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흰 장미를 달고 검찰 내 성폭력 사건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성단체연합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흰 장미를 달고 검찰 내 성폭력 사건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피해자다움’에 종속되는 피해자
소비자가 된 가해자, 가해자가 된 피해자
그럼에도 희망···연대로 ‘공감의 정치’ 보여준 여성들

‘위력에 의한 간음’을 유죄로 인정받은 안희정 전 충남지사는 1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피해자가 ‘성적자기결정권’을 가질 만큼 주체적이며 똑똑하다는 이유였다. 성적자기결정권에 대한 몰이해는 법원의 부족한 성인지감수성 때문이다. 이런 구도 속에서 성폭력 발생 원인은 성적자기결정권을 행사하지 않은 피해자의 문제가 돼버린다.

미투 운동 이후 주체적으로 성폭력 피해를 말하며 가해자 처벌과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여성이 많아졌지만, 이들은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답지 못하다’는 이유로 불리한 판단을 받기도 한다. 한 피해자는 대질신문에서 차분하게 이야기했다는 이유로 수사기관으로부터 “피해자 같지 않다”며 무고 조사를 받게 됐다.

피해자들은 수사 과정에서 울고 고통스러워해야만 ‘피해자답다’고 인정되는 탓에 고통을 입증하기 위해 고통을 수행하며 ‘재피해자화’한다. 정신적 피해를 입증하는 것이 가해자 엄벌에 도움이 되는 까닭에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 가해자의 정신과 치료가 감형 사유가 된다면, 피해자는 고통을 증명하기 위해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 “피해자의 치유와 회복은 사회적 연대와 투쟁이 아닌 치료가 필요한 영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정치의 사법화’와 같이 성범죄가 사법화되면서 소수의 엘리트 법관이 결정권을 갖게 된다. 성범죄는 탈정치화되고 시장에서 벌이는 자원경쟁이 됐다. 성범죄 전담법인의 전략 속에 역고소를 당한 피해자들은 피의자의 위치에 서면서 성범죄 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의 위치가 역전되기도 한다.

가해자 1인과 싸우는 게 아닌 거야. 사법시스템 안으로 들어가면 사법시스템 안의 온갖 위치에 있는 남성들과 싸우는 거예요.

한 피해자의 말이다. 이 말은 피해자의 곤경을 보여주는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 피해자들은 사법시스템 안에서 싸우면서 자신들의 행동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 기여하게 되었음을 인식하며 다른 피해자들과 연대했다. 미투 운동은 피해자들이 함께 연대하는 ‘공감의 정치’를 보여줬다. 바로 이것이 모든 것을 경제의 영역으로 몰아넣는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페미니즘 정치의 공공성’이 구성되는 곳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책과 삶] ‘돈 되는’ 성범죄, 법률시장의 블루오션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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