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 거짓말쟁이, 혜지···‘여성 사냥’은 끝나지 않았다

이영경 기자
2017년 11월 미국 할리우드에서 성폭력 피해자와 이들과 연대하는 사람들이 ‘미투 운동’을 지지하는 행진을 벌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2017년 11월 미국 할리우드에서 성폭력 피해자와 이들과 연대하는 사람들이 ‘미투 운동’을 지지하는 행진을 벌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우리는 당신들이 불태우지 못한 마녀의 후손들이다!(We are the descendants of withes that would not burn!)”
최근 많은 시위 현장에서 외쳐지는 슬로건이다. 여성에 대한 폭력에 반대하며, 저항하는 주체로서 여성을 강조한다.
페미니스트 학자이자 저술가 실비아 페데리치는 “마녀사냥을 역사적으로 ‘모든 여성에 대한 전쟁’으로 볼 수 있다는 인식이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다고 말한다.
지난 8일 세계 여성의날을 맞아 여성에 대한 책들이 출간됐다.
현재에도 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등에서 자행되고 있는 마녀사냥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우리는 당신들이 불태우지 못한 마녀의 후손들이다!>,
성폭력 피해자의 말이 불신받고, 오히려 가해자를 ‘마녀 사냥’한다고 비난당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불신당하는 말>,
여성에 대한 차별과 배제가 작동하는 게임산업 실태를 분석한 <여성 게이머는 총을 쏠 수 있는가>를 소개한다.


[책과 삶]마녀, 거짓말쟁이, 혜지···‘여성 사냥’은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당신들이 불태우지 못한 마녀의 후손들이다

실비아 페데리치 지음·신지영 외 옮김|갈무리|224쪽|1만5000원

“모든 마을에는 그 마을의 마녀가 있어요. … 기쁨의 불로서 그들이 살지 못하게 할 거예요.”

덴마크에선 매년 6월23일 성 요한 탄생일 전날 밤에 모닥불을 피우고 짚이나 나무로 만든 마녀 형상을 태우면서 마녀를 내쫓은 기쁨을 표현하는 노래를 부른다. 15~17세기 300년 동안 학살된 마녀사냥의 희생자 대부분은 여성이었다. 수만명에 이르는 여성들이 살해당했다. 역사상 학살의 희생자를 불태우자는 노래를 만들어 부르는 사건이 또 있었던가? 유럽 각지 마녀재판 현장의 기념품점에선 마녀 인형이 “인기 상품”으로 판매되고 있다.

저항하는 여성들의 구호에도 불구하고, 마녀는 여전히 마녀다. 악마와 결탁해 피해를 입히는 사악한 존재로 서구 문화 곳곳에서 재현되며 조롱의 대상이 된다. 마녀사냥은 지금도 벌어진다. 2000년부터 현재까지 최소 2만명의 여성이 마녀로 몰려 살해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인도 등지에서는 여성에 대한 납치와 살해, 문자 그대로 ‘마녀사냥’이 이뤄지고 있다. 미국 텍사스주 엘파소에서 멕시코 국경을 넘어 위치한 후아레스시에서는 20년 동안 수백명의 여성이 사라졌고, 이들의 훼손된 신체가 공공장소에서 유기된 채 발견된다. 1992년 이래로 케냐에서만 100명이 넘는 사람이 살해됐다. ‘마녀 살해’ 보도는 증가하고 있다. 북부 가나의 ‘마녀 수용소’로 추방된 여성의 숫자는 3000명에 달한다.

초기 자본주의서 신자유주의로
핵심 경제 자원 둘러싼 갈등이
사회적 약자 여성 향한 폭력으로
출산·노동 통제 ‘마녀사냥’ 역사

페데리치는 전작 <캘리번과 마녀>에서 15~17세기 마녀사냥이 초기 자본주의 태동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분석했다. 농업자본주의 부상과 함께 공유지에 울타리를 쳐 사유화하는 인클로저가 일어났고, 공동체적 농업의 해체, 화폐 경제의 부상, 토지 강탈로 사회적 권한을 가장 크게 빼앗긴 집단이 여성이었다. 이들은 당연히도 빈곤과 사회적 배제에 저항했다.

마녀사냥을 거쳐 여성들은 무급 가사노동에 구속됐고, 국가는 여성의 재생산 능력에 대한 통제권을 갖게 됐다고 말한다. 마르틴 루터는 “여자들은 죽을 때까지 아이를 낳아야 한다”며 결혼해서 노동자 계급을 많이 생산하는 것이야말로 신의 뜻을 이행하는 여자들의 소명이라고 말했다. 그중 나이 든 여성이 특히 박해받았다. “임신중지 유도 식물 같은 금지된 지식을 알려주거나 공동체의 집합적 기억을 전달”했고 “어떤 약속이 있었는지, 어떤 믿음이 배신당했는지, (땅과 관련해서) 재산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관습적 합의사항은 무엇인지, 그리고 누가 위반했는지 등을 기억하는 것은 나이 든 여성들”이었다.

오늘날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에서 자행되는 마녀사냥도 “신자유주의 지구화 과정의 효과”라고 저자는 분석한다. 마녀사냥이 발생하는 지역엔 토지 분쟁이 있고, 광업 기업과 농산업 기업이 잔혹한 마녀사냥을 도구로 원주민들을 쫓아냈다. 구조조정과 자유무역화가 불러온 실업, 불안정 노동, 가족임금의 붕괴는 남성들이 자신의 좌절을 여성들에게 화풀이하게 만들었다. 일자리가 없는 젊은 남성들로 꾸려진 ‘자경단’은 마녀사냥에 앞장선다. 이번에도 나이 든 여성들이 주 희생자다. 마녀사냥의 배경에 “토지를 비롯한 핵심적 경제 자원의 사용을 놓고 일어난 남녀노소 사이의 극심한 갈등”이 있다고 말한다.



[책과 삶]마녀, 거짓말쟁이, 혜지···‘여성 사냥’은 끝나지 않았다

불신당하는 말

데버라 터크하이머 지음·성원 옮김|교양인 | 360쪽|1만9000원

책은 성폭력 사건에서 벌어지는 ‘마녀사냥’에 대한 이야기다. 마녀사냥은 이중적이다. 가해자가 피해자의 거짓말로 무고한 자신이 ‘마녀사냥’당한다고 주장함으로써, 피해자는 거짓말하는 ‘꽃뱀’으로 여겨지며 ‘마녀사냥’당한다. 검사 출신 법학자인 저자는 사회·문화와 형사사법체제가 어떻게 성폭력 피해자를 무시하고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주는지를 ‘신뢰성 구조’를 통해 설명한다. 신뢰성 구조의 규칙은 단순하다. 여성에게는 신뢰성이 너무 적게 배정되는 ‘신뢰성 폄하’, 남성에게는 ‘신뢰성 과장’이 이뤄진다. 사회는 권력 있는 남성에게 “과도한 신뢰성을 부여”하며 지난 사건과 그 사건의 의미와 의의에 대해 결정적 발언을 할 수 있는 권위를 부여한다.

할리우드 영화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폭력을 폭로한 배우 로즈 맥고완이 피해를 밝히는 데 20년이 걸린 이유도 선뢰성 구조 때문이다. 맥고완은 “그 괴물에게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겠지만, 나는 다시는 일하지 못하리라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와인스타인 측은 “여자의 말을 반박하면서 병적인 거짓말쟁이로 몰아세울 온라인 캠페인”을 벌인다. 작업은 효과가 좋았다.

성별·인종 따라 신뢰 폄하하는
위계질서 중시 ‘신뢰성 구조’가
성폭력 피해자 매도하는 무기로
어떻게 사회와 법으로 작동하나

신뢰성은 권력의 아래로 갈수록 옅어진다. 여성이 주변화되거나 취약 계층에 속할 때 이들의 말은 신뢰받을 가능성이 훨씬 적다. 계급·직업·체류 신분·마약과 알코올 복용 여부·성적 이력에 따라 달라진다. 무엇보다 인종이 중요하다. 흑인 여성 노예에 대한 백인 주인의 강간이 제도화됐던 노예제와 인종차별의 그늘 아래 흑인 여성의 신뢰성 폄하는 가장 극심하게 이뤄졌다. 성폭력을 증언해도 신고부터 무시당한 경험은 생존자들에게 “최초의 폭력보다 훨씬 고통이 심한 상처”가 된다.

신뢰성 구조는 성폭력 혐의가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도록 작동한다. 강간에 취약한 인구 집단 18~24세 여성 가운데 경찰에 신고하는 경우는 3분의 1 미만이란 조사결과가 있다. 권력 있는 가해자에 대한 신뢰성 과장은 숨쉬듯 자연스럽다. “이런 남자들에게 의지하고 이들이 진술하는 현실을 신뢰하는 법과 문화 안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신뢰성 구조는 기존의 위계질서가 허용하는 성적특권을 보장한다.

“성폭력을 당했다며 거짓말을 하는 여자”는 성경에도 나오는 ‘문화적 원형’에 가깝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자신을 강간으로 고발한 여성에게 “내 선거운동에 흠집을 내려고 거짓말을 한다”고 몰아세웠다. 2018년 트럼프는 자신이 대법관으로 지명한 브렛 캐버노에게 제기된 성범죄 혐의를 거짓말로 치부하며 “미국의 젊은 남성들에게 아주 겁나는 시기”라고 말했다. 캐버노에 대한 고발은 #그남자도당했다(#HimToo)를 촉발했다.

저자는 성폭력 피해자의 말이 뒤죽박죽이라는 이유로 증거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을 뇌과학을 근거로 반박한다. 트라우마 기억이 뒤죽박죽인 상태는 뇌가 위협적 상황에서 작동하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법체제 변화와 함께 우리 속에 내제된 ‘신뢰성 구조’를 해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책과 삶]마녀, 거짓말쟁이, 혜지···‘여성 사냥’은 끝나지 않았다

여성 게이머는 총을 쏠 수 있는가

윤태진·김지윤 지음|몽스북|268쪽|1만6800원

2016년 게임산업계에선 ‘마녀사냥’이 벌어졌다. 게임 <클로저스>의 성우 김자연씨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GIRLS Do Not Need A PRINCE’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은 사진을 올렸다가 뭇매를 맞은 것이다. 남성 이용자들의 항의와 불매운동이 이어졌고 게임회사는 게임 속 김씨의 목소리를 지웠다. 2018년에는 <소녀전선>과 <마녀의 샘3>의 일러스트레이터가 SNS에 남긴 글 때문에 이용자들로부터 비슷한 공격을 받고 비슷한 결과를 낳았다. 게임산업에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사상 검증’이 작동하고 있고, 일자리 상실로 이어지고 있다.

게임은 특히 남성화된 영역으로 여겨진다. 게이머는 기본적으로 남성이라고 전제되고, 여성 게이머는 예외적 존재다. 여성 게이머는 ‘진짜 게이머’가 아니라는 편견은 강력하게 작동한다. 남성 게이머의 도움을 얻어 레벨을 높이는 여성 게이머를 비하하는 단어 ‘혜지’는 이제 남녀불문하고 의존적 게임을 하는 이들을 조롱하는 단어가 됐다.

문제는 게임을 더 이상 ‘남성들의 전유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2022 대한민국 게임백서’를 보면 한국의 전체 남성 중 게임을 즐기는 이들의 비율은 75.3%, 여성은 73.4%로 큰 차이가 없다. 모바일 게임 이용자는 여성 비율(65%)이 남성(60.2%)을 앞선다. 하지만 게임 산업은 여전히 남성 중심적으로 굴러간다. 책은 게임을 하는 여성, 게임에 등장하는 여성, 게임을 만드는 여성 노동자 세 가지 영역에서 게임계의 여성 차별과 배제 현실에 대해 고찰한다.

남성 이용자 중심 게임산업에서
섹시한 보조·혜지 등 조롱·비하
여성 게이머들 겨냥한 ‘밈’ 분석
여성 이용자 늘어 일부선 변화도

2016년 <오버워치> 프로 경기에서 탁월한 성적을 보인 ‘게구리’라는 선수가 여고생으로 드러나자 부정행위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방송에 직접 출연해 실력을 입증한 뒤 ‘결백’을 인정받았다. 여성 게이머들은 게임을 하면서 마주하는 성차별이나 욕설 때문에 의욕이 꺾이기도 한다. 여성 게이머들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실력을 평가절하당한다” “(평가절하 때문에)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 없다는 느낌이 들어 <오버워치>를 포기했다”고 말한다.

게임 여성 캐릭터도 과도하게 선정적으로 그려진다. 대표적인 예가 <서든어택2>의 미야로, 노출이 심한 옷차림에 여성 캐릭터의 시체조차도 선정적으로 묘사해 큰 비판을 받고 삭제됐다. 게임의 경우 캐릭터를 직접 조종할 수 있고 여성 캐릭터와 상호작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문제가 더 심각하다고 지적한다. “여성 인물을 관음증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보다 더욱 직접적이고 가학적 방식으로 여성 캐릭터를 대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변화는 있다. <툼 레이더>의 라라 크로포드는 1996년 출시 당시 “남성 게이머들의 환상을 그래픽으로 구현한 섹스 심벌”이라고 비판받았지만 2013년 <툼 레이더> 리부트 시리즈를 통해 노출을 줄이고 탄탄한 근육질 모습으로 변했다.

숨겨진 함정도 있다. 2011년 출시된 <데드 아일랜드>에 등장하는 정의로운 유색인종 캐릭터 푸르나에겐 특별한 스킬 ‘젠더 전쟁’이 있다. 남성 좀비들을 처치할 때 효과가 극대화된다. 게임의 데이터 파일 중 푸르나의 ‘젠더 스킬’ 소스코드 이름이 ‘FeministWhorePurna(페미니스트창녀푸르나)’였음이 발견돼 논란이 됐다. 제작사는 즉각 사과하고 소스코드를 삭제했다. 저자는 ‘젠더 전쟁’ 스킬 자체가 페미니스트들에 대한 편견과 조롱을 반영하고 있다고 말한다. “플레이어들을 설득하는 게임의 내적 설계가 여전히 남성 중심적 한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2022년 기준 게임업계 종사자의 여성 비율은 28.8%. 남성 중심의 인력 구조로 인해 남성 소비자를 염두에 둔 게임을 기획하고, 남성 취향에 맞는 젠더 재현이 이뤄지며, 남성 게이머 중심의 문화가 공고해진다. 미디어학자 댄 골딩은 10년 전 남성 중심적이고 하위 문화 지향적인 게임 문화는 끝났다고 주장했다. ‘모두를 위한 게임’을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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