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른 경제 성장...여성의 삶은 얼마나 달라졌나

박송이 기자

2019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수상

1970~1980년대 오만 근대화 배경

역사 아닌 한 가족의 삼대 그려내

할머니, 어머니, 딸의 ‘여성 서사’

결혼·출산·학업 등 변화 크지만

가부장제·교제 폭력 등은 여전

<천체>의 조카 알하르티 작가. 조카 알하르티 공식 홈페이지

<천체>의 조카 알하르티 작가. 조카 알하르티 공식 홈페이지

천체 |

조카 알하르티 지음 |박산호 옮김 |서랍의날씨|376쪽 |1만7000원

2020년 타계한 오만의 카부스 빈 사이드 알사이드 국왕은 개혁·개방으로 오만의 근대화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카부스 국왕은 1970년 아버지인 사이드 빈 타이무르 국왕에 맞서 쿠데타를 일으켜 권좌에 올랐다. 타이무르 국왕은 극단적이고 보수적인 쇄국주의 정책을 폈고, 당시 오만의 상당수 국민은 전근대적 부족 사회의 생활 방식을 유지하며 가난에 시달렸다. 학교가 전국에 3개에 불과할 정도로 학교를 포함한 도로·병원 등 사회적 인프라는 턱없이 부족했다. 카부스 국왕은 즉위하자마자 노예제 폐지를 단행하고 UN에 가입해 쇄국주의 외교에서 탈피하는 등 개혁·개방 정책을 실시했다. 또 오일머니를 적극 활용해 공항, 항만, 도로, 학교 등 인프라를 확충하고 경제개발계획을 통해 관광·물류 등 다양한 산업을 일으켰다. 카부스 국왕의 즉위를 기점으로 봉건적이고 반동적이었던 오만 사회는 급속도로 변해갔다.

조카 알하르티의 <천체>는 오만이 근·현대로 빠르게 이행하던 1970~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지금 오만의 괄목할 만한 성장은 GDP, 성장률, 국민 문자해득률 등의 급격한 우상향 그래프로 요약되지만, 압축된 성장을 지나온 개개인의 삶은 단순한 수치나 그래프로 옮기기는 어렵다. <천체>는 “모든 것이 경악할 만한 속도로 변하고 있는” 당시의 오만 사회를 살아가는 한 가족의 삼대에 걸친 이야기를 따라간다. 격동기의 새로운 기회와 압력에 직면한 다양한 인물들은 혼란, 불안, 긴장, 공허, 단절 등 복잡한 상념 속에서 그 시대를 살아낸다. 역사소설로 읽히지만 당시의 시대적 정황을 자세히 설명하거나 중심인물의 일대기를 선명하게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서로 뒤얽혀 있는 여러 등장인물 각각의 서사와 그들의 내면을 조금씩 보여주면서 근대적 요소와 봉건적 요소가 혼재한 불안정한 시대적 분위기를 환기한다.

소설의 구성은 두 축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 축은 3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는 마야, 아스마, 칼라 세 자매와 이들의 어머니 살리마, 아버지 아잔, 마야의 딸 런던, 거상 술레이만, 노예 자리파 등의 이야기다. 다소 복잡하게 얽힌 여러 등장인물의 이야기에서 부각되는 건 이슬람 봉건사회의 인습 속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삶이다. 특히 살리마-마야-런던 3대로 이어지는 여성 서사는 근·현대 이행기 오만 여성들의 삶의 변화를 조명한다.

책의 서두는 마야의 결혼과 출산으로 시작한다. 1981년을 시대적 배경으로 한 마야의 결혼·출산기는 전근대와 근대가 뒤죽박죽 얽혀 있다. 마야는 집안의 결정에 의해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는 결혼을 한다. 거상 술레이만의 아들 압달라가 청혼을 하자 마야는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따로 있음에도 결혼을 거부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임신을 한 마야는 자신의 주장대로 기독교 선교사들이 지은 수도 무스카트의 사다 병원에서 아이를 출산한다. “기독교인들이 내 아이를 받게 하겠단 말이야?”라는 남편의 물음에도 굴하지 않는다. 딸의 이름도 자신의 뜻에 따라 ‘런던’이라고 짓는다. 시숙모가 “여기서 아주 멀고도 먼 기독교인들의 땅에 있는 곳이잖아”라며 이름을 반대해도 “런던이란 이름이 뭐가 어떻냐”며 반박한다. 하지만 인습은 여전히 강고했다. 딸을 출산하자 축하를 하러 온 방문객들은 마야와 같이 음식을 먹지 않았다. 산모는 불결한 여자이기에 같이 음식을 먹어서는 안 된다는 종교적 전통 때문이었다. 또 마야의 동생 아스마는 방문객이 오자 자리를 피해야 했다. 결혼하지 않은 여자는 유부녀들과 같이 앉아서 이야기를 들을 권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소설 ‘천체’. 서랍의날씨

소설 ‘천체’. 서랍의날씨

마야의 결혼과 출산은 그의 어머니 때보다 나은 것이긴 했다. 마야의 어머니 살리마는 봉건적인 가부장제 악습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며 살았다. 종교적인 권위를 배경으로 한 상류층 집안 출신인 그는 장로인 그의 삼촌에 의해 어린 나이에 납치되다시피 끌려가 강제로 아잔과 결혼을 한다. 또 첫 딸 마야를 비롯해 모든 자식들을 서서 출산한다. 산파는 출산의 고통을 겪으며 벽에 고정된 봉에 매달려 있는 살리마에게 “마수드 장로의 딸이 똑바로 서 있지도 못해서 누워서 아이를 낳는다고? 창피한 줄 알아, 이것아!”라고 소리친다.

이들 1·2세대 여성들과 3세대 여성들의 삶은 다분히 달랐다. 어머니 마야가 어린 시절 학교에 다니지 못했지만, 딸인 런던은 의대를 졸업하고 캐나다에서 전문의를 꿈꿀 만큼 한 세대 만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다. 런던은 BMW를 몰고 대학을 다닌다. 하지만 런던의 친구 하난과 그의 동료 교사들은 한밤중에 교사 기숙사를 습격한 10대 소년들에게 집단으로 강간을 당한다. 이는 신문에 실리지도 못하고 하난의 가족들은 추문이 생길까 두려워 하난이 법정에 서려는 걸 막아선다. 하난은 소송조차 진행하지 못한다. “도대체 이렇게 요란한 침묵은 누가 돈을 주고 산 것일까? 런던은 돌아버리기 일보 직전이었다.” 런던은 하난의 사건으로 큰 충격을 받지만 그 또한 약혼자 아마드로부터 폭력을 당하며 교제폭력의 피해자가 된다. 3대로 이어지는 여성 서사는 한편으로는 격세지감이 느껴질 만큼의 변화를 보여준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시간이 지나도 여성차별과 혐오가 여전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해준다.

여성 서사 외의 또 다른 한 축으로는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는 마야의 남편 압달라의 독백이 있다. 압달라는 노예무역으로 큰 부를 축적한 거상 술레이만의 아들이다. 그는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 아버지의 첩이자 노예이며 유모였던 자리파의 변덕스러운 애정, 첫눈에 반해 청혼했지만 그에게 곁을 내어주지 않는 아내 마야의 곁에서 끊임없이 불안과 공허를 느끼는 인물이다. 그의 내면의 바탕에는 “가장 사내답게” 자신을 키우고자 했던 아버지 술레이만의 그림자가 있다. 밧줄로 압달라를 묶어 우물에 거꾸로 매달아 놓을 정도로 폭력적인 술레이만은 여성과 노예 남성에게 무자비했던 강력한 봉건적 가부장 질서를 대변하는 인물이다. 아버지에 대한 숨 막히는 공포에 짓눌린 유년을 보냈으면서도 쇠약해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날까 봐 불안해하는 압달라의 모습은 불안정한 이행기 정서의 일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소설은 오만이라는 특수한 사회의 이야기라 다소 낯설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급격한 변화기를 겪어내는 인간의 모습을 그려낸다는 점에서 보편적으로도 읽힌다. 한국어로 번역된 첫 번째 오만 소설이며 2019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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