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하룻밤에 한강을 열 번 건넌 이유는?

박송이 기자

산문집 ‘하룻밤에 한강을 열 번 건너다’ 펴 낸 인권학자 조효제 교수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학 교수. 경향신문 자료사진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학 교수. 경향신문 자료사진

“이제 말해야겠다. 오늘 밤 한강을 열 번 건널 작정이다. 이게 내 비밀 계획이다.”

<하룻밤에 한강을 열 번 건너다>(강)는 저자의 결심에서 시작한다. 인권학자 조효제 성공회대 교수는 어느 해 성탄절, 한강대교를 10번 건너기로 한다. 이 느닷없는 결심의 이유는 무엇일까.

한강대교를 10번 건너는 동안, 4시간 남짓 10km 가까운 거리를 걸으면서 저자의 머릿속에 떠올랐던 사유의 풍경이 10편의 산문에 담겼다. 어머니와 아버지, 유년 시절, 유학 시절의 경험 등 사적인 기억의 조각들은 어느 틈엔가 ‘홀로코스트’ ‘인종차별’ ‘제국주의와 식민지’ ‘브렉시트’ 등의 사회적 이슈로 흘러간다. 독자는 저자의 안내에 따라 ‘인권’의 렌즈로 세계와 역사를 한 단계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된다. 하지만 책을 끝까지 읽어도 왜 한강을 10번 건너기로 했는지에 대한 이유는 안 나온다. 지난 11일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에서 조효제 교수를 만나 물었다.

한강을 건너는 건, 조 교수의 오랜 소망이었다. 1호선을 타고 출·퇴근을 할 때마다 한강대교를 봤다. 언젠가 저 다리를 걸어서 건너야겠다고 늘 생각했다. 그런데 왜 10번이나. 연암 박지원의 글 ‘일야구도하기’(하룻밤에 강을 아홉 번 건너다) 때문이다. 청나라 북경에 간 연암은 밤새 말을 달려 아홉 번이나 강을 건너야 하는 상황에 부닥친다. 한밤중에 아홉 번 강을 건넜던 경험에서 얻은 사유와 깨달음을 담은 글이 ‘일야구도하기’다. 조 교수는 “내가 연암 선생을 존경한다. 어릴 적 교과서에서 읽은 ‘일야구도하기’를 인상 깊게 기억해 왔다. 연암 선생이 아홉 번 건넜으니 존경의 뜻으로 한 번을 더해 열 번을 건너자는 마음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초고에 그 이야기를 넣을까 했는데 “주제넘은 것 같아서” 뺐다. 그 말이 무색하게 그의 글은 ‘일야십도하기’로 손색이 없다. 인권과 평화, 세계정세 등 묵직한 이슈들이 저자 개인의 이야기와 복병처럼 숨어 있는 유머 넘치는 문장과 어우러져 빨려 들어가듯 읽힌다.

영국에서 유학하던 시절을 떠올리다가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에서 ‘노스탤지어의 정치’로 뻗어 나간 글은 최근 유럽의 극우 약진과 한국의 정치 상황에도 시사점을 준다. ‘노스탤지어의 정치’는 과거를 이상화하고, 그 과거를 복원하고자 하는 정치 현상을 뜻한다. 지금 세상은 이주민, 난민, 좌파 때문에 망가졌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조 교수는 특정 집단을 배제하고 인권 후퇴를 초래하는 ‘노스탤지어의 정치’가 기후변화와 팬데믹을 겪는 오늘날 더욱 영향을 끼칠 것이라 우려한다. “좋았던 과거만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의 회복, 규칙적인 절기와 날씨까지도 노스탤지어의 대상이 될 정도가 되었다. 정치, 사회뿐만 아니라 앞으로 문화, 예술, 창작에서도 노스탤지어의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점이 중요한 문제로 부각될 것이다.”

그의 말처럼 ‘노스탤지어의 정치’는 점점 강화되고 있다. 지난 9일 끝난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 정당의 약진이 현실화되면서 기후 정책은 후퇴하고 이민자 정책은 강경해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조 교수는 “유럽의회 선거 결과를 두고 영국 가디언에서 이를 ‘가짜 노스탤지어’라고 지적한 보도도 있었다. 실제로 그런 ‘좋은 시절’은 없었는데 사람들이 불안한 심리에 정신적 닻을 내리기 위해 ‘가짜 노스탤지어’를 만드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냉전 시기의 ‘자유’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정치권의 ‘이승만 띄우기’도 ‘한국판 노스탤지어의 정치’라고 지적한다. 조 교수는 “과거에는 ‘박정희 향수’가 강했는데, 지금은 숭배의 대상이 이승만 전 대통령으로 갔다. 윤석열 대통령이 말하는 ‘자유’가 과거 미·소가 충돌하던 냉전 시대의 ‘자유’에 가깝다 보니 그 모델에 맞는 과거 지도자로 이승만이 소환되고 있다”라며 “이승만 기념관 건립이 대표적인 한국판 노스탤지어의 정치”라고 말했다. 이밖에 여성가족부 폐지,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등 인권이 후퇴하는 상황도 노스탤지어 정치가 현실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는 사례라고 덧붙였다.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학 교수. 경향신문 자료사진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학 교수. 경향신문 자료사진

인권학자의 시각으로 바라본 전쟁과 평화에 관한 이야기도 여럿 담겼다. 그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면서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유대인의 삶을 생각한다. 아버지는 6·25 내내 군에 있으며 죽을 고비를 넘겼고, 제대 후 “한쪽 귀퉁이가 허물어진 심신을 부여잡고 평생을 살았다.” 조 교수는 늘 병약하고 말이 없던 아버지를 생각하면 “박해받다 천신만고 끝에 목숨을 부지해 타향에 자리 잡고 외톨박이로 살아가던 유대인의 이미지가 떠오른다”고 회고한다.

2차 대전 이후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아 난민으로 떠돌던 유대인들은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되면서 그곳으로 간다. 유대인의 나라에 살게 되면서 자신의 피해를 말하고 권리를 주장할 것 같지만 이들은 오랫동안 숨죽이고 산다. 피해를 당한 것을 두고 손가락질을 당할까 봐 침묵했던 것이다. 조 교수는 “지금은 과거사에 관해 관심도 높고 젊은 세대들의 인권 의식도 높다.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요구해선 안 되고 피해자들이 떳떳하게 구제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하며,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고 나아가 재발하지 않도록 제도화해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 잡아가고 있다”라며 “그러나 시대적이고 사회적인 분위기가 갖춰지지 않으면 억울한 일을 당해도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학생들에게 강의할 때도 강조하는 것이 오늘의 눈으로 역사를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교수는 오늘날 이스라엘이 가해자가 되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학살하는 현실에서 역사의 기막힌 아이러니를 느낀다고 개탄과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가 전쟁의 고통스러운 경험에 대해 말하지 않았던 이유를 이 책을 쓰면서 조금은 짐작할 수 있게 됐다고 전하며 “정치인들이 전쟁을 함부로 이야기하거나 ‘힘에 의한 평화’ 같은 도발적인 말을 하면 화가 난다”라고도 했다. “전쟁의 현실을 너무 모르는 이야기”라는 지적이다. 그는 “일단 전쟁이 시작되면 전쟁에 대한 객관적 논의는 사라져 버리고, 적은 공격적이고 불순하며 우리는 억울하고 방어적이라는 합의가 깔려버린다. 이 전쟁을 계속할 필요가 있냐는 논의도 사라져 버린다. 1990년대 발생한 유고슬라비아 내전 당시 세르비아가 인종학살 등 악행을 많이 저질렀다. 세르비아 안에서도 전쟁에 반대하고 정부를 비판하는 민주파들이 있었지만, 일단 전쟁이 일어나자 이들이 맥을 못 추었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우크라이나 전쟁, 가자지구 전쟁, 핵전쟁 위기, 신냉전 도래, 한반도 남북 긴장 고조 등 평화와 인권이 위협받는 오늘날의 상황을 두고 “지금껏 살아오면서 요즘처럼 불안한 때가 별로 없었던 것 같다”라며 “세계인권선언 제28조가 자꾸 생각나는 시절”이라고 말했다. 세계인권선언 28조는 “모든 사람은 이 선언에 나와 있는 권리와 자유가 온전히 실현될 수 있는 사회체제 및 국제체제에서 살아갈 자격이 있다”이다. 세계인권선언에 나와 있는 개별 권리들이 제대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이를 실현해 줄 수 있는 사회질서와 국제 질서가 중요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조 교수는 “인권을 하나의 개별 권리 위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개별 권리가 실현될 수 있는 시스템을 요구할 수 있는 것도 하나의 권리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민주주의, 복지, 평화 등 전체적인 세상의 질서도 중요한 인권의 전제라는 것을 늘 생각해야 한다”라고 전했다.

‘하룻밤에 한강을 열 번 건너다’. 강 제공

‘하룻밤에 한강을 열 번 건너다’. 강 제공

책에는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제시한 ‘악의 평범성’에 대한 새로운 반박, 미국의 베트남 참전을 소재로 한 <조용한 미국인>의 작가 그레이엄 그린의 작품 세계, 또 가족과 일상을 소재로 한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이야기가 담겼다. 사회학자로서의 정체성뿐만 아니라 산문 작가로서의 새로운 면모도 엿볼 수 있다. 그는 학술서가 아닌, 개인의 이야기를 담은 산문집은 처음 내놓는 것이라 출간을 망설였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이번 학기를 끝으로 퇴임을 앞두고 있다. 인권위기와 환경위기의 연관성을 연구하며 <탄소사회의 종말> <침묵의 범죄 에코사이드> 등을 출간한 그는 퇴임 이후에도 지구의 생태적 한계를 초과하지 않으면서도 인간과 비인간의 기본적 권리를 보장하는 ‘사회-생태 전환’에 관한 연구를 이어갈 계획이다. 또 생태와 자연의 시각으로 그간 살아온 경험을 조명한 산문을 써볼 생각도 갖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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