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로 본 '문학권력' 논문, "문예지 '정실주의'는 향우회와 같아"

김여란 기자

신경숙씨 표절 논란에 이어 촉발됐던 ‘문학권력’ 문제를 정량적·통계적으로 분석해 규명한 연구 결과가 나왔다.

28일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의 전봉관, 이원재 교수와 김병준 석사 과정생은 논문 <문예지를 매개로 한 한국 소설가들의 사회적 지형: 1994~2014>을 공개했다.

논문에서 연구진은 “‘문학권력’의 양상은 일반적인 사회에서 흔히 발견되는 것과 같다”며 “그러나 문제는 문학이 사회와 역사에 대한 성찰적 주체로서 스스로를 주장하면서 기존 사회조직과 달라야 할 철학적, 도덕적 이유를 가질 때 나타난다. 우리 분석에서 드러난 1990년대 중반 이후 문예지들이 빚어낸 ‘정실주의’는 향우회, 기업집단, 정치엘리트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고 밝혔다.

통계로 본 '문학권력' 논문, "문예지 '정실주의'는 향우회와 같아"

연구진은 ‘문학동네’가 창간된 1994년부터 2014년까지 21년간 간행된 계간 <창작과비평> <문학동네> <문학과사회> 서지 정보, 여기 언급된 작가 1565명 중 소설가에 한해 주도적인 작가 403명의 인구사회학적 정보를 모았다. 이들은 정량적·통계적 분석과 사회연결망 분석을 통해 ‘순문학 소설계’를 주도한 소설가들이 3대 계간지에서 어떻게 활동했고, 어떠한 사회적 관계를 맺고 있었는지 분석했다.

연구진은 3대 계간지에 작품을 실었거나 비평·시평·인터뷰로 호명된 소설가를 각 계간지의 ‘인정 작가’로, 이에 덧붙여 계간지 간행 출판사에서 1권 이상 단행본을 출간한 작가를 해당 계간지의 ‘주도 작가’로 구분했다. ‘주도 작가’ 중 해당 계간지를 통해 등단한 작가는 ‘순혈 작가’로 불렀다.

우선 연구진은 3대 계간지의 ‘작가 공유’에 관해 분석해 “1994년 이후 3대 계간지와 출판사에서 게재·호명·출간된 작가와 작품의 성격이 상당히 획일화되었으며, 따라서 각 계간지의 고유한 색깔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은 확인할 수 있다”고 밝혔다.

연구진이 인정 작가로 분류한 403명 중, 계간지 세 곳에서 고루 가장 많이 게재·호명·출간된 작가 1위는 신경숙(87건), 이어 성석제(72건), 김영하(71건), 은희경(67건), 이청준(61건) 순이었다. 또 주도 작가 150명 중, 3대 계간지 모두에서 중복해서 주도 작가인 경우도 26명이며 그 순위는 신경숙, 성석제, 김영하, 은희경, 김연수 순이었다. 주도 작가 순위 1~20위 중 16명이 모두 중복 작가였다.

다른 곳과 중복되지 않는 각 계간지의 주도 작가는 <창작과비평> 10명, <문학동네> 20명, <문학과사회> 13명이었다. 계간지 2곳의 중복 주도 작가는 <창작과 비평> <문학동네>은 23명, <문학동네> <문학과 사회>는 22명, <창작과 비평> <문학과 사회>는 1명이었다.

연구진은 인정 작가들의 문학적 활동이 ‘비문학적’, 사회인구학적 요인에 의해 규정되는지도 조사했다. 연구 결과 소설가들의 성별, 나이, 등단년도, 출신대학-대학원, 전공 사이 유사성이 증가할 때마다 이들의 문학활동 상의 유사성(각 계간지에서의 등단·게재·호명·출간)도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같은 상관관계가 99.9% 유의미했다며 “우리가 분석한 403명 소설가들은 평균적으로 이들의 사회인구학적 배경에 따라 문학적 활동과 성취의 차이가 예측된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또 3대 계간지에서 고루 활동하는 작가일수록 전체 작가들을 연결하는 망의 중앙에 위치해 ‘사이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이는 실질적으로 문학계가 문예지를 중심으로 한 사회적 집단들로 분화돼 있다는 것을 뜻한다”고 봤다.

덧붙여 <창작과비평> 인정 작가들은 상대적으로 활동량이 적고 다른 문예지에 비해 자기 문예지의 범위를 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문학동네>는 큰 작가군을 가졌지만 상대적으로 작가들의 위신을 관리하지 못하고, 대신 다른 문예지의 위신 높은 작가들을 자사에서 출간하도록 하는 시도들을 해온 것으로 나타난다고 연구팀은 밝혔다.

연구진은 “우리는 개인의 사적 문학 활동이 비문학적 조건들과 어떤 식으로든 연관되어 있으며, 결과적으로 특정한 사회적 조직화로 이어지는 과정을 관찰할 수 있다고 기대했다”며 “문학권력의 실체에 대한 검증은 비평가들과 소설가들의 관계성 규명이 핵심이지만 이번 연구에서는 비평가에 대해 언급하지 못했다”고 했다.

또 “정량적·통계적 분석 결과는 엄격한 작품 분석을 통한 문학적 평가를 위한 전제 또는 화두에 불과하다. 우리 연구는 지난 21년간 3대 계간지에 관한 객관적 정보를 제공할 뿐, 그 행위가 정당했는지에 대해 인식하거나 평가 내리지 않는다”고 밝혔다. 논문은 오는 31일 부산외대에서 열리는 한국현대소설학회 전국학술대회에서 발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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