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고인돌-‘마고 할미’가 던졌다는 300톤 바위 밑엔 ‘청동기인의 삶’이 잠잔다

도재기 선임기자

‘마고 할미’가 던졌다는 300톤 바위 밑엔 ‘청동기인의 삶’이 잠잔다

고인돌은 청동기시대를 상징하는 무덤 유적으로 당시 문화생활상 연구에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고창·화순·강화 고인돌 유적’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사진은 강화도의 ‘강화 부근리 고인돌(지석묘)’(사적 137호)이다. <사진 | 문화재청·국립중앙박물관·경향신문 자료>

고인돌은 청동기시대를 상징하는 무덤 유적으로 당시 문화생활상 연구에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고창·화순·강화 고인돌 유적’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사진은 강화도의 ‘강화 부근리 고인돌(지석묘)’(사적 137호)이다. <사진 | 문화재청·국립중앙박물관·경향신문 자료>

전남 화순군 도곡면 효산리와 춘양면 대신리 사이의 계곡 일대에는 500여개의 큰 바위들이 있다. 그런데 이곳 바위들은 그냥 있는 게 아니라 ‘놓여 있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자연적이지 않고 누군가 옮겨놓은 듯한, 인공적인 흔적이 다분한 것이다.

많은 바위들 가운데 길이가 약 7m, 높이 4m, 돌들 위에 올려진 덮개돌의 무게가 무려 300t에 가까운 엄청난 큰 바위가 있다. 대대로 지역 주민들에게 ‘핑매바위’로 불리는 바위다. 핑매바위에는 전설도 전해진다. 우리나라 신화에 자주 등장하는 창세신 ‘마고 할미’가 주인공이다. 구전되다 보니 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공통적인 부분은 이렇다. 마고 할미가 어느 날 인근 운주골(화순 운주사)에 천불천탑을 만든다는 소문을 들었다. 할미도 천불천탑 조성에 동참하고자 치마에 돌을 싸 운주골로 향했다. 그런데 가는 길에 닭이 울면서 천불천탑이 다 만들어졌다는 얘기를 들었다. 화가 난 할미는 치마폭의 돌을 발로 차버렸단다.

마고 할미가 찬 돌, 그 돌이 바로 엄청난 크기의 핑매바위다. 핑매바위 위에는 작은 구멍도 있다고 한다. 처녀나 총각이 돌을 던져 구멍에 들어가면 시집, 장가를 갈 수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20여년 전, 이 핑매바위가 단순한 바위가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3000여년 전 청동기시대의 대표적 유적인 고인돌로 확인된 것이다. 핑매바위 주변의 많은 바위들도 모두 고인돌이었다. 고인돌 유적은 그 어떤 문화재보다 흔하게 여겨지지만 청동기시대 사람들의 삶, 정신세계를 연구하는 데 더없이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또 최초 고대국가인 고조선과 동시대여서 주목받기도 한다.

사적 391호인 전북 고창의 ‘고창 죽림리 고인돌군’ 전경.  사적410호인 전남 화순의 ‘화순 효산리와 대신리 고인돌군’의 한 고인돌 유적.전남 화순 대신리 고인돌군 인근에 있는 고인돌 채석장 <사진 | 문화재청·국립중앙박물관·경향신문 자료>

사적 391호인 전북 고창의 ‘고창 죽림리 고인돌군’ 전경. 사적410호인 전남 화순의 ‘화순 효산리와 대신리 고인돌군’의 한 고인돌 유적.전남 화순 대신리 고인돌군 인근에 있는 고인돌 채석장 <사진 | 문화재청·국립중앙박물관·경향신문 자료>

■ 세계에서 고인돌이 가장 많은 나라는?

전세계 고인돌 40% 한반도 밀집
탁자식·바둑판식 등 형식 다양
조성시기 BC 1000년까지 추정

고인돌(지석묘)은 대중적으로 청동기시대, 청동기문화를 상징하는 유적이다. 학술적으로도 마찬가지다. 한반도의 청동기시대는 학자마다 학설이 조금씩 다르지만 지금으로부터 3000~3500년 전 시작된 것으로 본다. 구석기·신석기시대를 뒤이어 생활·의례 도구로 석기 대신 청동기를 활용한 시대다.

청동검이나 청동거울, 청동방울 등 다양한 청동기는 당시 극히 일부 계층만 소유,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권위의 상징물이거나 특별하고 중요한 집단의식에 사용한 의례기였던 것이다. 보편적으로 사용된 것은 청동기가 아니라 여전히 돌로 만든 석기들이었다. 이 시대에는 신석기시대보다 농업이 발달했고, 집단 내부에 유력자가 등장하는 등 사회적 계층이 성립됐다. 고대국가라 할 만한 정치집단이 형성되기도 한 시대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청동기시대를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고인돌 유적 덕분이다. 돌널무덤, 독무덤 등과 함께 당시 주요 묘제인 고인돌 유적에서 여러 유물들이 출토돼 생생한 연구 자료가 된 것이다.

고인돌은 시기나 형태가 다르지만 우리나라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 동남아시아 등 세계 곳곳에 남아 있다. 세계적으로 8만여기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는데, 특히 동북아 지역에 집중돼 있다. 동북아에서도 한반도가 단연 두드러진다. 현재 고인돌 유적은 남한에 3만여기, 북한에 1만여기가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적어도 세계 고인돌 유적의 약 40%가 한반도에 분포한다는 것이다. ‘고인돌 왕국’이라 부를 만하다. 한반도 내에서는 전국적으로 흩어져 있지만 서해안 주변 지역에 비교적 밀집돼 있다.

한반도의 고인돌 유적은 숫자만 많은 게 아니다. 밀집도가 높은 데다 탁자식·바둑판식·개석식·위석식 등 다양한 형식이 남아 있는 것도 한 특징이다. 탁자식은 외형상 탁자를 닮은 것으로 넓적한 판돌들을 세워 가운데 공간에 무덤방(석실)을 만들고 그 위에 큰 덮개돌을 덮은 형식이다. 기반식이라고도 부르는 바둑판식은 지하에 무덤방을 만들고 지상에 바둑판 다리처럼 고임돌들을 놓은 뒤 덮개돌을 덮었다. 흔히 탁자식은 한강 이북 지역에 많다고 해 북방식 고인돌, 남쪽에 많은 바둑판식은 남방식 고인돌이라 부르기도 한다. 개석식은 지하 무덤방 위에 고임돌 없이 덮개돌을 얹은 형식이다. 위석식은 제주도에 있는데 지상의 무덤방을 판석들로 돌려 세우고 덮개돌을 놓은 형태다.

한반도의 고인돌은 또 고인돌의 축조 과정을 보여줘 국제적 주목을 받기도 한다. 채석장이 확인된 것이다. 여기에 유물도 많이 발굴돼 고인돌의 성격, 변천 과정을 파악하는 데 귀중한 자료를 제공한다.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전북 고창, 전남 화순, 경기 강화 등 3곳의 고인돌 유적이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고창·화순·강화 고인돌 유적’(Gochang, Hwasun and Ganghwa Dolmen Sites)이다. 이들 유적은 등재 당시 “독특하고, 지극히 희귀하며, 아주 오래된 것”이라는 등재 기준을 충족시켰다.

사적 391호인 전북 고창의 ‘고창 죽림리 고인돌군’ 전경.  사적410호인 전남 화순의 ‘화순 효산리와 대신리 고인돌군’의 한 고인돌 유적.전남 화순 대신리 고인돌군 인근에 있는 고인돌 채석장.<사진 | 문화재청·국립중앙박물관·경향신문 자료>

사적 391호인 전북 고창의 ‘고창 죽림리 고인돌군’ 전경. 사적410호인 전남 화순의 ‘화순 효산리와 대신리 고인돌군’의 한 고인돌 유적.전남 화순 대신리 고인돌군 인근에 있는 고인돌 채석장.<사진 | 문화재청·국립중앙박물관·경향신문 자료>

고창의 고인돌 유적은 고창군 죽림리를 중심으로 도산리, 상갑리 등에 있다. 사적 391호인 ‘고창 죽림리 지석묘군’이다. 야산 일대에 10t에서 300t에 이르는 다양한 크기와 갖가지 형식의 고인돌 440여기가 있다.

화순의 고인돌 유적은 화순군 도곡면 효산리, 춘양면 대신리 일대의 계곡을 따라 590여기가 흩어져 있다. 사적 410호인 ‘화순 효산리와 대신리 지석묘군’이다. 주로 탁자식 고인돌이며 보존 상태도 좋다. 이곳에서는 고인돌뿐 아니라 당시 갖가지 무덤 양식들이 확인됐고 청동기 장신구류와 석기류, 토기류 같은 유물도 나왔다. 무엇보다 화순 고인돌 유적에는 덮개돌을 떼낸 흔적이 남은 채석장이 있다. 이 채석장을 통해 당시 사람들의 석재를 다루는 기술, 운반 방법, 고인돌 축조 방식 등을 파악할 수 있어 큰 의미를 지닌다.

강화도에는 강화군 부근리, 삼거리, 오상리 등의 지역에 160여기의 고인돌이 전해진다. 사적 137호인 ‘강화 부근리 지석묘’는 탁자식 고인돌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잘 알려져 있다. 덮개돌의 길이가 6.5m, 너비 5.2m, 두께 1.2m, 고인돌 높이는 2.4m로 우리나라 최대 탁자식 고인돌이다. 삼거리 고인돌의 경우 간돌검(마제석기), 무늬가 없는 무문토기 조각, 돌가락바퀴(방추차) 등 석제 유물들이 많이 나왔다. 이들 지역 외에 전국 곳곳에 고인돌 유적이 남아 있지만 전북 부안의 구암리, 경기 파주의 덕은리 등은 각각 사적 103호, 148호로 지정돼 있다.

■ 무덤만은 아니었으니…

세계문화유산인 고창·화순·강화
화순 채석장 덮개돌 떼낸 흔적은
당시 석재 기술 등 연구에 중요

고인돌의 기원, 유래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3가지 학설이 있는데 한반도 자생설, 남방기원설, 북방기원설이다. 자생설은 한반도에 다양한 형식의 고인돌이 가장 밀집돼 있다는 데서 나왔다. 남방기원설은 동남아시아로부터 바다를 통해 벼농사 문화와 함께 전파됐다는 것이다. 주로 서해안과 중국 동북해안 지역에 고인돌이 집중되고, 남방문화의 하나인 난생설화 분포지역과 고인돌 분포지역이 많이 일치한다는 점이 근거다. 북방기원설은 북방 청동기문화의 유래를 바탕으로 중국 랴오닝 지역 돌널무덤에서 기원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 학설 모두 한계를 갖고 있는 상황이다.

전남 여수 월내동 고인돌군 유적에서 출토된 ‘비파형 동검’과 전북 진안 안자동 마을 고인돌에서 출토된 ‘붉은간토기’(홍도).<사진 | 문화재청·국립중앙박물관·경향신문 자료>

전남 여수 월내동 고인돌군 유적에서 출토된 ‘비파형 동검’과 전북 진안 안자동 마을 고인돌에서 출토된 ‘붉은간토기’(홍도).<사진 | 문화재청·국립중앙박물관·경향신문 자료>

고인돌의 조성 시기는 기원전 1000년대 초 무렵으로 본다. 화순 대신리 고인돌 유적의 출토 유물에 대한 방사성탄소연대 측정 결과를 보면 기원전 800여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경기 파주의 옥석리 등에서 발견된 고인골에 대한 분석 결과 역시 비슷한 시기다. 북한의 경우엔 기원전 2000년대 말기까지 올려보는 경우도 있다. 고인돌의 하한연대는 기원전 3세기~1세기쯤이다.

고인돌은 왜 만들어졌을까? 고인돌의 기능을 둘러싸고도 여러 학설이 있다. 물론 가장 주류 학설은 무덤이라는 것이다. 실제 고인돌 유적에는 무덤방이 만들어져 있고, 그 무덤방에서는 무덤 주인공의 인골과 함께 묻은 각종 껴묻거리가 확인된다. 출토되는 유물은 주로 청동검으로 대표되는 청동기, 돌로 만든 석검이나 화살촉, 토기, 옥으로 만든 장신구류 등이다. 출토 유물이 청동기·옥일 경우 지배층의 무덤으로 보는 게 일반적이다.

흔히 고인돌을 청동기 지배층의 무덤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만은 않다. 무덤방에서 나온 유물 수준이 형편없이 낮거나 껴묻거리가 거의 없는 경우도 많아서다. 이는 고인돌을 당시 지배층 무덤만이 아니라 일반적인 무덤으로 볼 수 있는 근거다. 특히 일부 고인돌은 공동묘지의 특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고인돌을 무덤만이 아니라 해당 집단의 특별한 의식을 거행하거나 종교적 제례의식을 벌인 제단, 그 집단의 무언가를 기념하기 위한 기념물, 묘역을 표시하는 묘표석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 실제 일부 고인돌은 무덤방이 아예 만들어지지 않은 경우도 있다.

한때 고인돌은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다. 농사지을 땅에 커다란 바위들이 있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래서 상당수 고인돌이 훼손돼 사라져버렸다. 남아 있던 고인돌, 특히 눈에 잘 띄는 탁자식 고인돌의 경우 도굴의 피해를 많이 입어야 했다. 하지만 이제 고인돌은 그 연구가 많이 이뤄지고, 세계적으로 우리나라 고인돌의 특성이 부각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선사시대 문화유산이 됐다.

무덤방서 인골·각종 유물 출토
무덤으로 보는 학설 뒷받침
종교제단·기념물로 보는 시각도

고인돌을 통해 우리는 당시 사람들의 신앙적·사상적 측면을 살펴볼 수 있다. 거대한 덮개돌을 캐내고 이를 운반한 뒤 고인돌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정치적·경제적 영향력을 지닌 지도자의 출현, 사회구조적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또 갖가지 출토 유물과 인골로 당시 문화생활상 복원도 가능하다.

고인돌은 또 화순의 핑매바위처럼 지역마다에서 신앙·숭배의 대상물이자 갖가지 설화를 품은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상상력을 자극시켜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다양한 문화상품 개발의 소재·주제가 되기도 한다. 3000여년의 시간을 한자리에서 변함없이 지키고 서 있는 고인돌. 그 귀한 가치가 새삼 되새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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