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한국 온 ‘라이온 킹’이 특별한 이유 5가지

올댓아트 정다윤 allthat_art@naver.com
입력2018.11.15 18:10 입력시간 보기
수정2018.12.03 11:16

지난 2018년 11월 7일 뮤지컬 <라이온 킹>이 대구에서 개막했다. 이번 공연은 <라이온 킹> 개막 20주년을 맞아 성사된 인터내셔널 투어의 일환으로, 앞서 싱가포르와 마닐라에서 공연된 바 있다. 한국에서도 2006년 일본 극단 시키(四季)의 기획으로 한국어 공연이 올라온 적 있지만, 원어로 공연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라이온 킹> 인터내셔널 투어 캐릭터 포스터|클립서비스

<라이온 킹>은 동명의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원작으로 1997년 브로드웨이에서 개막했다. 이후 전 세계 20개국 100개 이상 도시에서 공연되며 9천5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 뮤지컬 사상 최고의 흥행 수익을 기록했다. 대구 공연을 맞아 한국을 방문한 제작진들은 “<라이온 킹> 관람은 평생 기억에 남을 일생일대의 경험이 될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무엇이 <라이온 킹>을 이토록 특별하게 만드는 걸까.

“무대 위에 펼쳐지는 아프리카 초원, 그리고 ‘휴매니멀’”

<라이온 킹>은 <미녀와 야수>에 이어 디즈니가 두 번째로 제작한 무대 뮤지컬이다. 원작 애니메이션은 이미 큰 성공을 거뒀지만, 무대화에는 많은 이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표했다. 이전까지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무대가 된 적이 거의 없는 아프리카 초원이 배경인 데다 등장인물이 모두 동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모든 어려움은 연출가 줄리 테이머(Julie Taymor)가 등장하면서 마법처럼 해결되었다.

테이머는 전에 없던 창의적인 방식으로 동물들을 무대 위에 구현해냈다. 배우들의 얼굴과 신체를 동물 탈이나 인형 옷으로 가려버리는 대신, 오히려 전면에 드러낸 것이다. 테이머가 ‘휴매니멀(휴먼과 애니멀의 합성어)’이라고 부르는 이 방식은 캐릭터와 동물의 종류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표현된다. 사자들의 경우 배우들의 머리 위에 마스크를 얹는 방식으로 구현됐다. 탄소 섬유로 특수 제작된 이 마스크는 약 110~300g 정도로 가벼워 배우들이 쓰고 연기를 하는 데 지장이 없다. 무파사와 스카 등 일부 캐릭터의 마스크는 배우의 움직임에 따라 함께 움직이기도 한다.

<라이온 킹>의 스카(왼쪽)와 무파사|Photo by Joan Marcus ⓒDisney

반면 티몬과 품바, 자주 같이 코믹한 캐릭터들은 보다 원작 애니메이션과 비슷한 비주얼로 표현된다. 그중 티몬은 일본 전통 인형극인 ‘분라쿠’의 영향을 받은 퍼펫으로 구현된다. 이때 인형을 조종하는 배우의 얼굴을 가리지 않는데, 이를 통해 관객은 무대 위에 서있는 캐릭터가 동물임을 인지함과 동시에 배우의 디테일한 감정 표현까지 함께 감상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수레바퀴에 가젤 모형을 붙여 여러 마리의 가젤이 떼 지어 달려가는 모습을 표현하거나, 새 모형이 연결된 장대를 빙빙 돌려 새가 원을 그리며 나는 모습을 표현하는 등, 갖가지 창의적인 방식으로 구현된 동물들만 보기에도 두 눈이 부족할 정도. 공연에 사용되는 퍼펫과 마스크만 총 200여 개인데, 이를 수작업으로 만드는 데 1만7000시간이 소요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기존 브로드웨이의 문법에 얽매이지 않는 창의력으로 원작 애니메이션을 무대 위에 구현해낸 테이머는 1998년 토니상에서 여성 최초로 연출상을 수상했다.

‘Circle of Life’ 무대를 360도로 볼 수 있는 영상. PC는 마우스로 화면을 드래그하며, 모바일은 스마트폰의 방향을 기울여 가며 보면 된다.

“놀라운 현장감”

영화관과 스마트폰은 물론이고 VR 기술까지 보편화된 시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공연장까지 가서 직접 공연을 봐야 하는 이유를 묻는다면, <라이온 킹>이 그 답이 될지도 모르겠다.

<라이온 킹>은 무대와 객석이 분리된 프로시니엄 극장에서 진행되지만, 배우들의 활동 범위는 무대 위에 국한되지 않는다. 막이 오르고 원숭이 주술사 ‘라피키’가 그 유명한 ‘Circle of Life’를 부르기 시작하면 객석 통로에서부터 온갖 동물들이 등장해 무대 위로 올라간다. 코뿔소, 누, 물새, 심지어는 실제 크기와 흡사한 코끼리까지! 이들을 보고 있으면 성인 관객조차 ‘우와’ 소리가 절로 나온다. 극장 안에 있는 관객들이 한마음이 되어 같은 광경에 흠뻑 매료되는 것, 이것이야말로 21세기에도 라이브 공연이 필요한 이유 아닐까.

<라이온 킹>의 ‘Circle of Life’ 장면|Photo by Joan Marcus ⓒDisney

2막 ‘One By One’ 장면에선 각양각색의 아프리카 의상을 입은 배우들이 새 퍼펫을 조종하며 객석 통로로 등장한다. 1층뿐만 아니라 2층, 3층에까지 날아다니는 새들과 함께 배우들의 힘찬 합창이 공연장 전체를 꽉 채운다. 공연을 보러 온 게 아니라 정말 아프리카 초원에 와 있는 듯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순간이다.

자리 예매 TIP! 실감 나는 동물들을 가까이서 보려면 1층 통로석이 제일이다. 배우들의 표정보단 전체적인 그림이 중요한 작품인 만큼 5열 이후를 추천한다. 배우들이 1층 객석에만 나타나는 건 아니기 때문에 ‘가성비’를 중시한다면 2,3층도 나쁘지 않은 선택.

“문화적 다양성”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미국에서 만들어진 뮤지컬이지만, <라이온 킹>에는 그보다 훨씬 많은 다양한 국가의 문화가 반영되어 있다. 줄리 테이머는 아프리카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공연예술 전통을 작품에 반영했다. 극중 티몬의 퍼펫은 일본의 분라쿠 인형극에서, 그림자를 활용한 장면은 인도네시아의 섀도우 퍼펫극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음악가 레보 엠(Lebo M.)은 작품을 음악적으로 한층 더 풍성하게 만들었다. ‘One By One’ ‘Grasslands Chant’ ‘The Lioness Hunt’ 등 아프리카의 리듬과 소울이 돋보이는 곡들은 모두 그의 작품이다. 그 외에도 한스 짐머, 엘튼 존 등의 거장들이 음악에 참여했지만, 레보 엠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생동감 넘치는 아프리카는 느끼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또한 자메이카 출신의 안무가 가스 훼이건(Garth Fagan)은 현대 무용과 아프리카 카리브해의 춤, 그리고 발레를 접목시켜 <라이온 킹>만의 독특한 안무를 만들어냈다.

<라이온 킹> 대구 공연을 맞아 한국을 찾은 작곡가 레보 엠|클립서비스

다양한 국가의 문화가 반영된 작품인 만큼 참여하는 배우들의 국적 또한 다양하다. 무려 18개 국가에서 온 배우들이 이번 인터내셔널 투어에 참여한다. 상주 댄스 수퍼바이저인 테레사 윙(Theresa Nguyen)은 “이렇게 다양한 국가, 문화의 사람들과 일한다는 것은 아름답고 멋진 일”이라며 “이들이 각자의 문화를 갖고 와서 다양한 스타일을 무대에 녹여낸다. 이런 점이 <라이온 킹>이 정체되지 않고 계속 진화해나갈 수 있는 비결”이라고 말했다.

공연이 올라가는 국가와 도시의 특성을 대사에 반영하는 것도 특징이다. 대구 공연에선 몇몇 코믹한 장면에서 ‘서문시장’ ‘에버랜드’ ‘번데기’ 등의 단어가 예기치 못하게 튀어나와 관객들을 웃게 했다.

“나의 이야기’로 다가오는 보편적인 주제”

한국을 찾은 제작진들이 공통으로 꼽은 <라이온 킹>의 강점은 바로 ‘보편적 주제’였다. 아프리카의 동물들이 등장하지만 사실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인간사’라는 것.

어린 심바는 아버지가 자신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자 죄책감과 상실감 때문에 고향으로부터 도망친다. 정글에 숨어 허송세월을 보내던 심바는 고뇌 끝에 왕자로서의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책임을 다하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간다. 결국 <라이온 킹>은 상실을 극복하고 진정한 자아를 되찾는, 성장에 대한 이야기다. 또한 ‘Circle of Life’로 상징되는 세상의 순리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암사자들과 원숭이 주술사 라피키|Photo by Joan Marcus ⓒDisney

뿐만 아니라 줄리 테이머는 부계 중심의 서사였던 원작 애니메이션에 비해 여성 캐릭터들의 비중을 강화했다. 원래 수컷 원숭이었던 라피키를 주술사 할머니로 바꾸고, 날라의 전사적인 면모를 강화한 것. 라피키는 ‘Circle of Life’로 극의 시작과 끝을 장식할 뿐만 아니라, 무파사의 죽음을 애도하는 암사자들을 위로하고 날라의 출정을 축복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민간신앙을 통해 일상의 한을 위로받던 우리나라 여성들의 역사와도 흡사한 대목이다.

레보 엠은 “많은 브로드웨이 쇼가 왔다가 사라지지만, <라이온 킹>은 인간 정신에 대해 그 어떤 공연보다도 잘 전달해내기 때문에 오래 살아남았다”고 전했다.

“전 세계 어디에서 봐도 동일한 퀄리티”

<라이온 킹>의 날라(왼쪽)와 심바|Photo by Joan Marcus ⓒDisney

이번 <라이온 킹> 투어의 프로듀서인 마이클 캐슬(Michael Cassel)은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 공연과 비교했을 때 퀄리티를 전혀 타협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투어 공연에는 브로드웨이 프로덕션에서 사용되는 것과 동일한 세트와 의상이 사용된다.

또한 1년간의 오디션 과정을 거쳐 전 세계에서 선발된 배우들이 출연한다. 오마르 로드리게즈(Omar Rodriguez) 상주 연출은 “준비되어있는 특별한 인재를 선발하기 위해 단순 오디션이 아닌 워크숍 같은 과정을 거쳐 배우들이 주어진 재료를 얼마나 잘 연구하고 소화해내는지를 봤다”고 밝혔다. 캐스팅 과정에는 줄리 테이머가 직접 관여했다고. 상주 댄스 수퍼바이저인 테레사 윙 역시 “오리지널 안무가의 의도와 디테일을 살리기 위해 많은 리허설을 거쳤다”고 밝혔다.

<라이온 킹> 대구 공연은 2018년 12월 25일까지 계명아트센터에서 계속된다. 대구 공연 이후에는 2019년 1월 서울, 4월 부산 공연이 이어질 예정이다.

'라이온 킹' 인터내셔널 투어
2018.11.07 ~ 2019.12.25
대구 계명아트센터
2019.01.09 ~ 2019.03.28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2019.04 ~
부산 드림씨어터
기본가 6만~17만원
8세 이상 관람 가능

<올댓아트 정다윤 allthat_ar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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