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마음이 쓸쓸하다면 이 노래 어때요?···달콤쌉쌀 뮤지컬 넘버들

이수진 공연 칼럼니스트
입력2018.12.26 13:39 입력시간 보기
수정2018.12.26 15:01

성탄절 맞이, 내적 싱어롱을 위한 내 맘대로 뮤지컬 넘버 5

매년 크리스마스가 돌아오면, 화제의 신곡도 아닌데 차트 순위가 야금야금 올라가기 시작하는 노래들이 있다. 대표적인 노래로 소위 ‘캐럴 연금’으로 불리는 머라이어 캐리의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를 들 수 있겠다. 영국 영화 <러브 액츄얼리(2003)>에 수록된 뒤 더욱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며 12월만 되면 전 세계에 울려 퍼진다. ‘전 세계’는 과장이겠지만, 적어도 한국에서 이 노래는 여전히 크리스마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곡이다.

Wham!의 ‘Last Christmas’ 앨범 이미지. | 빌보드 홈페이지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 이전에는 Wham! 시절의 조지 마이클이 내놓은 ‘Last Christmas’ 가 특유의 달콤 씁쓸한 분위기 덕분에 큰 인기를 모았다. 현재까지도 이 노래를 최고의 크리스마스 곡으로 꼽는 사람들이 꽤 많다. 조지 마이클이 거짓말처럼 크리스마스에 세상을 등진 이후 이 노래에는 달콤함보다 애수가 더 깊이 감돈다.

지금은 뮤지컬이 예전처럼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얻는 장르는 아니지만, 한때 뮤지컬도 황금기를 구가하며 빌보드 차트를 술렁이게 했던 시절이 있었다. 왠지 모르겠지만 크리스마스 분위기는 매년 올해가 작년만 못한 것만 같다. 친구들과 함께 했던 왁자한 모임이 끝나고 혼자 돌아오는 길, 문득 마음이 텅 빈 듯이 느껴질 때 플레이리스트에 추가해 볼 만한 ‘달콤쌉쌀 뮤지컬 속 크리스마스 노래’들을 모아 모았다.

■5. 뮤지컬 <화이트 크리스마스>中 ‘화이트 크리스마스’
작사/작곡 어빙 벌린

뮤지컬 <화이트 크리스마스>의 2016년 공연 사진. | Jeremy Daniel

느리고 다정한 크리스마스 노래. 한때는 이 노래가 ‘징글벨’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하드캐리’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야말로 올드패션 그 자체지만 오래 사랑받는 데는 이유가 있다. 간결하고 따듯한 내용의 가사와 어렵지 않으면서 유려하게 흘러가는 멜로디에, 순록의 방울 소리가 귓가에 절로 들리는 것만 같다. 뮤지컬 내용은 있을 법하지 않은 판타지. 보더빌 스타인 절친들이 ‘우연히(!)’ 자매팀과 만나서 서로 사랑에 빠지고, 주인공의 군 시절 (무려 2차 세계대전!) 상사였던 장군의 망해가는 호텔도 살려낸 뒤 보니 창밖에는 흰 눈이 훈훈하게 내린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2차 대전 이후 지어진 산속의 리조트들이 훗날 영화 <더티 댄싱>의 배경이 되니, 세상은 돌고 도는 것. 영화의 주인공이었던 빙 크로스비가 낸 크리스마스 싱글 버전은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싱글로 기록됐다고도 하는데, 전 세계에서 오천만 장 이상이 팔렸다고 한다.

<화이트 크리스마스>의 브로드웨이 2010년 리바이벌 공연 홍보 영상

■4. 뮤지컬 中 ‘Christmas’
작사/작곡 피트 타운젠드

빙 크로스비가 하얀 브이넥 카디건을 입고 기타를 치며 하얗게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를 노래하던 시절이 지났다. 그 후 록 음악이 세상을 강타하자, 시니컬 버전의 크리스마스 노래들이 심심찮게 나오기 시작했다. The Who는 한국에서 드라마 라스베이거스 시리즈의 오프닝 송인 ‘Who Are You’로 알려진 전설적 영국 록그룹이다. 1960년대와 80년대까지 꾸준히 이어진 컨셉 앨범의 열풍 가운데, The Who가 발매했던 앨범 보다 더 대중적인 성공을 거둔 앨범은 없었다. 강렬하고 개성적인 음악으로 가득 채운 이 앨범을 바탕으로 영국의 영화감독 캔 러셀은 어두운 뮤지컬 영화를 만들어냈다. 주연은 The Who의 리드 보컬인 로저 달트리가 맡아 직접 노래했고, 1993년에는 브로드웨이 뮤지컬로 각색되어 올라와 토니상 오리지널 스코어상을 수상했다.

로저 달트리가 부르는 ‘크리스마스’

어렸을 때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한 토미가 어둠 속에 자신을 가둬 자폐아로 살아가지만, 핀볼 게임에 천재적인 소질을 보이면서 장애를 딛고 자신을 찾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뮤지컬은 오리지널 스토리의 맥락을 따라가면서도 70년대의 냉소적인 세계관을 싹 빼고 가족 치유극으로 대변신을 시도해 성공했다. 이 노래는 다른 아이들이 크리스마스 선물 앞에 기뻐할 때 그게 무엇인지도 모르는 토미에 대한 노래다. 성탄절의 따스한 느낌을 살리고 싶다면 브로드웨이 뮤지컬 버전을, 파티가 끝난 뒤 피곤함에 절어 있다면 오리지널 보컬인 로저 달트리 버전을 추천한다.

■3. 레뷰 中 ‘수라바야 산타’
작사/작곡 제이슨 로버트 브라운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작곡한 바로 그 제이슨 로버트 브라운의 노래다. 송 사이클 스타일의 레뷰(특별한 줄거리 없이 주제에 맞는 곡들을 엮은 형식의 뮤지컬)공연에 나오는 두 개의 크리스마스 노래 가운데 하나다. 이 작품은 드라마나 줄거리가 없는 대신 하나의 테마 아래 만들어진 노래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중 두 개가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만 봐도 서구인들에게 크리스마스가 얼마나 중요한 명절인지를 알 수 있다. 이 작품은 무언가를 다시 혹은 새로 시작하려는 사람들의 마음을 노래하고 있다. 희망적인 것도, 가슴 벅찬 것도 있지만 유독 크리스마스 노래에는 쓸쓸함이 있다.

‘수라바야 산타’는 브레히트의 <해피 핸드>를 위해 쿠르트 바일이 작곡했던 ‘수라바야 자니’의 패러디이기도 하다. ‘수라바야 자니’는 주인공 릴리안이 17살 때 자니를 만나 사랑했고, 이용만 당한 뒤 원망하면서도 그를 여전히 사랑하고 있는 자신을 한탄하는 내용이다. 반면 ‘수라바야 산타’는 원망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 나쁜 남자가 산타처럼 등에 보따리를 메고 사라진다 해도, 그를 그리워하지 않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겠다는 내용이다. 처음에는 쿠르트 바일이 작곡한 ‘수라바야 자니’를 연상케 하는 어둡고 끈끈한 멜로디로 시작해 마지막에는 제이슨 로버트 브라운 특유의 깔끔하게 치고 올라가는 결심으로 끝난다.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 위해 꼭 1월 1일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Songs for a New World’의 콘서트. 제시카 코커.

■2.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中 ‘Merry Christmas, Maggie Thatcher’
작사 리 홀/작곡 엘튼 존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의 한국 공연 사진. | 신시컴퍼니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의 2막을 여는 노래로, 탄광 노동자들이 재앙을 야기한 당시 수상 마가렛 대처에게 엿이나 먹으라며 부르는 노래다. 리 홀이 준 가사로 엘튼 존은 이 노래를 단숨에 써 내려갔다고 하는데, 달리 후렴구가 필요 없을 정도로 노래 전체가 명료하다. 가사 중에서 이름이 들어가는 부분인 ‘매기 대처’에 자신이 원망하는 사람 혹은 저주하고 싶은 정치인, 회사 상사 등의 이름을 넣으면 기가 막히게 다 어울리는 마법 같은 노래다.

크리스마스에 감사할 사람들의 이름보다 미운 사람의 이름이 더 크게 다가온다면 이 발랄한 노래 한가운데에 그 사람 이름을 넣어 크게 불러보자. 어두운 기운을 멀리멀리 날려 보내고 새로운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해 그 사람에게 당당하게 맞설 용기가 생길지 누가 알겠는가. 설혹 그런 용기가 안 생긴다 해도, 신나게 노래 부르는 것만으로 스트레스가 조금은 날아갈 지도.

2005년 레코딩 버전.

■1. 뮤지컬 <라스트 파이브 이어즈>中 ‘The Schmuel Song’
작사/작곡 제이슨 로버트 브라운

제이슨 로버트 브라운(왼쪽)과 영화 <라스트 파이브 이어즈>의 스틸컷. | Matthew Murpy, 네이버 영화

독특한 형식의 뮤지컬 <라스트 파이브 이어즈>는 남자와 여자가 서로 다른 삶의 시간을 살아가는 흐름을 보여준다. 남자가 과거에서 미래로 나아간다면 여자는 미래에서 과거로 돌아간다. 대본, 작사, 작곡을 모두 다 한 제이슨 로버트 브라운의 자전적인 이야기다. 곰곰이 들여다보면 잘 나가는 작가로 점점 유명해져가는 남편을 보면서 그만큼 성공하지 못하고 자꾸 오디션에서 떨어지는 배우인 아내의 초조함을 치졸한 모습으로 그려놓았다.

잘 나가는 작가는 제이슨 로버트 브라운 그 자신이고, 남편을 내조하기는 커녕 자격지심만 커져가는 인물이 이혼한 아내다. 어린 시절 파탄 난 결혼생활마저 뮤지컬의 소재로 활용하는 창작자가 놀랍다. 제이슨 로버트 브라운은 초연 이후 작품을 몇 번 더 수정해야만 했는데, 덕분에 전 아내를 묘사하던 방식이 많이 완화되면서 더 나은 작품이 됐다. 이 노래는 엇나가기만 했던 두 사람이, 마법처럼 같은 마음으로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장면에 나온다. 남편이 아내에게 들려주는 노래로, 특히 ‘나나나 나나나 나나나나’ 하는 후렴구의 중독성이 강하다. 젊은 두 연인이 벽난로 앞에 앉아 앞날은 모두 잘 될 거라는 희망을 공유하는 따스함이 있다. 뮤지컬 자체에 대한 호불호와 상관없이 이 노래만큼은 ‘호’다.

극작가 겸 공연평론가 이수진은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 슈퍼스타’를 본 이후 뮤지컬에 대한 호기심과 신의 존재에 대한 회의를 동시에 획득했다. 이후 한국 뮤지컬계의 고전으로 꼽히는 책 ‘뮤지컬 스토리’를 썼고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와 ‘그리스’ 등을 번역했다. ‘콩칠팔새삼륙’ ‘신과 함께 가라’ 등의 뮤지컬을 쓰며 여전히 무대 언저리를 헤매는 중.

<이수진 공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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