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시청률 58.4%의 감동 그대로…위기를 기회로 바꾼 ‘여명의 눈동자’

올댓아트 이참슬 인턴 allthat_art@naver.com
입력2019.03.21 19:12 입력시간 보기
수정2019.03.21 19:19

※아래 글에는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애절한 키스를 나누는 두 남녀, 대치와 여옥.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를 기억하는 이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장면일 것이다. 1975년부터 1981년까지 6년간 일간스포츠에서 연재된 김성종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했던 이 드라마는 1991년 방영 당시 회당 평균 시청률 44%, 최고 시청률 58.4%를 기록했다.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 | MBC

당시 인기 프로듀서였던 김종학 PD와 송지나 작가는 1년 5개월이라는 사전 제작 기간을 거쳐 일제 강점기인 1943년부터 한국 전쟁 직후까지 동아시아 격변의 10년을 그렸다. 드라마 촬영이 진행된 1990년은 대한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은 국교를 맺지 않은 상황임에도 제작진은 하얼빈 교외, 상하이, 난징, 쑤저우, 구이린에서 731부대, 팔로군 본부 장면 등을 촬영하며 리얼리티를 높였다.

또 최경식 음악 감독의 ‘Main Title Love Theme’은 모스크바 교향악단의 연주로 제작돼 40만 장을 판매했고, 한국 드라마 최초로 일본군 ‘위안부’와 ‘제주 4·3 사건’ 등 대한민국 근현대사에서 빠질 수 없는 사건들을 담아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외에도 44억 원의 제작비, 2년 5개월에 이르는 제작 기간, 2만 5천 명의 출연진, 국내 최초 블록버스터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는 요즘 말로 ‘국민 드라마’였던 셈이다.

[해피타임 명작극장] 일본 태평양 전쟁 당시 우리 민족이 겪어야 했던 이야기 ‘여명의 눈동자(1991)’

바로 그 드라마가 28년 만에 무대에 올랐다.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는 일본군 위안부부터 조선인 학도병, 제주 4?3 사건까지 10여 년의 격동의 시대를 여옥, 대치, 하림 세 인물을 중심으로 무대 위에 재현했다. 1막은 태평양 전쟁으로 일본의 국가 총동원령이 한창이던 194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2막은 해방 후 한국전쟁이 일어나기까지 좌우 이념이 대립하던 1950년대 한반도의 모습을 그렸다.

“135분에 녹여낸 10년의 역사”

주인공 윤여옥은 독립운동가의 딸이지만 군수공장에 가는 것으로 속임을 당해 중국 남경 부대의 정신대(위안부)로 끌려간다. 여옥은 남경 부대에서 경성제대 출신 조선인 학도병 최대치를 만나 둘은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일본이 태평양 전쟁에서 열세를 보이자 남경 부대는 사이판으로 옮겨가는데, 그 사이 여옥과 대치는 탈출을 모의한다. 그러나 일본군에게 발각돼 대치만 탈출에 성공하고, 남경 부대에서 대치의 아이를 임신한 여옥은 사이판에서 군의관 장하림을 만난다. 하림은 여옥이 더 이상 군인으로부터 성 착취를 당하지 않도록 도와준다. 1945년 일본은 전쟁에서 패하고, 조선은 독립을 맞는다.

남경 부대에서의 여옥(왼쪽)과 대치(오른쪽) | 수키컴퍼니

독립을 맞았지만 민족의 비극은 끝나지 않았다. 이념 대립을 하던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 중앙을 관통하는 북위 38도 선을 경계로 각각 남쪽과 북쪽에 정권을 성립한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두 열강에 의해 부정 당한다. 여옥은 해방 후 미군의 첩자로 하림과 함께 일하고, 대치는 탈출 후 자신을 구해준 인민군에 가담한다.

이념 대립이 극심해지자 미 군정과 인민군은 독립운동가 출신 지도자 윤흥길(여옥의 아버지)을 서로 끌어들이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윤흥길은 총살을 당한다. 윤흥길의 총살에 연루된 대치는 비극적인 계기로 여옥과 재회한다. 둘은 도망치듯이 제주도로 가 아들 대운과 함께 단란한 삶을 꾸리지만, 좌우 이념 대립이 극에 달해 섬 안에 빨갱이 토벌이 강행되면서 군인, 민간인 가리지 않는 대규모 학살이 벌어진다.

여옥이 공산당의 첩자가 아님을 주장하는 하림(왼쪽), 총에 맞은 여옥(오른쪽) | 수키컴퍼니

해방 후에도 자유는 없었다. 일본으로부터 당한 상처가 아물기 전에 한반도는 좌와 우로 갈려 싸웠고, 미국과 소련의 정치 싸움에 힘없는 우리 국민들만 죽어갔다. 여옥은 남편 최대치가 인민군이라는 사실, 일본군 위안부였던 이력 등이 얽혀 소련의 첩자로 취급받아 재판을 받고, 징역형을 받는다. 그리고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지리산으로 도망치던 여옥은 빨치산 토벌 중이던 군인의 총에 맞아 죽음을 맞는다.

“런웨이 무대와 ‘나비석’”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는 드라마의 큰 틀을 유지했다. 동시에 아픈 역사 속에서 살아가야만 했던 극중 인물들의 세밀한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런웨이 형태의 무대를 구현했다. 그 일환으로 무대 양옆에는 ‘나비석’이라는 이름의 무대 위 객석을 두는 관람 방식을 시도했다.

런웨이처럼 구성된 <여명의 눈동자> 무대. 일자형 무대 양옆에는 무대석인 ‘나비석’이 있다. | 수키컴퍼니

그러나 사실 이런 시도는 투자 사기를 당하면서 제작 여건이 어려운 탓에 생긴 변화들이다. 무대에는 영상 스크린 배경과 의자만 있고, 넘버 연주도 오케스트라없이 MR로 대신하고 있다. 채우지 못한 무대를 런웨이처럼 구성하고 무대석을 두면서 시야가 방해되는 좌석도 많이 생겼다. 나비석이 무대 아래 객석보다 가깝지만 시야가 월등히 좋은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새로운 시도를 통해 약점이라고 생각될 수 있는 부분들을 감동을 주는 요소로 변화시켰다.

런웨이 형태의 무대에서는 배우들이 무대 뒤, 아래, 옆 할 것 없이 사방에서 등장한다. 극 중간에는 나비석 객석 중앙으로 달려갈 때도 있다. 따라서 나비석에 앉은 관객은 극을 관람하는 사람 이상의 역할을 한다. 무대 아래 객석에서 보았을 때 무대석 관객은 극의 일환으로 보이고, 무대석에 앉은 관객들은 배우들, 소품의 움직임까지 생생하게 보면서 극 중 역사의 현장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관객이자 무대의 한 부분이 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한편으로 이는 역사 속 일반인들의 비극을 다루고 있기에 더 효과적으로 다가온다. 극 중 인물들이 선택의 여지없이 시대를 잘못 타고나 온갖 비극을 겪어야 했던 것처럼, 무대 가까이에 앉음으로써 관객도 함께 시대의 폭풍에 휩쓸린 것 같은 몰입감을 준다.

“일당백, 외쳐 ‘갓상블’”

<여명의 눈동자>의 후기를 찾아보면 주, 조연 배우만큼 앙상블에 대한 호평을 쉽게 볼 수 있다. 작품 내내 무대를 채우는 8할은 앙상블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위안부로 끌려간 소녀들이 되었다가, 잔혹한 일본군이 되기도 하고, 철도 파업을 이끄는 노동운동가가 되었다가, 순수한 제주 사람들이 되기도 한다. 함께 태극기를 들고 광복의 기쁨을 나누다가도 금세 좌와 우로 나뉘어 이념 대립을 하는 ‘일당백’ 앙상블은 그 시대를 살았던 수많은 우리 민족의 모습으로 극을 채운다.

“이젠 더 이상 고통받지 않아.
36년 동안 빼앗긴 자유.
이젠 두 번 다시 이 땅을 뺏기지 않아”
-ACT2 Opening 중-

식민 지배가 끝나면 온전히 자유를 되찾을 줄 알았지만 열강들은 우리 민족을 순순히 놓아주지 않았다. 일본이 가고 미국, 소련이 한반도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며 이념 대립이라는 또 다른 비극이 시작되었다. 앙상블은 맡은 배역 이름이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는다. 이들은 극중 역사가 휩쓸고 지나간 수많은 이름을 대신한다. <여명의 눈동자>가 역사에 휩쓸린 무명의 인물들의 이야기인 것처럼 앙상블은 이 작품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앙상블의 노래로 시작하는 ‘ACT 2 Opening’ |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 프레스콜

또 공연 시작 전후에 무대를 채우는 스산한 바람 소리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비극의 연장선처럼 느껴진다. 일제로부터 독립을 했고, 남과 북이 총칼을 겨누던 전쟁도 멈췄지만 정말 끝난 것일까? 이념 갈등으로 인한 고통, 혐오, 세대 갈등 등 비극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의 노우성 연출은 “아픈 과거의 역사 속에서 희생된 사람을 다시 기억하고, 남과 북, 좌와 우, 세대와 세대간 철조망이 제거되기를 바란다”라고 연출 의도를 전했다.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 마지막 장면 | 수키컴퍼니

공연 개막 전 투자 사기와 이로 인한 개막 연기 등 관객을 만나는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지만, ‘명작’의 위엄은 수이 휘발되지 않았다. 무대 위에 구현해낼 수 있는 것에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상쇄시키는 배우들의 열연, 이야기의 가치는 <여명의 눈동자>의 재연을 기다리게 한다. 작품을 관람한 이들이 위기를 기회로 바꾼 <여명의 눈동자>에 더 큰 박수를 보내는 이유다.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
2019.03.01 ~ 2019.04.14
서울 디큐브아트센터
김지현, 문혜원, 박민성, 김수용, 김보현, 테이, 이경수, 구준모, 조태일, 김진태, 조남희, 김정렬, 유보영, 민시양, 선한국, 조환지, 박이든, 김승후, 김라온, 백건우, 김지선, 김현중, 김효성, 이호진, 최영주, 백시호, 김수정, 가희, 김수영, 김종준, 한우리, 김지원, 김준용, 추광호, 한수림, 배혜진, 문장미, 김한결, 이주연, 임다현, 한정희, 이경민, 최지인 등 출연
기본가 3만~7만원
만 10세 이상 관람 가능
공연 시간 150분 (인터미션 15분)

<올댓아트 이참슬 인턴 allthat_ar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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