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굿나이트: 에너지 플래시(Good Night: Energy Flash) | 2019년 4월 18일 ~ 8월 25일 | 현대카드 스토리지
시의적절한 전시가 개최됐다. 가수 승리로부터 촉발된 ‘클럽’에 대한 사회적 질타와 부정적인 시선이 크게 확산되고 있는 요즘, ‘클럽 문화’가 가진 긍정적인 에너지와 사회적 순기능을 조명하는 것이다. 불법을 자행하는 일부 클럽에 뼈 때리는 일침을 가하고 자정을 촉구하는 이번 전시, 그 출발부터 박수를 보낸다.
전시가 개최되는 곳도 국내 클럽 문화의 중심지 중 하나인 이태원에 자리한다. 다양한 현대미술 장르뿐만 아니라 건축, 디자인, 필름 등을 포괄하는 폭넓고 실험적인 시각예술 전시를 선보이는 현대카드 스토리지가 이번 전시를 기획, 주최했다. 이곳의 첫 기획전이기도 한 <굿나이트: 에너지 플래시(Good Night: Energy Flash)>는 현대미술을 통해서 드러나는 언더그라운드 클럽 문화와 다양한 양상을 조명한다.
“클럽은 단지 쾌락의 천국이 아니라 커뮤니티 내 결속을 다지기 위한 공간이다.”
- AVAF (Assume Vivid Astro Focus)
이번 전시는 현대미술이 언더그라운드 문화를 어떻게 수용하고 해석해 왔는지 조망할 수 있는 국내외 아티스트 17개 팀의 작품 50여 점을 소개한다. 전시 작품들은 전자 사운드, 빛, 신체의 움직임, 댄스음악 등 클럽 컬처의 감각적 요소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거나 젠더, 젠트리피케이션, 커뮤니티를 포함한 사회적 문제에 대한 목소리를 낸다. 다양한 계층과 차이를 통합하는 일종의 플랫폼으로서 그리고 사회구조를 반영하는 공간으로서의 클럽에 대한 시각을 전시를 통해 만나보자.
“언더그라운드 클럽, 현실 사회의 축소판”
언더그라운드 클럽은 무엇보다도 젊은이들이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 에너지를 표출하는 공간이자 동시대 유스 컬처(Youth Culture)와 사회문화 구조의 일면을 살펴볼 수 있는 현실 사회의 축소판으로 기능한다. 이곳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Wolfgang Tillmans, The Spectrum/Dagger (2014)
‘The Spectrum/Dagger’은 비영국인으로는 최초로 터너 프라이즈를 수상한 사진가 볼프강 틸만스의 작품이다. 작품은 사람들의 순간적인 움직임, 마치 춤을 추는 듯한 사람들이 정지한 듯한 상황을 포착하고 있다. 작품의 제목에서 The Spectrum은 24시간 운영되는 불법 퀴어 클럽의 이름이기도 하다. 본래 이 파티는 여성만을 위한, 스스로를 여성 또는 논젠더(non-gender)로 인식하는 여성들만을 위한 것으로 시작되었으나 점차 남성 게스트들의 입장도 조금씩 허용되었다.
다양한 성별이 섞여 들어 있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이 파티의 주최자들은 거울이 달린 사진 속 공간을 그 어떤 성희롱이나 적대감에 대한 두려움 없이 보호받을 수 있는 공간으로 여겼다. 그러나 완전한 찰나의, 일시적인 순간을 포착한 갈색조의 작품은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의 친밀감을 드러내면서도 언제 다시 깨질지 모르는 불완전한 모습을 띠기도 한다.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없는 공간으로 믿고 있던 곳에 언제나 서려있는 불안감이 드러나는 작품으로, 어쩐지 최근까지 만연했던 클럽의 분위기를 상기시킨다.
작가는 이 작품이 ‘자신에게는 정치적인 사진’이라고 설명했다. 비주류, 퀴어 등 밤 문화의 모든 표상은 그 자체로 잠재적인 정치적 선언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요소들은 불가피하게 젠트리피케이션, 규제, 경찰의 치안유지 활동, 정치 이슈화 등을 둘러싼 갈등에 기여할 수밖에 없다. 한편 규범 외적인 성적 취향을 지닌 사람들을 맞이하는 Spectrum과 같은 공간에서조차 가부장주의와 인종차별주의와 같은 갈등이 없지 않았던 사실 또한 이곳을 작은 사회라고 부를 만한 이유가 된다.
■Matt Stokes, Real Arcadia (2003 ~)
위 아카이빙 작업을 이어온 것은 매트 스토크스로, 그는 자율적 조직과 대안적 삶에 대한 욕망에 관심을 두고 사람들이 함께 모일 수 있는 공간과 상황에 주목하며, 리서치에 기반한 작품을 제작하고 그룹과 관계 맺기를 시도한다.
특히 1980년 후반부터 1990년대 초까지 열리곤 했던 케이브 레이브(Cave Rave: 동굴 파티)를 기록했는데, 이것은 당시 지역의 젊은이들은 물론 다른 지역에서 온 젊은이들까지 호숫가의 동굴에 모여서 벌이는 파티의 일종이었다. 물론 정치권 인사들이나 경찰은 이 광란의 파티를 불법으로 규정하였다.
작가는 당시 파티를 주최했던 사람들을 직접 만나 홈메이드 믹스테이프, 플라이어, 티셔츠, 사운드 시스템 등을 아카이브로 재구성했으며 특히 음악이 특정 그룹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촉매제로 작동하는 상황과 사건에 주목했다. 그러한 아카이빙의 결과물인 ‘Real Arcadia’는 레이브 문화(rave culture)의 중심에 있던 이들로부터 레이브 문화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Wu Tsang, Into a Space of Love (2018)
2018 맥아더 펠로를 수상한 Wu Tsang은 시각예술가이자 영화감독으로서 소외된 내러티브와 숨겨진 역사를 퍼포먼스로 표현해왔다. 그가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Into a Space of Love’는 프리즈와 구찌의 의뢰로 제작된 것으로 1988년 혁명적이었던 레이브 문화와 일렉트로닉 음악이 전 세계의 문화에 미친 영향을 탐구하는 작품이다.
15분에 달하는 영상에는 주로 흑인과 라티노 퀴어 커뮤니티, 퀴어 해방운동과 같은 실제 경험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담겼다. 이 작품은 세대를 뛰어넘어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뉴욕 나이트 라이프가 일어나는 클럽을 사랑, 고통 그리고 투쟁의 장소로서 보여준다. 이 영상에 출연한 사람들의 대담을 통해 1960년대 거대한 규모의 반문화 운동이 휩쓴 문화적 혁명을 조명하고 뉴욕 흑인과 언더그라운드 문화에 뿌리를 둔 하우스 뮤직의 주된 무대인 클럽 문화를 탐구한다.
■Jin Meyerson, The Age of Everyone (2011-2012)
진 메이어슨은 고딕 스테인드글라스에서 얻은 강렬한 인상에 대한 반응으로서, 사회적 혼란과 클럽 컬처 이미지를 샘플링하여 아래 작품을 제작했다.
이 작품은 흥미롭게도 홍콩 우산 혁명보다 앞선 2011년과 2012년에 제작되었고 소셜미디어가 주도했던 아랍의 봄과 유사한 사회적 저항을 상기시킨다. 동시에 전 세계적으로 열린 거대한 파티와 페스티벌을 연상시켜 양가적인 감정을 일으킨다. 집단의 저항과 쾌락 사이 어딘가를 지나고 있는 작품은 강한 에너지를 내뿜는다. 거대한 캔버스 표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세밀한 디테일과 그만의 특유한 색감이 관람객을 더욱 압도한다.
“‘나’를 위한 클러빙(clubbing)”
■Lotte Andersen, Dance Therapy (2017)
로테 앤더슨은 춤추는 행위의 의미를 찾아 나섰다. 몸의 정치학, 트라우마, 희열, 해방감 등을 연구하는 작업을 이어온 그는 ‘음악에 대한 기억이 시각적 기억보다 오래 머무른다’는 기조 아래 사운드와 비디오를 결합한 ‘Dance Therapy’를 선보였다.
이 작품은 런던의 클럽 문화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것으로, 현실을 초월하게 되는 클럽의 특성에 초점을 맞췄다. 작가는 자신이 직접 런던에 만든 클럽에 대중들을 초대하여 파티를 열고, 그 상황을 포착하여 다채널 영상 설치작업을 제작했다. 작가는 신체를 통한 트라우마 치료에 관심을 가지고 클럽이라는 공간에서 작동하는 사회적, 신체적 에코 시스템을 탐구한다. ‘춤’을 일종의 치료의 형태로 간주한 것이다. 작가가 재현한 클럽 공간에 초대받은 관람객은 바로 이 전시 공간에서 자신을 짓누르고 있던 현실과 트라우마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로워진 신체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Peggy Gou, PDPG (Personal DJ Peggy Gou) (2019)
보통 디제이는 군중에 둘러싸여 있다. 이번 작품에서는 항상 무대 위에서 음악과 공연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을 1 대 다(多)로 상대해온 디제이를 독립된 공간에 위치시켰다. 관객과 1 대 1의 개인적인 커뮤니케이션의 형식을 통해 소통을 시도하는 것이다. 동시대 소셜미디어를 통한 소통의 방식의 맥락에서 생각해보면, 이번 작업은 관객과의 지극히 사적인 소통에 의미를 두고 있다. ‘간이 화장실’이라는 설치 콘셉트 또한 매우 사적이고 제한된 공간적 속성을 상징한다. 또한 디제이의 ‘프라이버시’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기도한데, 다수의 쾌락을 위해 무대 위에 서는 것이 아니라, 독립된 공간에서 자신이 진짜 원하는 음악과 춤을 즐겨볼 수 있는 공간으로 꾸몄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클럽, 그곳의 모습”
■Mark Leckey, Fiorucci Made Me Hardcore (1999)
마크 레키의 작품들은 잘 알려지지 않았거나 간과된 영국의 유스 컬처, 댄스 컬처와 같은 하위문화를 탐구하며 집단과 개인의 역사를 다채롭게 표현한다. 위 영상은 그의 작품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으로, 1970년대부터 1990년대 사이에 영국의 댄스 클럽에서 촬영한 영상들을 편집한 것이다. 작가는 왁자지껄한 사람들 사이의 강렬한 에너지와 사회경제적 열망들을 드러낸다.
■Kiichiro Adachi, Orrery (2019)
많은 이들에게 디스코 볼(미러볼)은 나이트클럽 또는 댄스 클럽의 심벌과도 같다. 아다치의 작품에서 유리타일에 반사되는 눈부신 빛은 마치 종교적이고 신성화된 느낌을 주고, 이상하리만큼 조용한 분위기는 정신적, 종교적 순간을 암시하는 듯하다. 작품의 제목 Orrery(태양계의)처럼 여러 형태의 미러볼은 태양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태양계 행성 같기도 한데, 그 빛을 각자의 모습대로 흩뿌리는 것은 클럽이라는 한 공간에서도 각자의 빛을 발산하고 있는 개인들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Ben Kelly, The Hacienda, (1982)
영국 맨체스터에 전설적인 1세대 하우스 클럽이 있었다. 그 이름은 하시엔다(Hacienda). 이곳의 인테리어 디자이너로도 잘 알려져 있는 벤 켈리는 대중문화에서 인테리어의 역할과 의미에 관심을 두고 작업해왔으며, 2018년 말 런던에서 그의 새로운 작품 ‘Columns(기둥들)’을 공개했다. 그는 교통 표지판의 패턴을 빌려 권력, 고전주의부터 낭만주의와 퇴락 등의 의미를 담아 12개 기둥에 토테미즘적 성격을 부여했다.
현대카드 스토리지 전시공간에는 ‘Columns’의 디자인 요소를 각색한 DJ 부스 디자인 설치작업이 새롭게 제작되어 최초로 소개된다. 32개의 기둥은 일종의 빼곡한 숲과 같은 공간을 표현하며 작가 특유의 시각적 요소들을 재배치하여 DJ부스이자 작품이 되는 새로운 맥락을 이루어 낸다. 이 DJ부스에서는 전시기간 중 실제로 디제잉 퍼포먼스와 워크숍 등이 진행될 예정이며 관람객은 언제든지 디제잉 시스템을 연주해볼 수 있다.
■Dorothy, Acid House Love Blueprint
이 작품은 영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weare-dorothy에 의해 디자인된 작업으로 303 베이스 신시사이저를 기본으로 댄스음악과 레이브 컬처의 역사를 순환 다이어그램으로 매핑했다. Acid House의 발전과 댄스 뮤직, 레이블 컬처에 점진적인 영향을 미친 약 900여 명의 DJ와, 클럽, 뮤지션, 파티, 사운드 시스템, 레코드 라벨, 라디오 방송국과 팬 잡지 등을 모두 망라한다. 레이브 컬처나 해외 언더그라운드 클럽에 관심이 많은 관람객이라면 자신이 아는 이름을 찾아보는 재미도 맛볼 수 있겠다.
“기록된 클럽 문화”
전시 작품과 함께 언더그라운드 클럽 컬처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는 다양한 자료와 인터뷰 영상 등으로 구성된 아카이브 섹션은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볼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한다. 현재 국내 언더그라운드 클럽 신에서 활약하고 있는 Maki from underground가 구성한 국내 클럽 컬처 관련 아카이브는 이제는 보기 힘든 1990년대 ~ 2000년대 중반까지의 국내 클럽 포스터, 플라이어 등의 자료와 클럽 음악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신시사이저 등을 한자리에 선보인다.
한국 서브컬처의 뿌리가 된 당시 파티와 클럽들은 곧 테크노 음악뿐만 아니라 다양한 예술 활동이 펼쳐지는 대안적 공간으로서 성장해 나아갔다. 한국의 클럽 문화를 아카이빙 한 Maki는 “이후 강남으로 전위된 클럽 문화는 비정상적인 한국 유흥문화와 결합하여 기형적인 상업 아이템으로 변모하기도 하였지만, 여전히 이태원과 홍대를 위시한 이른바 언더그라운드 문화가 지속, 유지되어 가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의 한국 클럽 문화는 ‘비주류 음악과 예술의 대안적 공간’에서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를 허물고 음악을 통해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는 교두보적인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언더그라운드 문화를 지상으로 끌어올려 선보인 이번 전시를 둘러보고 나면 어둡고 음침하기만 한 이미지가 클럽 문화의 좁은 일면에 지나지 않는다는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다. 각자의 개성을 숨기지 않는 많은 사람들로 ‘다양성이 붐볐던’ 언더그라운드 클럽들. 그래서 언더그라운드 클럽이 오늘날 거장이라 불리는 많은 음악가들과 화가들이 탄생한 태반이 되었던 것은 아닐까? 자신의 상처나 고통을 춤과 음악으로써 해소하고, 그 에너지를 타인과 공유하며 그들과 연대한 사람들의 광경은 ‘카오스’를 연상시키지만, 그 속에서 가장 창조적인 씨앗이 자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 굿 나이트: 에너지 플래시
전시기간 : 2019.04.18(목) ~ 2019.08.25(일)
전시장소 :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로 248
현대카드 Storage (B2F)
전시 참여작가 : 알렉스 프레거(Alex Prager), 어슘 비비드 아스트로 포커스(assume vivid astro focus), 벤 켈리(Ben Kelly), 코리 아칸젤(Cory Arcangel), 도로시(Dorothy), 하룬 미르자(Haroon Mirza), 진 마이어슨(Jin Meyerson), 목정욱(Jungwook Mok), 키치로 아다치(Kiichiro Adachi), 로테 앤더슨(Lotte Andersen), 마크 레키(Mark Leckey), 맷 스톡스(Matt Stokes), 페기 구(Peggy Gou), 스벤 마르크트(Sven Marquardt), 볼프강 틸만스(Wolfgnag Tillmans), 이원우(Wonwoo Lee), 우 창(Wu Tsang)
<올댓아트 박찬미 인턴 allthat_art@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