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아 브리코부터 장한나까지…유리천장을 부순 그녀들의 지휘봉

정은주 클래식 음악 칼럼니스트
입력2019.10.30 09:34 입력시간 보기
수정2019.11.12 10:27

여성 지휘자의 시대가 결국에는 오리라!

“나한테는 번호판도 주지 않았어.”
“그래서요?”
“몰래 다른 번호판을 훔쳐서 레이스에 참가했지!”

픽사 디즈니의 인기 작품 <카> 시리즈 중 <카 3 : 새로운 도전> 편의 아주 특별한 장면을 소개합니다. 늦은 밤 허드슨 호넷 박사의 고향 마을 주유소 카페에 모여든 맥퀸, 크루즈 라미레즈, 루이지, 샐리, 메이터 등 주인공들이 할머니 레이스 카의 옛날이야기를 모여 듣게 됩니다.

그는 젊은 시절 레이스 카로 출전하고 싶었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번호판조차 받지 못했다고 고백하죠. 모두 그를 안타깝게 바라봅니다. 그러다 레이스 중 은퇴를 결심한 맥퀸은 자신의 트레이너인 크루즈 라미레즈에게 자신을 대신해서 레이스를 마치라고 말합니다. 몇 초간의 고민 끝에 크루즈 라미레즈는 맥퀸의 번호 95를 새기고, 화려하게 데뷔합니다. 결국 여성 레이스 카로 당당히 우승을 차지하죠. 또 자신의 고유 번호 51번을 달고 레이스 카로 활동합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간직할 엄두도 못 냈던 레이스 카의 꿈을 이룬 거죠. 물론 그 꿈을 이루기까지 남성 캐릭터 맥퀸의 도움이 있었다는 점이 어딘지 마음에 안 들지만요!

또 올여름 큰 인기를 끌었던 <라이온킹 2>에서도 원작과 달라진 점 이하나 있는데요. 바로 스카를 돕는 하이에나의 무리가 여성으로 그려진 점입니다. 몇 십 년 전 개봉했던 원작과 달리 하이에나의 여성 우두머리를 새롭게 등장시킨 것은 다분히 계산된 의도입니다. 실제로도 하이에나는 암컷이 우두머리로 무리를 이끈다고 하죠. <카 3>, <라이온킹 2> 이외에도 몇 년 전부터 여성을 영웅으로 다루는 콘텐츠가 전 세계적으로 늘어가는 추세입니다. 정말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데요. 여성의 사회 진출 비율이 늘어나는 현상과 앞으로 더욱 활발해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강력히 전달하고 있습니다.

10월 초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우주정거장 배터리 교체에 성공한 최초의 여성 우주유영인 크리스티나 코크와 제시카 메어의 모습입니다. 나사 측은 최초의 여성 우주유영자라는 사실을 두드러지게 홍보했습니다.|나사 공식 홈페이지

몇 해 전에는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 ·연준)의 104년 역사상 최초의 여성 의장으로 재닛 옐런이 임명되어 여성의 역할에 대한 여러 화제 몰이를 했었는데요. 결국 4년 만에 남성 후임에게 자리를 물려주긴 했습니다만, 월가의 여성 첫 수장으로 역사에 남을 일이었죠. 10월 중순에는 미 항공우주국 나사가 역사에 남을 두 여성의 소식을 공개했습니다. 지구 상공 400km 밖에 위치한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여성 우주유영인 크리스티나 코크와 제시카 메어가 우주정거장 배터리 교체에 성공한 일인데요. 나사 측은 최고의 인재 두 명이 모두 여성이라는 점을 특히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클래식 음악계에서 여성의 지위는 다른 분야에 비해서 특별하게 두드러지는 편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볼 수 있습니다. 한 예로 오케스트라 연주회에 가서 여성 지휘자를 보신 적 있으신가요? 저는 성시연의 지휘를 딱 한 번 본 적이 있습니다. 그와 함께 연주했던 한 단원은 “대단한 카리스마”가 있다고 했는데요. 그 또한 남성 지휘자와 비교했을 때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어딘지 모르게 조금은 아쉬운 상황입니다. 우리는 왜 여성 지휘자가 이끄는 오케스트라를 쉽게 볼 수 없는 걸까요?

■ 뉴욕필, 메트로폴리탄을 지휘한 첫 여성 지휘자가 있다?

안토니아 브리코는 클래식 음악사 최초로 뉴욕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를 지휘한 첫 여성 지휘자입니다. 네덜란드 출신이지만 미국에서 자랐던 그녀는 평생 어떤 교향악단에서도 정식 채용 제안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저 이벤트성 무대만 전전하다 세상을 떠났습니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지휘자의 삶을 제대로 살지 못했습니다.|라이크 픽쳐스

필자는 네덜란드를 빛낸 100인 목록에 이 사람을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클래식 음악사 최초로 근 백 년 전 뉴욕필, 메트로폴리탄을 지휘한 첫 여성 지휘자가 바로 네덜란드 사람이거든요. ‘뭐 그게 어때서?’라고 여기시면 안 됩니다. 대단한 열정과 노력, 불굴의 의지로 일구어낸 성과거든요. 그의 빛나는 이름은 안토니아 브리코입니다.

그의 전기를 잔잔하게 풀어낸 클래식 음악 영화 <더 컨덕터>의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역경을 딛고 뉴욕에서의 데뷔를 준비하던 브리코는 자신의 지휘를 따르지 않던 남성 연주자와 한 판 승부를 가립니다. 바로 악장의 스트라디바리우스를 빼앗아 부시려고 위협하죠. 스트라디바리우스는 1700년대부터 이탈리아의 크레모나에서 만들어진 인류의 문화유산 중 하나입니다. 한마디로 굉장히 비싸고 대단한 악기인데요. 그런 악기를 공중에 든 채 남성 악장에게 경고하고 공연장을 빠져나갑니다. 연극은 끝났어라고 중얼거리면서 말이죠.

“나의 악기는 남성 연주자들입니다.
그런데 당신들이 내 말을 듣지 않으니 나는 연주할 수가 없습니다.”

그는 음악을 사랑했던 한 사람이었습니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남성은 겪지 않아도 될 많은 시련을 겪었고요. 1910년 즈음 네덜란드의 한 성당에서 슈바이처 박사가 오르간을 연주하던 날 브리코는 음악가가 되기로 했습니다. 네덜란드 미혼모의 딸로 출생해 미국에서 출생의 비밀을 모른 채 자랐던 그는 지휘자의 꿈을 꾸기 시작하는데요. 불우한 환경을 딛고 뉴욕 뒷골목의 퇴폐 카바레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며 돈을 번 그는 음악 학교 입학에 성공합니다. 그러나 늘 좋은 일만 일어날 수는 없는 게 인생이겠지요. 당시 그가 살던 시대의 여성상은 집에서 자녀를 낳고 살림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았습니다. 극 중 그녀를 사랑하던 남자친구마저도 그가 어렵게 입학한 베를린의 음악대학까지 따라와서 ‘그냥 나랑 살자’는 엉뚱한 제안을 합니다.

“밍겔베르크 씨의 부인도 훌륭한 성악가였어.
그러나 지금은 노래하지 않아.”

브리코는 이 한 마디를 남기고 청혼을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성공적인 데뷔를 이룹니다. 인생이 그런 것 같습니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가 참 어려운 것 같아요.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죽을 때까지 제대로 된 교향악단의 정식 채용을 받지 못했던 브리코. 그가 요즘 세상, 특히 우리나라에서 태어났다면 상황은 많이 달랐을 겁니다.

▲ 2016년 루체른 페스티벌에서 여성 지휘자 콘스탄챠 구르지 외 5명을 초청해 음악회를 열었습니다. 여성 지휘자의 모습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는 당시의 인터뷰 영상을 소개합니다.

■ 1904년 미국의 음악가 노조 여성 가입 절대 불가!
불과 백 년 전만 해도 클래식 음악계는 여성의 진입 자체가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미국의 음악가 노조는 1904년까지 여성 음악가의 가입을 막았고요. 20년 후 샌프란시스코 심포니가 5명의 여성 단원을 고용하면서 이러한 분위기가 누그러들기 시작했는데요. 또 1913년 런던에서 최초로 여성 음악가가 오케스트라에 취직했다는 기록도 전해집니다. 우리가 익히 잘 아는 뉴욕필의 경우 무려 1966년까지 여성 단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군요! 또 BBC 심포니는 단원의 1/4을 여성 연주자로 채용했는데요. 여성 첼리스트의 포즈가 선정적일 수 있다는 이유로 꽤 오랜 세월 동안 남성 첼리스트를 고집했습니다.

참 그 유명한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또한 지금까지도 중요한 공연의 경우 여성 연주자의 지명을 하지 않거나 아주 미미하게 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여성 단체의 항의에 “우리는 여성 연주자를 특별히 차별하지 않는다”는 답변을 내놓고 있는데요. 그러나 우리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왜 빈 필의 중요한 공연에서 여성 연주자의 비율이 아주 낮은지에 대해서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휘 경력을 쌓아가는 여성들의 집단입니다.”
아메리칸 코랄 오케스트라 지휘자 주디스 스모기(judith somogi)

20세기 초 클래식 음악계는 남성 주도적인 경향이 지배적이었습니다. 파리 국립음악원 피아노 전공의 졸업 사진입니다. 여학생이 이렇게 많았는데도 지휘자나 고용된 연주자로 살아갈 수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참 안타깝습니다. ⓒBibliotheque nationale de France

■ 남성보다 더 남성적이어야만 했던 초기의 여성 지휘자
1명의 여성이 100명의 남성을 이끌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했을까요? 그들보다 더 강해 보여야 했을 것입니다. 실제 그의 모습이 그렇든 아니든 간에 오케스트라를 이끌려면 민주주의를 버려야 했습니다. 그 때문에 지휘대에 도전한 여성의 특징은 남성보다 더 남성적인 행동을 보여주었다는 점인데요. 남성의 복장을 한 채 연주회장의 어두운 조명 아래, 마치 남성 같은 이미지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아니면 1명의 여성이 100명의 여성을 이끄는 편도 지휘대에 오르는 조금은 쉬운 방법이었을 겁니다. 여성 지휘자가 생겨나면서 여성 연주자로 구성된 연주 단체도 생기기 시작했는데요. 그러나 이러한 단체는 오래 운영되지 못하거나 중간에 남성 연주자를 고용하는 등 꾸준한 역사를 일구지는 못했습니다.

■ 20세기에 처음 등장한 여성 지휘자들
20세기에 처음 등장한 여성 지휘자들의 이야기를 간단히 소개해드릴게요. 우선 비어트리스 브라운은 펜실베이니아 스크랜턴에서 오케스트라를 이끌었습니다. 주디스 소모기는 아메리칸 코랄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 활동했고요. 말러의 조카 딸인 알마 로제는 스스로 ‘빈 왈츠 소녀들’이라는 오케스트라를 창단해 지휘 활동을 했습니다.

또 프랑스의 잔느 에브라르, 캐슬린 리디크는 런던 여성 스트링 오케스트라를 창설해 어렵게 단체를 이끌었고요. 마거릿 힐리스는 시카고 심포니 합창단의 지휘자로 활약했습니다. 에델 제린스카는 보스턴 필하모닉을 창설했지만, 별도로 보스턴 여성 심포니 오케스트라도 만들어 여성 지휘자로 두각을 나타냈지만 결국 은퇴야 했습니다. 앞서 소개한 안토니아 브리코는 메트로폴리탄에서 “여성 밑에서 노래할 수 없다”는 바리톤 가수의 항의에 실제로 해고됐습니다.

여성 지휘자 나디아 불랑제는 힘든 영역에서 가장 많은 역사를 이루었다고 평가받습니다. |위키피디아

여성 지휘자 중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인정받는 사람은 프랑스의 여성 나디아 불랑제입니다. 그는 포레와 스트라빈스키에게 공부했고, 보스턴 심포니와 필라델피아를 최초로 지휘한 여성입니다. 그 이후에는 이렇다 할 여성 지휘자의 출연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1976년 세라 콜드월이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라 트라비아타>를 지휘하며 여성 지휘자 계로 진출합니다, 이후 시안 에드워즈가 등장해 런던 코번트 가든에서 지휘한 첫 여성으로 나섰는데요. 그는 이곳에서 3년 동안 지휘하며 여러 작품을 성공시켰습니다. 그런데도 정식 채용되지 못했고, 유명 연주 단체의 이벤트성 지휘를 이어갔죠. 결국 영국 국립 오페라의 음악 감독으로 임명되었지만, 그마저도 3년 만에 그만두었습니다.

이렇듯 20세기부터 꾸준히 등장해 온 여성 지휘자들로 인해 점점 지휘대의 벽이 낮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명 오케스트라에 정식 채용되거나 중요한 연주를 맡기까지 아직은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냥 지휘대에 올라 최고의 연주인 것처럼 지휘하면 됩니다.”
시안 에드워즈

▲ 일상복 차림으로 오슬로 필하모닉 단원들과 리허설 중인 지휘자 장한나의 모습입니다. 음악을 즐기고 있다는 표정 보이시나요?

■ 세계에서 맹활약 중인 성시연·장한나·김은선

세계에서 맹활약 중인 여성 지휘자 (왼쪽부터) 성시연, 장한나, 김은선 ⓒugo ponte

성시연은 세계에서 인정한 여성 지휘자입니다. 경기필과 4년 계약을 종료한 후 올해부터 유럽과 미국 등에서 객원 지휘자로 활동 중이고요. 또 장한나는 첼로 신동에서 여성 지휘자로 성장했습니다. 아직 젊지만 대단한 여성 지휘자로 유럽에서 성실히 공연에 임하고 있는데요. 트론헤임 오케스트라의 2022/23년 시즌까지 계약한 상태입니다. 김은선은 베를린 국립오페라를 지휘하며 데뷔한 이후 유럽과 미국의 중요한 무대에 오르고 있습니다. 세 분 모두 한국이 낳은 멋진 여성 지휘자입니다!

2014년 1월 성시연이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예술단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지휘자로 정식 고용된 클래식 음악사의 대단했던 사건인데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국립 오케스트라의 수장으로 여성 지휘자가 오른 것은 극히 이례적인 현상이었거든요. 한스 아이슬러 대학 출신인 그는 2006년 게오르크 솔티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한 후 세계 유명 오케스트라를 객원 지휘했습니다. 그의 여성 지휘자 선배들처럼요. 그러던 중 정명훈의 부지휘자로 서울시향에서 지휘봉을 잡았고요. 이후 4년간 경기필을 열정적으로 이끌었는데요. 그의 공연은 매번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계약 종료 후 그는 유럽과 미국 등에서 올해의 연주 일정을 진행 중입니다.

장한나는 대단한 음악 신동이었습니다. 스승인 거장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는 그를 처음 보았을 때 “첼로가 스스로 걸어 나오는 줄 알았다”는 극찬을 했을 정도인데요. 2007년 성남아트센터에서 첫 지휘 데뷔를 한 후, 지휘자로 꾸준한 커리어를 쌓아왔습니다. 유럽에서 활동하는 여성 지휘자로 한때 불안정해 보인 시기도 있었지만요. 현재 1909년 창단된 노르웨이의 트론헤임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 2022/23년 시즌까지 계약한 상태라고 합니다.

김은선은 헤수스 로페즈 코보스 국제오페라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여성 지휘자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스페인 마드리드의 왕립 오페라극장 부지휘자로 활동하며 점점 유럽에서의 입지를 쌓아온 지휘자입니다. 데뷔 이후 지금까지 쉬지 않고 유럽과 미국의 중요한 공연을 맡아 지휘 중입니다.

세계적으로도 귀한 여성 지휘자가 우리나라에서 세 명이나 탄생했다니 어딘지 모르게 어깨가 으쓱해지는 기분입니다. 앞으로 성시연과 장한나가 그리고 김은선이 만들어 갈 여성 지휘자계의 멋있는 역사를 지켜보고 싶네요.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여성 지휘자로 활동하는 분들과 지휘를 공부하는 여성분들 모두 힘내세요! 그리고 여성 연주자의 참여를 그렇게 반기지 않는 클래식 음악계의 악습이 하루빨리 개선되기를 소원해봅니다. 브라바(brava)!

▲ 베토벤 <교향곡 9번>을 연주하는 경기필과 지휘자 성시연. 그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이 시대를 대표하는 여성 지휘자 중 한 명으로 활발한 활동 중입니다.

<정은주 클래식 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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