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린과 비올라, 1인 2악기 연주하는 무대 위 멀티 플레이어

정은주 클래식 음악 칼럼니스트
입력2019.11.19 10:05 입력시간 보기
수정2019.11.19 10:07

바이올린과 비올라 두 마리 토끼를 잡다?
1인 2악기 연주하는 무대의 멀티플레이어

지난 10월 방송된 <비긴 어게인 3>의 피에트라 다리 편에 출연한 헨리는 바이올린 연주를 선보였습니다. 아름다운 피에트라 다리 위에서 퀸의 <위 아 더 챔피언>을 연주하던 거리의 피아니스트와 함께 즉흥 듀오로 나섰는데요. 화면 속 현지의 청중들도 무척이나 그들의 연주에 행복해하는 표정이 역력했었죠. 붉은 바지에 갈색 선글라스를 쓴 헨리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탄성을 자아낼 수밖에 없더군요. 정말 멋졌습니다. 글로 표현이 안 됩니다. 먼저 당시 헨리의 바이올린 연주를 함께 감상해보시죠.

https://tv.naver.com/v/10284062

어떠셨나요? 헨리, 진짜 멋있는 바이올리니스트군요! 노래부터 연기, 클래식 음악까지 그의 다재다능함에 박수를 보낼 뿐입니다. 그런데 말이죠. 클래식 음악가 중에는 헨리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재능을 발휘하는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가령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다가 지휘를 겸하는 음악도 있고요. 정명훈, 김대진, 김선욱 등의 연주자가 그러한 경우이고요. 작곡을 병행하기도 하고, 또 오케스트라 악기 연주자 중 지휘를 겸하는 분들도 계시고요.

특히 그중에서도 오늘은 바이올린과 비올라 두 악기를 동시에 연주하는 현악기 연주자를 소개해드릴게요. 두 악기를 너무나도 사랑하는 분들입니다. 바이올린만 연주하자니 비올라가 아프고, 또 비올라만 연주하자니 바이올린이 그리운 그런 마음이겠죠. 바이올리니스트라고 해서 비올라를 연주해서는 안 된다는 법은 없으니까요!

■ 바이올린 배우다 비올라도 배운다?

어린 시절 처음 배우는 악기는 피아노 혹은 바이올린 둘 중에 하나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간단한 이유는 어린이가 앉거나 들기에 편안한 점, 그리고 높은음자리표를 보는 악기라는 점이 유리하게 작용할 것입니다.|픽사베이

어린 시절 악기 하나 배운 일은 누구에게나 있을 법합니다. 당신은 어떤 악기를 처음으로 배웠나요? 10명 중 7명은 피아노라고 대답할 거예요. 저도 그랬거든요. 그중 2명은 바이올린입니다. 분명히! 나머지 한 명은 첼로나 플루트 혹은 제가 예상하지 못한 그런 악기겠죠.

바이올린은 악기를 배우는 사람들이 고르는 첫 번째 혹은 두 번째 순서에 있습니다. 그 이유를 단순하게 설명하자면 배우기 쉽기 때문입니다. 어린이들이 스스로 들고 연주할 수 있는 크기와 무게로 시작할 수 있고, 높은음자리표가 그려진 가장 익히기 쉬운 악보를 보게 되니까요. 그런데 이렇게 바이올린을 배우던 중에 비올라에 호기심을 갖는 학생도 종종 생겨납니다. 악기의 모양도 비슷하고 왠지 바이올린을 할 수 있으니 비올라도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거죠! 실제로 비올리스트로 활동하는 연주자 대부분 아니 거의 모든 비올리스트는 바이올린을 배우다가 비올라만을 선택한 경우입니다. 자신에게 더 잘 맞는 악기를 찾기 위해 바이올린을 배웠던 거죠!

■ 높은음자리표에서 가온음자리표까지
바이올린은 높은음자리표의 음역을, 비올라는 가온음자리표의 음역을 담당합니다. 두 악기는 비슷한 모양이지만 음색도 다르고 음역도 다른데요. 어떻게 바이올린도 연주하고 비올라도 연주할 수 있는 걸까요? 저라면 헷갈려서 절대 못 할 것 같거든요. 바이올린을 들고 높은음자리표의 악보를 읽어야 하고, 비올라는 들고는 가온음자리표의 음계를 읽어가야 하는 거잖아요! 너무 복잡하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날은 바이올린을 들고 연주하고, 또 어떤 날은 비올라를 들고 무대로 오르는 재치 있는 현악기 연주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어린 시절 바이올린을 배우다가 비올라를 배웠을 겁니다. 그러나 비올리스트가 되는 대신 두 악기를 모두 연주하기로 마음을 먹었겠죠. 그리고 마음 내키는 대로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번갈아 들며 연주 활동을 이어갑니다. 과연 클래식 음악계의 멀티플레이어라 할 수 있겠죠.

■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든 사나이 줄리안 라츨린

줄리안 라츨린의 어린 시절 꿈은 첼리스트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번갈아 연주하며 지냅니다. 거기에 만족하지 않은 채, 지휘자로도 활발히 무대에 오릅니다. |위키피디아

줄리안 라츨린(Julian Rachlin, 1974년 12월 8일 리투아니아 출생)은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연주하는 바이올리니스트 겸 비올리스트입니다. 지휘자로도 활발한 활동 중이고요. 무려 1인 3역을 해내는 연주자인데요. 그는 1704년에 스트라디바리우스가 제작한 명 바이올린 ‘ex Liebig’을 연주하고요. 또 비올라는 로렌조 스토리오니가 1785년에 제작한 비올라를 연주합니다. 이 두 악기는 앙겔리카 프로코프 재단에서 대여 중인데요. 두 악기의 가격을 합치면 상상하지 못할 액수가 됩니다. 그래서 그의 공연에서 두 악기를 모두 연주하는 경우 이러한 점이 이슈가 되기도 한답니다. 필자는 실제로 그 두 대의 명기를 한 무대에서 꺼내 연주하는 독주회에 다녀온 일이 있는데요. 정말 잊지 못할 연주회 중 하나로 기억됩니다.

줄리안 라츨린이 스트라디바리우스 ‘ex liebig’ 로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이스라일필하모닉과 협연, 지휘하는 모습입니다. 그의 스트라디바리우스가 내는 음색에 귀를 기울여보세요. 정말 아름답습니다. 바이올린, 비올라, 지휘까지 1인 3역을 해내는 클래식 연주자 줄리안 라츨린, 정말 대단합니다. 그는 미국의 매거진 <플레이빌>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는데요.

“나는 어릴 때부터 첼리스트가 될 거라 믿고 자랐습니다. 그러나 그 꿈은 이루지 못했어요.
그러나 비올라는 첼로에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나는 바이올린과 비올라에게서 첼로를 연주하기도 합니다.”

그의 아버지는 첼리스트였습니다. 자연스레 어려서부터 첼로의 편안하고 안정감 있는 소리를 많이 듣고 자랐을 것입니다. 그런 영향에서였을까요? 그는 첼리스트가 되길 원했는데요.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번갈아 연주하면서도 첼로를 가장 사랑한다는 말로 들리기도 하네요. 여하튼 줄리안 라츨린의 이름을 기억해두시길요. 현재 세계에서도 몇 안 되는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동시에 연주하는 훌륭한 연주자거든요!

2011년 베르비에 페스티벌에서 바르토크의 <피아노 오중주>에서 비올라를 맡아 연주 중인 라츨린의 모습입니다. 맨 왼쪽부터 바이올리니스트 바딤 레핀과 발레리 소콜로프, 줄리안 라츨린, 첼리스트 알렉산드르 부스로, 피아니스트 데니스 무추예프입니다.

■ 바이올린과 비올라, 두 악기의 비르투오지 이유라

이유라는 바이올린 ‘Gagliano’와 비올라 ‘Douglas Cox’를 번갈아 연주합니다. 5세부터 바이올린 신동으로 세간의 이목을 끈 그는 15세부터 비올라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두 악기에서 최상의 연주를 보여주는 비르투오지로 활동 중입니다.|Robert Bailey

이유라는 단순히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좋아해서 둘 다 연주하는 경우가 절대 아닙니다. 어린 시절 천재, 신동으로 명성을 크게 얻으며 화려하게 세상에 데뷔한 연주자인데요. 무려 11세에 요요 마, 장영주 등이 소속되어 있던 세계적인 아티스트 매니지먼트사 ICM과 전속 계약을 맺으며 큰 화제를 모은 바 있습니다.

그러던 2006년 제6회 레오폴트 모차르트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 1위와 함께 2007년 미국 클래식 최고 권위의 에이버리 피셔 커리어 그랜트상을 수상하는 등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했는데요. 또 15세부터 비올라를 공부한 그는 2013년 비올라로 독일 ARD 국제 음악 콩쿠르 1위를 차지하며 바이올린과 비올라 두 악기에서 최고의 실력을 인정받았습니다.

▼ 이유라가 비올라를 들고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를 연주하고 있습니다.

“나는 내 심장이 나에게 하는 말 그대로 연주해요. 그리고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요.
악보에 그려진 음표와 쉼표를 지켜서 연주하는 일은 나에게 없어요. 그것들은 단지 방법을 알려줄 뿐이에요.”
2006년 이유라가 자신의 블로그에 남겼던 글 中

지난달 말 바이올리니스트 겸 비올리스트로 활동 중인 이유라가 USC 쏜톤음대의 부교수로 임명되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축하의 인사를 전합니다! 앞으로도 바이올린과 비올라의 아름다운 연주로 만나길 고대합니다!

바이올린과 비올라, 둘 다 잘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을지. 그들의 노력에 큰 박수를 보냅니다. 한 가지 분야에서 성공하기도 힘든데 말이죠. 왜 살다 보면 그런 사람을 가끔 만나는 것 같아요. 한 시도 쉬지 않고 무언가 할 일을 찾아가는 사람들 있잖아요. 핀커스 주커만, 줄리안 라츨린, 그리고 이유라도 왠지 그런 성격을 가진 건 아닌지 상상해보게 되네요. 또 그들이 이어온 멀티플레이어의 역사가 누구에게로 이어질지 궁금합니다. 어쨌거나 흔한 풍경은 아니니까요. 혹시라도 그들이 한 무대에서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모두 꺼내 연주하는 공연이 열린다면 반드시 한 번 꼭 가보시길요! 흔히 볼 수 없는 이색적인 구성에 그 어떤 날 보다 아름다운 음악회로 남을 테니까요.

<정은주 클래식 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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