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 부산에서 막을 내린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월드투어가 3월 14일 서울에서 개막한다. 이번 공연은 아시아와 중동에 걸쳐 공연되는 역대 최대 규모 월드 투어의 일환으로, 2012년 내한 이후 7년 만에 성사된 <오페라의 유령> 국내 공연이다.
<오페라의 유령>이 얼마나 훌륭한 작품인지에 대해선 이미 다른 글에서도 많이 다루었으니, 오늘은 몰라도 상관없지만 알고 보면 더 재밌는 <오페라의 유령> TMI를 소개한다.
“원작은 추리물이었다?”
흔히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의 장르를 로맨스라고 분류한다. 물론 정체를 숨기고 크리스틴에게 접근해 나중에는 납치와 감금까지 저지르는 ‘유령’의 행위는 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로맨틱하다고 말하긴 힘들지만,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이 세 남녀의 사랑에 초점을 맞춘 작품임은 확실하니 말이다.
그러나 가스통 르루가 1910년 출판한 원작 소설은 로맨스보다는 추리물에 가까운 작품이었다. 오페라 하우스에서 일어나는 기이한 협박과 살인 사건을 추적하다 보니 그 중심엔 크리스틴을 짝사랑하는 ‘유령’이 있었다는 얘기다. 때문에 ‘유령’이 오페라 하우스 지하 구석구석에 설치해둔 함정이나 ‘유령’의 기이한 과거사 등이 자세하게 묘사된다. 라울을 도와 유령의 뒤를 쫓는 ‘페르시아인’도 원작 팬들에겐 무척이나 사랑받는 캐릭터지만 아쉽게도 뮤지컬엔 등장하지 않는다.
“너의 이름은”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에는 ‘유령’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원어로는 ‘The Phantom’, 한국어로는 ‘유령’이라고 불릴 뿐이다. 그의 이름은 원작 소설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바로 ‘에릭’이다. 성은 없이 이름만, 흔한 철자인 ‘Eric’이 아닌 ‘Erik’으로 표기하는 게 특징이다.
“파리 오페라 하우스엔 진짜로 유령이 살까?”
<오페라의 유령>의 배경이 된 파리 오페라 하우스는 실존하는 극장으로, 1875년 개관했다. 건축가 샤를 가르니에의 이름을 따 ‘오페라 가르니에(Opera Garnier)’나 ‘가르니에 궁(Palais Garnier)’이라 부르기도 한다. 약 2000명을 수용하는 대극장인데, 지금은 오페라보다는 발레를 주로 올리고 있다. <오페라의 유령>의 명성과 아름다운 건축물 덕에 공연이 없는 시간에도 늘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명소다.
<오페라의 유령>에 나오는 미스터리한 사건들 중 일부는 실제 파리 오페라 하우스에서 있었던 일을 모티브로 한 것이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샹들리에 추락 장면이다. 실제로 1896년 파리 오페라 하우스에서 샹들리에가 추락하는 사고가 있었고, 이로 인해 직원 1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유령과 크리스틴이 보트를 타고 지하 호수를 건너는 장면은 <오페라의 유령>의 시그니처라고 할 수 있는 장면이다. 실제 오페라 하우스에는 이 정도로 웅장하고 아름다운 호수는 없지만, 실내 수영장 정도 크기의 저수조가 있다. 공사 중 부지에서 지하수가 분출되자 펌프로 물을 계속 퍼낸 뒤 저수조를 만든 것이다. 가스통 르루는 이 일화에서 영감을 얻어 <오페라의 유령> 속 환상적인 지하 호수를 만들어냈다고 한다.
이 저수조는 아쉽게도 일반 관객들은 접근할 수 없다. 그러나 다른 곳에서 <오페라의 유령>의 흔적을 느낄 수 있으니, 바로 ‘5번 박스석’이다. 극 중 ‘유령’은 극장주들에게 5번 박스석은 자신의 지정석이니 절대 다른 관객에게 판매하지 말라는 편지를 보낸다. 이 ‘진상짓’ 에피소드가 워낙 유명한 탓에, 실제 파리 오페라 하우스 5번 박스석에는 ‘오페라의 유령의 자리(loge du fantome de l‘opera)’라는 팻말이 붙어 있다.
“왜 포스터랑 공연 속 가면이 다르게 생겼지?”
<오페라의 유령> 포스터를 보다 보면 생기는 의문이 있다. 포스터 속 가면은 입을 제외한 얼굴 전체를 가리는 디자인인 반면, 실제 공연에서 사용되는 가면은 배우의 얼굴 오른쪽 반만 가린다. 왜 이런 차이가 생겼을까? 원래는 공연에서도 포스터와 비슷하게 얼굴 대부분을 가리는 가면을 사용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유령’ 역 배우가 노래하는 데 어려움을 호소했다고 한다. 관객 입장에서도 주연 배우의 얼굴을 다 가려버리면 표정 연기도 볼 수 없으니 불만이 터져 나왔을 테다. 이런 이유로 지금과 같은 형태의 가면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유령의 얼굴”
그렇다면 가면 속 유령의 얼굴은 어떻게 생겼을까? 유령은 공연 중 1막에 한 번, 2막에 한 번 가면을 벗는다. 원작 소설 속 에릭의 얼굴은 ‘해골 같다’고 묘사되어 있지만, 뮤지컬에선 화상을 입은 듯한 모습으로 표현된다. 이 분장은 하는 데 약 2시간, 지우는 데 30분가량이 소요된다고 한다. 2개의 가발(하나는 포마드로 빗어 넘긴 검은 머리카락, 하나는 그 밑에 숨겨진 ‘유령’의 진짜 머리카락)과 2종류의 렌즈가 사용된다.
“크리스틴은 사라 브라이트만을 위한 캐릭터?”
지금은 모르는 사람이 없는 세계적인 팝페라 가수지만, <오페라의 유령>의 크리스틴을 연기하기 전까지 사라 브라이트만은 무명에 가까웠다.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 <캣츠>에 출연했던 사라 브라이트만은 그 인연으로 1984년 웨버와 결혼한다. 차기작을 작곡하던 웨버는 처음부터 사라 브라이트만을 캐스팅할 것을 염두에 두고 배역을 썼는데, 그게 바로 <오페라의 유령>의 크리스틴이었다. 실제로 사라 브라이트만은 크리스틴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냈고, 작품의 성공과 함께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했다.
그러나 <오페라의 유령>이 런던 공연을 성공시키고 뉴욕 브로드웨이로 진출할 때 문제가 생겼다. 미국 배우 노조가 브로드웨이 공연엔 미국 배우가 출연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영국인인 사라 브라이트만의 출연을 막으려 한 것이다. 이에 웨버는 사라 브라이트만이 출연하지 않으면 브로드웨이 공연을 진행하지 않겠다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결국엔 웨버의 다음 런던 공연에 미국인 배우를 출연시키겠다는 조건으로 사라 브라이트만의 출연이 성사됐고, 브로드웨이 관객들도 사라 브라이트만의 아름다운 목소리로 크리스틴의 노래를 들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이런 극적인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1990년 이혼했는데, 그 후에도 친구로서의 우정은 이어나가고 있다고 한다. 2011년 열린 <오페라의 유령> 25주년 특별공연에서 웨버는 커튼콜에 특별출연한 사라 브라이트만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조승우가 나올 뻔했다?”
<오페라의 유령>은 지금까지 국내에서 총 다섯 번 공연됐다. 2001년 라이선스 공연을 시작으로 2005년엔 첫 내한공연이 성사됐고, 2009년엔 두 번째 라이선스 공연, 2012년과 2019년엔 또다시 내한공연으로 관객들을 만났다. 그런데 이중 첫 번째 라이선스 공연에 조승우가 출연할 뻔했다는 사실!
당시 조승우는 라울 역으로 <오페라의 유령> 최종 오디션까지 보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불합격 통보를 받았고, 마침 출연 제의를 받은 영화 <후아유>와 출연 계약을 맺는다. 그런데 이게 웬일, <오페라의 유령> 제작사 측에서 불합격 통보는 직원의 실수였다고 연락이 온 것이다. 그러나 이미 영화 계약을 맺은 뒤라 조승우와 <오페라의 유령>의 인연은 그렇게 끝이 났다. 하지만 조승우는 영화 출연을 계기로 충무로의 라이징 스타로 떠올랐고 최종적으로 라울을 연기하게 된 류정한도 극찬을 받았으니, 어쩌면 더 잘 된 일인지도 모른다. 여담으로 조승우와 류정한, 두 사람은 이후 2004년 <지킬앤하이드>로 같은 역할을 맡게 됐다.
■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월드투어
2020.03.14 ~ 2020.06.27
서울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
2020년 7월~8월
대구 계명아트센터
공연 시간 150분
8세 이상 관람가(미취학 아동 입장불가)
조나단 록스머스, 클레어 라이언, 맷 레이시 등 출연
<올댓아트 정다윤 에디터 allthat_art@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