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맞이 클래식 추천’ 첫 번째 글에선 ‘봄’을 주제로 한 음악과 음악가들의 삶을 살펴보았지요. 이번엔 봄밤에 듣기 좋은 ‘달빛’에 관한 음악, 그리고 음악가들의 삶을 들여다볼까 합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음악들은 모두 4분 남짓으로, 비교적 짧습니다. 아껴두었다가 자기 전 머리맡에 틀고 주무셔도 좋겠습니다.
“드뷔시의 밤과 달빛”
오늘 주제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이지요. 프랑스 작곡가 클로드 드뷔시입니다. 모두가 알고 계신 모음곡 <베르가마스크> 중 ‘달빛’에서 느낄 수 있는 드뷔시의 풍부한 음악성은 다른 곡들에도 묻어있습니다. 그는 인상파 화가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음악에서의 인상주의에 관심을 가졌는데요. 인상파 화가, 특히 고흐의 그림을 떠올리며 드뷔시의 음악을 들으시면 감상이 배가 되겠습니다.
◇아름다운 저녁, Beau Soir
‘아름다운 저녁’은 본래 성악곡이지만 그 선율을 바이올린이 대신 노래하기도 하지요.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선생님은 최근 ‘Beau Soir’라는 앨범을 발매하기도 했는데요. 드뷔시의 작품에서 차용한 이름입니다.
“저녁노을에 강물은 장밋빛으로 물들고 산들바람이 보리밭 위를 지날 때, 행복을 바라는 마음이 솟아나 삶에 고통받은 마음을 달랜다. 우리는 젊고, 저녁은 아름답지 하지만 우리는 흘러가는 이 물결처럼 떠났으니 물결은 바다를 향해, 우리는 무덤을 향해...”
-<아름다운 저녁> 가사 일부-
폴 부르제의 시에 곡을 붙인 이 곡에서 드뷔시의 몽환적인 분위기를 경험해보세요. 희미하면서도 그윽하게 펼쳐진 밤 풍경을 노래하는 듯하더니, 허무하게 사라져버립니다. 한순간의 꿈처럼요. 드뷔시는 이 음악을 16세 즈음 작곡했습니다. 10대 소년이 지닌 감수성이 이토록 애잔하다니, 놀라울 따름이지요.
◇별이 빛나는 밤, Nuit D‘etoiles
익숙한 제목의 이 곡은 고흐의 작품 ‘별이 빛나는 밤’을 떠올리게 합니다. 쏟아질 듯 수많은 별들 아래서 사랑하는 이를 떠올리는 장면이 연상되는데요. 부드럽고 여유로우면서도 찬란합니다. 드뷔시가 18세일 때 작곡한 곡입니다.
“별이 빛나는 밤 너의 날개 아래, 너의 바람과 향기 아래 슬픈 한숨의 노래... 나는 스러진 사랑을 꿈꾸네...”
-<별이 빛나는 밤> 가사 일부-
피아노 반주는 아르페지오 화성으로 진행됩니다. 빛나는 별을 상징하지요. 바로 여기서 드뷔시의 인상주의 성향을 엿볼 수 있는데요. 그의 다른 곡들도 이런 식입니다. 드뷔시는 자신이 바라본 현상의 아름다움을 곧장 음악에 투영했습니다. 몽환적인 악풍은 ‘멜랑꼴리’한 프랑스 음악의 특징이기도 하지요.
“따듯한 감성의 사무엘 바버”
20세기 미국의 작곡가 사무엘 바버는 낭만주의가 후퇴하고 현대음악이 성행하던 시기에, 꿋꿋하게 낭만음악을 고집하던 후기 낭만파 음악가입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현대음악보다 아름답고 낭만적인 음악이 더 가치 있다는 사상을 가졌지요.
사무엘 바버는 따스한 감성을 지닌 작곡가입니다. 그의 작품은 대체로 감상적이면서도 건실하지요. 그의 음악은 관중들에게 사랑받았지만, 비평가들에겐 신랄한 비판과 무시를 면치 못했습니다. 클래식의 본고장인 유럽이 아닌 미국에서 활동했으며, 낭만주의 전성기에서 수십 년 늦게 태어났기 때문에요.
◇환히 빛나는 이 밤, Sure on this shining night
‘환히 빛나는 이 밤’은 시인 겸 소설가, 저널리스트이면서 각본가였던 제임스 에이지의 시에 곡조를 붙인 가곡입니다. 솔로와 합창으로 많이 연주되지만, 첼로 버전의 위 음악을 추천합니다.
별빛 가득한 밤, 화자 홀로 눈물 흘리며 정처 없이 떠돌고 있습니다. 내면의 고통을 담담히 낭독하고 있지요. 끝부분에 집중해보세요. 첼로의 독백은 끝났지만, 피아노 화성은 반복적으로 여러 번 나타납니다. 화자의 슬픔과는 달리 천진한 빛을 내뿜는 별들처럼요.
이 곡은 당시 10만 부 이상의 악보가 판매될 정도로 인기가 좋았습니다. 이에 얽힌 재밌는 일화도 있지요. 1979년 뉴욕의 새 아파트로 이사한 사무엘 바버는 한 친구에게 연락하기 위해 공중전화 부스를 찾았습니다. 하지만 친구의 전화번호를 까먹은 바버는, 그의 번호를 요청하기 위해 교환원에게 전화했어요. 하지만 바버의 친구는 유명인이었기에, 교환원은 선뜻 번호를 알려주기 꺼려 했습니다. 바버는 “나는 그의 친구 작곡가 사무엘 바버”라고 이야기하죠. 그러자 교환원은 자신이 ‘환히 빛나는 이 밤’을 너무 좋아한다며, 첫 소절을 부른다면 번호를 알려주겠다고 합니다. 바버는 곡을 완벽하게 불렀고 친구의 번호도 얻을 수 있었어요.
오랜 시간 사무엘 바버는 술자리에서 이 이야기를 안줏거리 삼았다고 합니다.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이었던 셈이죠.
“피아노의 시인, 쇼팽”
쇼팽의 ‘녹턴’은 너무 익숙해서 다소 식상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밤’을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음악이지요. ‘녹턴’이라는 단어는 ‘야상곡’, 즉 밤에 부르는 노래라는 의미입니다. 쇼팽은 스스로 자신의 녹턴에 대해 ‘피아노로 부르는 노래’라고 지칭했습니다. 그만큼 내면의 다양한 감정을 음악으로 녹여냈죠.
◇녹턴 20번 Op. Posth
쇼팽의 녹턴, 그중 20번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이 곡은 쇼팽이 20세 때 고국 폴란드를 떠나 오스트리아에 도착한 후 작곡했습니다. 조국 폴란드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누나 루트비카 쇼팽에게 헌정한 작품입니다. 쇼팽이 세상을 떠난 뒤 발간됐지요.
녹턴 20번은 영화 <피아니스트>에 등장하면서 일반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노래로 등극합니다. 단조로운 선율이지만, 장식음으로 인해 아름답고 화려한 색채를 자아내지요. 단조의 멜로디가 장조로 마무리되는 것 역시 인상 깊습니다. 슬픔과 행복이 교차하지요. 쇼팽의 ‘녹턴’이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이유입니다.
<올댓아트 김예림 인턴 allthat_art@naver.com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