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멀어졌는데, 마음은 더 가깝네···코로나 시대, 팬들과의 소통 ‘유료화’하는 K팝

김지혜 기자
SM엔터테인먼트 팬 커뮤니티 앱 ‘리슨’이 지난 2월부터 운영 중인 “최애와 나만의 프라이빗 메시지” 서비스 ‘디어 유 버블’.  리슨 화면 캡처

SM엔터테인먼트 팬 커뮤니티 앱 ‘리슨’이 지난 2월부터 운영 중인 “최애와 나만의 프라이빗 메시지” 서비스 ‘디어 유 버블’. 리슨 화면 캡처

“누나, 오늘 날씨가 너무 좋은데 뭐하고 있어요? 밥은 먹었어요? 저는 오늘 햄버거 먹었어요.”

K팝 그룹 NCT의 팬 최모씨(30)는 요즘 들어 스마트폰 알림을 확인하는 것이 즐겁다. 코로나19 관련 안전 안내 문자와 업무용 카카오톡 대화로 가득했던 알림창을 새로이 채우기 시작한 NCT 멤버들의 메시지 때문이다. 모바일 메신저를 통해 문자, 사진, 음성, 이모티콘 등 다양한 형식을 타고 시시때때로 발송되는 일상적 메시지에 “점심 메뉴는 파스타였다” 정도의 간단한 답장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최씨는 멤버들과 한층 친밀한 소통을 나누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최씨가 직접 설정한 ‘누나’라는 호칭 역시 이 친밀감에 한몫한다. 물론 공짜는 아니다. 멤버당 월 4500원의 구독료를 지불해야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다. SM엔터테인먼트 팬 커뮤니티 앱 ‘리슨’이 지난 2월부터 운영 중인 “최애와 나만의 프라이빗 메시지” 서비스 ‘디어 유 버블’을 통해서다.

K팝 업계가 정보기술(IT)로 팬덤과 아티스트 사이의 비대면 소통을 ‘유료화’하는 새로운 수익 모델을 통해, 코로나19로 도래한 위기를 기회로 만들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팬 행사 등을 통해 쌓아올린 팬-아티스트 간 ‘친밀감’을 토대로 음반·공연 판매 수익을 내는 데 주력했던 K팝 업계가 최근에는 온라인상의 ‘친밀한 소통’ 자체를 유료화하며 공연 등 물리적 만남이 불가능한 언택트 시대의 난점을 돌파하기 시작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K팝의 비대면 소통 수익 모델이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된 이후에도 지속될 것으로 전망한다.

K팝을 세계 무대에 올려 놓은 것은 비단 ‘칼군무’로 상징되는 화려한 퍼포먼스만이 아니다. 지속적인 ‘덕질(팬덤 활동)’의 원동력이 된 것은 아티스트의 인간적 매력과 이를 드러내는 다양한 소통 채널의 존재다. 그룹 방탄소년단이 다양한 SNS 활동을 통해 소통 영역을 넓히며 성공을 거둔 대표적인 사례라면, 그룹 아이즈원은 팬과의 소통을 ‘사적인 형식’으로 좁혀 K팝 최초로 수익 모델화에 성공한 사례로 꼽힌다. 지난해 1월 아이즈원은 일본 걸그룹인 AKB48그룹의 서비스를 모방해 멤버당 월 구독료 4500원을 지불한 팬을 대상으로 아티스트의 사소한 일상을 공유하는 메일을 보내주는 서비스 ‘아이즈원 프라이빗 메일’을 출시했다.

지난해 1월 아이즈원은 일본 걸그룹인 AKB48그룹의 서비스를 모방해, 멤버당 월 구독료 4500원을 지불한 팬을 대상으로 아티스트의 사소한 일상을 공유하는 메일을 보내주는 서비스 ‘아이즈원 프라이빗 메일’을 출시했다. 아이즈원 프라이빗 메일 홈페이지 화면 캡처.

지난해 1월 아이즈원은 일본 걸그룹인 AKB48그룹의 서비스를 모방해, 멤버당 월 구독료 4500원을 지불한 팬을 대상으로 아티스트의 사소한 일상을 공유하는 메일을 보내주는 서비스 ‘아이즈원 프라이빗 메일’을 출시했다. 아이즈원 프라이빗 메일 홈페이지 화면 캡처.

동방신기, 소녀시대, 슈퍼주니어, 샤이니, 엑소, 레드벨벳, NCT 등 SM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가 참여하는 ‘디어 유 버블’은 ‘아이즈원 프라이빗 메일’을 모방하며 시작됐지만, 큰 호응을 얻게 된 것은 지난달 답장 기능을 추가하고 모바일 메신저 성격을 강화하면서부터다. IT의 고도화를 통해 ‘일대다’가 아닌 ‘일대일’ 소통에 목마른 K팝 팬들의 욕구를 충족시킨 것이다. ‘디어 유 버블’ 이용자 김모씨(31)는 “코로나19로 콘서트와 팬 사인회가 모두 취소된 상황에서, 아티스트의 소소한 일상을 즉각적으로 전달받을 수 있어 만족도가 높다”면서 “공식 SNS에 올라오는 정제된 형식의 글과 사진이 아닌, 폐쇄적인 공간이기에 가능한 내밀하고 개성적인 메시지를 받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구독료가 전혀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불가피하게 떠오른 ‘온택트(On-Contact)’ 문화가 아티스트와 보다 사적이고 친밀한 소통을 원하는 K팝 팬들의 욕구와 맞아떨어진 셈이다. 최근 영상 통화 형식으로 정착된 팬 사인회 역시 이 같은 욕구를 적절하게 채워주고 있다는 평을 받는다. K팝 팬들이 수십~수백장의 음반을 사들이는 이유 중 하나는 아티스트와 일대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팬 사인회 당첨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이 역할을 영상 통화 팬미팅이 대체하게 됐다. 최근 컴백한 뉴이스트, 오마이걸, 투모로우바이투게더 등 대부분의 K팝 그룹들이 음반 구매자 중 30~50여명을 추첨해 영상 통화 팬 사인회를 개최했다. 팬들은 ‘영상 통화’라는 사적인 형태의 일대일 만남에 높은 만족감을 보였다. K팝 업계도 이전과 같은 음반 판매 수익을 누릴 수 있게 됐다.

그룹 오마이걸을 비롯해 최근 컴백한 K팝 그룹들은 코로나19로 팬 사인회 개최가 불가능해지자 이를 대체해 영상 통화 팬미팅을 열고 있다. 뮤직 아트 홈페이지 화면 캡처

그룹 오마이걸을 비롯해 최근 컴백한 K팝 그룹들은 코로나19로 팬 사인회 개최가 불가능해지자 이를 대체해 영상 통화 팬미팅을 열고 있다. 뮤직 아트 홈페이지 화면 캡처

K팝 그룹들이 연달아 선보이고 있는 유료 온라인 공연 역시 세계 각지에 흩어진 K팝 팬들과의 소통 기회를 크게 넓혔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달 26일 그룹 슈퍼엠을 시작으로 Way V(웨이션 브이), NCT드림, NCT127, 동방신기까지 SM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들이 세계 최초 온라인 전용 유료 콘서트인 ‘비욘드 라이브’를 성황리에 개최 중인 가운데 방탄소년단 역시 다음달 14일 첫 실시간 온라인 공연 ‘방방콘 The Live(더 라이브)’를 연다.

이규탁 한국조지메이슨대 교수는 “코로나19라는 갑작스러운 위기 상황에서도 K팝 업계가 IT가 바탕이 된 비대면 소통 수익 모델을 발 빠르게 선보일 수 있었던 배경에는 업계 내부에 축적된 뉴미디어와 IT, 팬덤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이해가 있다”면서 “이 같은 수익 모델은 사태가 진정돼 콘서트 등 물리적 소통이 가능해진 이후에도 팬과 아티스트의 친밀도를 강화하는 또 하나의 수단으로 정착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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