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리오즈는 ‘베토벤 덕후’였다? 파리지앵이 베토벤 음악에 열광한 이유

정은주 음악 칼럼니스트
입력2020.07.30 19:53 입력시간 보기
수정2020.07.30 20:00

“정은주의 클래식 수다 : 쉽고 가볍고 즐거운 클래식 음악 이야기를 나눠요”

세계 최초로 베토벤 교향곡 전곡 분석한 베를리오즈

ⓒ 위키피디아

■베토벤에 열광했던 파리지앵

“베토벤의 천재성이 직접적으로 유례가 드물게 드러난 작품이다.
그가 전개하려고 하는 것은 그의 내면의 사유이다. 즉 내밀한 고뇌, 억제된 분노,
극심하고 우울한 압박으로 가득한 몽상, 밤의 환상, 열정의 비약이 그 주제를 제공했다.”
- 『베토벤 교향곡에 관한 분석적 연구』 중 <교향곡 5번>에 대한 의견 중에서 -

베토벤은 클래식 음악사의 큰형님 같은 존재입니다. 그는 교향곡의 역사를 새로 만들었고요. 수많은 후배 음악가들의 이상으로,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여러 음악어법을 확립시켰습니다. ⓒ위키피디아

베토벤은 클래식 음악사의 큰형님 같은 느낌입니다. 동생들을 위해 앞장서고, 힘든 일을 척척 해주는 그런 형님 같습니다. 베토벤이 남긴 교향곡 전곡의 의미가 그러하니까요. 베토벤 이전의 교향곡과 이후의 교향곡을 조금만 살펴보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인데요. 마치 ‘집은 이렇게 짓는 거란다’며, 집짓기의 ABC를 가르쳐 준 분 같습니다. 역시 베토벤하면 교향곡입니다.

그의 교향곡을 듣고 있으면, 마음의 파도가 일렁이는 기분입니다. 위대하다거나 경건했다 그런 표현으로 간단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베토벤표 교향곡은 그 누구도 한 마디로 정의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쉽지 않은 혹은 편하지 않은 존재 같기도 하고요. 실제로 그가 청력 장애로 고통 받으면서 힘겹게 완성했기 때문일까요. 교향곡뿐만 아니라 그의 음악은 편하게 듣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감히 누군가의 인생을 함께 하는 것 같은 착각도 듭니다. 천재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그 무엇’이겠지요. 예술의 감동은 우리를 행복하게 합니다.

이토록 위대한 악성, 베토벤은 생전에 큰 인기를 누렸습니다. 운 좋은 음악가였어요. 특히 그가 고향 본을 떠나, 영면할 때까지 살았던 도시 빈에서 그의 명성은 이루 말할 수 없었는데요. 일찌감치 빈은 그의 천재성에 경의를 표했습니다. 빈에서 그는 제2의 모차르트로 불리며 비르투오조 피아니스트로 활동했었고요. 그의 연주회에 오려고 웃돈을 주는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19세기 파리 음악계는 한 마디로 베토벤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베토벤을 축으로 파리 음악계가 돌아가고 있었는데요. 파리의 젊은 음악가들은 베토벤이 작곡한 음악어법을 따라하고, 그의 음악을 숭배했습니다. 어떤 관점에서 보면 빈보다 파리가 더 베토벤에 열광했다고 볼 수도 있어요. 빈의 청중은 베토벤 말년 로시니에게 더 열광했다고 하거든요! 콧대 높은 파리지앵은 열렬히 베토벤을 사랑했습니다.

■당황스러운 베토벤표 교향곡

“그런 음악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 베를리오즈의 스승 르쉬르가 베토벤 <교향곡 5번> 연주를 들은 후 남긴 말 -

베토벤은 총 9곡의 교향곡을 남겼습니다. 그 중 <교향곡 5번>에 대해 베를리오즈는 “선율, 화성, 리듬, 악기 편성의 형태는 고귀함으로 가득하며, 본질적으로 무엇보다 개성적이고 참신해 보인다”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틸레만이 이끄는 빈필오케스트라가 ‘운명’을 연주합니다.

19세기 초 프랑스에서는 교향곡이라는 존재에 대해 관심이 없었습니다. 신기할 정도로 프랑스는 교향곡을 찾지 않았습니다. 당시 파리지앵들은 살롱 문화에 열광했는데요. 아마도 교향곡은 살롱에서 연주될 수 없는 편성이라, 발전할 기회가 늦게 온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1809년 프랑스 작곡가 고세크가 <17파트 교향곡>을 발표한 것 이외에는 별다른 교향곡이 없었거든요. 파리에서 굉장한 인기를 누린 베토벤이었지만, 파리 음악원의 교수이자 베를리오즈의 스승이었던 르쉬르는 베토벤의 교향곡을 두고 “그런 음악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프랑스에 베토벤을 소개한 최초의 음악가는 프랑수와 아브네크입니다. 그는 베토벤의 여러 음악 중에서도 교향곡에 집중했는데요. 그의 노력으로 파리에서 베토벤의 교향곡이 무대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이 자리에 베를리오즈가 있었고, 그때부터 베를리오즈의 베토벤 교향곡 사랑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파리국립음악원의 교수들은 베토벤의 교향곡을 당황스럽게 생각했는데요. 베를리오즈의 스승인 르쉬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베를리오즈는 자서전을 통해 자신의 스승 르쉬르가 베토벤에 열광하는 젊은 음악가들을 외면했다고 주장합니다. 심지어 베토벤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음악회장에 나타나지도 않았다고 비판하는데요. 베토벤 교향곡에 열광하는 젊은 음악가들의 반응을 목격하는 것을 애써 회피했다고도 설명한 바 있습니다.

기성세대의 반대편에 선 베를리오즈는 베토벤의 교향곡에 매료됩니다. 1830~1840년대 파리 음악계에서 베토벤의 음악어법은 일종의 혁명과 같았거든요. 베를리오즈는 혁신적인 베토벤의 관점에서 베토벤의 교향곡론을 집필하려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베토벤에 대한 베를리오즈의 열정

루이 엑토르 베를리오즈는 세계 최초로 베토벤 교향곡 전곡을 분석한 책 『베토벤 교향곡에 관한 분석적 연구』를 발표했습니다. 또한 베토벤의 교향곡에서 받은 영감으로 프랑스 대형 교향곡의 모태이자 그의 출세작인 <환상 교향곡>을 작곡했습니다. ⓒ위키피디아

세계 최초로 베토벤의 교향곡 전곡을 분석한 음악가는 대규모 편성 스타일을 유행시킨 프랑스 작곡가 루이 엑토르 베를리오즈입니다. 그는 베토벤의 음악에 심취했고, 그의 음악을 자신의 음악적 이상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던 중 『베토벤 교향곡에 관한 분석적 연구』라는 제목의 베토벤 교향곡 전곡에 대한 평론을 집필했는데요. 이 평론집은 베토벤 교향곡 연구에 대한 최초의 서적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빈의 음악가가 아닌, 프랑스 음악가가 베토벤 교향곡 전곡을 분석했다는 점입니다. 베를리오즈가 얼마나 깊이 베토벤을 연구했는지 살펴볼 수 있는 책입니다. 앞서 설명했듯이 프랑스 사람들은 교향곡을 좋아하지 않았는데요. 베를리오즈를 포함한 몇 몇 음악가들의 노력을 통해 프랑스 음악계도 교향곡의 세계에 매료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베토벤의 교향곡이었고요! 이후 프랑스 음악가들은 자신들만의 색체를 입힌 교향곡을 구축해나갑니다.

대표적으로 베를리오즈의 대표작이자 출세작인 <환상 교향곡>도 베토벤 교향곡의 영향을 받았고요. 당시 교향곡의 선진국이던 독일에서도 베를리오즈의 충격적인 시도에 온갖 비평을 쏟아냈습니다. 대형 편성 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무대에 올려지지 않는 악기를 사용하기도 했거든요. 이처럼 베를리오즈는 베토벤의 이상을 이상으로 삼았습니다.

또한 프랑스 혁명 이후 작곡된 고셰크의 <테 데움>은 1,200명의 합창과 800명의 오케스트라 단원이 함께 연주해야 하는 교향곡인데요. 이처럼 상상을 초월하는 대형 편성이 프랑스 교향곡의 한 특징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지평선의 다른 일각에서 거대한 베토벤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보았다.
그때 받은 충격은 이전 셰익스피어에게서 받았던 충격과 맞먹는 것이었다. 음악의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 베를리오즈가 자서전에 쓴 내용 중에서 -

파리의 유명 공연장 중 하나인 살 플레옐에서 정명훈이 이끄는 라디오필프랑스가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을 연주합니다. 이 작품은 베를리오즈의 대표작이자 출세작입니다. 베토벤 연구에 힘을 쏟았던 베를리오즈의 열정이 고스란히 담긴 작품입니다.

올해 지구촌 클래식계의 핫키워드는 베토벤입니다. 탄생 250주년을 맞아 1월 1일 빈필의 신년음악회를 시작으로 전 세계 곳곳에서 베토벤을 주인공으로 한 무대가 열리고 있었고요. 그러던 3월 중순 팬데믹이 선포되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베토벤의 250번째 생일축하 파티는 잠정적으로 축소되거나 연기된 상황입니다. 하루빨리 모든 상황이 종료되고, 베토벤의 진짜 생일인 12월에는 지구촌 곳곳에서 그의 생일파티가 다시 화려하게 열렸으면 좋겠습니다.

참고| 『음악사의 진짜 이야기』 니시하라 미노루 지음, 열대림 펴냄

■현재 클래식 음악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인 필자는 국내 여러 포털 사이트와 각종 매체 등에 클래식 음악 콘텐츠를 기획·연재 중이다. 카카오페이지 신인작가 공모전 2기 당선작가(2019)로, 영국 현악 전문지 <스트라드> 한국판과 <더 트래블러>, <톱클래스> 등에서 에디터·프리랜스 에디터로 일했다.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전문가 과정을 수료했다.

<정은주 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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