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져 있어도 사랑해” 음악가들이 ‘가족’에게 헌정한 클래식

올댓아트 송지인 에디터 allthat_art@naver.com
입력2021.02.12 12:23 입력시간 보기
수정2021.02.12 12:31

잠시 줄어드는가 싶던 확진자 수가 다시 400명대를 돌파, 444명(2월 10일 0시 기준)을 기록했습니다. 정부에서는 설 연휴 고향 방문 자제 권고와 함께 ‘5인 이상 사적 모임 금지’는 직계 가족이라도 주소지가 다르면 해당된다고 공시했고, 통신 3사는 설 연휴 동안 영상통화를 무료로 제공하겠다고 발표했는데요. 결국 작년 추석에 이어 올해 설도 “안 가는 게 효도”가 됐습니다.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마음은 솔직히 울적한데요. 그래서 오늘은 우리의 이 섭섭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는 음악들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어디선가 꼭 한 번 들어본 이 곡들이 알고 보면 음악가들의 ‘가족’에게 헌정된 곡이었다는 사실! 물론 음악을 듣는다고 그리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나누면 마음을 한 번 더 전할 수는 있겠죠?

“평생의 사랑 앨리스에게”
엘가의 사랑의 인사

에드워드 엘가|위키피디아

영국을 대표하는 후기 낭만주의 음악가 에드워드 엘가는 ‘사랑꾼’으로 유명했습니다. 오르간 연주자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렸을 때부터 음악가를 꿈꿨지만 아버지의 권유로 법률 사무소에서 일하게 되는데요. 음악에 대한 꿈을 접지 않고 악기를 가르치는 일을 계속합니다. 그러던 중 9살 연상의 여성 캐롤라인 앨리스 로버츠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다 그와 사랑에 빠지죠.

두 사람의 사랑은 신분의 벽에 부딪힙니다. 앨리스의 집안은 엘가와의 결혼을 반대했습니다. 앨리스는 시집과 산문집을 출판한 문학가이자 명망 높은 귀족 가문의 후손이었지만 엘가는 평민 계급의 가난한 무명 음악가였으니까요. 앨리스는 끝까지 엘가를 믿고 그와의 결혼을 선택하는데요. 엘가가 앨리스에게 후 약혼 선물로 헌정한 곡이 바로 이 ‘사랑의 인사(Salut D’Amour)‘입니다. 두 사람은 거의 매일 콘서트홀에서 함께 음악을 감상하는가 하면, 서로에게 종종 시와 음악을 선물하는 등 낭만적인 삶을 살았다고 하죠.

하지만 사랑이 시간을 거스를 수는 없었습니다. 엘가가 63세 되던 해 앨리스는 숨을 거두었죠. 엘가는 앨리스를 떠나보낸 충격으로 작곡 활동을 돌연 중단했고, 세상을 떠날 때까지 14년간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전해집니다. 눈 감는 순간까지 아내를 그리워하며 생을 마감했다는 엘가가 인생의 동반자를 위해 작곡한 이 음악, ’사랑의 인사‘는 한국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의 연주를 소개합니다. 1984년 결혼한 정경화가 이듬해 발표한 그의 음악 인생 최초의 소품집 ’콘 아모레(Con Amore)‘에 이 곡이 수록되었는데요. 음반의 타이틀인 ’콘 아모레‘는 ’애정을 담아‘라는 뜻으로 그의 배우자인 제프리 리게티가 지어주었다고 합니다.

“클래식계 가장 유명한 커플”
슈만의 헌정

로베르트 슈만|위키피디아

클래식 음악사에 꼭 등장하는 ‘화제의 커플’이 몇몇 있지만 그래도 역시 가장 유명한 커플은 슈만과 클라라 아닐까요? 스승의 딸을 사랑했던 슈만이 법정 소송(!)까지 걸었을 정도니까요. 물론 말년의 슈만은 그리 로맨틱하지 않았으나 이때의 슈만은 말 그대로 사랑에 미쳐있었습니다. 그의 스승이자 클라라의 아버지였던 비크는 슈만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딸은 유럽에서 이미 천재 피아니스트로 촉망받고 있었고 슈만은 미래가 불투명한 무명 음악가였거든요. 화가 머리끝까지 난 비크는 슈만에게 “딸에게 접근하면 총으로 쏴버리겠다”라는 협박까지 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결국 슈만은 사랑을 쟁취합니다. 그는 클라라와 결혼하기 전날 밤 클라라에게 자신의 사랑을 담은 가곡집 <미르테의 꽃(Myrthen)>을 헌정하죠. <미르테의 꽃>에 수록된 26개의 가곡들은 바이런, 무어, 괴테 등의 시에 곡을 붙여 만들어졌는데요. 첫 번째 수록곡이 바로 ‘헌정(Widmung)’입니다. 가사에서도 클라라를 향한 슈만의 절절한 사랑이 그대로 느껴지죠. “그대는 나의 영혼, 그대는 내 심장, 그대는 나의 기쁨, 오 그대는 내 고통이여(Du meine Seele, du mein Herz, Du meine Wonn‘, o du mein Schmerz).”

원곡은 가곡이지만 리스트가 편곡한 피아노곡도 유명합니다. 최근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 주인공이 연주한 곡도 리스트의 이 편곡 버전이죠. 씨야의 노래 제목을 빌리자면 ’미친 사랑의 노래‘ 슈만의 헌정을 가곡/피아노곡 모두 소개합니다. 가곡은 완벽한 발음, 전달력, 음악성을 바탕으로 유럽 음악계에서 ’에반겔리스트‘ 역을 맡은 한국인 테너 김세일의 노래를, 피아노곡은 강렬하고 힘이 넘치는 곡뿐만 아니라 부드럽고 애수 어린 감정의 곡까지 섬세하게 표현하는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연주를 소개합니다.

“프랑스의 소문난 딸 바보”

드뷔시의 어린이 세계

클로드 드뷔시|위키피디아

19세기 프랑스 클래식계에는 아주 소문난 ‘딸 바보’가 있었습니다. 바로 ‘달빛’,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 등으로 유명한 인상주의 음악의 대가 클로드 드뷔시입니다. 사실 드뷔시는 수많은 여성과의 불륜, 괴팍한 성격으로 주변인 사이에서 그리 좋은 평판을 받지는 못했는데요. 엠마 바르닥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 ‘슈슈(클로드 엠마의 애칭)’를 정말 끔찍이도 사랑해 애지중지 키웠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몽상가 기질이 다분했던 드뷔시의 상상력이 어린이의 시선으로 향한 것도 슈슈가 태어났을 때부터였는데요. 드뷔시는 슈슈가 5살 되던 해, 3년에 걸쳐 작곡한 <어린이 세계(Children‘s corner, 어린이 차지라고도 함)>를 발표하며 “이 모음곡을 슈슈에게 헌정한다”라고 밝혔습니다. 어린이를 위한 작품집은 슈만의 <어린이 정경>, 무소륵스키의 <어린이의 방>등도 있었지만 이 작품들은 어른의 시선에서 어린이를 묘사하거나 교습용으로 작곡된 것이었고요. 드뷔시의 <어린이 세계>가 어린이의 입장에서 바라본 세상을 그렸다는 점에서 더 특별합니다. 정말 슈슈를 생각하며, 슈슈를 위해 작곡했던 거죠.

<어린이 세계>는 6개의 곡으로 채워졌는데요. 그중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곡은 ’골리워그의 케이크워크‘입니다. 이 곡은 드뷔시가 재즈 풍으로는 처음 작곡한 곡으로, 19세기 후반 미국 남부 재즈 피아니스트들 사이에서 시작된 반주 음악 ’래그타임‘ 형식을 차용해 쓰였습니다. ’골리워그‘는 (인종차별 논란이 있었던) 당시 유행하던 흑인의 생김새를 묘사한 인형을, ’케이크워크‘는 으쓱거리는 걸음걸이가 특징인 춤을 뜻합니다. ’딸 바보‘ 드뷔시는 사랑하는 딸을 위해 어떤 음악을 작곡했을까요? 아래 영상은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연주하는 ’골리워그의 케이크워크‘입니다. 정말 건반 위에서 인형이 춤추는 듯한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나요? <어린이 세계>에 수록된 나머지 5개의 곡도 유튜브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조국을 사랑한 피아니스트”
쇼팽의 녹턴 20번

프레데릭 쇼팽|위키피디아

클래식을 잘 모르는 사람도 한 번쯤 들어보았을 음악가 쇼팽은 폴란드를 대표하고 폴란드가 사랑하는 낭만주의 시대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입니다. 쇼팽이 있었기에 지금의 다양한 피아노곡 형식과 연주 기법이 있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는 평생을 피아노 음악 작곡과 연구에 바쳤는데요. 쇼팽은 조국인 폴란드에 대한 사랑이 깊은, 애국자이기도 했습니다.

쇼팽은 스무 살 때 오스트리아 빈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작곡한 피아노곡을 누나인 루드비카에게 편지와 함께 보내며 그에게 헌정했는데요. 쇼팽 사후에 출판된 이 곡이 바로 녹턴 20번입니다. 제목만 들으면 잘 모를 수도 있지만 영화 <피아니스트>에 삽입곡으로는 잘 알려져 있죠. 톡 치면 부서질 것 같은 쇼팽의 감수성이 그대로 녹아들어, 쓸쓸함과 그리움이 아름답게 표현된 곡입니다.

타국에서 지냈지만 마음만은 늘 폴란드를 향해 있었던 쇼팽은 병으로 세상을 뜨기 전 루드비카에게 이런 유언을 남겼다고 합니다. “나의 몸은 프랑스 파리에 있지만, 나의 심장은 조국 폴란드와 늘 함께했어. 내 심장을 조국 폴란드에 묻어줘.” 루드비카는 쇼팽 사후 집도의가 도려낸 그의 심장을 몰래 들여와 보관하다가, 30년이 지나고 나서야 그의 유언대로 폴란드 바르샤바의 성 십자교회에 안치할 수 있었습니다. 요즘은 고향에서 나고 자라는 이들이 예전처럼 많지 않죠. 타지에서 가족과 고향을 그리워하는 이들에게 많은 공감과 위로가 되는 이 곡을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연주로 소개합니다.

“사랑하는 어머니에게”
조수미의 <마더>

소프라노 조수미 ⓒ Gettyimages

이번에는 음악가가 작곡해 가족에게 헌정한 곡이 아니라, 음악가가 가족을 위해 만든 음반을 소개합니다. 세계 최고의 소프라노 조수미가 지난 2019년 4년 만에 발매한 <마더>입니다. 그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담은 이 음반에 영화 <웰컴 투 동막골> OST로 쓰인 ‘바람이 머무는 날’. 드보르자크의 가곡 ‘어머니가 가르쳐주신 노래’, 그리고 ‘엄마야 누나야’, ‘아베 마리아’ 등을 수록했는데요.

조수미는 <마더> 음반에 대해 “이탈리아에서 처음 유학을 할 때 가장 보고 싶었던 사람도, 꿈을 이뤄주고 싶었던 사람도 어머니였다”며 “치매로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어머니를 위해 음악으로 기억할 수 있는 음반을 만들고 싶었다”고 밝혔는데요. “<마더>는 오직 나의 어머니만이 아닌, 본인의 꿈을 희생하고 자식들을 위해 살았던 대한민국의 모든 어머니를 위한 음반”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세계적인 소프라노가 아니더라도, 한국의 많은 딸들은 그의 이 말에 공감할 수 있을 겁니다. 당연한 것이 아님에도 세상이 당연하게 요구했던 부모님의 사랑과 희생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나 자신도 없었을 거라는 걸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으니까요. <마더> 수록곡은 유튜브에서 전곡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부모님과 ‘랜선’으로 함께 들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자료|위키피디아, Youtube, 게티이미지

참고|“결혼식 전날 슈만은 클라라에게 이 노래를 바쳤다 [꿀잠뮤직]”, 매일경제, 2021.01.16.
“쇼팽, 녹턴 20번 : 달콤한 애수”, 머니투데이, 2014.07.16.
“소프라노 조수미의 사모곡 ‘마더’”, 서울신문, 2019.04.23.

<올댓아트 송지인 에디터 allthat_ar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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