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아름다워 보여도 아름답지만은 않다

이길보라

견고하고 완전한 때로는 불완전한

[이길보라의 논픽션의 세계]③아름다워 보여도 아름답지만은 않다
넷플릭스 시리즈 <DEAF U>는 8부작 쇼트폼 다큐멘터리로 실제 농인 제작자가 직접 농사회와 농문화를 그린다. 같은 농인이라도 인종, 사회적 계급, 잔존청력 유무,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 다른 정체성을 지닌다. 그들의 연애, 인간관계, 우정, 섹스, 가족, 가십 등 지극히 평범한 모습을 가리지 않고 그려낸다. 사진은 출연자들이 수어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넷플릭스 캡처

넷플릭스 시리즈 <DEAF U>는 8부작 쇼트폼 다큐멘터리로 실제 농인 제작자가 직접 농사회와 농문화를 그린다. 같은 농인이라도 인종, 사회적 계급, 잔존청력 유무,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 다른 정체성을 지닌다. 그들의 연애, 인간관계, 우정, 섹스, 가족, 가십 등 지극히 평범한 모습을 가리지 않고 그려낸다. 사진은 출연자들이 수어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넷플릭스 캡처

농인들의 학교 ‘미 갤로뎃 대학’
좋은 시설에 높은 교육열까지
그저 천국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곳도 사람이 사는 세상이다
사기꾼도 있고, 욕쟁이도 있고
착한 장애인만 있다? 통념일 뿐

아빠와 함께 미국 워싱턴DC에 갔을 때였다. 농인의 천국이라 불리는 갤로뎃 대학(Gallaudet University)의 공용어는 미국수어(American Sign Language)다. 학교의 재학생은 청인이 반, 농인이 반인데 수어가 공용어인 만큼 언제 어디서나 수어만을 사용해야 한다. 음성 전화가 오더라도 사람들 앞에서 받을 수 없다. 숨어서 받거나 영상통화 혹은 메시지(SMS)를 통해 소통해야 한다. 소리를 들을 수 없는 농인 앞에서 음성 통화를 하는 건 정보로부터 농인을 소외시키기 때문이다(청인은 청각을 통해 많은 정보를 습득한다. ‘귀동냥’이라는 단어를 생각해보자). 그렇기에 학교의 모든 구성원은 수어에 능숙하다. 학생, 교수, 교직원뿐 아니라 청소노동자, 경비노동자도 수어를 사용한다.

한국수어를 사용하는 한국 농인인 아빠와 한국수어를 1차 언어로 습득하며 자란 코다(Children of Deaf Adults의 줄임말)인 나는 “한국에서 왔어요”라는 미국수어 외에는 아는 말이 없어 통역이 필요했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편안했다. 수어와 농인이 중심이 되자 세상이 180도 다르게 펼쳐졌다. 공간을 구성하는 방식과 규칙이 달라졌다. 갤로뎃 대학에는 사방이 막혀 앞을 볼 수 없는 폐쇄형 엘리베이터가 아닌, 어디쯤 와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유리창으로 마감된 엘리베이터가 있다. 건물 외관이 통유리로 되어 있어 건물 안과 밖에서 얼굴을 마주 보고 수어로 대화할 수 있다. 내부는 열린 홀 구조로 설계되어 1층과 2층, 3층에 있는 사람들이 서서 소리를 지르지 않고도 ‘점잖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수어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 봐야 하는 언어라 수어를 사용하며 걷다보면 전봇대에 부딪치기도 하고 턱에 걸려 넘어지는 일이 잦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계단이나 턱, 전봇대 등에 색깔을 더해 공간의 변화에 시각적인 정보를 더한다. 비상상황이 발생할 경우 경보음이 울리는 것이 아니라 학교 곳곳에 설치된 비상등이 깜빡인다. 문을 두드려 소리를 내는 노크 행위는 이곳에서 그 의미를 잃는다. 강의실 앞에 설치된 버튼을 누르면 강의실 내부에 설치된 등이 깜빡이며 주위를 환기한다. 강의실의 의자는 앞을 향해 일자형으로 놓인 것이 아닌, 서로의 얼굴 표정과 수어를 볼 수 있도록 동그랗게 배치되어 있다.

이곳에서 농인은 공부할 권리를 가진다. 엄연한 종합대학이라 전공도 영화부터 시작해 수학, 건축, 철학, 사회학, 생물학, 미국수어까지 다양하고, 학사는 물론 석·박사 학위도 딸 수 있다. 갤로뎃 대학에서 농학(Deaf Studies)을 전공하고 졸업 후 직원으로 일하는 한국 농인이 학교를 소개시켜주다 누군가를 불러 세웠다. 깔끔한 세미 정장 차림의, 세련되어 보이는 여성이었다. 그는 자신을 이 학교의 교수라고 미국수어로 소개했다. 아빠와 나는 물었다. “실례지만 혹시 농인인가요?” 그렇다. 농인 여성도 이렇게 멋진 옷을 입고 교수라는 직업을 가질 수 있었다!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농인도 공부할 수 있고, 어떤 직업이든 가질 수 있는 세상. 농인과 수어가 중심이 된다면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는 걸 깨닫고, 그 길로 농인 부모의 반짝이는 세상을 코다의 시선으로 소개하는 책 <반짝이는 박수 소리>(한겨레출판, 2015)를 썼다.

데프 유(DEAF U)

넷플릭스 ‘데프 유’ 다큐멘터리
숨김없이 평범한 모습 그려내
청인의 편견에 정면으로 맞선다

넷플릭스 시리즈 <DEAF U>는 이 놀라운 세상, 갤로뎃 대학을 다니는 실제 대학생을 중심으로 한 8부작의 쇼트폼 다큐멘터리(Short-form Documentary)다. 제작자는 이 대학 졸업생이자 미국 텔레비전 시리즈 <댄싱 위드 더 스타(Dancing With the Stars)>로 상을 받고 모델로도 활동하는 농인 나일 디마르코인데 청인의 시각으로 농인의 세상을 그리는 것이 아닌, 농인 제작자가 직접 농사회와 농문화를 그린다. 작품은 서로의 수어 이름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농사회에는 수어 이름이 있다. ‘이길보라’를 지칭할 때 ㅇ, ㅣ, ㄱ, ㅣ, ㄹ, ㅂ, ㅗ, ㄹ, ㅏ라고 일일이 지문자(손가락으로 어떤 모양을 지어, 이를 부호로 한 문자)를 쓰면 느리고 비효율적이기에 사람의 외양이나 특징을 본떠 수어 이름을 만든다. 가령 미국 전 대통령 트럼프가 당선되었을 때 지지자들은 지문자를 이용해 T, R, U, M, P라고 불렀지만 대다수의 미국 농인은 이마 위에 오른손을 바깥으로 앞쪽으로 향했다가 안쪽으로 가져다 대는, 앞머리 가발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수어 이름을 만들었다. 턱을 만지는 버릇이 있는 아빠의 수어 이름은 ‘턱을 만지다’와 ‘남자’의 조합이다.

<DEAF U>에는 같은 농인이지만 다른 정체성을 가진 농인 학생들이 등장한다. 수어로 대화할 때 소리를 내지 않고 미국수어로만 말하는 농인도 있고, 입모양을 움직여 음성언어로 말하며 동시에 수어를 사용하는 농인도 있다. 농인들끼리 있을 때는 굳이 음성언어를 사용할 필요가 없지만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는 청인 제작진과 청인 관객을 위해 음성언어를 섞어 쓰기도 한다.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섞인 미국이기에 주인공들은 피부색이 다르고, 에피소드에서도 그에 따른 차이를 부각한다. 백인 농인 여성이 지하철에서 “방금 안내방송에서 뭐라고 했어?” 묻자 한쪽 귀로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흑인 주인공은 이렇게 말한다. “모든 백인은 지금 당장 이곳에서 내리세요.”

같은 농인이라도 인종, 사회적 계급, 잔존청력 유무,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 다른 정체성을 지닌다. 이 시리즈에서는 ‘농인 엘리트’와 그렇지 않은 이들 사이의 갈등을 주요하게 다룬다. ‘농인 엘리트’라고 하면 사회적 계급에 따른 상위 계층 혹은 백인 농인을 뜻할 것 같지만 아니다!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나 수어를 1차 언어로 습득한 농인을 말한다. 청인의 시선에서 본다면 ‘뭐? 장애가 유전된다고? 부모도 안 들리는데 자식도 안 들린다고? 정말이지 너무나 불쌍하군!’ 싶겠지만 미국 농사회에서 이들은 ‘엘리트’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와 같은 언어로 소통하고 자신과 같은 언어와 문화를 향유하는 집단에서 자라나며 그에 따른 네트워크를 자연스럽게 습득하는 ‘농인 엘리트’. 청인 부모에게서 태어나 수어를 늦게 습득하거나 구어(상대방의 입술 모양을 읽어 소통하는 방식)를 통해 소통하거나 1차 언어가 수어가 아닌 농인은 ‘농인 엘리트’ 사이에 자연스럽게 섞이기 어렵다. ‘농인 엘리트’에 비해 수어를 잘하지도 못할뿐더러 농사회 인맥도 상대적으로 좁기 때문이다.

농사회를 통해 바라보는 농문화는 그 자체로 온전하다. 농인만의 고유한 언어인 수어로 만든 문학을 ‘수어문학’이라 부르는데 농인의 내러티브를 농인의 언어를 통해 여러 이야기 형식으로 만든 작품을 뜻한다. 그중 수어시(Sign Language Poetry)는 수어의 어휘와 문법을 사용하는 동시에 수어를 사용하는 방식과 표현을 매번 새롭게 창조하는 작품인데 <DEAF U>의 주인공 중 하나는 사랑하는 애인을 위해 수어시를 발표하겠다며 무대에 선다. 말 그대로 ‘온몸으로’ 좌중을 휘어잡는다. 입모양만을 움직여 낭독하는 것이 아닌, 얼굴 표정과 몸동작이 합쳐진 그의 수어시는 이 언어가 고유하고 완전한 하나의 언어, 문학, 문화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 세계는 견고하고 온전하다.

아름답기만 한 사회가 과연 존재할까

얼마 전, 책 <반짝이는 박수 소리>의 일본어판 출간을 맞아 라디오 방송에 출연했다. 진행자는 농문화에 대해 잘 몰랐는데 수어를 사용하는 농인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 같다며 정말 대단하다고 치켜세웠다.

그러나 농인의 세계는 아름답지만 그렇지 않기도 하다. 청인의 세계가 아름답지만은 않은 것처럼 농인의 세계에도 좋은 것, 나쁜 것, 기쁘지만 슬픈 일, 속상하고 안타까운 일이 존재한다. 책 <반짝이는 박수 소리>에서 나는 갤로뎃 대학을 또 하나의 놀라운 세계로 그렸지만 <DEAF U>는 그 실상을 정확하게 짚는다. 시리즈의 첫 번째 에피소드 시작 부분이 그렇다. 농인 레즈비언 커플이 서로의 몸을 쓰다듬으며 꿀이 뚝뚝 떨어지는 눈빛을 보낸다. 청인은 몸을 기대고 서로의 눈을 보지 않은 채 사랑한다고 속삭일 수 있지만 농인은 그럴 수 없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몸을 떼고 손이 움직일 수 있는, 그 손을 볼 수 있는 거리를 두어야 한다. 주인공은 말한다.

“저는 남자를 만날 때도 있고 여자를 만날 때도 있는데 남자들은 진짜 별로거든요. 그런데 여자는 정말 HOT! 뜨거워요!”

레즈비언 커플을 등장시키고 섹스에 대한 이야기를 직설적으로 내보임으로써 당신(청인)이 예상하는 대로 착하게만 굴러가지 않을 것임을 짚는다. 작품은 갤로뎃 대학이라는 농사회가 얼마나 아름답고 견고한 곳인지를 설명하기보다는 더 큰 편견에 맞서기를 택한다. 주인공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연애, 인간관계, 우정, 사랑, 섹스, 가족, 가십 등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를 작품의 소재로 삼으며 농사회라고 청사회와 달리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걸, ‘착한 장애인’도 ‘나쁜 장애인’도 존재한다는 걸 가감 없이 보여준다. 시리즈에 종종 수어를 모르는 청인 앞에서 수어로 욕을 하거나 장난을 치는 학생이 등장한다. 청인은 무슨 말을 한 거냐며 당황한다. 그건 들리지 않는 농인 앞에서 “어머, 안 들리나봐” “귀머거리네” “불쌍하기도 하지”라고 말하며 혀를 차는 청인의 행동과 완전히 똑같다. 농인은 완벽하게 청인의 행동을 ‘미러링’한다.

그래서 라디오 방송 진행자의 말에는 이렇게 답했다.

“저는 농인 부모님의 세상이 견고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그 사회가 항상 밝고 아름다울 것이라고만 생각하는 건 위험해요. 실제로 농인이 농인을 대상으로 범죄와 사기 행위를 벌이기도 하고, 계모임을 하다 도망치는 일도 벌어지죠. 누군가를 대상화하여 무조건적으로 아름다울 거라고 믿는 건 또 하나의 선입견이 아닐까요? ‘착한 장애인’만 존재해야 한다는 그런 통념 말이에요.”

<DEAF U>는 그런 편견을 완전히 무너뜨린다. 책 <반짝이는 박수 소리>를 쓰고 동명의 영화를 만들 때는 한국 사회에 농인과 농문화, 코다가 많이 알려지지 않은 때라 농문화의 반짝임을 부각했다. 그러나 ‘농문화의 천국’인 갤로뎃 대학에도, 농사회에도 반짝이지 않는 순간이 존재한다. 어둠이 있어야 빛이 있는 것처럼, 우리 삶의 아주 평범한 모습까지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걸 택함으로써 이 작품은 ‘장애’에 대한 청인의 편견에 정면으로 맞선다.

■이길보라

[이길보라의 논픽션의 세계]③아름다워 보여도 아름답지만은 않다

영화감독이자 작가이다.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것이 이야기꾼의 선천적 자질이라고 믿고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든다. 저서로는 <길은 학교다> <로드스쿨러>(공저) <반짝이는 박수 소리> <우리는 코다입니다>(공저)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가 있고, 연출한 영화로는 <로드스쿨러> <반짝이는 박수 소리> <기억의 전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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