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차 세계대전 포로 수용소에서는 ‘음악’이 필수? 음악으로 보는 전쟁의 참혹함

이혜인 기자
<수용소와 음악>은 1·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체코·폴란드의 수용소 내에서 있었던 음악활동을 다루는 책이다. 사진·권도현 기자

<수용소와 음악>은 1·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체코·폴란드의 수용소 내에서 있었던 음악활동을 다루는 책이다. 사진·권도현 기자

150만명이 희생당한 ‘살인공장’ 아우슈비츠. 그 안에서 음악은 일상이었다. 아우슈비츠에는 여러 개의 오케스트라와 밴드가 있었다. 가장 큰 수용소였던 비르케나우에서만 최대 네 개의 오케스트라가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또 다른 수용소인 중앙소용소에서는 오케스트라 단원이 100명에 이를 정도로 규모가 컸다. 클라리넷·색소폰 등 관악기부터 바이올린·비올라와 같은 현악기, 타악기까지 단원들이 맡은 악기도 다양했다. 단원들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행진곡을 연주했으며, 일요일 오후에는 실외에서 연주회를 열기도 했다.

수용소 안에서 음악은 기본적으로 폭력과 통제의 수단이었다. 행진곡은 수감자들에게 힘찬 일상을 강요하는 채찍이었다. 가볍고 명랑한 음악들은 살인자들의 심적 부담을 가볍게 만들며 자기기만을 하도록 도왔다. 동시에 음악은 수감자들에게는 생존 도구이자 안식처로도 작용했다. 오케스트라의 단원들은 수용소에서 특별 대우를 받으며 살아남는 경우가 많았다. 일반 수감자들은 일요 연주회 때 쇼팽, 차이콥스키, 드보르자크의 음악을 들으며 짧은 시간이나마 끔찍한 현실을 잊었다.

1·2차 세계대전 포로 수용소에서는 ‘음악’이 필수? 음악으로 보는 전쟁의 참혹함

책 <수용소와 음악>(성균관대학교 출판부)은 포로수용소 안 음악의 여러 얼굴을 담은 책이다. 저자인 이경분 한국학중앙연구원 학술연구교수는 독일 연방 아카이브(기록보관소) 등을 뒤져서 1·2차 세계대전 당시 포로수용소의 일상을 조사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오스트리아군 포로를 수용하고 있던 일본의 수용소,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가 주로 유대인을 수용했던 체코의 테레지엔슈타트,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등 총 세 지역의 수용소를 집중적으로 분석했다. 지난 12일 서울 관악구의 한 카페에서 이 교수를 만났다.

이 교수는 “포로들의 일상을 파악하기 위해 기록을 들여다봤는데 그 안에 빵집도 있고, 인쇄소도 있고, 없는 게 없었다”며 “심지어 악기까지도 스스로 제작하는 것이 참 놀라웠다”고 말했다. 일본 나라시노 수용소에서 포로들은 연주에 필요한 악기를 직접 구매하거나 대여했으며, 제작도 했다. 포로 중 한 명인 아마추어 음악가 하인리히 함은 기타를 만들어 다른 포로와 물물교환을 하거나, 수용소의 일본 관리에게 팔았다는 기록이 있다.

테레지엔슈타트에서는 한층 더 수준 높은 음악활동이 이뤄졌다. 이곳에는 주로 사회적으로 명망이 있는 유대인들이 수용됐다. 이 교수는 “1차 세계대전 당시 포로수용소나 아우슈비츠에는 연주가나 지휘자는 있어도 작곡가는 없었는데, 테레지엔슈타트에는 체코의 유명한 작곡가들이 많았다”며 “20세기 체코 음악사에 중요한 분들이 다 모여 있다”고 설명했다. 어린이 오페라인 ‘부룬디바르’를 작곡한 한스 크라사도 1942년 테레지엔슈타트에 끌려들어왔다. 1943~1944년 두 해 동안 수용소 내에서 ‘부룬디바르’는 55회나 연주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테레지엔슈타트 내에서 연주된 음악들은 밝고 경쾌한 느낌을 주는 것들이 많아요. 어두운 곳에서는 더 어두운 음악이 나올 거라 생각하지만, 암울하고 어두운 곳에서 밝은 것을 그리워하는 인간의 심리가 반영된 것이랄까요.”

포로수용소의 음악사를 들여다볼수록 전쟁과 집단학살의 참혹함이 더욱 선명해진다. 아우슈비츠에 도착한 사람들은 가스실로 갈 사람을 구분하는 선별 작업을 기다리는 동안 소녀들이 연주한 오케스트라 음악을 들었다. 책에 실린 소녀 오케스트라 단원 에스더 베자라노의 회상에 따르면, 기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자신이 죽으러 가는 줄도 모르고 음악가들에게 손을 흔들어줬다고 한다. 책에서 이 교수는 아우슈비츠의 음악에 대해 ‘기만의 음악’ ‘권력에 아첨하는 음악’ ‘마취제로서의 음악’ ‘살인자들의 기분전환용 음악’ 등이라 정의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강제수용소인 오스트리아 마우트하우젠 수용소에서 오케스트라는 탈옥수들의 처형 행렬에 앞장서기도 했다.사진·성균관대학교 출판부 제공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강제수용소인 오스트리아 마우트하우젠 수용소에서 오케스트라는 탈옥수들의 처형 행렬에 앞장서기도 했다.사진·성균관대학교 출판부 제공

“사람들은 ‘음악이 연주되는 곳이라면 상황이 심각하지 않았겠네’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수용소 안을 들여다보면 그렇지가 않죠. 특히 아우슈비츠의 음악은 모든 일이 매끄럽게 진행되도록, 수용소 내 생활의 박자를 유지하기 위한 의도가 있었습니다. 가해자의 입장에 봉사하는 음악이었다고 말하고 싶네요. 한스 프랑크, 요제프 멩겔레처럼 음악을 너무나 사랑하지만 동시에 잔인했던 나치 엘리트들도 있었습니다.”

학창시절 음악가가 되기를 꿈꿨던 이 교수는 대학에서는 독일어교육학을 전공했고, 독일 유학 과정 중에 나치 시기의 망명음악을 주제로 음악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의 연구주제는 음악, 문학, 전쟁사의 경계를 넘나든다. 요즘은 거제 포로수용소 내에서의 음악활동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그는 “거제 포로수용소에서도 생선을 먹고 남은 껍질로 북을 만들고, 깡통을 모아 트럼펫을 만드는 등 다양한 음악활동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수용소마다 배경은 다 다르지만, 음악활동은 어디에나 있었어요. 보통 음악이란 먹고살 만할 때 한다고 생각하는데, 수용소와 같이 위기의 상황에서 음악이 삶의 동아줄이 될 수 있다는 것이죠. 수용소 내 개개인마다 생존의 스토리가 다 다르기 때문에 ‘음악’이라는 키워드로 그들의 삶을 일반화시킬까봐 조심스럽기도 해요. 음악을 매개체로 수용소 내 일상의 여러 면을 봐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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