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가 돌아누워 있는 듯한 모습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 우도. 제주 성산포에서 여객선으로 10분이면 마주하게 되는 이곳은 여의도 면적의 3배 정도의 크기로 이뤄진 화산섬이다. 쉬지 않고 걸으면 3,4시간이면 족히 둘러볼 수 있는 작은 섬이지만, 볼거리가 많아 한 해 200만 명의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로 꼽힌다.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춘 우도의 하이라이트는 ‘우도팔경’이다. 주간명월, 야향어범, 천진관산, 지두청사, 전포망도, 후해석벽, 동안경굴, 서빈백사 등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8곳의 명소들은 1983년 우도의 연평중학교에 재직하던 김찬흡 교사에 의해 명명됐다. 그리고 여기, 우도의 멋을 감상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명물’이 만들어졌다. 빠르게 변해가고 있는 우도의 면면에 집중한 ‘우도9경 프로젝트’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2020년 공공미술 프로젝트 사업인 ‘우리동네 미술’의 일환으로 진행된 ‘우도9경 프로젝트’는 2020년 10월 22일부터 2021년 2월 22일까지 넉 달간 총 14명의 작가들이 참여한 프로젝트다. 황성림 우도9경 프로젝트 공동기획자는 “조형물이나 벽화와 같은 미술로 공공미술을 제한적으로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이 프로젝트가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고 말한다. 이를 달리 해석하면 그만큼 ‘신박’하다는 뜻이다.
프로젝트는 크게 ‘주민참여형 예술아카이브’, ‘리서치형 예술아카이브’, ‘우도9경 아트쇼’로 구성됐다. 주민의 삶 속으로 뛰어든 작가들은 개인의 일상과 개별성에 주목했고, 사소한 개인사로 취부될 수 있는 일상의 아카이브를 통해 지금껏 발견하지 못했던 공동체의 문제를 수면 위로 드러냈다. 나아가 반성과 비판적 시각을 이끌어냄으로써 공공적 의미를 갖게 했다.
작가 3인이 우도의 모습을 회화로 담아낸 ‘리서치형 예술아카이브’는 섬세하다. 작가들은 저마다의 경험을 바탕으로 각기 다른 깊이와 강도를 표현했다. 오현미 우도9경 프로젝트 감독은 “늘 거기 있기 때문에 내부자들은 보지 못하는 장소들이 타자의 시선에 포착되어 다른 모습으로 드러나고 기록된다. 우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부분, 깊이 그려보지 못한 풍경을 작가의 눈을 통해 보고 작가의 손을 통해 재현했다”고 설명한다.
언택트 시대에 회피되는 물리적 접촉을 다른 방식으로 새롭게 시도한 점 역시 인상적이다. 프로젝트는 ‘코로나라는 변수 앞에서 공공미술의 수혜자가 누구인가, 어떤 수혜를 받도록 느끼게 할 것인가’ 등을 고민했고, 그 끝에 찾아낸 방법은 배달이었다. 때로는 에코백의 형태로, 때로는 대형 트럭과 함께, 우도 곳곳에 배달된 선물 같았던 시간은 ‘예술’이라는 두 글자에 담아내기에는 한없이 부족했기에 그 현장의 모습들을 다시금 정리해 봤다.
■ 주민참여형 예술아카이브
주민참여형 예술아카이브는 예술가들이 우도의 주민들을 만나 상호조정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데이터로 생산해내는 과정으로 이뤄졌다. 작업에 참여한 주민들은 낯설고 이질적 존재인 예술가를 받아들이고 함께 작업을 하며 공통의 기억을 갖게됐다.
조일리는 우도에서 가장 먼저 해를 맞이하는 곳이다. 복지회관에 그려진 공현식 작가의 작품이 이를 친절하게 설명한다. 공 작가는 네 명의 이장님들을 만나 각 마을의 특성을 듣고 그 속에서 얻게 된 여러 이야기들로 벽화를 구상했다. 조일리 외에도 제주에서 배를 타고 오면 가장 처음 만나게 되는 천진리, 해녀어르신들이 가장 많이 모여 사는 오봉리, 주민들의 인심이 가장 좋다고 자부하는 서광리 등이 벽화의 주인공으로 선정됐다.
곽민아 작가는 우도 창작스튜디오의 입주작가로 1년을 보냈다. 섬 속의 섬이라는 공간은 때때로 고립이라는 두 단어를 떠올리게 했지만 동시에 작가 스스로가 자연의 일부라는 깨달음을 주기도 했다. 이 과정을 통해 평온함을 얻게 된 작가는 이방인인 자신에게 소박한 진심을 전해준 이들을 기억하기 위해 ‘그림자 초상화’를 그리기로 했다. 의자와 조명을 들고 이웃을 방문해 평소에는 물어보지 못했던 이야기를 나누며 여러 감정의 순간들을 가진 얼굴의 윤곽선을 담았다.
문효진 작가는 일제 탄압에 대한 내용이 담긴 가사 때문에 금지곡으로 꼽혔던 ‘해녀가’를 재해석했다. 그는 오래 전 채보된 악보를 재정리하고 다양한 음악장르로 확장하기 위해 피아노와 피아노 트리오 악보, 음원으로 만들어 이야기가 담긴 음악 다큐로 제작했다.
“몸만 늙는 게 아니라 노래도 다 늙었다. 젊었을 때는 나도 이미자만큼 노래를 부른다 했는데 이제는 늙어지니까 노래도 안 나오고 말도 안 나온다. -우도직녀가 동천진동 김춘산”
박정근 작가는 우도의 현재를 만든 주인공, 해녀들의 삶에 집중했다. 그는 민속학자 문봉순과 함께 우도의 열두 마을에 살고 있는 고령의 해녀들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고 사진을 찍었다. 작가는 ‘해녀’가 아닌 ‘개인’의 모습에 주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고 한다. 바로 척박한 자연환경에서 딸, 엄마, 며느리, 아내로 살면서 희망을 잃지 않는 그녀들의 모습이다. 이들의 삶은 마치 씨실과 날실이 되어 하나의 직물을 만들 듯 한 편의 역사가 되었다.
안수연 작가는 우도의 열 두 주민을 만나 그들이 원하는 장소에서 풍경과 어우러진 각자의 모습을 담아내는 환경초상화를 촬영했다. 모두에게 알려진 ‘관광지’가 아닌 우도에서 오랜 세월을 살아온 사람들의 마음속에 담긴 풍경을 담아낸 것이 특징이다. 40년이 넘게 매일 바라보는 집 앞의 바다, 눈뜨면 바로 일하러 나가는 동네 밭담처럼 말이다.
“여기는 일하고 자유시간이 많고, 강아지도 키우고, 산책도 시킬 수 있고, 우도는 작지만 이 안은 커요. 관광객도 다 나가고 우도가 내 앞마당이에요. 강아지랑 산책하면서 우도봉까지 가면 너무 좋아요. 우리 집 앞마당. -우도로맨스 중”
우도콜렉티브의 ‘우도 로맨스’는 우도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그 모습과 이야기를 담은 인터뷰 프로젝트다. 2019년 진행된 담수화시설의 전시 <우도, 수리수리 담수리>에 이어지는 작품으로 반나절 우도를 둘러보고 떠나는 관광객이 아닌 현지인들의 입을 통해 우도를 조금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도록 기획되었다. 인터뷰는 질문을 던지고 답을 얻는 과정으로 진행되었으며 ‘섬’이라는 선택 불가의 생태적 조건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초점을 맞췄다.
이유진 작가는 우도에 사는 아이들의 기억과 꿈을 예술의 언어로 재현했다. 우도초등학교 4학년 학생들에게 추상화를 그리게 하고 이를 바탕으로 동요를 만든 것. 아기자기한 이 곡을 듣고 있으니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청량감이 느껴진다.
자우녕 작가는 2019년부터 2020년까지 기록한 해녀노트를 기반으로 한 퍼포먼스 ‘보이는 아트쇼’를 선보였다. 해녀가 자신의 서사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마련된 무대에 서서 관람객들을 상대로 인생사를 펼쳐 보이는 방식이다. 첫 번째 퍼포먼스인 ‘우도약방’은 해녀의 몸과 약물중독을 주제로 하는데, 물질한 뒤 따르는 두통을 진정시키기 위해 복용해왔던 진통제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두 번째 퍼포먼스는 학업의 길을 포기하고 해녀의 길을 걸어야함 냈던 한을 담은 ‘마음회로’다.
■ 리서치형 예술 아카이브
리서치형 예술아카이브에는 세 명의 회화 작가들이 참여했다. 세 작가들은 각자 경험한 우도를 저마다의 방식으로 표현했다.
“여름밤, 공기중엔 온통 물기가 가득하다. 불빛과 물기가 서로 손을 맞잡고 허공에 옅은 그림들을 흉내낸다. 그 그림들이 허공에서 춤을 추다 바람을 타고 점점 내게로 다가오다가, 스쳐지나간다.”
먼저 전기숙 작가는 우도의 밤을 담았다. 더 정확히는 관광객들이 돌아간 이후의 풍경이다. 생명을 가진 밤풍경은 낮과는 전혀 다르며 어둠 속에서도 옅은 빛을 뿜어낸다.
“산호사 해변이 더 아름다운 이유는 바다 건너편 아련히 떠 있는 섬, 그 섬 위에 솟아 있는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이쪽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정인희 작가는 우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를 찾아 지도를 그렸다. 여기서 아름답다는 그립다, 쓸쓸하다는 의미를 품고 있다. 작가는 우도를 방문할 때마다 두 감정을 주로 느꼈다고 한다. 들뜬 여행객들이 떠난 자리를 채우는 적막과 고요함을 담고 있는 우도의 표정이라 생각했다.
홍시야 작가는 섬 안의 섬 우도와 가까이 만나면서 사유하고 경험하며 마음을 관찰했다. 그는 이를 두고 “마치 내 안에 있는 반짝반짝한 또 다른 별을 세상 밖으로 꺼내어 놓는 시간이었고 과정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우도라는 섬 안에서 사물, 사람, 풍경과 만난 시점의 이미지 등 심상의 움직임을 포착해 현실과 무의식 사이에서 느껴지는 마음 안의 풍경을 드로잉으로 옮겼다.
■우도9경 아트쇼
그러나 그 무엇보다 ‘우도9경’ 프로젝트가 특별하게 느껴지는 까닭은 개별적이면서 산발적인 방식으로 작품들을 공개했기 때문이다. 두 예술 아카이브 외에도 이번 프로젝트에는 주민들을 직접 만나 그 결과물을 전하는 작업에 무게를 둔 ‘우도9경 아트쇼’가 포함돼 있다.
“처음엔 뭘 이런 걸 찍느냐고 하던 분들이 막상 결과물을 받아보고 나서는 너무 좋아하시더라고요. 가보로 남겨야겠다고 하신 분도 있어요(웃음). 또 우도 곳곳을 돌아다니는 영상 트럭을 보시면서 ‘누구네 할망 나왔네’ 하시면서 웃으시는데 뿌듯하면서도 뭉클했어요.”
‘우도9경’ 프로젝트팀은 2021년 1월 22일부터 23일까지 양일간 프로젝트 로고와 우도콜렉티브의 작품이 새겨진 친환경 가방을 전달하는 ‘딜리버리 아트쇼’를 진행했다. 가방 속에는 결과도록, 아트포스터, 아트달력, 아트디저트 등이 담겨졌고, 총 900개의 가구에 배포됐다.
또 1월 22일~24일에는 ‘움직이는 전시’로 우도 곳곳을 누볐다. 우도9경 참여 작가 11명의 작품을 영상으로 제작해 주민들과 관광객들이 코로나 시대 거리두기를 유지한 채 전시를 감상할 수 있게 한 것. 끝으로 1월 23일부터 2월 22일까지는 ‘걸어다니는 전시’를 기획해 주민들이 우도9경 딜리버리 아트쇼에서 받은 가방을 들고 우도 내 돌담 사이사이를 누비고 다니는 특별한 시간을 가졌다. 주민이 전시의 장소이자 주체가 된 셈이다.
‘우도9경’ 프로젝트는 아쉽게도 짧은 기간으로 막을 내렸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는 ‘공공미술’이라는 주제로 고민해볼 많은 지점들을 남겼다. 우도 기록의 1차 생산자이자 협업자였던 주민들은 예술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예술에 대한 관심을 키워갈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우도를 찾는 관광객들에게는 마을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또 다른 볼거리를 선사하게 됐다. 이제 우도에도 또 다른 ‘구경’거리가 생겼다.
자료 및 사진 |우도9경 프로젝트(아트랩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