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계·문체부 왜 사안마다 충돌하나

김태훈 기자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시민들이 책을 읽고 있다. 권도현 기자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시민들이 책을 읽고 있다. 권도현 기자

출판계와 문화체육관광부가 대립각을 세우며 맞서고 있다. 출판 분야 표준계약서 도입 과정에서 각기 서로 다른 표준계약서를 내놓으며 갈등을 빚은 데 이어 출판유통 관행 개선을 위해 도입이 예고된 출판유통통합전산망을 두고도 양측이 엇갈린 의견을 내고 있다. 여기에 최근 인세 누락 등의 사태가 불거지면서 출판계의 자성을 촉구하는 작가들의 목소리도 더해지면서 상황은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출판계에서는 정부가 주도하는 방식이 출판업계를 향한 일방적인 강요 일색이라며 반발하는 반면, 정부는 일련의 정책이 그간 출판계가 요구해온 숙원을 해결하고 불공정 관행을 개선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최근 출판계를 둘러싼 일련의 사태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한 출판사가 책을 쓴 저자들에게 계약금과 인세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난 데서 시작됐다. 과학소설 전문 출판사인 아작이 장강명 작가의 소설집 <지극히 사적인 초능력>에 대한 출간 계약금을 뒤늦게 지급했고, 출간 이후에도 판매내역 보고와 인세 지급을 미루다가 장 작가로부터 거듭 항의를 받고서야 대응에 나섰다는 점 등이 작가 본인의 지적으로 밝혀진 것이다. 여기에 장 작가와의 협의 없이 출판사가 일방적으로 오디오북을 제작·판매한 사실도 도마 위에 올라 아작출판사는 지난 5월 1일에야 대표 명의로 사과문을 올리며 그간의 관행을 바로잡겠다고 나선 바 있다.

아작은 장 작가뿐 아니라 자사와 계약을 맺은 다른 작가들에게도 비슷한 잘못을 저질렀다며 사과에 나섰다. 이어 향후 저자들과의 계약에 있어서 문화체육관광부가 내놓은 ‘출판 분야 표준계약서’를 활용하는 한편,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오는 9월부터 도입·시행에 들어가겠다고 밝힌 출판유통통합전산망에도 가입해 발행된 책의 유통·판매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겠다고도 밝혔다. 이러한 사후 조치는 장 작가가 아작을 포함한 출판업계를 향해 요구한 내용과 일맥상통하는 지점에 있다.

장강명 작가 인세 정산 누락이 원인

장 작가는 아작 측에서 사과문을 발표한 5월 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한국 영화는 전국 관객이 몇명인지 실시간으로 집계되고 공개된다. 그런데 작가들은 자기 책이 얼마나 팔리는지 출판사에 의존하는 것 외에 알 방법이 없다”며 정부의 개입을 요청한 바 있다. 그러나 출판계의 대표 단체인 대한출판문화협회(출협)가 문체부의 출판유통통합전산망 운영 방침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며 “이번 사건은 아작출판사 한곳에서 벌어진 일이지 모든 출판사에서 관행처럼 벌어지는 일은 아니다”라는 입장을 내놓자 사태는 더욱 확산됐다. 장 작가는 5월 14일 다시 자신의 페이스북에 ‘대한출판문화협회께’라는 글을 올리며 “출협은 문체부를 비판하며 인세 누락 등은 아작에서 일어난 일일 뿐 출판업계에서 흔한 일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고 출협도 그걸 알고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현재까지의 사태를 요약하면 한 출판사가 펴낸 책의 판매내역 및 지급해야 할 인세내역 등을 저자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다가 문제 제기 후에야 진화에 나선 데서 논란이 시작됐다. 하지만 이러한 출판유통 관행을 바로잡겠다는 이유로 정부가 개입하자 출협을 위시한 출판계가 반발에 나섰고, 작가들까지도 출판업계를 성토하며 이참에 보다 근본적인 대책 수립과 정착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책의 저자들과 출판사 간의 계약 역시 일방적으로 출판사에 유리한 방향으로 이뤄져 왔던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문체부가 표준계약서를 내놓았고, 출판계에서도 이와 별개로 독자적인 ‘출판권 및 배타적발행권 설정 계약서’를 발표하며 대치하는 상황이다.

이렇게만 보면 출협을 비롯한 출판업계가 자신들에게 유리한 위치를 지키기 위해 문체부의 개선 대책을 두고 몽니를 부리는 모습으로 읽힐 수 있다. 그러나 출판계 당사자들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논란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오랜 과거 시점에서부터 또 다른 관행처럼 자리 잡아온 ‘관 주도’의 일방적 정책 밀어붙이기에도 문제의식을 가져달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난 정권에서 벌어진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태를 비롯해 정부는 그때그때 자신들의 주도권을 유지하고 입맛에 맞는 정책만을 추진하기 위해 출판계 당사자들의 의견은 묵살하며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해왔다는 것이다.

출판계 계약서는 노예계약인가

대한출판문화협회는 문체부가 출판전산망 사업을 진행하면서 출판계의 동의를 제대로 구하지도 않았고, 전산망 구축 역시 미흡한 상황에서 마구잡이식으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맞서고 있다. 윤철호 출협 회장은 “유통·판매내역을 투명하게 할 수 있는 방안을 민간과의 협력을 통해 마련할 수 있는 상황에서 문체부는 왜 모든 사안을 자신들의 감독과 지도 아래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출판계에는 그저 따라오라고만 강요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체부 방안에 동참하지 않을 경우 세종도서 지원 사업 등에서 배제시키는 등의 강압적인 방식이 ‘블랙리스트’를 악용한 솎아내기와 다르지 않다는 주장이다.

출판전산망과 더불어 표준계약서를 둘러싼 논란 역시 출판계에 호의적이지 않은 여론이 문체부가 더욱 힘을 얻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문체부 표준계약서와 달리 출판계 표준계약서에는 저작권자와의 출판권 등에 관한 계약기간을 기본 10년으로 하고, 출판물을 바탕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 같은 2차적 저작물에 관한 우선권이 출판사에 있다는 조항이 들어 있다. 작가단체 등에서 ‘노예계약’이라며 이들 조항을 독소조항으로 지목하는 이유다. 이에 대해 윤 회장은 “해당 표준계약서는 하나의 예시일 뿐 지금도 실제 계약과정에서는 얼마든지 계약 내용을 수정할 수 있는데 일부 조항만 꼬집어 출판계를 비판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고 말했다.

출판계 안팎에 정통한 관계자들은 보다 중립적인 지점에서 양측이 모두 만족할 수 있는 대안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지적한다. 애초에 출판전산망 도입은 2017년 당시 출판 도매업체 중 두 번째로 규모가 컸던 송인서적이 부도를 맞은 시점에서 출판계에서도 시급한 대책으로 요구한 바 있다. 보다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1990년대 이전부터 출판사와 도매상, 서점 사이에서 명확한 판매내역을 집계하지 않고 어음 거래를 일상화한 고질적인 관행을 바로잡기 위해 줄곧 필요성이 강조됐던 대책이기도 했다.

정부로서도 60억원에 달하는 예산을 들여 전산망 구축 및 시행을 앞두고는 있지만, 출판사들의 자발적 가입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유명무실한 정책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당초 난항이 예상됐던 대형서점들의 참여도 확보해 출판사들까지 가입하면 그동안 주먹구구식으로 파악해온 출판유통 내역과 흐름도 서점과 출판사, 저자 모두 쉽고 투명하게 공유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출판계로서는 각각의 업체가 민감한 영업정보까지 노출되는 것이 달갑지 않을 테니 문체부는 유통내역을 현황 파악에 필요한 항목만으로 한정하겠다는 약속을 해 출판계의 신뢰를 얻을 필요가 있다”며 “장기적으로는 양측의 일방적인 주장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을 수 있다는 건 분명하니 단숨에 모든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과도한 의욕부터 버리고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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