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통의 새 얼굴을 모색한 자유주의 지식인 쉬지린의 ‘맥동중국’

김유익 재중문화교류활동가
쉬지린(許紀霖)의 <맥동중국(脈動中國)-전통문화 50강>

쉬지린(許紀霖)의 <맥동중국(脈動中國)-전통문화 50강>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만들어진 전통>에서 전통문화는 당대 지배층의 필요에 따라, 재구성되거나 창조됐다는 사실을 스코틀랜드 킬트의 예를 들어 논증한다. 쉬지린이 최신작 <맥동중국>을 통해 중국의 전통문화를 재구성하려는 시도는 결을 달리해 볼 수도 있다. 그는 정부와 각을 세우는 자유주의 지식인이고, 그의 주장은 기원이 불분명한 생활전통이 아니라 근거가 명확한 사상사에 기반한다. 하지만 공공지식인으로서의 사명감이 낳은 의도는 국가의 미래 비전 제시일 수 밖에 없다. 중화인민공화국은 한족과 변강지역 소수민족 간의 불화, 일국양제의 형해화, 중국특색 사회주의라는 이념의 진화과정에서 살필 수 있듯 아직도 중화민족의 정체성을 형성중인 ‘진행형 네이션스테이트’이기 때문이다. 쉬지린은 1980년대 신계몽시대를 겪으며 반전통을 추구했으나 2000년을 전후해 전통사상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된다. 이는 그의 많은 동학들이 정체성 고민 속에 취한 노선인지라, 자유주의의 중국화라 불리기도 한다.

학부 교양과목에서 대중서로 옮겨진 이 책의 주류사상은 유학이다. 공자와 맹자, 순자를 거쳐 동중서가 이를 국가이념화하고, 송 명리학에 이르러 주희의 이학과 왕양명의 심학으로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묵가, 양주와 변론하며 발전해, 법가를 낳고, 불교의 도전을 받아 완결된다. 그래서 유가의 주선율 속에 영향을 받은 불가, 도가 그리고 법가 등이 반주하는 중국 전통문화가 어떻게 종교, 정치, 사회구조 속에 녹아들어 있는지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고목에 새싹이 돋는 것이라 비유한 중국 전통의 현대적 재구성은 무엇인가? 명확한 답을 제시하는 대신 몇가지 힌트만 남긴다. 예를 들면 유가가 추구한 최상급 도덕경지인 맹자의 호연지기나 천민(天民)이란 표현으로 드러나는 천인합일이 ‘우주적 시민의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호기로운 표현 같은 것이다. 그 반대쯤에 놓일 윤리의 최저선이 “내가 싫은 것은 남에게도 강요하지 말라는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인데 중국의 내정불간섭 정책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의 생각은 <가국천하(家國天下)>와 같은 책에서 더 찾아볼 수 있다. 그는 민국 초기(1912~1927) 국민국가 만들기 과정에서 각각의 혁명세력이 어떻게 현실의 전통과 이상으로 삼는 서구이념들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며 사상과 실천을 전개해 나갔는지 설명한다. 끝내 아쉬워하는 것은 중화문명과 청 왕조를 중화민국으로 대체하면서 모두가 권력의 확대에만 몰두한 나머지 ‘헌정’을 제대로 세우지 못한 점이다. 춘추시대에 이미 관중은 ‘법의 지배(法治)’ 전통을 세웠으나 법가가 ‘법에 의한 지배(法制)’로 변질시켜 군주의 독재수단으로 악용해왔다 한다.

최근 쉬지린이 한국학계의 기대를 모으는 주제는 신천하주의이다. 소강사회를 달성한 중국의 다음 목표는 더 많은 부와 힘이 아니라 새로운 중화문명의 건설이어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포용적인 옛 천하주의의 장점은 살리되, 탈중심성, 탈등급성을 더해 문화다원주의를 실현해야 한다. 윤리의 최저선에 기반한 얇은 세계주의적 보편성과 두터운 민족국가의 내부적 공공이성을 포개는 것은 존 롤즈의 ‘중첩적 합의’ 개념을 확장한 것이다. 백영서가 일찌기 신천하주의에 제기한 두가지 질문, 즉 이에 걸맞은 중국 내의 정치경제 제도와, 동아시아적 확장에 대해, 성실하게 답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나 정치적 한계는 감안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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