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예능 ‘내가 키운다’가 깨는 정상가족 신화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혼자 키우기? 불가능하지도 불행하지도 않고, ‘비정상’은 더더욱 아니다

더 이상 우리 사회에서 ‘유별난’ 가족 유형이 아닌 ‘솔로 육아족’ 김나영, 조윤희, 김현숙의 실전 육아가 돋보이는 관찰 리얼리티 프로그램 <내가 키운다 : 용감한 솔로 육아> (JTBC)의 한 장면.

더 이상 우리 사회에서 ‘유별난’ 가족 유형이 아닌 ‘솔로 육아족’ 김나영, 조윤희, 김현숙의 실전 육아가 돋보이는 관찰 리얼리티 프로그램 <내가 키운다 : 용감한 솔로 육아> (JTBC)의 한 장면.

“애들 때문에 사는 거지.” 많은 부부가 들숨에 한 번, 날숨에 한 번 하는 말이다. 청자가 자녀라면 ‘애들’은 ‘너희’로 치환된다. 결혼은 사랑의 결실이고, 가정은 숭고한 것이며, 아이는 ‘부’와 ‘모’가 있는 ‘정상적’인 가정에서 행복하고 반듯하게 자란다는데…? 이 뿌리 깊은 ‘정상가족’ 신화는, 현실에 놓고 뜯어보면 곳곳이 너덜거린다.

‘애들 때문에 산다’는 말은 두 가지 층위로 읽힐 수 있다. 긍정적인 경우는 사랑이 사라져도, 양육자끼리 육아라는 공동의 목표를 최우선으로 두고 협조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 말은 대부분 ‘책임 전가’로 통한다. “이혼 가정 자녀가 당하는 차별 때문에, 나는 (아이를 위해) 참고 산다.” 아이에게는 다음과 같은 말로 번역된다. “너 때문에 내가 이렇게(불행하게) 산다.” 무엇이 위하는 길일까?

이혼은 더 이상 낯선 일이 아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2019년 한 해 이혼 건수는 11만800건이며, 매년 비슷한 수의 부부가 이혼한다. 한편, ‘엄마와 아빠, 그리고 2인 자녀’로 이루어진 4인 가족은 더는 가족 형태의 기본값이자 대표가 될 수 없다. 서울시 기준, 2019년 1인 가구 비율은 32%이고 4인 가구는 16.6%에 불과하다. 정부가 발표한 ‘제4차 건강가정 기본계획안’은 혼인과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뿐 아니라 비혼 동거인 등 다양한 가족 형태를 법적으로 인정하겠다는 내용을 포함한다. 이러한 현상을 ‘가족의 해체’ ‘가족의 위기’로 읽어내는 것은 고루하다. 그보다는 가족을 지금까지 ‘억지로’ 단단하게 붙들어 맨 것이 무엇인지, 바꾸어 말하면 무엇이 가족인지 다시 질문하고 새롭게 정의하는 변화의 흐름이라고 봐야 한다. 다만, 어떤 변화 속에서도 아이에게는 안정적인 공간과 보호, 사랑이 필요하다. 7월9일 첫 방송을 시작한 <내가 키운다 : 용감한 솔로 육아>(JTBC)는 이혼한 연예인이 혼자 아이를 키우는 육아 예능이다. 김나영, 김현숙, 조윤희가 출연하고 김구라가 MC를, 채림이 보조MC를 맡았다.

같은 지면을 통해 가족 예능이 강화하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비판한 적 있다. <슈퍼맨이 돌아왔다>나 <아빠! 어디가?> 같은 기존의 육아 예능에서, (남자) 양육자가 혼자 아이를 돌보는 것은 특별한 이벤트이다. 최근 비혼 여성으로서 혼자 아이를 낳은 방송인 사유리가 출연하면서 공고한 구별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내가 키운다>는, 이혼을 고려하는 유자녀 부부가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질문인 “그럼 애는 누가 키워?”에 대한 대답을 프로그램의 이름에 걸고 1인 양육자를 전면에 내세웠다.

[이진송의 아니 근데]육아 예능 ‘내가 키운다’가 깨는 정상가족 신화

‘부’와 ‘모’가 있어야 행복하고
아이가 반듯하게 자란다는
선입견과 현실 부정을 벗어나
가족의 다양성을 증명하는
3인3색의 분투를 응원한다

둘이어도 힘든 육아를 혼자서? 만만치 않은 일이다. 출연자들 또한 처음 시작할 때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해야 하는 점이나, 체력적인 문제 등을 고민했다고 밝힌다. 그래서인지 <내가 키운다>는 지금까지의 육아 예능보다 좀 더 실전의 맛이 난다. 아침 6시 반부터 활기찬 형제와 놀아주는 김나영의 위로 “유독 느리게 흐르는 육아의 시계”라는 자막이 뜬다. 놀아주다 지친 엄마를 눈치채고 기분 안 좋냐고 묻는 아이 앞에서, 조윤희는 당황하며 방긋 웃는다. “육아는 퇴근이 없다”라는 자막과 함께, 김나영은 아이들이 잠든 후에야 집안일을 하고 처음으로 자기만의 시간을 가져본다. 방학도 휴가도 없는 육아의 특성과 고난, 지루한 반복 같은 현실적인 면이 과하지 않게 드러난다. 이러한 장면이 아이와 교감하고 아이에게 아낌없이 사랑을 퍼붓는 모습과 교차한다. <내가 키운다>에서 육아는 ‘딸바보’ 아빠의 훈훈한 A컷이나 ‘귀엽고 천사 같은’ 아이의 ‘힐링’만이 아니다. 고통과 기쁨이 공존하는 현실이다. 알랭 드 보통이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면 <일의 기쁨과 슬픔> 대신 ‘육아의 기쁨과 슬픔’을 먼저 쓰지 않았을까?

출연자는 3인 3색 제각각 다른 사정과 육아관으로 아이를 키운다.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인간으로 살아왔던 이들은 당연히 서로 다른 개성의 엄마가 되었다. 아이의 상황극 요구에 어떻게 해야 하냐는 질문에 패널들은 “엄마 따라 다르죠~”라고 대답한다. “엄마는 처음부터 엄마인 줄 알았는데, 이 아이가 나에게 와서 엄마로 만들어준다. 만들어지는 것이다”라는 말 속에, 비로소 ‘과정 중의, 성장하는 존재인 엄마’가 보인다. 그러다 보니 아이의 다양한 기질과 입체적인 면 또한 자연스럽게 다루어진다. 김나영의 둘째 아들은 예측할 수 없는 순간 토라진다. 그러나 마음이 여리고 섬세하다는 특성이 강조되고, 김나영은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마음을 달래주려 애쓴다. 그러다가도 내내 의젓하던 첫째가 별안간 투정을 부릴 때, 둘째는 혼자 밥을 먹으며 기다리는 의외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이는 내내 의젓하거나 귀엽지만은 않고, 떼를 쓰고 울기도 한다. 자주 징징거리는 아이가 온순하게 굴 때도 있다. 조윤희가 요리하는 동안 혼자 노는 아이를 보고 김구라가 “혼자 잘 노네요?”라고 말하면, 조윤희는 “그럴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다”고 대답한다. 패널들 또한 “맞아, 맨날 다르지” 하고 맞장구친다. <아빠! 어디가?>의 첫 화에서 한 아이가 우는 모습을 집요하게 조명하며 내내 ‘별난 울보’ 캐릭터로 만든 연출과 대조적이다.

출연 계기에 대해서, 김현숙은 솔직하게 말한다. “현실적인 이유입니다. 내가 가장이니까.” 김나영은 말한다. “숨고 싶었어요. 하지만 숨을 수가 없잖아요.” 그리고 자신이 이혼 후 너무나 많은 응원을 받았고, 그 힘으로 다시 일어섰기에 다른 사람들을 응원하고 싶어 출연을 결심했다고 한다. 혼자서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것은 용기와 응원이 필요한 일이지만, 불가능하거나 불행한 일은 아니라고, <내가 키운다>는 또렷이 말한다.

물론, 개인이 당당해진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불행한 결혼 생활을 그만두지 못하거나, 이혼 가정의 구성원이 고통받는 이유는 사회의 편견과 제도적 차별이다. 우리 사회는 좀 더 담백하고 산뜻한 태도를 학습할 필요가 있다. 2012년 <라디오스타>(MBC)에 출연한 김서형은 부모의 불화를 “남녀로서 안 맞았다. 이해는 한다”고 담담하게 말한다. 분위기는 숙연해진다. 가정사는 당사자의 의견과 무관하게, 곧장 개인의 ‘불행’으로 치부된다. “힐링하는 느낌으로 가면 김서형씨를 잘못된 케이스로 바라볼 것 같아서”라며 조심스러워하지만, 계속해서 김서형을 안쓰러워하던 김승수는 갑자기 안아준다(?). 이때 김서형의 황당한 표정이 백미다. 남의 가정사를 함부로 연민하려는 사람에게 보여주자. 예방접종 영상의 검색어는 ‘김서형 엄마가 뭐길래 #17’(제발 봐주세요).

올해 초 있었던 정책 관련 행사에서 김지환 한국싱글대디가정지원협회 대표는 “나에게 정상가족은 한부모 가정이다. 두 부모 가정은 두 부모 가정이다”라고 발언했다. 현실에서는 가정마다 구성원의 수나 형태의 기본값이 다르다는 당연한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두 부모 가정을 정상으로 설정하고 ‘한부모’ 가정에만 다른 이름을 붙여 구별하는 것이 왜 문제인지, 가정의 역할과 가족의 의미는 어떤 것인지 계속해서 질문하고 바꿔나가야 한다. <내가 키운다>에서 김현숙과 함께 아이를 키우는 조부는, 엄밀히 말하자면 김현숙의 친부가 아니다. 김현숙의 어머니가 삼 남매를 다 키운 후 재혼한 새아버지다. 그러나 김현숙이 이혼을 고민할 때 버팀목이 되어주겠다며 먼저 손을 내밀었고, 사랑으로 손자를 키운다. 친밀함과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은 또 다른 공동체를 만든다. 혈연과 제도보다 공고한 연결 고리 속에서, 아이는 행복하게 자랄 것이다. 따뜻한 가정 바깥의 안전하고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어갈 의무가 우리에게는 있다.

[이진송의 아니 근데]육아 예능 ‘내가 키운다’가 깨는 정상가족 신화

프로그램 자체를 놓고 봤을 때 아쉬운 점은 MC 김구라다. ‘1세대 솔로 육아’라는 타이틀도 조금 어이없지만, 출연자들에게 “나를 보고 용기를 낸 건 아닌가” 하는 말은 자아도취적이다. 재혼했으니 회장 자격이 없다는 문제 제기 또한 타당한데, 갑자기 부인 이야기를 하면서 대화의 맥을 끊기도 한다. 김나영의 적절한 제지가 종종 빛을 발한다. 아이 개인의 기질을, 딸과 아들의 성향으로 정형화해 비교하는 장면도 줄어들었으면 한다.

용감하고 즐거운 <내가 키운다>가 앞으로도 방향성을 잘 잡아서 쭉쭉 질주하기를. 지금도 어딘가에서 치열하게 진행 중일 솔로 육아, 함께 육아에 응원과 지지를 보내며, 더 느슨한 가족과 자유로운 개인을 상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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