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주하는 <골 때리는 그녀들> 인기 비결은

김서영 기자
축구 리그 형식의 SBS 예능 프로그램 <골 때리는 그녀들>.  SBS

축구 리그 형식의 SBS 예능 프로그램 <골 때리는 그녀들>. SBS

축구 리그를 표방한 SBS 예능 <골 때리는 그녀들>(골때녀)이 트로트와 관찰예능 일색이던 방송가에서 신선한 질주를 하고 있다. FC개벤져스, FC불나방, FC구척장신, FC국대패밀리에 FC월드클라쓰와 FC액셔니스타가 새로이 합류하며 저마다의 관전 포인트로 시청자를 사로잡는다. 대부분 축구를 해본 적 없는 초짜들이지만 매 경기 감동을 그려낸다. ‘축구를 한다’란 평범한 명제 앞에 ‘여자가’를 더했더니 새로운 재미가 탄생했다. 시청자들에게서 <골때녀>의 매력을 들었다.

■돋보이는 진정성

<골때녀>의 가장 큰 매력으론 ‘진정성’이 꼽힌다. 예능 프로그램임에도 웃기려고 하지 않고 진지하게 임할수록 재미가 커지는 역설이 바로 진정성에서 나온다. 흔한 토크나 미니게임, 몸개그 없이 출연자들은 오로지 축구(풋살) 훈련과 경기에 임한다. “한골만 넣었으면 되는데”(김민경·FC개벤져스)든지, “볼이 흥분제가 됐다. 공이 그렇게 아름다울 줄 몰랐다”(신효범·FC불나방)라며 승부욕을 불태운다. 발가락이나 눈 부상을 당하는 투혼까지도 선보인다.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한혜진·FC구척장신)는 명언도 탄생했다. 이들은 실책했을 때의 아쉬움과 득점 순간의 기쁨을 고스란히 표현하며 ‘진심은 가장 강력한 무기’란 오래된 명제를 증명한다.

진정성은 방송 밖에서도 뻗어나온다. 출연자들은 개인 SNS나 매체 인터뷰에서 축구에 대한 열정을 내비쳐왔다. “축구는 매 순간이 놀라움의 연속”(최여진·FC액셔니스타), “여자들도 즐겁게 축구를 할 수 있고 단합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박선영·FC불나방), “축구를 하면 진짜 모든 걸 쏟게 되는 것 같다”(신봉선·FC개벤져스) 등이다. 시청자 박모씨(30)는 “출연자들의 SNS를 보면 연습하는 모습이라든가 열심히 준비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이렇게 똘똘 뭉쳐 간절하게 축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상태에서 방송을 보니 출연자들이 울 때 공감이 된다. 신파도 아닌데 눈물이 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골때녀>는 ‘좌절-극복-성장’이라는 스포츠 고유의 서사를 충실하게 따른다. 일례로 지난 시즌 0골이었던 최약체 FC구척장신은 4개월여의 특훈을 거쳐 무시할 수 없는 팀으로 거듭났다. 최근엔 승부차기 끝에 승리를 거두기도 했다. 패스조차 제대로 되지 않던 멤버들이 이젠 세트플레이를 보여주고, 유효슈팅을 때린다. FC구척장신뿐만 아니라 어느 팀이나 승부의 순간이 오면 다같이 껴안고 눈물을 흘린다. 룰에 미숙한 모습이나 자잘한 실수가 나오기도 하지만 ‘좌절-극복-성장’이란 서사 구도에서 이는 성장의 발판이 되며 오히려 시청자들이 감정이입할 여지를 열어준다.

여성들이 축구선수로 나선 예능 프로그램의 한 장면. SBS

여성들이 축구선수로 나선 예능 프로그램의 한 장면. SBS

시청자 김모씨(33)는 종종 출연자들과 같이 운다. 그는 해외 축구 리그를 챙겨보고 직접 축구를 하기도 하는 ‘눈 높은’ 남성 축구팬이다. 그는 주변에 “<골때녀>가 유로 경기보다 훨씬 재밌다. 긴장감이 넘친다”고 말하고 다닌다. 김씨는 “축구를 전혀 모르던 이들이 하나씩 알아가고 배워가는 모습이 보기 좋다. 이런 모습은 프로선수들의 경기에서는 볼 수 없는 극적인 요소”라고 했다. 또한 그는 “점점 전략이나 기술을 구사해나가면서 발전하고 변하는 모습에 공감이 간다. 나도 그랬던 시기가 떠오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A씨 역시 이 같은 ‘성장 서사’가 <골때녀>의 매력이라고 봤다. 그는 “축구를 해본 적 없는 사람들이 모여 연습하고 점차 좋은 경기를 보여줬다. 잘하든 못하든 최선을 다하는 승부욕과 열정이 멋졌다. 상대팀을 헐뜯지 않고 오히려 서로 응원하고 격려하는 모습도 흡인력 있는 이유”라고 말했다. 또한 “마음처럼 잘 안 될 때 안타까움, 나도 모르게 잘했을 때의 뿌듯함 등이 고스란히 느껴지고 본업을 잊을 만큼 몰두하는 모습 때문에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고 했다.

■여자가 축구를 한다, 뭐 어때

출연자들은 “집중!”, “뛰어!”라고 외치며 동료를 각성시키고, “언니! 나!”라며 볼을 달라고 뛰어오른다. 득점에 성공하고 나서 주먹으로 그라운드를 내리치고, 격한 몸싸움도 피하지 않고 마구 나뒹군다. 이처럼 여성 출연자들이 ‘몸을 쓰는’ 장면이 우스꽝스럽지 않고 진지하게 소비되는 자체가 상당히 낯선 그림이다. 사회적으로 고정된 ‘여성성’의 틀과 대치되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 같은 모습은 ‘스포츠’라는 울타리 안에서 오히려 더 멋진 장면으로 승화한다. 박씨는 “여성에게도 분명 승부욕이 있음에도, 오디션 프로그램에서조차 이를 내보이면 욕을 먹곤 했다. 그런데 <골때녀>에선 승부욕이 거리낌 없이 드러나고, 골을 넣기까지 울고 투닥거리는 모습을 볼 수 있어 새롭다”고 말했다. 배모씨(33)는 “(남성으로서 가지고 있던) 여자 스포츠는 덜 역동적이다, 덜 재미있다는 내 안의 편견이 깨진다. 여성들이 신체활동에 격렬하게 몰입한 모습을 접할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골때녀>를 보며 해방감이 느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여성들이 축구선수로 나선 예능 프로그램의 한 장면. SBS

여성들이 축구선수로 나선 예능 프로그램의 한 장면. SBS

출연자를 비추는 방식 또한 ‘미모’나 ‘몸매’에 초점을 맞추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김씨는 “과거에도 스포츠 예능 프로그램에 여성들이 나오긴 했지만, 몸매를 강조하는 춤을 추게 하거나 미숙하게 치고 박는 모습을 일차원적으로 소비하는 수준이었다. 이에 비하면 <골때녀>에선 진정성과 열의가 강조된다”고 평가했다. 박씨는 “각 팀 감독들부터가 출연자를 ‘편견덩어리로서의 여자’가 아니라 그냥 선수로, 애착과 승부욕을 갖고 대하는 점이 좋다”고 했다.

진정성과 성장 서사로 무장한 <골때녀>는 ‘나도 축구 해볼까’란 자극을 불어넣고 있다. 특히 운동을 하고 싶었으나 충분한 기회를 가지지 못했던 여성들의 호응이 크다. 박씨의 학창시절 운동장은 ‘남자는 축구, 여자는 피구’로 쪼개져 있었다. 체육대회에서도 남자애들이 경기를 뛰면 여자애들은 그늘에서 응원하거나 흙장난을 한 기억이 대부분이다. 그는 “남자애들은 큰 운동장에서 뛰어다니는데 여자애들은 구석에 요만큼 금 그어서 하는 것만 기껏 허용됐다. 그나마도 피구는 공을 무서워하게 되고 서로 기분만 상했다”고 돌아봤다. <골때녀>는 그에게 희망을 가져다줬다. 그는 “예전에 남성 연예인들로 구성된 <천하무적 야구단>을 볼 때는 저게 내 얘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반면 다양한 체형과 연령대의 여성들이 나오는 <골때녀>를 보며 당장은 아니더라도 나도 할 수 있단 가능성이 열렸다. 앞으로 우린 여자 50~60대 풋살팀도 만들 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고 했다.

여성들이 축구선수로 나선 예능 프로그램의 한 장면. SBS

여성들이 축구선수로 나선 예능 프로그램의 한 장면. SBS

■나도 축구 해볼까

여성 대상 스포츠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위밋업스포츠’의 양수안나 대표는 처음 축구의 문을 두드린 여성들이 <골때녀> 출연자들처럼 “왜 이 재밌는 걸 여태 몰랐을까”란 반응을 보인다고 했다. 양 대표는 “잘해야지만 즐길 수 있다는 생각에 축구를 멀리했던 여성들도 출연자들이 실력이 느는 걸 보며 자신의 이야기라고 느끼지 않을까. 축구를 잘하지 못하더라도 자신감과 신체에 대한 긍정을 얻는 것만으로도 큰 성과”라고 말했다.

돌아보면 출연자들의 축구 실력이 향상하는 것과 더불어 프로그램도 개선돼왔다. 출연자도, 프로그램 자체도, 이를 지켜보는 시청자들도 점점 몰입한 것이다. 배씨는 “초반에는 출연자들이 축구에 미숙한 점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것 아닌가 싶었는데 가면 갈수록 진지해졌다”고 평했다. FC개벤져스를 응원하는 A씨 역시 “파일럿 때는 출연자가 누구의 아내임을 지나치게 강조하거나, 외모를 가지고 희화화한 일이 빈번했다. 그에 비하면 지금은 개개인의 장점을 좀더 조명한다”고 했다.

현시점에서 시청자들은 시즌제 편성, 여성 지도자 출연, 출연자 부상 방지 대책, 본방송에 연습 및 훈련 장면 추가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 같은 바람이 반영돼 더 신선하게 ‘골 때리는’ 프로그램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의문이 남는다. 도대체 축구의 매력이 뭐길래 저토록 축구에 미치는 것일까? 어릴 때 “여자가 무슨 축구냐”란 핀잔을 듣곤 했던 김모씨(31)는 재작년 풋살에 도전했을 때의 기쁨을 이렇게 전했다. “넓은 공간을 누비며 뛰는 것 자체가 좋았다. 조직적으로 달리면서 세트플레이를 할 때의 맛이 있다. 한골을 넣기 위해 무진장 애를 쓰고, 넣었을 때의 희열이 엄청나다. 넓은 잔디밭을 보면 되게 아깝다. ‘여기서 공 차면 어떨까’란 생각이 든다.”


Today`s HOT
경찰과 충돌하는 볼리비아 교사 시위대 황폐해진 칸 유니스 교내에 시위 텐트 친 컬럼비아대학 학생들 폭우 내린 중국 광둥성
러시아 미사일 공격에 연기 내뿜는 우크라 아파트 한국에 1-0으로 패한 일본
아름다운 불도그 선발대회 지구의 날 맞아 쓰레기 줍는 봉사자들
페트로 아웃 5연승한 넬리 코르다, 연못에 풍덩! 화려한 의상 입고 자전거 타는 마닐라 주민들 사해 근처 사막에 있는 탄도미사일 잔해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