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쓸모? '평균 61세' 지하철 청소노동자들의 현대무용 도전기

유경선 기자
9명의 지하철 청소노동자들이 그들의 삶을 주제로 현대무용 공연 <지하철 차차차>를 준비했다. EBS 제공

9명의 지하철 청소노동자들이 그들의 삶을 주제로 현대무용 공연 <지하철 차차차>를 준비했다. EBS 제공

지하철 청소노동자들이 춤을 춘다. 장르는 현대무용이다. 평균연령 61세인 이들이 쓸고 닦고 치우는 일상, 각자 삶의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몸짓과 표정에 담아 정성스럽게 객석으로 건넨다.

지하철 1~4호선 청소노동자 9명이 참여한 현대무용작품 <지하철 차차차>는 ‘예술의 쓸모’를 고민하는 데서 출발한 기획이다. ‘왜 예술과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이들에게서 구했다. 평생 생계를 위해서만 몸을 움직였던 이들의 일상에 예술이 스미게 하고, 거기서 생기는 변화를 보여주고자 했다.

10개월의 여정 끝에 10분짜리 공연이 나왔다. EBS가 ‘예술의 쓸모’를 보여주는 3부작 다큐멘터리를 기획했고, 그 시작이 <지하철 차차차>다. 9명의 노동자들을 무용수로 지도한 예효승 현대무용가를 4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만났다. 노동자들에게도, 예 무용가에게도 도전이었던 <지하철 차차차>가 탄생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들었다.

현대무용가 예효승씨가  4일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인터뷰하고 있다./우철훈 선임기자

현대무용가 예효승씨가 4일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인터뷰하고 있다./우철훈 선임기자

당연히 쉽지 않았다. 9명은 무용 훈련을 받은 적이 없다. 노동으로 어깨와 허리는 굳은 상태였다. 이들에게 현대무용이라는 분야는 생소했다. “K팝 춤이나 스포츠댄스를 배울 줄 알고 왔다고 하시더라고요. 스스로 동작을 고민하고 창작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을 낯설어하셨어요.” 연습이 완전히 궤도에 안착하기까지는 “두 달 가까이 걸렸다”고 예 무용가는 전했다. “순서를 잘 못 외우신다”는 난관도 있었다.

연습이 한창이던 중에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사회적(물리적) 거리두기 단계가 올라가면서 연습이 1대1 레슨으로 전환됐다. 전화위복이었다. 뜻하지 않게 개인지도를 시작하면서 9명 개개인의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다가왔다. “한분 한분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개인별 ‘다큐멘터리’를 찍게 된 거예요. 모두 정말 버라이어티한 삶을 사셨더라고요.” 그렇게 공연의 스토리가 풍부해졌다.

‘9인 9색’ 이야기는 각자의 솔로 안무에 담겼다. 한 노동자는 결혼 직후 무작정 남편을 따라간 타국에서 20년 넘게 고생스러운 세월을 보냈다. 희망과 기대로 빛났던 출국길, 자녀들에 대한 책임으로 무거웠던 입국길의 감상이 안무로 표현됐다. 깊은 산속에 집이 있다는 한 노동자는 야간작업을 할 때면 깜깜한 출퇴근길이 너무 무섭다고 했다. 자식에 대한 책임감으로 용기 내서 어둠을 헤치는 동작도 안무가 됐다.

자신의 이름을 몸으로 표현하는 부분도 있다. 예 무용가는 이 장면이 특히 강렬했다고 말했다. “어떤 분은 눈믈을 흘리면서 자기 이름을 쓰셨어요. 평생 자신의 이름을 이렇게 정성껏, 그것도 몸의 일부분을 이용해서 쓰는 경험이 벅찼다고 하시더라고요. 팔꿈치에서 피가 날 정도로 하시는 분도 있었어요. 무서울 정도로 자기 이름을 쓰시는데, 그게 정말 감동이었습니다.”

예 무용가는 일반인과의 작업에 더 흥미를 느낀다고 했다. “무대에는 각종 희로애락의 감정, 갖가지 인간사에서 비롯한 ‘연륜’이 서야 하거든요. 무용교육을 안 받은 분들에게 조금만 팁을 드리면 오히려 표현이 무궁무진해지고요. 이분들이 그랬습니다. 60여년간의 다양한 경험이 마구 흘러나왔어요. 솔직하고 인간미가 느껴지는 춤들을 추셨습니다.” 9명 노동자들의 지난 세월이 유독 진하게 다가올 때면 연습실에 있던 사람들은 누구랄 것 없이 눈물을 보였다.

9명의 지하철 청소노동자들이 그들의 삶을 주제로 현대무용 공연 ‘지하철 차차차’를 준비했다. EBS 제공

9명의 지하철 청소노동자들이 그들의 삶을 주제로 현대무용 공연 ‘지하철 차차차’를 준비했다. EBS 제공

9명의 지하철 청소노동자들이 그들의 삶을 주제로 현대무용 공연 <지하철 차차차>를 준비했다. EBS 제공

9명의 지하철 청소노동자들이 그들의 삶을 주제로 현대무용 공연 <지하철 차차차>를 준비했다. EBS 제공

9명의 지하철 청소노동자들이 그들의 삶을 주제로 현대무용 공연 <지하철 차차차>를 준비했다. EBS 제공

9명의 지하철 청소노동자들이 그들의 삶을 주제로 현대무용 공연 <지하철 차차차>를 준비했다. EBS 제공

9명 노동자들의 춤 열정은 대단했다. 발레와 요가 동작을 쑥쑥 익히는가 하면 멍이 들 정도로 바닥에 무릎을 쿵쿵 찧었다. 노동자들의 부지런함과 기초체력은 큰 도움이 됐다. “체력 하나만큼은 걱정을 안 할 정도였어요. 출퇴근길에도 쉬지 않고 연습하셨다고 합니다. 제가 살살 하시라고 말릴 정도였으니까요.”

정식으로 무대에 올린 공연은 아니다. 소수의 지인들만 불러 한 차례 공연했다. 예 무용가는 무대에 올리고 싶은 생각이 “너무 많다”며 “대박이 날 수 있다”고 웃었다. “몇 안되는 관객들이 공연 끝나고 눈물을 훔치며 일어나지를 못하더군요. 스태프들도 모두 먹먹했어요. 무대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관객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EBS가 공동기획한 이들의 이야기는 오는 9일 오후 9시50분 EBS 1TV <다큐프라임>에서 방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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