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로 담아낸 위안부 문제···‘비취색 바다를 향해 노래 부르다’

김민정 재일 작가

후카자와 우시오

<비취색 바다를 향해 노래 부르다>

[김민정의 도쿄 책갈피]소설로 담아낸 위안부 문제···‘비취색 바다를 향해 노래 부르다’

가와이 하나는 서른의 미혼, 여성, 회사원이다. 학벌이 좋은 것도 아니고 멋진 연인이 있는 것도 아니며 뛰어난 재주도 없다. 부모님은 빨리 결혼하라고 난리다. 학창 시절에 칭찬을 받던 글솜씨라도 살려보고자 신춘문예에 소설을 보낸 지 벌써 10년이다. 하나의 꿈은 하루빨리 등단하는 것이다. 다만 차기작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바로 그때, 아끼는 한국 아이돌이 SNS에 올린 한 장의 사진을 보게 된다. 일본군 위안부를 지원하는 사회적기업이 제작한 티셔츠를 입은 아이돌. 그러나 그 아래 달린 댓글이 무시무시하다. ‘지금 일본이랑 싸우자는 건가?’ 아이돌이 입은 티셔츠 때문에 전쟁에 관심이 생긴 하나는 미군과 전투가 벌어진 오키나와를 찾아간다.

투명한 바다, 새하얀 모래사장, 쏟아지는 햇빛. 그러나 오키나와의 과거는 그리 찬란하고 평화로운 것이 아니었다. 전사자들의 추모비와 사람들이 간신히 몸을 숨겼던 동굴과 방공호를 여기저기서 볼 수 있다. 하나는 방공호 대용으로 쓰이던 동굴에서 일본군 위안부들이 분뇨를 실어나르는 일을 했다는 정보를 얻게 된다. 그리고 그 여성들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사람들은 똑같이 ‘아리랑’을 흥얼거린다.

소설 속의 또 다른 주인공은 1940년대를 살고 있는 한반도 출신의 한 일본군 위안부이다. 일본군을 따라다니며 잡일하는 여성을 구한다기에 차에 오른 그는 중국을 떠돌다 오키나와까지 오게 된다. 지금은 ‘고하루’로 불리지만 위안소가 바뀔 때마다 이름도 바뀌었다. 매일처럼 수많은 일본군을 상대해 온몸이 상처투성이인 그, 위안소 밖에서는 매춘부라며 돌멩이를 맞기도 한다. 도망쳐도 갈 곳이 없고 살아남을 보장도 없다. 비취색 바다를 보고 노래를 부르는 것이 유일한 위안이다.

후카자와 우시오의 <비취색 바다를 향해 노래 부르다>는 현대를 살아가며 일본군 위안부의 흔적을 따라가는 가와이 하나와 과거 속에서 고통받는 한반도 출신 일본군 위안부 고하루의 이야기를 함께 그린 액자소설이다. 여러 번 오키나와에 가서 수많은 전쟁 경험자들로부터 들은 증언을 토대로 소설을 썼다.

이 소설에서 가장 묘하게 느껴지는 부분은 일본군 위안부를 소재로 글을 쓰겠다는 하나를 말리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하나의 절친은 “그런 걸 썼다가 비난받으면 어쩔 거냐?”고 묻는다. 하나가 따르는 편집자는 “그런 걸 쓰기엔 아직 이른 것 같다”고 한다. 전쟁을 경험한 오키나와의 여성은 등단을 위한 꼼수 정도로 해석한다. 그렇다, 광복 76주년, 일본에선 패전 76주년이 지난 지금도 일본에서 일본군 위안부는 여전히 터부인 것이다. 그 사이 역사수정주의자들이 손꼽을 수 없을 만큼 등장했다. 후카자와 우시오는 일본군 위안부를 소재로 한 소설 창작을 미루는 하나라는 인물을 통해 결국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소설로 써내는 현명한 방식을 택했다.

지난 8일 NHK는 문부과학성의 요청으로 교과서에서 ‘종군 위안부’라는 표현이 사라지고 ‘위안부’로 수정되었다고 전했다. 군대와의 연관성을 끊기 위함이다. 일본의 정치가들은 아름다운 일본으로 되돌아가자고 하는데, 과연 일본에 그런 시절이 있었을까? 돌아갈 곳은 없다. 제대로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다.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담담하다. 그래서 더욱 잔인한 일본군 묘사에 치를 떨다가 고하루가 남긴 기적에 왈칵 눈물을 쏟게 된다. 아는 것은 힘이고 선한 것은 감동이다.


Today`s HOT
파리 뇌 연구소 앞 동물실험 반대 시위 앤잭데이 행진하는 호주 노병들 기마경찰과 대치한 택사스대 학생들 케냐 나이로비 폭우로 홍수
황폐해진 칸 유니스 최정, 통산 468호 홈런 신기록!
경찰과 충돌하는 볼리비아 교사 시위대 아르메니아 대학살 109주년
개전 200일, 침묵시위 지진에 기울어진 대만 호텔 가자지구 억류 인질 석방하라 중국 선저우 18호 우주비행사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